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리모델링하라 ‘백 투 더 스쿨’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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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리모델링하라 ‘백 투 더 스쿨’ 열풍
  • 글_이현지 기자
  • 승인 2008.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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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 더 나은 조건 찾아 ‘제2 인생’ 꾀해
의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 더 나은 조건 찾아 ‘제2 인생’ 꾀해

최근 20~30대는 물론 40대 직장인들까지 직장을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찾으려고 학교로 돌아가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모자란 공부를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다. 진로를 완전히 바꿔 인생을 다시 설계하려는 욕망이 크다. 그동안 다가가기 힘들었던 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 등이 비전공자들에게도 문을 넓히면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첫해에 뚫어보자” 너도나도 로스쿨行
로스쿨 입시전쟁이 본격 레이스에 올랐다. 예비인가 선정과 정원배정 등 로스쿨 갈등이 여전하지만 내년 3월 첫 개원이 예상되면서 대학생과 일반 직장인은 물론 전문직 종사자들도 잇따라 시험 준비에 나서고 있다.
서울의 K법대를 졸업한 우 씨(24·여)는 최근 대학원을 휴학하고 도서관에서 로스쿨 시험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우 씨는 “논술 등에 대비해 매일 신문 기사를 읽고 스크랩하느라 바쁘다”며 “법률 전공을 무기삼아 혼자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 씨처럼 독학을 하지 않고 스터디나 학원을 찾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들은 혹시나 동료들 사이에 소문날까봐 점심시간에는 인근 도서관이나 커피숍, 퇴근 후에는 학원을 찾아다니며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활동 중인 임모(26)씨는 “로스쿨에 진학해 어떤 분야를 특화해야 할지를 놓고 정보를 모으고 있다”며 “일을 병행하면서 3년 정도 내다보고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로스쿨이 처음 도입되는 만큼 법학적성시험(LEET)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합격을 보장해줄 수 있는 학원이 딱히 없어 준비가 쉽지는 않다. 때문에 5만 9,000명의 회원이 등록된 인터넷 다음 카페 ‘로스쿨 뽀개기’에는 “로스쿨 아직 안 늦었나요(40대 직장인)” “고교 시절 꿈을 되살리고 싶습니다(지방 치대생)” “로스쿨 있는 대학으로 편입을 하는게 유리할까요(대학 신입생)” 등 시험 준비생의 고민과 사연이 줄을 잇고 있다.
카페 운영자 송지훈 씨는 “현역 장교를 비롯해 의사 변리사 공인회계사 등 실력 있는 분들이 스터디를 결성하고 있어 다소 놀랐다”면서 “최근에는 로펌에서 로스쿨 출신 변호사를 꺼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불안감이 커져 수험생들이 심적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전했다.
사법시험 학원은 물론 입시 전문 기관들도 로스쿨 준비생을 위해 발빠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대입 전문 기관들은 기존의 고3이나 재수생 회원들이 잠재적 로스쿨 준비생으로 변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진학사 황성환 기획조정실장은 “3월에 인터넷 강의를 시작으로 4월에는 모의고사를 실시하는 등 로스쿨 사업에 진출할 방침”이라며 “로스쿨 준비생은 올해 2만 명 정도를 시작으로 향후 급속히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학전문대학원 男, 치의학전문대학원 女 강세
의·치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신입생 중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은 남성이, 치의학전문대학원(이하 치전원)은 여성이 합격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입시전문기관 PMS에서 2008학년도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신입생 중 가천의대, 건국대, 경북대, 경희대, 부산대 등 의전원 합격생 478명과 경북대, 경희대, 서울대, 전남대 등 치전원 합격생 274명을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PMS 관계자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남학생은 치전원을, 여학생은 의전원을 많이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의전원의 경우 인턴-레지던트로 이어지는 수련과정까지 10여 년의 학업기간이 소요되는데 반해 치전원은 수련과정이 필요 없어 학업기간이 짧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즉 군복무로 인해 졸업시기가 늦어지는 남학생들의 경우 의전원보다 치전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의전원은 여학생들의 비중이 높다는 설명이다.
출신대학별 합격자 분포를 살펴보면 과거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특정 대학 출신 집중분포에서 경희대, 이화여대, 가천의과학대 등 수도권 중상위권 대학 출신의 합격자가 많이 늘어난 점과 경북대, 부산대 등 지방국립대에서 합격자를 다수 배출한 것이 주목할 만하다.
PMS 관계자는 “이들 대학 출신의 합격자가 많은 이유는 의전원 혹은 치전원이 도입되면서 본교 출신 학생들에게 홍보가 많이 되고, 특히 지방국립대의 경우 본교출신 특별전형 시행으로 해당 학교 출신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한 것이 그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시험자 전공과목은 의학계열의 경우 생물학 전공자들의 비율이 높은 편이었으며 치의학계열은 공대 졸업자들의 비율이 높았다.
PMS 관계자는 생물학과를 의·치전원 진학의 예비 단계로서 선택한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생물학 전공자들의 합격 비율은 매년 40% 이상을 상회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금년에도 의전원 합격생의 49%가 생물학 전공 출신자다. 반면 치전원의 경우 합격생의 40%가 공대 출신자로 확인됐다. 공간지각 능력을 중요시하는 치의학계열의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이다. 합격생의 입문검사 평균점수는 의전원 179점, 치전원 185점으로 나타났다.

로스쿨 입시 준비생 40%는 직장인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를 준비중인 수험생의 40%는 직장인이라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월 6일 로스쿨신문에 따르면 1월 17∼25일 인터넷 카페인 ‘로스쿨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서울대 로스쿨 입시연구회 등 회원 70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422명)는 대학생, 대학원생, 고시생이었고 40%(286명)는 직장인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가운데는 일반회사원(사무직ㆍ연구직)이 51.9%(147명)로 가장 많았고 이어 공무원 30.7%(87명), 의사ㆍ변리사ㆍ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 18.4%(52명) 등이었다. 로스쿨 준비생들의 연령대는 26~30세가 전체의 37.1%였고 이어 31~35세 26.1%, 25세 이하 19.2%, 36~40세 11.4% 등 순이었으며 40대 이상도 5.8%에 달했다.
전공은 법학 전공자가 39.4%(274명), 비전공자가 61.4%(429명)로 비전공자 비율이 더 높았다. 또 사법시험 등 다른 고시를 준비해 본 경험이 있는 경우가 절반(50.3%, 356명)에 달해 기존 고시생들의 상당수가 로스쿨 입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 변리사, 회계사 등 자기 분야에서 경쟁력 높이기 나서
회계사인 김 씨(32·가명)는 주말이면 강남역에 위치한 로스쿨 학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 로스쿨 입학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 강의를 수강하고 관련 예상 문제가 익숙해질 때까지 풀어보면서 시험에 적응 중이다. 쉬는 시간에는 같이 공부하는 직장인들과 정보교환을 하는 등 1년 앞으로 다가온 로스쿨 시험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로스쿨 학원가로 부상한 강남역 인근에는 평일 저녁과 주말, 로스쿨 학원을 찾는 직장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특히 1월부터 학원에 등록한 로스쿨 준비생들이 부쩍 많아졌다. 한 로스쿨 학원은 작년에 비해 수강생이 3배 가까이 늘었다.
학원들 역시 수강생 모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로스쿨 학원이 모여 있는 강남역 부근에는 로스쿨 강의를 알리는 학원들의 현수막과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로스쿨 입시 설명회 책자를 무료로 배포하는 가판대도 설치돼 있다. 서울 전역에 10여개 로스쿨 학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문을 열었고 이 중 절반 이상이 강남역에 밀집해있다.
강남역 인근에 근무하는 김 씨(37)는 “지난해부터 로스쿨 학원들이 몰라보게 많아졌다”며 “지나갈 때마다 사실 로스쿨 준비를 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분야에서 새로운 영역개척= 학원 관계자들은 “김씨처럼 로스쿨에 관심만 갖고 있던 직장인들이 올해 들어 직접 학원을 찾는 경향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로스쿨 업계에서는 의사, 회계사, 변리사, 교사, 기자 등 전문 직종에 근무하는 인재들이 학원을 찾고 있는 것을 이례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한 미취업자들이 몰릴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고소득을 올리고 안정된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이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40대 중반 넘어서도 도전 = 로스쿨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대게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이지만 40대를 훌쩍 넘긴 직장인도 있다. 회사에서 중견 간부급인 박 모(46)씨는 지난해 로스쿨 법안이 통과된 후부터 줄곧 관심 있게 로스쿨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가 올해 초 학원에 등록하고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 평균 수명이 갈수록 길어지는데 명예퇴직에 대한 압박은 커지고 있어 로스쿨을 제2의 인생을 위한 도약으로 삼았다. 밤 10시가 넘어 수업이 끝나는 등 고된 수험생활이지만 박 씨는 “단시일 내에 승부를 걸어볼만한 일”이라며 “힘들어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인문계열 졸업자 무관… 필수과목 이수 필요
‘사’(師)자가 붙는 직업(의사, 변호사, 검사 등)에 대한 선망은 여전하다. 최근 로스쿨 인가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가운데, 의사가 되기 위한 등용문은 매년 넓어지고 있다. 2005년부터 도입된 의학전문대학원(이하 의전원)은 첫 해 4개교에서 159명을, 2006년엔 461명을 뽑았다. 문과, 이과 구분 없이 교차지원이 가능하다. 그래선지 열풍은 더 뜨거워졌다. 2009년엔 연세대, 서울대 등 총 15교에서 801명을 선발하게 된 것. 이에 따라 의과대학 모집인원이 약 800명 줄어들어 ‘의사가 되는 길=의전원’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의전원 입학은 어렵다. 1년에 한번 있는 MEET(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란 시험을 통과해야 된다. 수험생들은 언어, 일반화학, 유기화학 등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과목 시험을 치른다. 영어는 토플이나 텝스 성적으로 대체하지만 너도나도 고득점자라 입학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입학 경쟁률도 치열해졌다. 한 예로 가천의과학대학교 같은 경우 2005년엔 40명 모집에 2.96:1의 경쟁률이었지만 2007년도엔 같은 정원에 4.45:1을 기록했다. 한 의전원생 김 씨(27)는 “2005년부터 준비했지만 낙방해 아직까지 공부하는 삼수생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만큼 수험생들의 시험결과에 학원들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근엔 대입학원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메가스터디도 의전원 입시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11월 교육업체인 파레토아카데미를 50억 원에 인수, ‘메가MD’라는 직영 학원을 낸 것이다. 등록한 수험생만 1천명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외부에선 의전원 도입이 기초의학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초의학은 생리학, 분자생물학 등의 연구를 통해 임상의학의 토대를 마련하는 학문이다. 반면 병원 현장에서 직접 적용되는 내과, 외과 등의 임상의학은 수요가 폭발한다는 것. 실제 경북대의 110명 의전원 학생 중 15%만 기초의를 준비하고 나머지는 다 임상의 체제다. 이에 김씨는 “애초 정부에서 ‘의전원에서 기초 의사를 키우겠다’며 석·박사 제도를 뒀는데,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 문제”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지난 해 기초의학협의회 김명석 회장은 “전국 41개 의대에서 1년에 배출되는 기초의학자는 100여 명도 안 된다”며 “의전원으로 전면 전환하면 아마 0.01%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의전원생에 대한 주위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기존 의대체제에선 예과 2년+본과 4년을 보낸다. 그 뒤 국가고시로 일반의가 된 다음 인턴 1년과 레지던트 4년을 거쳐 전문의가 된다. 이렇게 총 11년이 걸리지만 의전원의 경우 4년만 다닌 뒤 국가고시를 치른다. 그래선지 실력에 대한 우려가 교수들 사이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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