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기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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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기피
  • 글_이준호 기자
  • 승인 2008.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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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고 터지는 병역비리, 특단 대책 세워야
해마다 끊이지 않는 병역비리는 우리사회의 고질병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러 어깨뼈를 탈골시키거나 아랫배에 힘을 주어 고혈압으로 위장하는 수법으로 보충역이나 병역 면제 판정을 받는 병역기피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 사용된 수법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됐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소문이 나돌던 것이었던 만큼 당국의 태만 내지 방조가 병역 질서 파괴의 한 원인이 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겠다.

국방부,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 개정안’ 입법예고
그동안 병역기피에 악용되던 고혈압이나 디스크 등 병적인 기준이 강화된다. 반면 비만이나 저체중 같은 신체적 기준은 완화된다. 국방부는 지난 1월 18일 원인을 알 수 없는 체질적 고혈압인 ‘본태성 고혈압’의 신체등위를 올해부터 2~4급으로 1등급씩 높여 현역 및 보충역, 공익근무요원 등으로 복무하게 하고, 추간판 제거술(디스크)을 받아도 보충역으로 판정하는 내용을 담은 ‘징병신체검사 등의 검사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특히 본태성 고혈압은 지난해 몸의 특정부위에 힘을 주어 혈압을 높이는 방법으로 일부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 드러났고, 추간판 제거술은 일부 연예인들의 병역기피 방법으로 쓰이는 등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번 개정안은 흔히 ‘디스크’라 하는 척추 수핵탈출증을 4급에서 현역 대상인 2~3급으로 강화했고, 갑상선 기능 저하능도 보충역 또는 공익근무요원 대상인 4급으로 강화했다. 염증성 장질환을 비롯해 녹내장, 안구 함몰증도 4급에서 3급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골반골 골절은 5급에서 예비군 편성에서 제외되는 6급으로, 선천성 위장관 기형은 2급에서 3급으로, 만성 부고환염은 4급에서 5급으로 완화했다. 또 6급 판정을 받았던 성전환자는 법원의 성별 결정서와 병원의 신체검사서 등의 서류 제출로 직접 신체검사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키와 몸무게에 따른 신체등위 판정 기준을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인 체질량지수(BMI)를 도입했다. 체질량지수는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수치로 비만 평가지표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키 174m의 남자의 경우 지금까지 모무게 38kg 이하 또는 110kg 이상이던 면제기준이 51.5kg 또는 106kg 이상으로 완화되었다. 국방부는 올해 첫 징병 신체검사기 이뤄지는 지난 2월 14일부터 이 개정안을 시행했다.

최대 규모의 신체훼손 병역비리, 운동선수 92명 기소
지난 2월 3일 현역 K-리거 5명, K리그 출신 15명, 실업리그 35명 아무추어리그 15명 등 92명의 축구선수들이 ‘신체훼손 병역비리’ 사건으로 검찰에 무더기 적발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 2부(오광수 부장검사)는 어깨를 아령을 이용해 탈구시킨 뒤 수술을 받아 4급(공익대상)~5급(제2국민역)판정을 받은 프로축구 선수를 포함한 92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선수들에게 ‘어깨 관절경’ 수술을 시술해준 의사 역시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한편, 병무청에 수사결과를 통보, 적발된 선수 전원에 대한 정밀신체검사를 다시 받도록 조치했다. 검찰 관계자에 의하면 “적발된 선수들은 축구를 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는 왼쪽 어깨를 탈구시켜 수술을 받은 뒤 병역을 면탈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종목과 달리 축구의 경우 현역으로 입대해 2년 이상 운동을 못할 경우 선수 생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선수들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병역을 기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도 병역기피로 ‘골머리']
18세 남성 절반만 입대… 여성 43%도 면제
이스라엘군은 병역의 의무를 ‘신성시’하는 국민들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18세 남성 중 54%만 군에 입대하는 등, 갖은 핑계로 병역을 기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31일 보도했다. 이스라엘 군 당국에 따르면 군 복무 대상 남성의 25%가 해외 거주나 전과 기록, 건강 이상 등의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고 있으며, 이 비율은 1980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적극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경우도 전체 대상자의 5~12%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은 이미 2006년 여름 레바논의 정치·무장집단인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막대한 제공력(制空力)과 화력을 갖고도 헤즈볼라 파괴에 실패해, 국내에서 사실상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젊은층의 병역 기피마저 늘어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에서는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병역의 의무를 지는데, 실제로는 여성의 43%가 종교적 이유 등을 내세워 면제를 받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즉, 젊은 여성들이 “전통적인 삶을 따르겠다”는 종교적 입장을 밝히면, 병역을 면제받을 수 있다. 이스라엘군의 또 다른 고민은 전투부대원의 30~40% 가량이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인 시온주의자 자원입대자들로 충원된다는 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상을 고려하는 시점에서, ‘이스라엘의 적(敵)’과 적극적으로 싸우려 하는 이들 시온주의자 병사들은 분쟁을 해소하려는 상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에후드 바락(Barak)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스라엘 군대가 ‘국민의 군대’에서 ‘절반의 군대’로 변질되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병역기피의 시대적 변화와 군에 대한 나쁜 이미지들
병역기피의 역사는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조선시대에는 향교에 다니면 군역이 면제되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전국 향교 재학생이 4만을 넘었고, 가짜 학생들을 가리려고 시험을 치러 낙방생들을 군에 보내는 낙강충군법(落講充軍法)이 시행될 정도였다. 6.25전란 중에는 대학 재학생들에게 징집을 유예해 준 것도 비슷한 발상이었다. 전국 대학생이 정원의 175%에 이르자 고려대 총장 유진오는 “대학 간판만 붙여놓으면 삽시간에 학생 수 천명이 몰려든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70년대에는 엑스선 촬영 때 가슴에 쇳가루를 바르거나 잉크를 마셔 결핵환자로 위장하는 병역기피 수법이 유행하였다. 80년대에는 몇 달 동안 형광등을 응시해 시력을 떨어뜨리거나 정신병자를 가장하는 경우가 있었고, 90년대 초에는 손가락, 발가락을 자르고 척추를 수술해 휘게 만드는 수법들이 생겨났다. 2004년에는 프로야구 선수 50여명이 약물로 간과 신장 기능을 떨어뜨려 면제 판정을 받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특히 운동선수들이 병역을 벗어보려는 시도가 잦은 것은 군복무기간 동안 운동을 중단하면 근육이 풀려 선수로 복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무엇보다 군에 대한 인식 때문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에 간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의 동떨어진 새로운 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군 생활을 하는 2년 동안 사회와 결별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또 폭력과 성폭력이라는 군대의 부정적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전반적인 군대의 이미지이며 고질적인 병이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언론의 보도 때문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간의 대화 때문이기도 하다. 군 입대를 앞둔 남성이 이미 군대를 다녀온 선배들에게 군에 대한 대답은 언제나 부정적인 이미지들뿐이다.

병역기피의 또 다른 이유, 양심적 병역거부
종교의 평화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는 개인의 양심에 반하는 행위의 강제를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 비롯돼 1,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퀘이커, 여호와의 증인 등의 신자들이 병역을 거부하면서 논란을 빚게 되었다. 1960~70년대부터 반전운동, 평화주의 등의 정치ㆍ사상적 동기나 개인적 동기에 의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도에 따라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보수적 거부’, 특정 전쟁만 반대하는 ‘선택적 거부’, 전쟁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대량살상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재량적 거부’로 구분된다. 또 무엇을 거부하느냐에 따라 군복무는 수용하면서 무기 사용과 접촉을 거부하는 ‘소극적 거부’, 집총 등 일체를 거부하는 ‘절대적 거부’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개인의 양심이 실현될 때 국가 법질서나 타인의 권리와 충돌한다면 ‘권리 대 의무’나 ‘권리 대 권리’간의 상충이 생긴다. 그러나 국가라는 존재는 개개인이 제각기 양심의 자유를 실현하겠다고 나설 경우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마치 무정부주의와 다를 바가 없게 된다. 개인의 자유, 소수자 인권 보호가 중요한 만큼, 국가 법질서의 당위성도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2004년 병역법 88조 위헌 제청 판결문에서 “양심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에 의해 보호되는 자유이지만 기본권 행사가 타인과의 공동생활이나 국가 법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양심 실현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것은 곧 개인이 양심상의 이유로 법질서에 대한 불복종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양심적 병역거부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이 대체복무제이다. 2009년부터 종교적 병역 거부자에 대해 36개월간 대체복무를 허용할 방침이다. 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은 불법ㆍ비리에 의한 병역기피자와는 다르다. 해마다 700~800명에 달하는 이들은 종교적 병역거부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것보다는 사회공익 분야 등에 더 긴 기간동안 일하게 해 군복무를 대신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 대체복무제이다.
그러나 대체복무제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특정 종교에 대해 특혜가 될 수도 있는 문제다. 병역의무 이행자와의 형평성, 남북 대치의 특수한 안보상황 등의 이유에서 아직 반대여론도 많이 있다. 오히려 일각에선 “국민개병제를 유지하는 한 대체복무제는 특정 종교 신자보다는 병역 면제자에게 적용되어야 형평성에 맞다”는 주장까지 제기 되고 있다. 이와함께 차제에 모병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군인의 처우를 대폭 개선하고 가고 싶은 사람만 군대에 간다면 병역기피 문제나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 군 가산점 등의 각종 논란을 일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특수한 안보상황 탓에 아직은 시기상조라 하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병역기피 근절 위한 특단 대책 세워야
병역은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거쳐야 할 신성한 의무이다. 젊은이들의 통과의례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지난해 7월 병역특례 제도를 악용하다 적발된 사람들 중에는 상당수가 사회 지도층 인사들로 드러난 것을 보면 ‘신의 아들’ ‘장군의 아들’이라는 말은 그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병역은 건드리면 터지는 뇌관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20,30대 남성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전히 군복무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겠다’고 응답한 것은 병역기피 현상이 우리사회에 만연된 풍조인 것을 시사하고 있다. 병역의 의무가 젊은이들에게는 시간적인 낭비, 짜증나고 귀찮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의무가 되어 버렸다. 이번에 적발된 축구 선수들은 아마도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당국 역시 그동안 잡음이 불거질 때마다 사회 지도층을 포함해 예외 없는 입대 원칙을 위한 엄중한 병무행정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의 눈가리기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되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특단의 조치는 꼭 이루어져야할 것이다. 차제에 병무 행정의 전반을 재점검하고 한치의 빈틈없는 감시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며, 비리 연루자에 대한 보다 강도 높은 법적 조치를 통해 경각심을 높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군대에 가면 손해라는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적성과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과 함께 전문성을 가진 입대자에 대한 군 배치를 통해 사회와의 단절을 최소화하는 것도 검토 대상일 것이다. 또 신체 검사장 주변에서 활개치고 있는 전문 브로커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군필자 가산점 법안 국방위 통과…거센 찬반 논란
군필자에게 취업시 가산점을 부여하는 군가산점제 부활법안이 2월 13일 국회 국방위를 통과함에 따라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국방위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병역의무를 마친 사람이 채용시험에 응시할 경우 필기시험 과목별 득점의 2%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가산점을 주도록 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안을 표결로 통과시켰다. 이에 찬성하는 남성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김영근 대구재향군인회 조직부장은 “가산점이 폐지되면서 젊은 제대군인의 취업률이 떨어져 청년실업문제로 이어졌고, 직장을 잡지 못해 결혼마저 늦어지는 사회 문제가 됐다”며 “군가산점제가 부활되면 복무에 대한 자긍심이 생겨 병역기피 현상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도 들끓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등 여성ㆍ장애ㆍ시민단체들은 “이미 위헌결정이 난 군가산점제의 부활을 반대한다”며 “군가산점 부활안에 동의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해 오는 18대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사무국장은 “군가산점제 부활 의견은 한마디로 위헌결정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가산점제가 부활할 경우 고용시장에서 취업하려는 여성과 군미필 남성, 장애인 모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고 말했다.
한 네티즌은 “지금도 군필자 우대제도가 취업 이후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는데 취업 전에 장애인에게 불리한 제도를 다시 만들어 낸다고 하니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국회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남자들은 군대 2년을 경력으로 인정, 3호봉으로 공무원직을 시작하지만 여자들은 2년 늦은 출발선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한다”며 보상논의는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개정 법안은 3월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인데 통과할 경우 군필자는 내년 상반기 중에 취업 시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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