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헌금 논란 휩싸인 비례대표제, 개선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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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헌금 논란 휩싸인 비례대표제, 개선될까
  • 김정숙 기자
  • 승인 2008.04.0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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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비리 온상 비판 속 당선자들 줄줄이 검찰수사

 

▲ 친박연대 양정례 당선자는 ‘잠수형’이다. 양 당선자는 지난 4월 14일 기자회견에서 “특별당비를 냈다”고 고백한 뒤, 모습을 감추고 검찰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는 지난 4월 24일 수사 과정에서 양정례 당선자가 수십억 원 대의 특별당비를 낸 정황이 포착된 데 대해 “한 점 거리낄 게 없다”며 오히려 야당 비례대표에 집중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한편, 침묵을 지켜온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특별담화를 통해 “석고대죄 하는 심정으로 국민들의 용서를 구하며 의석을 한 자리 잃더라도 이 당선자를 제명 조치”할 뜻을 밝혔다. 친박연대가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강조함으로써 수사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취했다면, 창조한국당은 자세를 바짝 낮춰 논란의 파고를 피해 나가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정치적 목적 있다”
서 대표는 이날 검찰 수사 상황과 향후 대응방침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건과 관련해 감출 게 하나도 없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서 대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양정례, 김노식 당선자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되면 자진 출두할 수도 있다”면서 “1원 하나라도 개인적으로 사용했거나 다른 데로 돌리지 않은 만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고 말했다. 엄호성 법률지원단장 역시 “이 건과 관련해서 당은 전혀 꺼릴 게 없다”며 “(양 당선자의 차입금에) 대가성이 있을 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한 끝은 검찰 비판으로 이어졌다. ‘박근혜 세력’이란 탓에 부당한 탄압을 받고 있다는 논리다. 송영선 대변인은 “각 당마다 비례대표 문제가 대두됨에도 구체적 조사조차 하지 않으면서 친박연대에 대해서는 양 당선자만이 아니라, 서 대표에 대해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하고 과거 개인통장을 전부 조사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형평성 결여”라고 주장했다. 송 대변인은 또 “작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했던 친박연대 핵심인물에 대해 저쪽에서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며 “(이번 검찰 수사는) 박 전 대표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박 전 대표의 정치기반을 와해시키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창조한국당은 허위학력기재 등의 혐의로 구속된 이한정 당선자를 제명시키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원 징계 시에는 본인의 소명을 듣도록 정한 당규 탓에 윤리위원회의 결정을 확정하는 데에는 다소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당선자를 제명할 경우 이 당선자는 당선자 자격을 잃게 되는 동시에 이번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이 얻은 의석도 3석에서 2석으로 줄어들게 된다. 창조한국당은 이 당선자의 자리를 3번이 승계토록 하기 위해 이 당선자에 대한 당선무효소송을 대법원에 제기해 놓은 상황이지만, 이를 두고 “꼼수”란 지적이 적지 않자 결국 의석을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 서청원 친박연대 대표는 4월 16일 양정례 비례대표 당선인 관련 불법 사실이 없다며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에 앞서 4월 23일에는 문국현 대표가 담화문을 통해 “법원의 최종적 판단과 상관없이 이와 같은 후보를 비례대표 공천한 것에 대해 무한책임을 통감하며 국민들과 지지자들에게 석고대죄 하는 심정으로 용서를 구한다”며 “당 윤리위원회에 이한정 씨를 즉각 제명, 출당시킬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어떤 이유로도 국민들에게 깊은 실망과 상처를 안긴 것에 대해 변명할 여지가 없다”며 “깨끗하고 바른 정치를 해달라며 저희 창조한국당에 소중한 한 표를 보내주신 당원과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어떤 채찍도 기꺼이 받겠다”며 거듭 사죄의 정을 밝혔지만, ‘돈 공천’ 여부를 따질 수 있는 이 당선자의 공천 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이 당선자가 비례대표를 신청한 후 당에 6억 원을 빌려준 데 대해 창조한국당은 “이 씨의 지인 2명이 당채를 매입했다”고 설명했으나, 검찰은 이 당채가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이 없는 그저 개인 간 차용증서 수준에 불과하다는 판단 아래 돈의 출처와 성격을 추적하고 있다.

 

 비례대표 당선자별 반응 달라
한편,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비례대표 당선자 3인방(정국교·이한정·양정례)이 각자 다른 대응을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통합민주당 정국교 당선자는 ‘나만 믿어라’ 형이다. 정 당선자는 지난 4월 22일 검찰에 구속되기 직전까지 “개인적인 문제이니 스스로 해결하겠다. 당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당에서도 “검찰의 수사를 지켜 보겠다”는 반응 외엔 말을 아꼈다. 하지만 최근 정 당선자가 구속되자 당에서는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당 관계자는 “4월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선 정 당선자만 믿고 제대로 대응을 못 한 것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고 전했다. 당내에선 ‘손학규 대표가 정 당선자를 너무 믿어 때를 놓친 것이 아니냐’ ‘읍참마속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창조한국당 이한정 당선자는 ‘막가파’식이다. 학력 및 경력 위조, 전과 전력 등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 사퇴 권고를 받았지만 “검찰 수사를 통과하면 무소속으로 의정활동을 해나가겠다”고 버티고 있어 지도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창조한국당은 대법원에 당선무효소송을 낸 뒤에도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4월 23일 뒤늦게 출당조치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창조한국당의 개혁적 이미지는 이미 상당 부분 손상을 입었다.
친박연대 양정례 당선자는 ‘잠수형’이다. 양 당선자는 지난 4월 14일 기자회견에서 “특별당비를 냈다”고 고백한 뒤, 모습을 감추고 검찰 소환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가 사라진 동안 사건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결국 그는 수사망이 조여오자 4월 23일 어머니 김순애 씨와 함께 검찰에 출두해야 했다. 서청원 대표는 4월 24일 ‘양 당선자 파동’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도 “양 당선자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만큼 오늘이라도 당장 검찰에 출두하고 싶다”며 결백을 강조했다.

▲ 공천 의혹 등과 관련해 25일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힌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가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당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비례대표 당선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급속도로 진행됨에 따라 이들의 당선이 무효가 될 경우 비례대표직 승계 여부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정 당선자의 경우 선거법이 아닌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어 형이 확정돼 피선거권을 잃게 된다면 뒷 순위 승계가 가능하다. 다음 순위는 박홍수 사무총장이다. 반면 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이·양 당선자는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또는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될 경우 당선무효가 된다. 이 경우 비례대표 의원직은 승계되지 않는다. 다만 본인이 형 확정 전 사퇴할 경우 의원직이 승계된다.

 

비례대표제란 무엇인가
박정희 정권 때 처음 도입된 비례대표제는 때에 따라 권력 장악의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했으나 각 사회분야별 전문가, 직능단체 등을 대표하는 이들이 의회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통로로 작용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전국구 국회의원이라고 불렸던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수는 11대 총선부터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수, 혹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유효투표 비율을 따져 각 정당에 배분됐다. 2001년에 헌법재판소는 “1인 1투표 제도를 통한 비례대표 국회의원 의석 배분 방식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지역구 당선자 숫자가 각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명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역구 당선자 숫자 혹은 득표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지역구 당선자가 없더라도 일정 정도의 국민 지지를 획득한 정당의 정치 활동을 보장하는 방편으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됐다. 18대 총선은 17대 대선 직후 치룬 총선인 만큼 정국이 어수선한 가운데 비례대표 후보 공천에 대한 국민적 감시가 그 어느때보다 소홀했다. 또 총선 전에 이미 승부가 결정되는 분위기에서 각 당의 관심은 각 계파별 국회의원 수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에 더 많이 쏠려 있었다.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 공천 과정은 그만큼 졸속으로 각 계파별 이해관계에 따라 진행됐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18대 총선 직후에 비례대표 후보 공천 비리 의혹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비례대표 후보 공천 과정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면서 각 당 또한 구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비례대표제의 앞날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실 미국 등 대통령제 국가에서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별로 없다”며 비례대표제 자체의 폐지 필요성을 시사했다. 대통령제와 국회의원 완전 소선거구제를 실시하는 미국의 예를 들어 “다들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를 전부 채우는데, 이렇게 비례대표제를 두는 것이 대통령제 국가에서 맞는 것인지 재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안상수 원내대표의 방식대로 하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하에서 우선순위를 배정받기 위해 많은 후보와 계파들이 경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 발생 가능성은 근본적으로 봉쇄된다. 그러나 지역구 당선자는 없더라도 전국에서 고른 득표율로 국민적 지지를 확인한 정당의 정치 활동과 더불어, 그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의 의사를 국회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길까지 차단되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폐지가 아닌 개선책 마련 필요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다. 함승희 친박연대 최고위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비례대표도 지역구 공천제도 못지않게 요건을 강화하고, 일련명단을 놓고 심사할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개별적으로 심사하는 등 심도 있는 심사를 하고, 또 자격요건을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 비례대표 사퇴하라”

야당이 비례대표 파문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유권자 3명중 1명은 문제가 된 비례대표는 의원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지난 4월 23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한 결과, 문제 비례대표 당선자는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62.8%로 나타나 사법처리 확정 전까지 사퇴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25.1%)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정당을 불문하고 대부분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특히 진보신당 지지층이 94.3%로 사퇴 의견이 가장 많았고, 자유선진당(72.1%), 친박연대(65.3%), 통합민주당(63.1%)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모든 연령층에서 사퇴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40대가 사퇴 의견이 74.2%로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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