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일한 제조사의 동일한 제품도 구입하는 약국에 따라 약값이 천차만별인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사는 약값이 비싸지 않을까 생각해봐야 한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발표한 ‘2007년 하반기 다소비의약품 판매가격 조사결과’에 나온 서울 구별 평균 판매가를 비교해본 결과, 같은 약도 최고가와 최저가는 20~30% 정도 차이가 났다. 동일한 제조사의 동일한 제품도 구입하는 약국에 따라 약값이 천차만별인 것을 알 수 있다.
약국마다 약값 천차만별
일반적으로 약국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은 ‘2007년 하반기 다소비의약품 판매가격 조사결과’약값의 평균가 이하였다. 반면 약국이 거의 없는 지역의 경우 평균가보다 높게 판매되고 있었다. 실제적으로 약국에서 한번쯤 약을 사본 경험이 있다면 ‘내가 산 약이 비싸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을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회사원(35세, 남) 이모 씨는 대전 둔산동에서 몇 달 전 B약국에서 처방전으로 탈모치료제 ‘프로페시아’ (한박스 6만 5,000원) 3박스를 구매했다. 3개월 뒤 ‘프로페시아’ 3박스를 재구매 하기 위해 회사 근처 용문동에 있는 C약국을 방문해 약값을 묻자 한박스 가격이 6만 원이었다. 이모 씨는 한 박스 당 5,000원이나 차이나는 것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3개월 사이에 약값이 올랐나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이모 씨는 의구심이 생긴 나머지 또 다른 약국을 찾아 동일한 약의 가격에 대해 묻자 한 박스 당 6만 2,000원이었다. 이모 씨는 약사한테 왜 이렇게 까지 약값 차이가 나는지에 대해 묻자 약사는 “비보험 약은 약사가 정할 수 있기 때문에 약국마다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약국마다 약값이 다른 이유는 1997년 12월에 의료개혁위원회에서 표준소매가 가격표시제도를 폐지하고 판매자 가격표시제도로 전환하는 개선안을 마련하고 이를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수용한 내용으로 약사법시행규칙의 개정으로 1999년 1월 20일부터 최종판매자인 약국에서 실제 판매하는 가격을 표시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도록 하는 ‘판매자가격표시제’를 전면 시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 의약품과 전문 의약품 중 의료보험에서 약값을 보조하지 않는 비급여 제품의 가격은 약국에서 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가격 이상이면 공정거래법에 저촉 받지 않고 일선 약국의 약사가 자유롭게 가격을 정할 수 있다.
‘표준소매가격제도’ 대신 ‘판매자가격표시제’ 제도를 도입한 것은 국민 다소비의약품인 일반의약품의 가격 인하를 유도해 국민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였지만 의도와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다소비 의약품 조사 공개, 실효성 거두지 못해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가족부가 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건전한 가격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반기별로 1회씩 1년에 2번 다소비 일반의약품 50종에 대해 판매가격 조사결과를 보건복지가족부 홈페이지 및 각 시·도(시·군·구) 홈페이지를 통해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이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극히 소수이며, 약을 사러 가진 전에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고 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할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다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또한 약국 규모에 따라 대형(50평 이상), 중형(20평 이상 50평 미만), 소형(20평 미만)으로 구분하여 조사했기 때문에 소비자는 가장 싼 약국이 어딘지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실상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한 관계자는 “개별약국의 가격비교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가 많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면서 “소비자를 위해 개별 약국에 대한 가격비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소비자가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서 약을 구입하게 되는 전문의약품이든, 아니면 소비자 스스로 약국에서 구입하는 일반의약품이든 결국 가격은 소비자가 지불하게 된다. 약국에서 직접 구입하는 일반의약품의 가격은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직접 지출되는 비용이고, 보험약의 경우 공단이 부담하는 급여는 전 국민이 가입하고 있는 건강보험 비용이거나, 국가가 예산으로 보조한 금액에 해당하는 세금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약품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대다수의 보험가입자들인 소비자의 몫인데도 소비자들이 의약품의 가격 결정에 대한 주도권은 사실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의약품의 경우에는 대형마트나 동네슈퍼처럼 일반 제품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고 구입하는 것이 어렵고 약값 및 약품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서있는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같은 건물에 위치한 약국에서 가격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도 환불 받는 등의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결국 소비자가 싸게 의약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직접 발품을 팔아 약국을 돌아다니며 약값을 비교하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몸이 아플 경우 약값이 싼 약국을 찾기보다는 가까운 곳에서 빨리 약을 사 복용하는 것이 급선무기 때문에 가격 편차에 대한 불합리함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간다.
대한약사회 홍보팀 관계자는 “자유로운 경쟁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약국에 비해 2~3배 이상 약값을 받을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유통과정에 따라 약값이 차이날 수 있기 때문에 판매하는 약사가 많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약을 비싸게 팔고 있다는 생각은 안하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며 약값 차이가 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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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건전한 유통질서가 바로잡히기 위해서는 원론적으로 약국간 가격편차가 가급적 작아야 하고 소비자들 또한 약에 대한 현명한 소비의식을 가져야 한다. |
약값이 다를 수밖에 없는 건 시장 경쟁의 논리
일반적으로 약값을 약사 마음대로 부르는 가격을 지불하면 약사는 항상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약사들이 표준소매가격제를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어 의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종로구 A약국 김모 약사는 “판매자가격을 표시하는 약사 입장에서 가격에 대해 많은 이익을 남긴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습니다”라며 “약국들마다 가격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쪽은 오히려 우리입니다. 심지어 이웃 약국 간 분쟁도 종종 발생합니다”라고 말했다.
대전 대덕구 G약국 주모 약사는 “일부 약국의 경우 영업전략 차원에서 특정 약품을 싸게 파는 대신 다른 약품을 비싸게 파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습니다”며 “대형마트가 생겨나면서 동네 슈퍼가 문을 닿는 것처럼 대형 약국의 경우 약을 대량으로 주문하다보니 소규모 약국에 비해 저렴하게 약이 들어오기 때문에 동네의 작은 약국들이 대형 약국에 비해 비쌀 수밖에 없죠”라고 설명했다
대전약사회 홍종오 회장은 “우리는 약국가의 건전한 유통질서가 바로잡히기 위해서는 원론적으로 약국간 가격편차가 가급적 작아야 한다는데 당연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전환된 현행 판매자가격표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예전의 표준소매가가 아닌 권장소비자 가격 등으로 정부가 어느 정도 ‘가격 선’을 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D제약회사 관계자는 “자유 경쟁 시장에서 약국마다 가격의 차이로 인한 소비자의 혼란은 결국 약국에서 보다 싼 가격으로 공급하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므로 소비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습니다”라며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박정일 변호사는 “약국마다 다른 가격이 책정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표준소매가제도 아래에서도 이를 준수하지 않는 약국들이 다수 있어 약국과 약국, 약국과 소비자 사이 가격 마찰이 있었습니다. 현행 제도에서는 표준소매가와 같이 획일적인 가격을 정하지 않으면서도 약국에서 구입 가격 미만으로 판매하여 과당 경쟁을 부추기고 소비자들을 부당하게 유인하는 행위를 금지하여 최소한의 기준을 책정하고 있으므로 지금까지 가격 제도 중에 가장 합리적인 기준을 설정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라며 “의약품은 가격만으로 소비자의 선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복약지도나 친절한 상담 등도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점에 비추어 보아 항상 가장 싼 가격으로 공급하는 약국만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고 비싼 가격으로 공급하는 약국은 부당한 폭리를 취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창근 변호사는 “판매자가격표시제를 시행한 취지는 매우 좋으나 일부 약국에서 다른 약국과 비교했을 때 2~3배 정도의 약값을 제시하는 것에 대한 소비자들이 불만이 끊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한 약국에 대해서는 각 지역의 약사회 및 지자체에서 권고를 주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소비의약품에 대한 다른 약국의 평균 약값이 명시된 데이터를 작성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약국이나 각 가정에 공시해야합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