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발생한 조류독감의 국내 유입경로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 일본, 베트남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조류독감의 발생이 보고돼 방역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조류독감의 맹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것. 현재 중국, 한국,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일본, 대만, 파키스탄, 라오스 등 아시아의 10개 국가가 조류독감에 시달리고 있다. 방글라데시도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조류독감이 위험하기는 하지만 일반인이 지나치게 공포심을 가질 필요는 없으며 직접 병든 닭이나 오리를 다루는 사람만 주의하면 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닭고기나 오리고기 등을 먹지 않는 것은 지나친’건강염려증’이라고 강조했다. 조류독감의 감염경로와 피해실태, 예방방법 등을 알아봤다.
왜 문제인가
조류독감은 우선 축산농가와 유통·판매기업 등에 즉각적이며 심각한 피해를 미친다. 매장되거나 집단 폐사하는 조류만도 수천만 마리이며, 감염되지 않은 닭, 오리고기의 소비도 크게 줄어든다. 태국 같은 닭고기 수출국가는 세계 각국의 수입금지 조치와 관광객 감소로 타격을 심하게 받고 있다.
실제 닭, 오리와 관련된 사육·가공·판매 산업 전체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유통업체의 닭, 오리고기 매출이 30% 이상 줄었고, 치킨점 등 닭, 오리고기 가공판매업소의 판매량도 급감했다. 오리농가들은 사육을 기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 오리 가공업체인 ㈜화인코리아가 최종 부도처리되는 등 피해가 확산될 조짐이다.
△닭·오리고기 판매 급감=롯데마트의 경우 조류독감이 확산되기 시작한 지난해 말부터 닭고기 매출이 급감했다. 오리고기 판매도 엄청나게 줄었다. 신세계 이마트 역시 닭고기 판매가 30% 이상 줄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조류독감 발생 소식이 알려진 후 판매량이 크게 줄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고건 총리와 허상만 농림부 장관 등이 삼계탕으로 점심을 먹은 데 이어 양계업체들이 대규모 시식회를 여는 등 소비 감소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조류독감 발병 이전㎏당 9백91원 하던 닭고기 가격은 현재 600원대로 폭락해 양계 농가들은 생산비(㎏당 1천원 이상)도 건질 수 없는 형편이다.
△오리고기 생산기반 붕괴=충남 천안시 김종영 축산계장은 “조류독감이 발생한 천안시 H사는 전국 50여 종오리농장 중 22곳에 종오리를 공급해 전국적인 피해 확산이 우려된다”며 “종오리 공급 차질로 오리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나주시 산포면에서 오리 1만6천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강모(40)씨는 “전반적인 소비 부진으로 적지 않은 오리농장들이 폐업을 검토하고 있는데, 조류독감으로 소비가 더욱 위축되면 사육을 포기하는 농장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 최대 오리 9만마리, 닭 30만마리를 도축·가공해 국내 오리고기 공급의 절반을 차지하는 화인코리아가 부도처리됐다. 부도여파는 사육농가 및 판매업소 양쪽 모두에 미치고 있다. 나원주 사장은 “조류독감으로 수출 길이 막힌 데다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것이 부도의 치명타였다”고 말했다.
올 오리생산 및 가공을 체계화하려던 정부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8백만마리에 이르는 오리 중 상당수를 예방 차원에서 땅에 묻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위험=뿐만 아니라 사람도 조류독감 바이러스에 전염돼 사망할 수 있다. 변종 바이러스는 인간 사이에도 전염돼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과 에이즈를 능가하는 엄청난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경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베트남에서 최소한 2명의 어린이와 30세 여성 한명이 조류독감으로 숨졌고, 11명의 어린이는 조류독감으로 의심되는 증세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홍콩에서는 1997년부터 7년간 조류독감 바이러스(H5N1)에 감염돼 8명이 숨졌다.
지난 1918년 전 세계에서 4천만명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독감 바이러스(H1N1형)는 일종의 조류독감 바이러스로, 약간의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감염됐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 과학잡지 사이언스 온라인판은“하버드대 연구팀이 당시 알래스카에 살다 스페인독감에 감염돼 사망한 뒤 동토에 매장된 환자들의 시체에서 추출한 바이러스를 분석,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연구팀은 독감 감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헤마글루티닌(HA)이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와 조류독감 바이러스에서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했다. 그 결과 몇몇 아미노산 배열에 차이가 있을 뿐 H1N1 바이러스는 조류독감의 일종인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원래 조류에 독감을 일으키는 H1N1형 바이러스가 약간의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감염되기 쉬운 구조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발생 경위
닭, 오리 등이 잘 걸리는 유행성 독감 바이러스가 감염원이다. 야생조류나 가금(家禽)에 관계없이 감염된 조류의 타액이나 배설물에 섞여 있는 바이러스에 접촉되면 감염된다. 배설물이 말라 가루가 되면 바이러스가 이를 타고 공기 중에 떠돌다 감염시키기도 한다.
최근 베트남에서 발생한 조류독감의 원인으로 알려진 A형 독감의 변종 바이러스 H5N1에 감염된 닭의 치사율은 90%를 넘는다. WHO는 H5N1이 빠르게 변이되고 있으며 타종(他種) 동물의 독감 바이러스로부터 유전자를 획득할 수 있어 특히 위험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우리나라 곳곳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월동 중인 철새에서 확인됐다. 충남대 수의학과 서상희(徐相熙·39)교수는 “철새의 혈청에서 국내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바이러스(H5N1)를 확인하는 데 최초로 성공했다”고 밝히고 “이는 철새가 국내 조류독감 전파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조류독감 발생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행정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충남 금산지역에서 청둥오리 등 오리류 철새 6마리를 잡아 혈청 샘플을 채취했다”면서 “채취한 혈청에 H5N1 바이러스 항원을 반응시켜 6개 중 2개의 샘플에서 양성(혈구응집 억제) 반응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徐교수는 “시베리아에서 온 철새의 분비물 등을 통해 퍼뜨려진 바이러스가 겨울철 강한 바람을 타고 한반도 곳곳으로 확산됐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이는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해 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전국의 도처에서 월동 중인 철새의 상당수가 조류독감 바이러스 보균체일 것으로 밝혀진 이상 대대적인 방역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그 첫단계로 우리나라 전체에서 키우고 있는 닭, 오리 등 가금류의 감염실태에 대한 대규모 조사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徐교수는 “2002년 12월 홍콩 주룽공원에서 기러기 등 야생조류 50여마리를 집단 폐사시킨 바이러스나 1997년 홍콩에서 6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이러스도 모두 기본적으로는 국내의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같은 형”이라고 소개하고 “해마다 시베리아에 집결하는 동남아의 철새들이 서로 바이러스를 옮긴 뒤 다시 각국의 철새 도래지로 퍼뜨리는 과정을 밟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현재로서는 인체에 큰 해가 없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라도 앞으로 6∼7개월 간 변형을 거치면 인간에게 전염되는 수퍼독감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지금부터라도 과학적 실험을 통해 미리 예방백신을 개발하는 것만이 인명 피해를 예방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농림부 관계자는 “이미 철새의 배설물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발견했으나 현재 농가 등에서 번지고 있는 조류독감과의 연관성을 찾지 못해 추가 조사를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농림부는 지금까지 철새의 배설물로 조사를 했으며 혈청조사는 실시하지 않았다.
접촉하면 사람도 전염
감염된 조류와 직접 접촉할 때 사람에게 전염된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인간이 조류독감으로 사망한 것은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전까지는 조류만이 이 독감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홍콩에서는 당시 18명이 감염돼 6명이 사망, 치사율이 30%가 넘었다. 당시 감염자들은 모두 시장이나 농장 등에서 조류와 직접 접촉한 사람들이었다. 사스의 치사율은 10% 수준이다.
조류독감이 사람 사이에 전염된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WHO 등의 전문가들도 인간 사이에 전염되는 변종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조류독감이 사람한테 번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와 달리 태국이나 베트남에서 최근 사람이 조류독감에 전염돼 숨지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바이러스가 사람간에는 옮긴 사례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인체전염역은 아직 정확히 드러난 게 없다. 감염자 중 얼마나 사망하는지도 정확하지 않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최근의 동남아 확산 사태를 미처 예상치 못했다. 1997년 처음으로 홍콩에서 조류독감에 감염된 사람 16명이 숨졌고, 지난해 홍콩과 네덜란드에서 각각 한명이 사망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베트남이나 태국에서 조류독감에 감염됐거나 사망한 사람은 대부분 닭, 오리를 기르거나 그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조류에 직접 접촉한 것으로 추정된다. WHO는 닭, 오리의 배설물이나 사체 (死體)에서 사람이 감염된 것으로 본다.
문제는 사람 간 전염 여부다. 세계 보건전문가들은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만약 독감에 걸린 사람한테 조류독감이 침투할 경우 두 바이러스가 유전자 재조합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지난해 봄 전세계를 강타했던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에서 발생한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97년 홍콩과 같은 H5N1형이지만 유전자 변이를 일으킨, 새로운 바이러스로 판명됐다.
닭고기 먹어도 되나
전문가들은 “섭씨 70도 이상으로 가열하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죽어 이렇게 조리한 닭고기는 먹어도 된다”고 권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태국산 조류 가공식품이나 닭고기를 수입금지조치한 것은 전염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예방 차원에서 취한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현재 한국계육협회, 대한양계협회, 한국오리협회,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전국농민단체협의회 등 국내 닭·오리 관련 단체장들이 닭·오리 고기의 안전성 알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 5개 단체장들은 “조류독감에 대한 정보가 일반 사람들에게 잘못 전달됨으로써 공포심이 조성돼왔다”고 지적한다.
대한양계협회 최준구 회장은 “조류독감에 걸린 닭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언론에 보도된 태국인 소년의 경우 닭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감염돼 사망한 것이 아니라 조류독감에 걸린 닭과 접촉함으로써 호흡기를 통해 감염돼 숨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신동헌 사무총장은 “태국의 경우 닭과 사람이 마치 가족처럼 어울려 사는 주거 형태가 많지만 국내에선 대형 양계시설에 닭을 집단 사육하는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사육자와 닭이 접촉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특히 언론이 조류독감을 과잉, 선정적으로 다뤄 이번 사태를 왜곡시켰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 언론에 보도된 조류독감 관련 보도는 무려 2천여건. 이 가운데 방송 보도가 1천4백여건, 신문 보도가 6백여건에 이른다. 국내 보도 내용에 대한 분석 결과 대부분이 조류독감에 대한 공포심을 유발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조류독감에 감염된 닭과 오리를 산 채로 매몰시키는 장면이나 동남아 지역의 비위생적인 사육 환경 등이 자주 보도됨으로써 소비가 위축됐다는 것이다.
한국계육협회 한형석 회장은 “국내의 경우 ‘사스보다 위험할 수도’ ‘에이즈보다 무섭다’ ‘어린이에게 치명적’등의 선정적인 내용으로 공포심을 조장해 왔다”며 “반면 일본 언론들은 차분한 사실 전달 위주로 보도하면서 일본산 닭고기는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해 업계 피해 및 일반인의 우려를 최소화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내 방역체계의 안전성도 이미 선진국 수준에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국내의 경우 지난해 12월 조류독감이 발생한 이래 발생 농장을 중심으로 3㎞ 이내 지역의 닭과 오리는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모두 도살처리해 왔다는 것. 10㎞ 이내 지역은 이동을 제한하며 특별 방역 관리한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 윤홍근 회장은 “국내에 유통되는 닭의 대부분을 사육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대형업체가 계열화해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유통 및 조리 과정에서도 바이러스에 오염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오리협회 김규중 회장은 “국내에선 농가에 대한 피해 보상이 잘 이뤄지고 있어 조류독감 발생 사실을 숨기는 사육업자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각계의 닭·오리 먹기 캠페인도 잇따르고 있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환경재단 등 시민단체들은 음식점에서 점심으로 삼계탕을 먹는 행사를 했다.
최열 상임이사는 “과도한 불안심리로 양계농가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현실이 안타까워 국산 닭과 오리고기는 안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행사에 동참했다”고 말했다. 대항항공 조양호 회장 등 재계 인사들도 닭고기를 먹는 행사를 했다. 유통업체들의 닭고기 먹기 캠페인도 잇따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닭고기 가공업체 하림 등과 공동으로 영등포점 앞 길거리에서 닭고기의 무료 시식회를 했다.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백화점 직원 10여명이 나와 닭고기 안전성을 홍보하는 가하면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도 잇따라 닭고기를 절반 값에 판매하는 등의 행사를 가졌다.
증상 및 예방·치료 방법
조류독감의 증세는 인간 독감과 비슷하다. 조류에게는 고열과 설사, 갈증, 무기력감, 기침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사람은 여기에 근육통, 충혈, 호흡장애, 폐렴, 결막염 등의 증세가 추가된다.
가장 확실한 예방방법은 조류와 직접 접촉을 피하는 것이다. 가금류를 만진 뒤에는 반드시 몸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아직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의학적 예방은 불가능하다. WHO는 백신 개발에 6개월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람이 감염됐을 경우 기존의 값싼 항바이러스제인 아만타딘이나 리만타딘 등이 잘 듣는다고 WHO는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