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조작, 과학계 성장 위한 성장통인가
상태바
논문조작, 과학계 성장 위한 성장통인가
  • 취재_김은예 기자
  • 승인 2008.04.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술 범죄’인 논문 조작에 대한 자정 능력 절실히 요구
지난 2007년 노벨상 수상자로 국내 대학에서 처음 연구 활동을 벌이게 된 로저 콘버그 스탠퍼드대 교수는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파문에 대해 “논문 조작은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로, 미국에서도 여러 번 있었던 일입니다. 과학계는 자정 능력이 있고 이러한 오류를 수정하면서 성장해나갈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라며 “한국의 과학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성장통”이라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2005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울대 황우석 박사의 줄기 세포에 관한 논문 조작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는데 2008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과학과 김태국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 사건이 터졌다. 지난 논문 조작과 다른 점이라면 대학 내의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대학 내 자체 검증을 통해 연구 부정을 밝혀냈다는 것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논문 조작이 과학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끊이지 않는 논문 조작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한 시점에 와 있다.


윤리의식의 결여, 가장 큰 문제
계속되고 있는 논문 조작의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교수 개인의 문제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회 출판윤리위원회 함창곡 위원장은 “논문 조작의 원인은 업적 부풀리기에 있습니다. 과거 관행적이었던 것으로 윤리의식 결여는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라고 하며 그 원인을 지적했다. 학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논문 조작에 대한 처벌이 관대했던 것이 교수들이 논문에 대해 관행적으로 업적 부풀리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 세포에 관한 논문이 조작으로 밝혀지면서 자체적으로 자정의 목소리가 있어 왔고, 그 해부터 강화되어 작년부터 학술진흥재단과 과기부에서 편집위원과 학회회원 등을 대상으로 교육과 연구윤리심포지엄 개최 등의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신속한 조사를 통해 드러난 카이스트 김태국 교수의 논문 조작은 생명과학과 연구진실성위원회(위원장 이균민 학과장)이 대학 자체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교수들은 지난 2월 12일 처음 논문 조작 제보를 전해들은 뒤 다음날 조사위원 9명과 실무자 4명으로 위원회를 꾸리고 곧이어 김 교수 연구실을 폐쇄하는 한편 공저자 연구생 4명을 불러 논문 내용과 연구 과정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위원회는 <사이언스> 등에 발표한 ‘노화 질병 신약의 원천기술’과 관련한 2편의 논문이 조작됐다는 충분한 증거와 증언을 확보했다며 이런 내용을 <사이언스> 등에 곧바로 알렸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는 위원회에 한 차례 자신의 견해를 직접 밝혔다.
조사위원 교수들은 실추된 학교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라도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태도를 나타냈다.
조사위원인 서연수 교수는 “연구부정을 저지르기로 마음먹으면 사실 부정을 예방할 방법은 없다”며 “하지만 일단 터진 부정에 대해선 위원회가 신속하고 단호하게 파헤치고 철저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신뢰 회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06년 연구진실성위원회 제도가 국내 대학에 처음 도입된 이래 위원회가 직접 밝힌 사실상 첫 번째 연구부정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위원회 안팎에선 이번 처리 과정을 본보기 삼아 국내 대학의 연구진실성위원회 활동과 권한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열린 실험실 문화로의 개선 필요
한편, 논문의 공저자인 연구생들이 김 교수가 총괄한 연구의 전체 진행을 잘 알지 못했으며 데이터 해석과 관련해 지도교수한테 문제제기를 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지자, 학계에선 우리 실험실 문화를 자성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보자는 “(당시 실험실 분위기를) 지금 말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카이스트 이균민 학과장은 “이번 사태가 정리되는 대로 학생과 교수들이 모두 모여 실험실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진단하는 토론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사 활동을 하면서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실험실의 문제를 털어놓을 수 있게 하는 실험실 문화와 제도의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사실 우리 실험실 문화는 그동안 여러 차례 지적돼왔다. 김동광 박사(과학사회학)는 “한국의 과학자 사회를 주제로 한 연구프로젝트에 참여해 최근 여러 대학 실험실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상당수가 지도교수-박사후연구원-학생으로 이어지는 서열 문화를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자들이 자기결정의 권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서열에 순응하는 실험실 생활에 익숙하다면 연구윤리도 형식에 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현숙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는 “민주적 실험실을 만들려는 장기적인 ‘문화운동’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벨상 수상자인 막스 페루츠가 ‘과학 연구실엔 어떤 위계도 있어선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듯이 과학 연구야말로 자유로운 토론과 소통을 통해 창의적 발상을 얻는 활동이기에 소통과 토론의 협력연구가 중심을 이루는 현대과학에서 실험실 문화는 더욱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지도교수의 개성에 따라 실험실 분위기가 좌우되는 풍토는 개선돼야 한다며 학과에 ‘학생 고충 상담 교수’를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황은성 서울시립대 교수(생명과학)는 미국 의과대학에서 널리 시행되는 ‘옴부즈맨’ 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이른바 ‘연구실 고충처리기구’다. 그는 “미국 대학의 옴부즈맨은 본래 실험실 안의 오해와 의견의 불일치, 갈등, 개인의 스트레스 따위를 상담해주는 상담원 제도”라며 “연구윤리를 둘러싼 기성 연구자와 새 세대 연구자들의 의식 차이와 갈등을 해소하고 연구윤리 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도 옴부즈맨의 도입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번 일이 그동안 실험실 문화의 이러한 오류를 수정하면서 우리나라 의·과학계가 성장해나갈 수 있는 발판이 되길 기대해 본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