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천 가마터에서 발견된 사발 조각들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하나하나 모으다보니 어느새 조그마한 전시장이 되었다.
일본인들은 수많은 유물 중에서도 한국 도예품에 대한 사랑과 감탄이 남달랐다. 고운 빛깔과 섬세한 무늬, 그 속에 담겨있는 기품은 일본의 그것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그런 조선 도예품에 대한 집착은 그것을 본국으로 가져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도공들을 직접 일본으로 데려가는 것에 이르렀다.
진해 웅천요에는 그 시절 최상의 도예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리고 침략의 바람은 이곳도 예외 없이 몰아쳤다. 당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도공들은 일본으로 강제 징용되었고 그렇게 웅천 이도다완의 역사는 잊혀 지는 듯 했다.
사기장 최웅택 선생은 후손들이 잃어버릴 뻔했던 소중한 유산을 지켜나가며 조상들의 숨결을 진해 웅천, 이곳에서 이어오고 있다. 그는 웅천 이도다완의 명맥을 이어온 1대 후예로 인정받으며 작품 활동은 물론이고 제2대, 제3대 후예 양성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 | ||
▲ 최웅택 사기장의 명성은 한국에서 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기자에몬으로부터의 초대는 그를 나타내는 단적인 예다. |
웅천요의 숨결을 되살리다
일본유학시절 스승의 권유로 도예공으로의 첫발을 딛게 되었다는 그는 이후 자신의 삶을 오로지 웅천 도공의 옛 명성을 복원하는데 모두 쏟아 부었다. 웅천도공들의 흔적을 쫓다보니 그들이 남겼던 작품들이 세상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것을 한자리에 모으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의 작업장이 있는 웅천도요지에 가면 여러 해 동안 이어온 노력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느껴 볼 수 있다.
“곳곳에 흩어져 있던 작품들을 하나하나 모으다보니 이제는 자그마한 전시실이 만들어질 정도로 많은 양의 작품을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들을 모으기 위해 부모님이 물려주신 모든 재산을 투자했지만 그만큼 가치 있고 소중한,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작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간다는 그는 얼마 전 일본에서 보고 온 작품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현재 일본의 기자에몬에서 보관중인 일본 국보 26호 이도차완은 쉽게 관람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귀한 물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람을 위해 청을 넣어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지요.” 한국 도공으로는 처음으로 기자에몬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직접 작품을 보고 왔다는 그는 1시간 여의 감상시간동안 철저한 보안과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도예품에 대한 사랑에 대해 더욱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는 웅천도요지만의 특징을 살린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 이외에도 옛 웅천도공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매년 10월 개최되는 추모제에는 각계의 인사들이 참석해 선인들의 혼을 기리는 제를 올린다.
![]() | ||
▲ 작품의 가치는 작가 스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최웅택 사기장은 작품의 가치를 타협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진해웅천도요지
진해의 웅천도요지는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이도다완의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정작 진해시는 지역을 가꾸고 보존하는데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어 도요지를 이끌어 가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현재 추모제는 물론이고 웅천도요지에서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은 복지가의 도움이나 최웅택 선생의 작품을 아끼는 후원가들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도요지 뒷산에 올라가보면 옛 도공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가마터가 있습니다. 추모제가 다가오면 그 가마터 주변을 정리하고 다듬는데 이를 함께 해줄만한 일손이 없어 매번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최웅택 선생은 시에서 약간의 도움을 준다면 웅천도요지가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웅천도요지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푸르른 녹음속에 안겨있는 것과 같은 가마터와 최웅택 선생의 사가다. 단순히 길을 지나치다 눈길이 닿아 도요지로 들어오는 차량들이 하루에도 적지 않다고 한다. 도요지를 찾아 들어온 사람들에게 향 좋은 차를 대접하며 이도다완에 대해 들려주는 최웅택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뜻하지 않게 찾아온 행운과 같은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도요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다양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 진해를 대표하는 관광지로의 성장도 가능하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설명이다.
웅천, 한국의 다완을 대표하다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한·중·일 도예 명인전’은 그가 다시 한 번 한국의 대표하는 사기장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명인전에는 삼국을 대표하는 도공들이 참석해 각 나라 작품의 특징과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최웅택 사기장도 참가한 작품들을 보면서 세 나라의 작품들이 극명한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먼저 일본의 작품은 화려함이 가장 눈에 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모노의 그것에서 볼 수 있을법한 화려한 무늬들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의 경우는 섬세함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작품에 들어가는 무늬 하나하나가 웬만큼의 정성과 집중력이 없이는 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작품을 보면 투박함을 가장먼저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화려함과 섬세함 속에서 자칫 투박함이 초라해 보일수도 있을지 모르나 오히려 그런 투박함이 은근한 매력을 발산하며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명인전이 더욱 특별했던 이유는 세계 다완의 대명사로 불리 우는 일본대표 심수관가와 함께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심수관가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심당길의 후손으로 도공들을 위해 추모제를 올리고 있는 그에게는 더욱 특별한 만남이 아닐 수 없었다.
또다시 다가오는 10월 추모제를 앞두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최웅택 사기장. 향후에 자신의 육신을 태워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싶다는 그는 오늘도 웅천의 혼을 기리고 그 정신을 작품에 담아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