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대표 주변에선 지난 9월 25일 영수회담에 대해 대체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한 핵심측근은 “대통령과 대등한 위치에서 국정을 논하며 생산적인 여야관계를 주도했다”면서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진보개혁 진영은 고개를 젓는 분위기다. 대다수는 말을 아끼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의 일방독주를 제대로 막지 못해 지금도 2중대 소리를 듣는데 뭘 더 협력한다는 거냐”(최문순 의원)며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정 대표의 긍적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경제살리기 등 7가지 합의 사항이 원론적인 반면 종부세 완화 등 핵심 쟁점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추상적이고 성의가 없었다는 평가가 확산되면서 영수회담의 성과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급기야는 원내사령탑인 원혜영 원내대표가 “종부세를 폐지하면 안 된다는 우리의 주장에 대해 실질적으로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며 “정부와 협조할 것은 적극 협조하겠지만 잘못은 국민과 함께 단호하게 투쟁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혜영 대표의 발언은 야당의 요구를 사실상 묵살한 이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지만 종부세 무력화 기도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딘호한 의지도 담고 있다. 원 대표의 강경 투쟁 의지는 종부세 완화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음에도 이를 철학적 차이로 표현한 정세균 대표에 대한 불만이 내재돼 있다는 후문이다. 원혜영 대표가 정세균 대표와의 갈등으로도 읽혀질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언을 한 데는 현 정국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 여당이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려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단순한 ‘철학적 차이’로 치부해서는 안 되고 비타협적인 투쟁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정부가 종부세 완화 법안을 국회에 이송하는 다음달 2일에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간에 청와대 회동이 예정돼 있어 자칫 야당 대표와 원내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끌려 다닌다는 오해를 살 수 있어 이를 불식시킬 필요성도 강하게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원혜영 대표의 상황 인식이 이런 만큼 종부세를 개편하겠다는 정부여당의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경우 대통령과 3당 원내대표의 청와대 회동을 보이코트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되었다.
정 대표 ‘부드러운 리더십’ 먹힐까
일단 정 대표의 전략은 ‘새로운 리더십’이다. 정 대표가 이날 “옛날식 극한투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고 싸울 것은 싸우겠다”고 말한 것이 이를 웅변한다. 안정감과 정책능력을 갖춘 야당 지도자의 상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 대표측의 현실인식이 당내 비판그룹과 상당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영수회담을 막후에서 조율해온 한 의원은 “회담 전에 강경파와 주화파가 반반씩 나뉘었던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촛불정국에서 강경파에게 이끌려 거리로 나섰지만 당 지지율에 아무 도움이 안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지금껏 진보개혁진영이 촛불정국에서 민주당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해온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석이다.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은 향후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따라 부침을 겪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기획사정, 경제팀 거취, 촛불수사, 언론대책 등에서 강경 드라이브로 일관할 경우 정 대표에겐 “도대체 영수회담에서 뭘 얻었느냐”는 비판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정 대표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한 386 전직의원은 “영수회담을 통해 정 대표가 뉴스메이커로 부상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야당 대표의 리더십이 대통령의 국정 드라이브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비리 국감전략 문건’ 논란
한편 한나라당이 국정감사 공격용으로 참여정부 시절 각종 비리의혹 사건 및 관련자를 정리한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공개된 내용을 정리한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민주당은 정치보복을 위한 뒷조사 국감이라며 격하게 반발했다.
민주당이 9월 26일 공개한 한나라당의 ‘국정감사 주요 공격 이슈’라는 제목의 A4용지 2쪽짜리 문건에는 참여정부와 관련된 사건 15건을 해당 상임위별 공격 이슈로 열거돼 있다.
특히 문건에는 해당 사건별로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 전직 장관들, 현역 민주당 의원의 이름을 실명·비실명으로 적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전 정권의 뒤를 캐 이명박 정부 6개월의 실정과 친인척 비리를 감추려 한다고 비판했다.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을 과거정권의 뒷조사 국감으로 몰아가 야당에 대한 사정당국의 정치보복을 뒷받침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정세균 대표가 영수회담에서 경제살리기를 위해 정기국회에서의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고 야권에 치우진 사정정국에 우려를 전달한 지 하루 만에 전 정권 공격 문건이 공개된 점도 민주당을 더욱 자극했다. 김유정 대변인은 “경제국회를 표방한 한나라당이 보복사정 국회로 방향을 돌리는 것 같다”며 “이명박 정부 6개월의 모든 잘못을 과거 정부 탄압을 통해 만회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문건 작성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전 정권의 부정부패를 덮으려는 꼬투리 잡기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문건에 등장한 사건 대부분이 검찰 수사나 언론 보도를 통해 나온 내용을 정리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김정권 원내 대변인은 “야당도 온갖 사람들을 증인으로 채택하겠다면서 명단까지 만들어 배포하지 않았느냐”며 “지난 정부의 실정이나 비리에 관련된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증인 채택 시 참고자료로 하기 위해 만든 문건”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친인척 비리를 덮기 위한 한나라당의 물타기 국감전략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문건에 따르면 대야 공격이슈 15건을 담당 상임위별로 배분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을 ‘과거정권의 뒷조사 국감’으로 몰아가 사정당국의 정치보복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유정 대변인도 “한나라당 내부문건을 보면 경제국회를 표방했던 한나라당이 결국 보복정치와 표적사정 국회로 방향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경제만은 살려달라는 국민의 절절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다면, 과거정부 뒷조사와 헐뜯기에 매달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6개월 동안의 온갖 잘못을 과거 정부 탄압으로 만회해보려는 여당의 시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15개 이슈로 된 문건 중 12건 참여정부 핵심부 비자금 연관
한나라당이 선정한 15개 이슈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사정정국의 흐름과 묘하게 일맥상통한다. 15개 이슈 중 12개가 참여정부 핵심부의 비자금 형성 등 비리 의혹과 연관된다.
현재 대검 중수부가 강원랜드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서울중앙지검은 KTF 비자금 의혹 사건과 태광실업의 휴캠스 특혜 인수 의혹 사건을, 서울서부지검은 프라임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등을 수사하며 대대적인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국세청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허리수술을 집도했던 이상호 원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우리들병원 등에 대해 집중적인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 공격 이슈의 대부분이 이미 사정 당국이 수사 중인 사건들과 겹치는 셈이다. 김현미 전 의원이 관련된 AK캐피탈 로비사건, 석유공사 국회 유전 개발 비리 등도 검찰 조사가 진행됐던 사안이다.
참여정부의 비리 의혹 외에는 노 전 대통령이 봉화마을로 가져간 이지원 서버로 전현정권 갈등이 첨예하게 진행됐던 청와대 기록물 유출건이 또 한번 중요한 국감의 이슈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 관련자로 선정해 문방위에서 핵심 이슈로 제기한다는 계획이다.
비리와는 별도로 전정권의 기자실 통폐합 논란, 외환은행 헐값매각 등이 공격 포인트로 선정됐다. 기자실 통폐합 논란은 한나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참여정부가 만든 신문법 등에 대해 처음부터 전면 재논의 한다는 계획과 연관해서 파괴력 있는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미 기자실 대못질 논란을 빚은 김창호 전 청와대 국정홍보처장,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증인 후보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다.
또한 한나라당은 외환은행 헐값매각건의 관련자로 김진표 의원, 한덕수 전 국무총리, 권오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등을 선정하면서 전 정권의 경제 실정에 대해서도 또 한번 비판하고 나선다는 계획이다.
검찰이 정몽준(동작을) 한나라당 의원 등 18대 총선 과정에서 뉴타운 지정과 관련된 허위 공약을 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고발된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 6명에 대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같은 혐의로 고발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각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사전선거운동혐의를 받고 있는 박진(종로)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선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이로써 사실상 총선관련 수사를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