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인 교육 위해선 필요 VS 학교 간 줄 세우기와 사교육비 증가 등 부작용 예상
지난 3월 6일 전국 중학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전국연합진단평가’가 학교 서열화, 교육과정 파행 논란 등 큰 파장을 낳고 있다. 교육시민단체들은 이번 진단평가가 학생들의 과열 경쟁과 학교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10년 전 폐지된 ‘일제고사’의 부활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기초학력 부진학생 선별과 기초학력 책임지도 추진 지원, 학교현장 평가방법 개선 등을 위해선 진단평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당분간 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 속에 치러진 진단평가, 찬반 입장 여전히 팽배
지난 3월 6일 16개 시·도에서 중학교 1학년 68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단평가가 실시됐다. ‘교과학습진단평가’는 서울시교육청 주관 아래 각 시·도교육청별로 학년 초 학생들의 학습실력을 파악하고 수능시험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4~6학년생과 중학교 2~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과목을 5지선다형으로 출제되며 영어교과는 듣기평가까지 포함돼 있다.
그동안 중1 진단평가는 시·도교육청에서 전체 또는 학생의 1∼3%를 표집 해 따로 실시해 오다 지난해 9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날로 심각해지는 학력 저하를 막기 위해 올해부터 전국 단위로 진단평가와 성취도평가 등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감 협의회는 이번 진단 평가가 학생들의 학력을 정확하게 측정하여 학습 부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 활용하기 위한 자료라고 밝히고 있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은 전국 단위 시험 결과는 언제든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 일제고사 형태의 학력평가는 과열경쟁을 조장하고 인성교육을 실종시키는 등 각종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고 폐지됐다. 지금까지 일제평가는 ▲학교별, 교사별 다양한 교육과정운영 권한 봉쇄 ▲객관식 평가에 따르는 암기식 교육 강화 ▲사교육비 부담 증대 ▲성적공개로 인한 학교 간 서열화 및 위화감 조성 등의 이유로 전국적·지역적, 전 학교, 전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해왔다. 그러나 10년 만에 부활한 이번 진단평가 방식과 목적에 대해 교육계의 해석이 엇갈리는 등 찬반 논쟁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학부모 이모 씨는 “중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를 가르치기도 전에 이 아이가 몇 점짜리에 전국 몇 등짜리 아이 이렇게 나오게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얼마 전 시험을 치른 중학교 1학년 학생 자녀를 둔 인천 지역의 한 학부모는 “2월에 치른 배치고사에서 이미 초등학교 과정 문제로 시험을 봤는데 왜 똑같은 내용의 시험을 또 보는지 모르겠다고 아이가 말하더라. 전체 10개 과목 가운데 이런 식으로 5개 과목만 시험을 보면 다른 교과는 소홀해질 텐데 여러 과목을 골고루 배울 기회가 없을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대개의 중학교 1학년생은 올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배치고사, 일제학력평가, 경시대회 등을 합쳐 모두 10여 차례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보통 3∼4일, 이렇게 따져보면 200일 정도의 수업 일수 가운데 20일 가량을 시험 보는데 보내야 한다. 9일 공부하고 하루 시험 보는 꼴이다.
시험공화국 아이들, 입시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교육시민단체들은 중1 일제고사에 대해 지난 3월 5일 잇따라 성명을 내고 학교서열화를 부추기고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일제고사의 중단을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중1 신입생을 대상으로 진단평가를 전국적으로 실시해 개인별 성적, 학교별 성적, 지역단위 석차백분율까지 공개하게 되면 모든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시키고 결국 학생들을 무한과열 경쟁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지적하며 “획일적으로 실시되는 일제고사의 평가 기준에 매몰돼 일선학교 교사의 자율적인 수업운영과 평가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학교현장의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은 파행을 거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4일 대구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등 6개 학부모단체는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일 실시되는 초·중등학생 대상의 전국 일제고사는 학력 서열화, 과열입시경쟁 등을 부추길 것”이라며 시험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10년 전 일제고사가 폐지돼 초·중등학교에서 다양한 재능개발과 창의적이고 탐구적인 분위기가 정착되는 단계에서 고사 부활은 사교육비 부담과 비교육·획일적 교육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튿날 교육시민단체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의 학생들을 획일적 학습노동으로 몰아넣는 일제고사 시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하며 “학생들의 학업 부담 경감을 위해 사라졌던 일제고사가 다시 부활돼 학생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일제고사는 개별화 교육을 강조한 7차 교육과정 취지에 어긋나며 어린 학생들에게 학기 초부터 부담감을 안겨줘 비교육적이라며 학교 간 줄 세우기, 과열경쟁, 사교육비 증가 등을 우려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학부모는 “반배치 고사에 진단평가까지 입학 전부터 산 너머 산”이라며 “전국 시험은 아이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 유모 씨는 “학력 수준 진단도 좋지만 갓 입학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적응도 하기 전에 일제히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은 학생들을 너무 일찍 입시경쟁으로 몰아넣는 일”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시험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은 같은 학교 친구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울 모 여중의 한 학생은 “전국 등수가 쫙 나오니까 ‘나는 이렇게 못하는구나’ 잘하는 친구들 보면 또 ‘나는 저렇게 안되겠구나’ 생각하며 열등감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이명박 대항 서민지킴이본부’ 장혜옥 본부장은 “11~13살 어린 아이들을 승리자와 패배자로 나누는 줄 세우기 일제고사는 즉각 철회해야 한다”며 “영어몰입교육, 자립형사립고확대, 입시자율화에 이어 일제고사까지 부활시킨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아울러, “시험지옥, 입시지옥, 교육비지옥을 해결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학벌철폐운동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도 지난 3월 6일 전국 중학교에서 실시되는 ‘일제고사’가 입시지옥을 초래하고 사교육 광풍을 불러올 것이라며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최순영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시도교육감들의 일제고사 성적공개 방침으로 불타는 사교육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라며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창의력 말살 사교육 양성 시험을 폐기하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선 진단평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은 학생이 어떤 수준인지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의 기초학력을 파악해 수준에 맞는 학습법을 개발하는 데 진단평가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이번 진단평가는 중학교 학습 준비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으로 그 결과를 토대로 각 학교는 신입생 수준에 맞는 교수·학습 방법을 모색하고 기초학력 및 교과학습 부진학생을 파악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현인철 대변인은 “부진 학생을 선별해 수업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시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전국 단위로 동시에 같은 문제를 내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국 단위의 일제고사를 전 학생이 치르게 되면 진단 및 성취도 평가 대상 5개 교과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보다는 일제고사 대비 시험 위주의 교과운영이 불가피할 것이며, 동시에 일제고사 도덕·음악·미술·체육·기술·가정 등의 비대상 교과는 파행적인 수업운영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객관식 일제고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나라들에선 찾기 어려운 ‘후진적 평가’라는 게 교육학자들의 지적이다. 석차 백분율이든 전교 석차든 모두 상대평가 지표다. ‘학교나 시·도에서 몇 등’인지가 중요할 뿐, 성취 수준 도달 여부를 살피는 절대평가가 아니다. 이에 교육 전문가들은 ‘진단평가’는 교사나 학교별로 하는 게 바람직하고, 교육청 단위에서 하더라도 개인 성적과 과목별 평균만 표기해도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성적공개, 격차 지역 간 분명히 드러나
진단평가의 성적이 공개된 경기도의 한 중학교의 1학년 학생 학부모는 자녀의 성적표를 내보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들이 영어 과목에서 1문제를 틀려 96점을 받았으나 석차는 전체 600명 중 320등을 기록하고 수학은 4문제를 틀려 480등을 차지해 아이의 어깨가 축처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1일 진단평가 성적이 각 시·도교육청별로 공개됐다. 당초 개인 석차백분율만 공개키로 했던 진단평가 성적표에는 학교 평균점수가 추가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월 4일 중학교 368곳의 답안지를 모두 거둬 채점한 뒤 성적표에 ▲개인별 성적 ▲문항별 응답률과 함께 ▲서울 안 석차 백분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공개된 성적격차는 지역 간 분명하게 드러났다. 강남지역 4개 중학교는 영어와 수학성적 평균이 100점 만점에 90점을 넘었다. 서울지역 전체 영어 평균 87점과 수학 평균 83점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반면 강북은 영어·수학 평균 점수가 각각 80점이었고 강서지역의 한 중학교는 두 과목 평균이 각각 60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진단평가 결과는 외부로 공개되진 않지만 각 시·도 내에서 개인 등수가 나온다는 점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뜨겁다.
시교육청 한춘희 장학관은 “교육청이 직접 학교별 전체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서 문제없다”고 말했다. 이에 전교조 서울지부 김진철 정책실장은 “단번에 서울시내 학교 점수가 비교된다. 교육청이 제공하지 않았을 뿐이지 학교 서열화는 뻔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인별 성적 통보는 ‘경쟁을 통해 학력을 증진 시키겠다’는 목표가 바탕에 깔려 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나라가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경쟁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는가. 몇 사람은 서열화를 우려하는데, 나는 서열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이는 ‘교과학습 성취 수준 및 기초학력 미달학생 파악’이라는 진단평가의 원래 목적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한 중학교에서는 운동부와 특수반 학생들을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등 학교 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윤숙자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은 “전국 중학교에서 일제히 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치러 전국 석차 백분율은 물론 학교별 순위를 언제든 낼 수 있다”며 “학생들을 점수로 줄 세우고 학교를 성적으로 비교하는 사태가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육학계는 진단평가 실시에는 찬성하지만 성적 통지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김안중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은 가르치면 당연히 평가해야 하는데 지난 10년간 전국단위 시험을 안본 게 오히려 이상하다. 1년에 1~2회 전국단위 시험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별 성적 통지는 ‘인권 침해’이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전체적으로 지역·학교별 성적을 파악해 낙후지역에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영어·수학은 사교육의 영향과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시험 성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며 “교육당국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학부모에게 전달하고, 지역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공교육 강화하려다 사교육 시장만 가열
진단평가가 상시화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중학교 사교육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미 학원가를 중심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일제고사 대비반을 편성했고 온라인 학습사이트들도 관련 특강과 모의고사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을 끌어 모았다. 출판사들은 일제고사 대비 문제집을 앞 다퉈 출시, 서점에는 관련 코너가 따로 생겼다.
중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학습지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하고 경쟁체제에서 밀려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자꾸 오다보면 당연히 사교육 시장으로 발을 뻗게 된다. 서울 강남지역은 일제고사에 느긋한 반응이지만, 서울 강북이나 지방의 학원에선 지역 격차 때문에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대비반까지 생겼다”라고 말했다.
강형구 부대변인은 3월 6일 논평에서 “전국 시도교육감이 일제고사를 치른다고 하자 문제집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현실은 일제고사가 공교육 정상화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이은 일제고사와 성적공개는 이명박 정부와 교육당국의 무한경쟁 시장만능주의식 교육정책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한편, 지난 3월 12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일제고사 찬반에 대해 전화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한 결과 국민 절반 이상이 초·중생 일제고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객관적 학력평가를 위해 일제고사 실시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4.3%였다.
또한 ‘학교 서열화의 부작용으로 반대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32.9%로 나타나 찬성이 21.4%p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3월 6일 전국 중학 1학년생들을 대상으로 치러진 ‘전국연합진단평가’가 학교 서열화, 교육과정 파행 논란 등 큰 파장을 낳고 있다. 교육시민단체들은 이번 진단평가가 학생들의 과열 경쟁과 학교 서열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10년 전 폐지된 ‘일제고사’의 부활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기초학력 부진학생 선별과 기초학력 책임지도 추진 지원, 학교현장 평가방법 개선 등을 위해선 진단평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서 당분간 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논란 속에 치러진 진단평가, 찬반 입장 여전히 팽배
지난 3월 6일 16개 시·도에서 중학교 1학년 68만여 명을 대상으로 진단평가가 실시됐다. ‘교과학습진단평가’는 서울시교육청 주관 아래 각 시·도교육청별로 학년 초 학생들의 학습실력을 파악하고 수능시험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 4~6학년생과 중학교 2~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과목을 5지선다형으로 출제되며 영어교과는 듣기평가까지 포함돼 있다.
그동안 중1 진단평가는 시·도교육청에서 전체 또는 학생의 1∼3%를 표집 해 따로 실시해 오다 지난해 9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날로 심각해지는 학력 저하를 막기 위해 올해부터 전국 단위로 진단평가와 성취도평가 등을 실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교육부와 시·도 교육감 협의회는 이번 진단 평가가 학생들의 학력을 정확하게 측정하여 학습 부진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높이는 데 활용하기 위한 자료라고 밝히고 있지만, 학부모와 교사들은 전국 단위 시험 결과는 언제든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 일제고사 형태의 학력평가는 과열경쟁을 조장하고 인성교육을 실종시키는 등 각종 부작용을 낳았다는 비판을 받고 폐지됐다. 지금까지 일제평가는 ▲학교별, 교사별 다양한 교육과정운영 권한 봉쇄 ▲객관식 평가에 따르는 암기식 교육 강화 ▲사교육비 부담 증대 ▲성적공개로 인한 학교 간 서열화 및 위화감 조성 등의 이유로 전국적·지역적, 전 학교, 전 학생들이 참여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해왔다. 그러나 10년 만에 부활한 이번 진단평가 방식과 목적에 대해 교육계의 해석이 엇갈리는 등 찬반 논쟁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학부모 이모 씨는 “중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를 가르치기도 전에 이 아이가 몇 점짜리에 전국 몇 등짜리 아이 이렇게 나오게 되는 거 아니냐”라고 말했다.
얼마 전 시험을 치른 중학교 1학년 학생 자녀를 둔 인천 지역의 한 학부모는 “2월에 치른 배치고사에서 이미 초등학교 과정 문제로 시험을 봤는데 왜 똑같은 내용의 시험을 또 보는지 모르겠다고 아이가 말하더라. 전체 10개 과목 가운데 이런 식으로 5개 과목만 시험을 보면 다른 교과는 소홀해질 텐데 여러 과목을 골고루 배울 기회가 없을까 봐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대개의 중학교 1학년생은 올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배치고사, 일제학력평가, 경시대회 등을 합쳐 모두 10여 차례의 시험을 치러야 한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보통 3∼4일, 이렇게 따져보면 200일 정도의 수업 일수 가운데 20일 가량을 시험 보는데 보내야 한다. 9일 공부하고 하루 시험 보는 꼴이다.
시험공화국 아이들, 입시경쟁은 피할 수 없는 운명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교육시민단체들은 중1 일제고사에 대해 지난 3월 5일 잇따라 성명을 내고 학교서열화를 부추기고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일제고사의 중단을 촉구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날 성명을 통해 “중1 신입생을 대상으로 진단평가를 전국적으로 실시해 개인별 성적, 학교별 성적, 지역단위 석차백분율까지 공개하게 되면 모든 학생과 학교를 서열화시키고 결국 학생들을 무한과열 경쟁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지적하며 “획일적으로 실시되는 일제고사의 평가 기준에 매몰돼 일선학교 교사의 자율적인 수업운영과 평가권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학교현장의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은 파행을 거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3월 4일 대구 함께하는 교육시민모임 등 6개 학부모단체는 대구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6일 실시되는 초·중등학생 대상의 전국 일제고사는 학력 서열화, 과열입시경쟁 등을 부추길 것”이라며 시험 중단을 요구했다. 이들은 “10년 전 일제고사가 폐지돼 초·중등학교에서 다양한 재능개발과 창의적이고 탐구적인 분위기가 정착되는 단계에서 고사 부활은 사교육비 부담과 비교육·획일적 교육을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튿날 교육시민단체들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의 학생들을 획일적 학습노동으로 몰아넣는 일제고사 시행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하며 “학생들의 학업 부담 경감을 위해 사라졌던 일제고사가 다시 부활돼 학생들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비난했다.
교사와 학부모들은 일제고사는 개별화 교육을 강조한 7차 교육과정 취지에 어긋나며 어린 학생들에게 학기 초부터 부담감을 안겨줘 비교육적이라며 학교 간 줄 세우기, 과열경쟁, 사교육비 증가 등을 우려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한 학부모는 “반배치 고사에 진단평가까지 입학 전부터 산 너머 산”이라며 “전국 시험은 아이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 유모 씨는 “학력 수준 진단도 좋지만 갓 입학한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적응도 하기 전에 일제히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은 학생들을 너무 일찍 입시경쟁으로 몰아넣는 일”이라고 걱정했다.
실제로 시험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은 같은 학교 친구 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울 모 여중의 한 학생은 “전국 등수가 쫙 나오니까 ‘나는 이렇게 못하는구나’ 잘하는 친구들 보면 또 ‘나는 저렇게 안되겠구나’ 생각하며 열등감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이명박 대항 서민지킴이본부’ 장혜옥 본부장은 “11~13살 어린 아이들을 승리자와 패배자로 나누는 줄 세우기 일제고사는 즉각 철회해야 한다”며 “영어몰입교육, 자립형사립고확대, 입시자율화에 이어 일제고사까지 부활시킨 것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아울러, “시험지옥, 입시지옥, 교육비지옥을 해결하는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학벌철폐운동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도 지난 3월 6일 전국 중학교에서 실시되는 ‘일제고사’가 입시지옥을 초래하고 사교육 광풍을 불러올 것이라며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최순영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시도교육감들의 일제고사 성적공개 방침으로 불타는 사교육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라며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창의력 말살 사교육 양성 시험을 폐기하라”고 밝혔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선 진단평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은 학생이 어떤 수준인지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아이들의 기초학력을 파악해 수준에 맞는 학습법을 개발하는 데 진단평가만한 것이 없다”고 말하며 “이번 진단평가는 중학교 학습 준비상황을 파악하려는 것으로 그 결과를 토대로 각 학교는 신입생 수준에 맞는 교수·학습 방법을 모색하고 기초학력 및 교과학습 부진학생을 파악하는 데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현인철 대변인은 “부진 학생을 선별해 수업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시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전국 단위로 동시에 같은 문제를 내 시험을 치르게 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국 단위의 일제고사를 전 학생이 치르게 되면 진단 및 성취도 평가 대상 5개 교과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수업보다는 일제고사 대비 시험 위주의 교과운영이 불가피할 것이며, 동시에 일제고사 도덕·음악·미술·체육·기술·가정 등의 비대상 교과는 파행적인 수업운영이 필수적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객관식 일제고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나라들에선 찾기 어려운 ‘후진적 평가’라는 게 교육학자들의 지적이다. 석차 백분율이든 전교 석차든 모두 상대평가 지표다. ‘학교나 시·도에서 몇 등’인지가 중요할 뿐, 성취 수준 도달 여부를 살피는 절대평가가 아니다. 이에 교육 전문가들은 ‘진단평가’는 교사나 학교별로 하는 게 바람직하고, 교육청 단위에서 하더라도 개인 성적과 과목별 평균만 표기해도 취지를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성적공개, 격차 지역 간 분명히 드러나
진단평가의 성적이 공개된 경기도의 한 중학교의 1학년 학생 학부모는 자녀의 성적표를 내보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들이 영어 과목에서 1문제를 틀려 96점을 받았으나 석차는 전체 600명 중 320등을 기록하고 수학은 4문제를 틀려 480등을 차지해 아이의 어깨가 축처졌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1일 진단평가 성적이 각 시·도교육청별로 공개됐다. 당초 개인 석차백분율만 공개키로 했던 진단평가 성적표에는 학교 평균점수가 추가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3월 4일 중학교 368곳의 답안지를 모두 거둬 채점한 뒤 성적표에 ▲개인별 성적 ▲문항별 응답률과 함께 ▲서울 안 석차 백분율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공개된 성적격차는 지역 간 분명하게 드러났다. 강남지역 4개 중학교는 영어와 수학성적 평균이 100점 만점에 90점을 넘었다. 서울지역 전체 영어 평균 87점과 수학 평균 83점 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반면 강북은 영어·수학 평균 점수가 각각 80점이었고 강서지역의 한 중학교는 두 과목 평균이 각각 60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진단평가 결과는 외부로 공개되진 않지만 각 시·도 내에서 개인 등수가 나온다는 점 때문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뜨겁다.
시교육청 한춘희 장학관은 “교육청이 직접 학교별 전체 성적을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서 문제없다”고 말했다. 이에 전교조 서울지부 김진철 정책실장은 “단번에 서울시내 학교 점수가 비교된다. 교육청이 제공하지 않았을 뿐이지 학교 서열화는 뻔하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인별 성적 통보는 ‘경쟁을 통해 학력을 증진 시키겠다’는 목표가 바탕에 깔려 있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나라가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경쟁하는 법을 가르쳐줘야 하지 않겠는가. 몇 사람은 서열화를 우려하는데, 나는 서열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이는 ‘교과학습 성취 수준 및 기초학력 미달학생 파악’이라는 진단평가의 원래 목적과는 동떨어진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한 중학교에서는 운동부와 특수반 학생들을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등 학교 현장에서는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았다.
윤숙자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회장은 “전국 중학교에서 일제히 같은 문제지로 시험을 치러 전국 석차 백분율은 물론 학교별 순위를 언제든 낼 수 있다”며 “학생들을 점수로 줄 세우고 학교를 성적으로 비교하는 사태가 가장 우려된다”고 말했다.
교육학계는 진단평가 실시에는 찬성하지만 성적 통지에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김안중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은 가르치면 당연히 평가해야 하는데 지난 10년간 전국단위 시험을 안본 게 오히려 이상하다. 1년에 1~2회 전국단위 시험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별 성적 통지는 ‘인권 침해’이므로 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전체적으로 지역·학교별 성적을 파악해 낙후지역에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진곤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영어·수학은 사교육의 영향과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시험 성적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며 “교육당국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학부모에게 전달하고, 지역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공교육 강화하려다 사교육 시장만 가열
진단평가가 상시화 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면서 중학교 사교육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이미 학원가를 중심으로 지난해 가을부터 일제고사 대비반을 편성했고 온라인 학습사이트들도 관련 특강과 모의고사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생들을 끌어 모았다. 출판사들은 일제고사 대비 문제집을 앞 다퉈 출시, 서점에는 관련 코너가 따로 생겼다.
중학생을 둔 한 학부모는 “학습지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하고 경쟁체제에서 밀려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이 자꾸 오다보면 당연히 사교육 시장으로 발을 뻗게 된다. 서울 강남지역은 일제고사에 느긋한 반응이지만, 서울 강북이나 지방의 학원에선 지역 격차 때문에 불안해하는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대비반까지 생겼다”라고 말했다.
강형구 부대변인은 3월 6일 논평에서 “전국 시도교육감이 일제고사를 치른다고 하자 문제집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현실은 일제고사가 공교육 정상화에 얼마나 큰 악영향을 미칠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영어 몰입식 교육에 이은 일제고사와 성적공개는 이명박 정부와 교육당국의 무한경쟁 시장만능주의식 교육정책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한편, 지난 3월 12일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일제고사 찬반에 대해 전화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한 결과 국민 절반 이상이 초·중생 일제고사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객관적 학력평가를 위해 일제고사 실시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4.3%였다.
또한 ‘학교 서열화의 부작용으로 반대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32.9%로 나타나 찬성이 21.4%p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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