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 공정위 제재 받아도 악순환 되풀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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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텔, 공정위 제재 받아도 악순환 되풀이 돼
  • 글_이현지 기자
  • 승인 2008.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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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소비자 피해액 2조8,270억…과징금은 3,070억뿐
올해부터 소비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소비자단체소송’이 도입되는 등 소비자 정책의 패러다임이 ‘보호’에서 ‘주권 실현’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장치는 미흡한 실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부당한 공동행위(담합·카르텔)로 과징금을 받았던 업체들의 제품 가격이 평균 물가 상승률을 훨씬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담합행위 적발에 따른 지난해 소비자 피해액(추정치)은 2조 8,270억 원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부과된 과징금은 3,070억 원에 불과했다. 담합에 따른 기업의 부당이득액과 소비자피해액이 반드시 같지는 않지만 소비자피해액과 과징금을 기준으로 지난해 기업들의 부당이득을 추산할 경우, 최대 9배의 폭리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피해 전년의 3.5배, 공정위 가격환원명령권 없어
KOSIS(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1월 현재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변동을 나타내는 지수인 소비자물가 지수는 2005년 100을 기준으로 106.8이다. 하지만 담합 제품의 물가지수는 이보다 훨씬 높았다. 설탕 119, 휘발유 116.1, 밀가루 172.8 등이다. 이 제품들은 담합 시기에 따라 지수 변동폭도 컸다. 반면 담합하지 않은 상당수 제품의 물가지수들은 소비자물가 지수와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결국 담합 기업들에 대한 공정위의 사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소비자 피해규모 가운데 합성수지 제조·판매사업자들의 가격담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1조 5,600억 원으로 가장 컸다. 또 지난해 과징금 3,070억 원은 사상 최고치로 전년도(8,000억 원)의 3.5배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소비자 권익보호를 위한 강도높은 대책을 주문했다. 국민대 경제학과 김인걸 교수는 “담합이 계속된다는 것은 기업입장에서는 담합으로 챙길 수 있는 이득이 나중에 지불해야 할 비용(과징금)보다 많기 때문”이라면서 “현재는 과징금을 법이 허용하는 한도치까지 실제로 부과하지 않고 있으나 이를 최대치로 높이고, 담합 행위가 반복될 경우 과징금 부과수준 자체도 더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소비자시민모임 우혜경 팀장은 “공정위 제재를 받아도 인상된 가격을 소비자에게 환원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면서 “소액다수 피해 소비자들이 담합 기업에 대한 사후 감시와 집단 소송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정재철 카르텔 조사단장은 이에 대해 “법적으로 공정위가 가격 환원 명령을 내릴 순 없다”면서 “교복 담합 업체를 대상으로 한 학부모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처럼 소비자 주권을 스스로 행사해야 한다. 담합 피해구제에 대한 소비자단체의 집단 소송이 있을 경우 논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도록 각종 자료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도울 것 ”이라고 밝혔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 3대 논란 ‘시끌’ 치솟는 땅값
공모형 PF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높은 땅값과 심사의 투명성, 그리고 담합 논란이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 지난해 판교PF와 용산역세권PF 등을 거쳐 올해도 영등포교정시설ㆍ은평뉴타운ㆍ상암DMC 등에서 조단위 PF사업 공모가 잇따라 예정돼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높은 땅값=최고가낙찰제에 따른 상업용지 공급으로 천정부지로 치솟는 땅값이 PF사업의 걸림돌로 지적됐다. 높은 땅값은 ‘고분양가→미분양→상업시설 활성화 실패→사업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최우선 해결과제로 꼽힌다. 일례로 3.3㎡당 최고 4,598만 원으로 고분양가 논란이 있는 뚝섬 주상복합의 경우 용지 낙찰가가 예정가인 5,270억 원의 213%인 1조1,262억 원에 달해 고분양가의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11월 사업자를 선정한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땅값은 무려 8조 원으로 전체 사업비인 28조 원의 28%에 달한다. 사업자인 용산역세권개발(주)의 한 관계자는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 없이는 입주기업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금융특구 지정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최근에는 발주처들이 땅값 배점 비중을 낮추고 있다. 보통은 30%지만 상암DMC의 경우 10%, 은평뉴타운은 20%까지 낮췄다. 하지만 최고가낙찰제를 유지하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불투명한 심사=동남권유통단지 심사위원 뇌물수수 사건을 계기로 심사비리 문제가 수면위로 부각됐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검찰수사 결과 청탁받은 업체는 80점을, 안 받은 업체는 30점을 주는 식이었다”며 “동남권유통단지는 빙산의 일각으로 혈연ㆍ학연ㆍ지연을 총동원한 로비전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업규모가 조단위로 커지면서 투명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실제 사업규모가 5조 원이 넘는 지난해 판교PF에서부터는 심사위원 명단과 심사결과를 공개하자는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발주처인 토공 측은 심사위원 명단이 공개될 경우 다음 PF사업시 로비의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했다. 한 업체 PF담당자는 “영등포교정시설 등 올해는 서울 도심 사업이 많아 경쟁이 치열할 것”이라며“심사위원들의 개별평가를 실명으로 공개해 주관적인 심사를 차단하는 방안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담합 논란=상암DMC 랜드마크타워 공모를 앞두고 시공순위 7위권 업체들 중 현대산업개발을 뺀 6개 업체들이 한 컨소시엄에 몰리면서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상대 컨소시엄 관계자는 “시공순위 10위권 중 6개 업체가 한 컨소시엄에 포함되면 경쟁은 사실상 무의미한 것”이라며 담합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해당 컨소시엄 측은 “지급보증을 선 시공사가 모든 책임을 떠안게 돼 조단위 사업의 경우 시공사를 늘려 위험을 분산하려는 것”이라며 “경쟁 컨소시엄이 2~3개 있는데 담합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대형 개발업체나 금융사가 사업을 주도하는 선진국 형태로 사업구조가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불황 닭고기업체 담합 신청 공정위 “원칙이냐 봐주기냐”
‘원칙을 지켜야 하나, 불황에 처한 업계를 돌봐야 하나’
최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 소재 중소기업이 가격 담합을 허락해달라는 담합인가 신청을 잇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하고 있다. 공정위는 원칙과 절차에 따라 심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기업친화적 정책을 표방하는 새 정부의 신임 백용호 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3월 10일 공정위에 따르면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등 15개 닭고기 생산업체는 최근 공정위에 공동행위(담합) 인가신청을 냈다. 15개사는 신청서에서 거래조건 합리화를 위해 3년 동안 전문가위원회를 구성, 원가와 비용을 산출한 뒤 최종 가격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양계농가 위탁영농으로 사료비를 지원하고 닭고기를 납품받아 제품을 생산하지만 일반 농가의 저렴한 닭고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공정거래법은 ‘공동행위 예외적 인가제도’에 따라 경쟁을 저해하는 담합이라도 일정한 사유에 해당하면 사전에 인가를 받은 뒤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금까지 인가를 받아 담합을 한 경우는 모두 7건. 하지만 최근 10년 사이 인가를 받은 경우는 없었다. 특히 불황극복, 중소기업 경쟁력 향상 등을 이유로 담합이 허가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최근에는 광주·전남 레미콘공업협동조합 소속 9개 업체가 건설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레미콘 가격 및 물량담합을 신청했지만 기각됐다.
공정위는 일단 관련 내용을 공고하고 의견수렴에 나섰다. 공정위는 시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해 전원회의에 회부, 최종 인가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참여정부에서의 공정위라면 고려의 대상도 되지 않았을 사안이지만 새 정부에서 새 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공정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벌금 상한 높이고 형사처벌도 강화한 외국사례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카르텔 처벌 수위가 높다. 카르텔 과징금 상한선을 높이고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추세다. 미국은 카르텔 행위를 중죄로 간주하고 과징금과 인신구금을 병행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자국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국제 카르텔에 대한 법 집행을 강화했다. 과징금은 법원이 결정한 소비자 피해액의 2배와 사업자 이득의 2배 가운데 큰 금액으로 부과한다. 해당 기업 관련자들은 인신 구금된다. 또 담합으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들은 소송을 통해 피해액의 3배를 배상받을 수 있다. D램 반도체 가격담합 국제 카르텔 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4개 회사와 18명의 개인이 7억 3,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았고, 한국인 8명을 포함해 11명이 미국 감옥에서 금고형으로 복역했다.
유럽연합(EU)은 유럽연합조약 제81조에 따라 카르텔을 규제하고 있다. 기본 과징금을 전 세계 매출액의 10%까지 물리는 등 부과 액수가 매우 높다. 적발당한 기업의 경우, 벌어들인 이익의 2배 이상에 해당하는 벌금과 소비자 피해 보상액을 내야 한다. 유럽 단일시장의 경쟁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EU집행위원회에서 카르텔 업무를 맡고 있다. 2005년 6월 카르텔국을 신설했다. 카르텔국은 3개팀으로 변호사와 경제학자, 회계사 등 조사관만 50명이나 된다. 일본은 경쟁법 집행을 미국, EU 수준으로 높이는 독점금지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중국도 불공정경쟁방지법을 중심으로 소비자권리를 강화하고 있다. 캐나다는 개인에겐 5년 이하의 징역형을, 기업에는 860만 달러까지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카르텔에 참여한 개인에 대해 최고 2년의 징역형을 부과하고, 기업에 대해서는 380만 유로나 전세계 매출액의 10% 중 큰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한다. 호주는 2005년 2월 법개정을 통해 개인에게 22만 달러의 벌금 또는 5년 이하 징역형을 부과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바닥 타일 담합에 참여한 기업 임원 2명에 대해 각각 9개월과 7개월의 징역형을 부과했다.

국제 카르텔 자진신고 넘쳐공정위 “부담 느낄 정도”
국제 카르텔 자진신고가 넘쳐 나고 있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전세계 경쟁 당국의 감시망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우리 공정거래위원회에도 미국ㆍ유럽 등 전세계 기업들이 가격담합을 했다는 자진신고가 부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을 비롯, 전세계 경쟁 당국은 자진신고에 대해 고발 면제 등 여러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구체적 수치는 밝히기 어렵지만 전세계 기업들의 국제 카르텔 자진신고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많이 접수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우리 기업의 국제 카르텔도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미국 국적 기업 등 다국적 기업은 자국 경쟁 당국에 가격담합 자진신고를 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이제는 자국뿐 아니라 우리나라 공정위에도 가격담합을 솔선해 신고하는 기업이 부쩍 증가하는 추세다. 전세계 다국적 기업 입장에서 한국이 주요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공정위가 MS 등 굴지 기업 등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자 자진신고 건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미국 등 외국 경쟁 관련 변호사들이 기업에 자문할 때 자국뿐 아니라 한국 공정위에도 반드시 자진신고 하도록 권유하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전세계 기업들의 가격담합 신고서 접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LCDㆍ항공요금 담합 등에 대해 전세계 경쟁 당국의 국제 카르텔 조사가 진행 중이다. 또 A국가에서 B라는 다국적 기업에 가격담합 조사에 나서면 CㆍD 등 다른 국가 경쟁 당국도 연이어 조사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다 보니 다국적 기업의 경우 어느 국가에서 제재를 받으면 곧 다른 국가도 조사에 나서 과징금 등을 매기고 있다. 즉 우리 경쟁 당국이 미처 감시하지 못해도 다른 국가의 경쟁 당국 감시망에는 걸려드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한국 경쟁 당국에 몰려드는 전세계 기업의 자진신고 덕에 우리나라 글로벌 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도 드러나면서 국제 카르텔 조사에 우리 기업이 포함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도 이 같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공정위 고발없는 담합 검찰기소는 무효
업체들의 담합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검찰의 기소는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담합 고발 주도권을 둘러싼 공정위와 검찰 간 힘겨루기에서 공정위가 1승을 거두게 됐다.
지난 2월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구회근 판사는 설탕 유통량과 가격을 담합해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CJ 등 3개 업체에 대해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또 합성수지 가격 담합 혐의로 약식기소된 삼성토탈과 호남석유화학 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공소 기각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담합기업을 처벌하려면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 하는데 삼양사와 대한제당을 제외한 피고인들에 대해 공정위의 고발이 있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검찰이 주장한 ‘고발 불가분의 원칙’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형사소송법상 고발은 고소에 관한 일부 조항을 따를 뿐 ‘고소의 불가분’과는 상관없으며 이미 전속고발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새로운 입법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날 공소기각 판결을 받은 업체들은 모두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공범 중 일부가 고소되면 다른 공범에게도 고소 효력이 미친다는 `고소 불가분의 원칙`을 들어 고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이 원칙을 따라야 한다며 공정위가 고발대상에서 제외했던 자진 신고 업체들까지 기소했다. 검찰이 밀고 나오자 공정위는 고유 권한인 ‘전속고발권’을 들어 강하게 반발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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