러시아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지난해까지 동북아를 포함한 극동 지역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러시아는 극동 지역의 대대적인 개발을 하며 옛 소련의 ‘힘’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극동 지역은 석유와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으로 중국과 남·북한과는 국경을 접하고 있는 데다 태평양을 두고 미국·일본과 마주하고 있다. 때문에 러시아는 이 지역의 개발을 필두로 러시아 부활의 활로를 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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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가 동북아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며 옛 소련의 ‘힘’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27일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러시아 해군 사령관은 ‘해군의 날’을 맞아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항공모함 5~6척을 건조할 것이며 2012년 이후에 북해 및 태평양 함대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히며 자국 해군함대 강화를 통해 다시 세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
태평양 함대 전력 강화, 군사적 부활
최근 러시아는 자국 해군함대 강화를 통해 다시 세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지난 7월 27일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러시아 해군 사령관은 ‘해군의 날’을 맞아 “가까운 미래에 새로운 항공모함 5~6척을 건조할 것이며 2012년 이후에 북해 및 태평양 함대에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새로 건조하는 항모를 미국처럼 대형화하지는 않는 대신 첨단화에 주력하고 적의 어뢰 공격으로부터 항모를 보호하며 상륙작전까지 가능하도록 육·공군과의 협력으로 핵 잠수함·구축함·무인정찰기·해병대를 포함하는 항모전단(戰團)을 구성할 계획이다. 항모전단을 북해 함대와 태평양 함대에 집중 배치, 미국과 대등한 전력을 보유한다는 전략과 함께 태평양 함대에 올 연말까지 최신예 핵 잠수함도 배치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공군력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공군은 지난해 8월 극동기지인 블라고베셴스크에서 Tu-95MS 폭격기 2대를 발진시켜 미군의 핵심 기지가 있는 태평양의 괌까지 비행하며 군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러시아 전략폭격기가 괌까지 무려 13시간 동안 장거리 비행을 한 것은 냉전 종식 후 처음이다.
파벨 안드로소프 공군 소장은 러시아 언론과의 회견에서 “미군 항모에서 출격한 전투기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들과 웃음을 교환한 뒤 귀환했다”며 “과거 냉전 시절 젊은 조종사들이 태평양을 건너 미군 전투기들과 조우하던 전통을 되살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러시아 해군력 강화는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의 대러시아 포위정책에 대한 대응으로 분석된다.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C)체제 구축, 우크라이나 등 옛소련 위성국의 북대성양조약기구(NATO) 가입, 코소보 독립 지지 등은 모두 러시아를 압박했었다.
이와 관련, 지난 8월 30일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러시아 군대가 부활했다. 러시아 군의 별명인 ‘스팀롤러’(steamroller·도로 건설용 롤러)처럼 장애물을 뭉개면서 전진하는 데 다시 성공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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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그루지야 무력 침공은 러시아가 ‘동방의 패권국’으로서 다시 떠오르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이번 사태를 러시아가 친서방 정책을 추구하는 옛 소련 주변국과 서방에 대한 경고로,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재부상과 신(新)냉전 체제의 태동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
그루지야 무력침공으로 제국 부활 신호탄 울리다
지난 8월 8일 러시아의 그루지야 무력 침공은 러시아가 ‘동방의 패권국’으로서 다시 떠오르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을 포함한 서방 국가의 강한 비난 속에서 지난 8월 16일 휴전협정에 서명했으나 러시아군은 그루지야 영토 내에서 즉각적인 철군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AP통신 등 외신들은 이번 사태를 러시아가 친서방 정책을 추구하는 옛 소련 주변국과 서방에 대한 경고로,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의 재부상과 신(新)냉전 체제의 태동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이번 사태는 러시아가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다른 나라를 처음 공격한 사례이다.
‘러시아 인 글로벌 어페어스 매거진(Russia in Global Affairs Magazine)’의 표도르 루캬노프 편집장은 “러시아는 이미 해외에서 러시아의 군사력을 자랑할 만한 실력을 갖췄고 해외에서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다.
또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는 러시아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우크라이나의 크림 지방, 북카자흐스탄, 발트 국가들에도 유사한 전술을 적용해 이들 지역을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유입시키려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왜 인구 450만 명의 소국 그루지야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그루지야가 국제질서의 향방에 중요 변수가 되고 있는 것은 지정·지경학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그루지야는 북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남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서쪽으로 흑해와 터키를 접하고 있는 카프카스 산맥 지역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그루지야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다. 지정학적 측면에서 볼 때 그루지야는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과 러시아가 대치하는 ‘경제 국가’이이며 지경학(地莖學)적으로도 ‘동서 에너지 회랑(주요 수송로)이다.
이번 그루지야 사태를 계기로 ‘신(新)냉전’이 국제질서의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그루지야는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도바와 함께 친서방 성향을 가진 국가 그룹(GUAM)이다. 미국은 그동안 그루지야를 비롯해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을 강력하게 지원, 러시아를 견제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에 따라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3국과 우크라이나, 몰도바, 아제르바이잔 등이 친미국가로 바뀌었다. 러시아는 이번에 일종의 대리전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미국과의 세력 다툼에서 사실상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8월 26일 국영 TV에서 “우리는 냉전을 포함해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AP통신은 보도했으며 FT는 “최근 NATO의 그루지야, 우크라이나에 대한 회원국 가입 논의와 미국이 동유럽에 미사일 방어(MD) 기지 건설을 추진한 것이 러시아를 자극해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며 “러시아가 이제 자신들만의 완전히 새로운 '룰'을 만들 수 있는 국제사회 강국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러시아는 자국과의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과 북한을 포용하는 전략도 추진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지난 7월 아무르강에 있는 타라바로프섬 전체와 볼쇼이 우수리스크섬의 절반 등 총 174㎢를 중국에 넘겨주기로 합의함으로써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왔던 영토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바실리 미헤예프 러시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동북아연구센터 소장은 “러시아가 북한 접경 지역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은 북한을 포용하고 동북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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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루지야는 지정·지경학적 요충지로 국제질서의 향방에 중요 변수가 되고 있다. 그루지야는 북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남동쪽으로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서쪽으로 흑해와 터키를 접하고 있는 카프카스 산맥 지역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
풍부한 천연자원 러시아 비상에 날개 달다
러시아의 풍부한 천연자원은 러시아가 다시 세계 패권국으로서의 면모를 다질 수 있는 요인을 만들어 주었다. 원유 매장량이 600억 배럴로 세계 8위(세계 전체의 6%), 생산량은 하루 930만 배럴로 세계 2위다. 특히 극동 지역에는 러시아 전체 원유 매장량의 16%, 천연가스 매장량의 21.7%가 있으며 그중 사할린은 현재까지 확인된 사할린 섬과 인근 해저에 매장된 원유는 27억 배럴, 천연가스는 1조 2,610억㎥로 이는 한국이 각각 3년, 6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오는 2012년이면 동시베리아 송유관 건설을 완공, 송유관 종착지인 연해주 남부 지역에 대규모 원유터미널과 정유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또한 2016~2017년께 야쿠츠크 가스전에서 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북한 또는 동해안~한국으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을, 2014~2015년에는 사할린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파이프라인을 각각 완공할 계획이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극동지역 대통령 전권 대표에 자신의 최측근 중 한 명인 연방보안국(FSB) 출신의 올레그 사포노프 전 내무차관을 임명하는 등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고유가는 러시아의 비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2003년 배럴당 30달러 수준이었던 국제유가가 최근 90달러를 훌쩍 뛰어넘으며 세배 이상 급등했다. 유가 상승분만큼 러시아 국부도 불어나고 있다. 러시아의 하루 석유 수출분만 5억 3,000만 달러에 이른다. 천연가스와 철광석의 매장량 및 생산량도 세계 1,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천연자원 덕분에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개인 소비를 중심으로 국내 수요가 활성화되면서 러시아 경제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오일 생산으로 연 26%의 고성장률을 기록하면서 매년 300억 달러 수준으로 다시 늘어났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해 1,890억 달러를 투입,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잠수함, 항공모함 등 군사력을 현대화하는 8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는 오는 2020년까지 세계 5대 경제대국 진입을 목표로 하는 ‘플란 푸티나(푸틴의 계획)’를 추진하고 있다. ▲첨단산업 육성을 통해 산업구조를 다양화하고 ▲규제 축소와 에너지 수송 등 인프라를 확충하며 ▲금융산업을 강화해 모스크바를 국제금융도시로 만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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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탄한 경제 성장과 원유·천연가스 등 막대한 천연자원 등으로 대출천국으로 러시아는 만 9년 만에 대출천국으로 변모했다. 이런 데에는 푸틴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5월 대통령에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현 총리)은 1998년 모라토리엄선언으로 망가진 러시아의 경제를 살려냈다. |
푸틴의 힘, 러시아의 제국부활 실현
러시아는 1998년 400억 달러의 대외채무를 갚지 못해 모라토리엄(채무지불유예)을 선언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에 위기를 초래했었다. 그러나 탄탄한 경제 성장과 원유·천연가스 등 막대한 천연자원 등으로 대출천국으로 러시아는 만 9년 만에 대출천국으로 변모했다. 이런 데에는 푸틴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5월 대통령에 취임한 블라디미르 푸틴(현 총리)은 1998년 모라토리엄(채무지불 유예) 선언으로 망가진 러시아의 경제를 살려냈다. 푸틴이 취임한 이후 러시아는 매년 6~7%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보여 왔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007년 10월 25일 국영 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2008년에 퇴임하더라도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러시아가 발전하는 데 계속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특히 최근 고유가 행진을 등에 업고 푸틴은 자원 무기화를 추진해 러시아에 엄청난 부를 안겨줬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며 원유, 천연가스 수출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6년 동안 탄탄한 경제 성장,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 등을 바탕으로 러시아의 ‘부활’을 이끌어왔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푸틴 대통령을 18세기 제정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大帝)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 시절에 군사력 강화 전략을 추진해 막강한 군대의 예전 명성도 되찾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푸틴이 움직인다’는 제목의 시론에서 러시아 황제식의 통치권력을 구축한 푸틴 총리가 오일달러와 막강 군사력을 앞세워 과거와 같은 러시아의 지배적 역할을 회복하러 나선 것이 전쟁 개입의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푸틴은 지난 2003년과 2004년 우크라이나와 그루지야에서 일어난 오렌지, 장미혁명으로 친서방 정부가 들어서자 이를 지정학적 이념적 위기로 인식해왔다.
뿐만 아니라 푸틴 총리는 24조 원의 첨단기술 연구 투자로 기술 강국 재건에도 나섰다. 지난 8월 21일 AFP는 푸틴 러시아 총리가 향후 2년 동안 첨단 기술 연구개발 분야에 6,000억 루블(약 24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직접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총리는 “기술이야말로 천연가스, 금속 등 최근 가격이 급상승 중인 천연 자원에 기대지 않고 러시아가 자립할 수 있는 핵심 열쇠”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올해부터 2010년까지 구체적으로 나노, 바이오테크놀로지, 핵에너지, 우주과학 분야에 총 6,000억 루블을 쏟아 붓는 다양한 기술 투자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러시아가 이처럼 대규모 기반시설 구축에 나선 것은 오일머니에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바꿔 성장 엔진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보다 구체적인 청사진을 보면 4,800억 달러를 투자해 핵발전소 등 전력시설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철도 확장에 4,000억 달러, 공항 확충에 300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하고 50억 달러 규모의 나노기술 개발 국영기업을 설립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필요한 자금의 80%는 민간과 해외자본으로 유치하겠다는 복안이다. 러시아는 이를 위해 세계 최대 가스회사인 가즈프롬과 석유회사인 로즈네트프 등 대형 국영기업과 신흥 과두재벌인 올리가르히를 총동원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일종의 ‘푸틴식 자본주의’를 도입, 새로운 러시아를 건설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