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지상 최대 올림픽 쇼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이란 슬로건아래 지난 8월 8일 오후 9시(이하 한국시간, 현지시간 오후 8시) 베이징의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장이머우 감독이 총연출을 맡은 개회식은 베이징올림픽을 상징하는 2008명의 행사요원이 전통악기 ‘부(缶)’를 연주하며 힘찬 시작을 알렸다. 진시황의 위용과 중국의 세계 4대 발명품이 강조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땅속에서 지구 모양의 공이 솟아오르는 등 1시간 동안 ‘찬란한 문명’과 ‘환희의 시대’를 두 주제로 1만 5,000여 명의 군무가 펼쳐졌다.
1,000억 원의 비용이 소모된 것으로 알려진 개회식은 올림픽 오륜기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가 입장한 뒤 오성홍기의 게양과 함께 중국 국가인 ‘의용군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아름다운 올림픽’(美麗的奧林匹剋)이라는 제목 아래 진행된 축하 문화공연은 고대 중국의 역사와 문명에서부터 지난 1978년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발전사 등, 중국의 역사를 집중 재조명했다.
성화 점화식 최종주자인 중국의 ‘체조영웅’ 리닝의 성화 점화로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며 304개국의 열띤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날 개막식에서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일본의 후쿠다 총리 등 전체 204개국의 절반에 가까운 100여 명의 정상들도 개회식에 참석해 역사적인 현장을 함께했다.

감동 그 영광의 순간들, 그리고 안타까운 순간들
역시 각본 없는 드라마는 그 아쉬움도 감동도 더했다. 태극전사들은 대회 첫 날 유도 60㎏급의 최민호(한국마사회)가 통쾌한 ‘한 판 퍼레이드’로 첫 금메달을 선사한 뒤 둘째 날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이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빛 물살을 가르는 신기원을 이룩했고, 서양선수들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남자 자유형 400m 종목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해 한국의 수영영웅이자 아시아의 희망으로 우뚝 섰다. 양궁에서는 남녀 단체전을 석권하며 메달 레이스에 박차를 가했다.
사격에서도 진종오(KT)가 황금 메달을 명중시킨 가운데, ‘여자 헤라클레스’ 여자역도 75kg급 장미란(고양시청)은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장미란은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매 5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남자 77kg급 사재혁(강원도청)은 전병관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거는 감격을 누렸다. 대회 중반을 넘어서며 ‘살인 윙크’의 이용대가 이효정(이상 삼성전기)과 짝을 이룬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금빛 스매싱을 날렸고, 국기 태권도는 임수정(경희대)과 손태진(삼성에스원), 황경선, 차동민(이상 한국체대)이 처음으로 4체급을 싹쓸이하는 금자탑을 세웠다. 폐막 하루 전에는 이승엽(요미우리)과 국내프로야구 올스타로 구성된 야구대표팀이 세계 최강 쿠바를 극적으로 물리치고 야구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이승엽의 연속 경기 홈런. 선발 류현진의 역투, 이용규의 쐐기타, 포수 강민호의 편파 판정 퇴장, 그로 인한 사기 충전, 정대현의 끝내기 병살타 유도 등 1경기 동안 희로애락을 전부 맛본 한국은 세계 최고가 됐다.
그러나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승자의 환호 속에 묻힌 안타까운 탄성이 이어졌다.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를 제치고 73kg급 출전자격을 따낸 왕기춘은 결승에서 초반 일격을 당해 은메달에 만족해야했다. 왕기춘은 8강에서 갈비뼈 조각이 떨어져나가 뼈가 폐를 찌를 위기 상황 앞에서 통증을 견뎌내며 결승까지 올라왔기에 안타까움이 더 컸다. 남자역도 69kg급에 출전한 이배영, 용상 1차 시기에서 왼쪽 발목이 꺾이면서 종아리에 근육경련이 일어났다. 하지만 자신의 마지막 올림픽무대를 그냥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마지막 3차 시기에서 넘어지면서도 바벨을 놓지 않는 투혼을 발휘해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복싱 라이트급 백종섭은 8강전을 앞두고 기관지가 파열됐다는 소식을 접해 경기를 포기해야했다. 4살짜리 딸에게 반드시 메달을 선물하겠다며 죽음을 각오하겠다는 각서라도 쓰고 링에 오르겠다는 그의 열정은 전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다. 노르웨이와의 한판승부에서 오심으로 아쉽게 동메달을 목에 건 핸드볼 등 이번 베이징 올림픽에선 감동도 아쉬움도 그 어느 때보다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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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어 국명표기순으로 176번째로 입장한 태극전사들. |
세계 신기록 잔치, 잊지 못할 세기의 장면
전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던 2008 베이징 올림픽은 46개의 값진 세계신기록을 쏟아내며 막을 내렸다. ‘8관왕’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마이클 펠프스(23.미국)는 8개의 금메달 중 7개를 세계신기록으로 장식했다. 펠프스는 개인혼영 400m 4분 03초 84, 자유형 200m 1분 42초 96, 접영 200m 1분 52초 03, 개인혼영 200m 1분 54초 23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개인혼영의 경우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세계신기록 1분 54초 80을 0.57초 앞당긴 기록이다.
육상에서도 총 5개의 세계신기록이 경신되며 새로운 육상 세계를 열었다. 남자 계주 400m 결승에서도 네스타 카터-마이클 프레이터-볼트-아사파 파월로 이뤄진 자메이카의 400m계주 팀은 37초10을 기록, 종전 세계기록을 0.3초나 앞당기는 세계신기록을 수립했다.
올림픽 6연패를 달성한 한국 여자양궁 대표팀도 세계신기록을 달성했다. 주현정(26·현대모비스) 윤옥희(23·예천군청) 박성현(25·전북도청)이 출전한 한국은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231점(240점 만점)을 기록하며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8월 25일(한국시간) 베이징올림픽 최고의 순간 10선을 뽑아 발표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최고의 장면은 우사인 볼트(자메이카)의 육상 남자 100m세계신기록 순간. 볼트는 신발끈이 풀린 채 트랙을 질주했고, 골인 지점 10m를 남겨두고 벌써 승리의 세리머니를 펼쳤다. 그러면서도 9초69의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볼트는 200m에서도 19초30을 기록, 마이클 존슨(미국)이 보유하던 세계기록을 무려 12년 만에 갈아치웠고, 400m 계주에서도 세계신기록(37초10)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어 단거리 3관왕에 올랐다.
2위는 ‘수영황제’를 넘어 ‘물의 신’의 경지에 오른 마이클 펠프스(미국)의 계영 400m 결승전. 펠프스는 계영에서 8번째 금메달을 따내며 단일 대회 최다 8관왕과 역대 통산 최다 14관왕 타이틀을 한꺼번에 거머쥐었다. 3위는 ‘황색탄환’ 류샹(중국)의 육상 남자 110m허들 경기포기 장면이 꼽혔다. 이 종목 2연패를 노렸던 류상의 기권은 13억 중국인을 경악케 했다. 4위는 새둥지 모양의 궈자티위창에서 가장 훨훨 날았던 ‘미녀새’ 옐네나 이신바예바(러시아)의 장대높이뛰기 결승전. 자신의 세계신기록을 1㎝ 경신한 5m5로 개인통산 24번째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5위는 대회 내내 논란이 됐던 ‘짝퉁’ 개막식이었다. 개막식 무대에 섰던 깜찍한 여자아이는 노래 립싱크로 밝혀졌는가 하면 55개의 소수민족을 대표했던 어린이도 대부분 한족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6위는 역도 남자 105㎏ 이상급에서 금메달을 따낸 마티아스 슈타이너(독일)의 가슴 아픈 사연이 꼽혔다. 슈타이너는 시상대에 올라 지난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부인 수잔의 사진에 키스를 하며 지극한 아내 사랑을 보여줘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테네올림픽에서 남의 표적지에 총을 쏘아 금메달을 쳤던 미국의 ‘정신없는 사격선수’ 매튜 에몬스(미국)는 이번 올림픽 남자 50m 소총 3자세 결선에서도 9번째 발까지 선두를 질주하다 최종 한 발에서 결정적 실수를 저질러 메달권 진입에도 실패해 7위로 꼽혔다.
육상 200m에서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볼트가 8위로 다시 등장했고, 태권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올림픽 첫 메달을 안긴 로훌라 니크파이가 9위, 남자 원반던지기에서 금메달을 딴 후 100m트랙으로 달려가 손가락 총을 쏘며 춤을 춘 볼트의 우승 세리머니를 그대로 흉내 낸 게르트 칸터(에스토니아)가 10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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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린보이’ 박태환(단국대)이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빛 물살을 가르는 신기원을 이룩했고, 남자 자유형 400m 종목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금메달을 차지해 한국의 수영영웅이자 아시아의 희망으로 우뚝 섰다. |
전 세계 지도자·언론 ‘성공’ 평가
지난 8월 24일 2008 베이징 올림픽이 ‘광란’과 ‘열정’을 주제로 한 폐막식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장엄하고 화려했던 폐막식에서 주경기장 냐오챠오는 대형 무대로 변했고 전통 복장의 연기자들이 화려한 중국문화를 세계에 뽐냈다. 17일 동안 이어진 감동의 축제는 베이징 시내 곳곳에서 올림픽 성공을 자축하는 화려한 불꽃놀이로 대미를 장식했다.
이번 2008 베이징올림픽에 대해 전 세계의 지도자들과 각국 언론들도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번 대회는 티베트 인권문제, 대기오염 문제, 테러 위협 등 각종 악재에도 불구하고 성대하고 순조롭게 중국의 역량을 세계에 과시했다는 것이 국내·외의 일치된 평가다.
우선 올림픽의 총사령탑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자크 로게 위원장은 2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베이징올림픽이 성공을 거둔데 대해 충심으로 축하를 보낸다”면서 “IOC는 중국이 올림픽을 유치한 지난 2001년부터 7년간 깊은 우의를 지속해 왔다”고 강조했다.
차기 개최국인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폐막식 참석차 베이징을 찾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 회동을 가지면서 “중국 정부와 인민들이 성대하고 훌륭한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냄으로써 세계인의 꿈을 실현시켰다”고 칭찬했다.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의 세바스티안 코 위원장도 “베이징올림픽은 철저하고 구체적인 준비를 통해 큰 성공을 거뒀고 특히 선수단에 대한 교통편의와 언론에 대한 배려와 관리 측면이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폐막식 참석차 방중한 도미니카연방의 리버풀 대통령과 아이슬란드의 그림슨 대통령, 호주의 마이클 제프리 총독도 후 주석과 회동에서 베이징올림픽을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하고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중국 정부와 인민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올림픽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성공적인 개최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던 각국 언론들도 “자원봉사자들의 중국 미소”, “세계가 중국을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요미우리)”, “차분한 민족주의 속에 성공적인 올림픽”(시카고 트리뷴) “당나라의 황금시대 재현”(캐나다 글로벌 포스트) 등의 제목의 기사를 실으며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통제와 인권문제 때문에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인위적인 축하로 가득한 올림픽”이라며 중국 당국의 지나친 개입을 꼬집었습니다. 티베트 지지시위를 벌이다 체포된 외국인들에 대한 강제추방 등 당국의 삼엄한 통제에 대한 지적도 제기됐다. 특히 베이징 주재 미국대사관측은 이번 올림픽이 중국에 더 많은 개방과 관용을 가져오지 못한데 대해 실망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