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호 숭례문의 붕괴는 화재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국내 목조 문화재의 방재관리 허점을 그대로 드러냈다. 소방설비 설치 등을 강제하는 세부규정이 없는 현행 문화재보호법으로는 목조문화재들이 사실상 화재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소방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화재에 대처하지 못하는 문화재가 부지기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숭례문 참사 이전에도 화재로 심각하게 훼손된 문화재들은 이미 많았다. 쌍봉사 대웅전, 낙산사, 수원화성 서장대, 창경궁 문정전 등은 대부분 목재 건축물인 데다 숭례문의 경우처럼 문화재 훼손을 우려해 적극적 진화장치를 해놓지 못했다. 문화재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원칙에 화재예방 장치 설비가 어려웠고, 그로 인해 방재관리는 오히려 일반건물보다 더 취약했던 셈이다.
문화재 원형 보존에 화재예방 장치마련 미흡
그나마 목조문화재 방재 대책 마련 움직임이 일어났던 것은 지난 2005년 4월 낙산사 동종이 화재에 소실된 이후. 문화재청은 지난해 직원 10명으로 문화재 안전과를 신설해 문화재 재난 방지 등을 전담케 하고 있다. 2006년 실시한 중요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중요 목조문화재 방재시스템 구축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 중이다. 문화재청이 예산을 배정하면 시·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사업을 시행하는 구조로, 지난해 총 15억 원의 예산을 들여 해인사, 봉정사, 무위사, 낙산사 등 4곳에 수막설비와 경보시설 등을 설치했다. 그러나 목조문화재 방재의 제도적 수준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관련 예산은 18억 원. 숭례문도 우선 방재시설 구축대상인 중요 목조문화재 124개에 포함됐으나, 산불 위험이 높고 소장 문화재가 많은 사찰 문화재 등에 밀려 순위가 48번째로 밀려 있었다. 문화재 관계자들은 “전국의 주요 목조문화재들은 관리주체마저 불명확해 유사시 대처능력이 형편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숭례문과 비슷한 구조의 수원 팔달문과 장안문에도 소화전이 도로에 설치돼 있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수원시 화성사업소 관계자는 “목조에 불이 붙으면 건물내부에서 진화해야 하나, 소화전이나 스프링클러를 규정상 설치할 수 없어 진압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1호인 남한산성내 수어장대의 방재시설은 소화기 몇 대가 고작. 최근 도립공원 관리주체가 광주시에서 경기도로 이관되면서 책임소재조차 모호해졌다.
지방의 형편은 더 심각하다. 전남도의 경우 목조문화재는 무려 303개동. 여수 진남관, 송광사 국사전, 화엄사 각황전 등 5점이 국보이나, 이들 건물 안에는 화재진압 장치가 전무하다. 전등사, 보문사 등 문화재급 지방사찰들의 방재시설도 모두 사찰이 자체 관리하는 데다 간이 소화기만 배치된 수준이다.
채 씨, “인명 피해는 없었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
숭례문 방화 사건 현장검증이 2월 15일 오전 진행됐다. 방화범 채모 씨(69)는 회색 모자와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현장에 도착, 경찰의 삼엄한 경비 아래 숭례문에 들어섰다. 현장검증은 범행 장소인 숭례문 2층 누각이 전소된 탓에 1층 누각에서 대신 진행됐다. 범행 당일 동선과 동일하게 남대문 서쪽 비탈길을 통해 1층 누각에 도착한 채 씨는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10여분 동안 당시 범행을 재연했다. 채 씨는 빈 페트병으로 바닥에 시너를 붓는 시늉을 한 뒤 일회용 라이터를 이용, 불을 붙이는 모습을 연출했다. 범행 당시 채 씨가 사용한 사다리도 준비됐지만 사다리를 이용해 담을 넘는 장면 등은 생략했다. 현장검증을 끝낸 채 씨는 심경을 묻는 질문에 “나 때문에 (숭례문이) 없어졌으니 마음이 안 좋다”면서도 “인명 피해는 없었다. 문화재는 복원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무엇이 가장 억울한가”라는 질문에 채 씨는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라고 답한 뒤 “약자를 배려하는 게 대통령 아니냐. 진정을 3번이나 해도 안 됐다”고 말했다.
범행 다음날 체포된 채 씨는 경찰 조사에서 “1주일은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경찰이 올 줄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채 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좁혀진데는 방화 현장에서 발견된 일회용 라이터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일회용 라이터는 춘천의 한 노래방 홍보용으로 제작된 것이었는데 채 씨의 거처가 있는 강화도 장정리 마을 주민들이 지난해 말 춘천에 단체로 놀러가 그 노래방에서 유흥을 즐긴 것으로 확인됐다. 노래방 주인은 강화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경험이 있어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2월 19일 오전 8시께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사건을 채모 씨(69)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짓고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했다.
역사를 대변하는 문화재가 방화로 사라지고 있다
2006년 4월26일 오후 5시4분 무렵 창경궁 문정전에 불이 났다. 이 불은 다행히 관람객 양해룡 씨 부부와 창경궁 직원들의 신속한 대처로 대형 화재로 번지지 않고 문 일부만 태우고 6분 만에 꺼졌지만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 화재는 최모(68)씨에 의한 방화로 밝혀졌다. 그는 토지보상 문제로 홧김에 미리 준비한 신문지와 부탄 가스통을 이용해 고의로 불을 질렀다고 진술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문정전 방화범이 온 나라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숭례문 화재사건의 방화범으로 경찰수사 결과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 방화사건은 불과 5일 뒤인 같은 해 5월1일에도 발생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원 화성(華城)의 일부인 서장대(西將臺) 2층 누각 전체를 몽땅 잿더미로 변하게 했다. 현장에서 경찰에 붙잡힌 방화범 안모(24.무직)씨는 “카드빚 등 빚 3억원 때문에 고민하다 혼자 술을 마신 뒤 나도 모르게 불을 냈다”고 진술했다. 안 씨는 자기 속옷을 벗어 라이터로 불을 붙인 뒤 바닥에 던져 불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방화를 포함한 문화유산 파괴 행위를 반달족에서 유래한 ‘반달리즘(vandalim)’이라 한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미국 작가 마거릿 미첼이 집필활동을 한 까닭에 기념관으로 개조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미첼 하우스’는 1994년과 1996년에 연이어 방화에 의한 화재를 만났다. 1950년 발생한 저명한 교토 소재 긴카쿠지(金閣寺) 금각(金閣) 방화는 일순간에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방화사건은 이 사찰의 학승이 홧김에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의 경주 남산에 비견되는 일본 불교성지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와카야마현 소재 고야산(高野山) 일대 사찰 문화재의 경우 2000∼2005년 사이에 3건에 이르는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도 탈레반이 폭탄을 이용해 파괴했으나 석재 문화재에 대한 일종의 방화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자 일각에서 서울시가 추진한 숭례문 일반 개방이 이번과 같은 참사를 불렀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으나 방화와 같은 범죄행위는 사실 해당 문화유산의 개방 여부와 그다지 관련이 없다는 것이 문화유산계의 중론이다.
숭례문 화재 160분 지나 “지붕 뜯어라”
숭례문 화재 당시 진압에 나섰던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이 초기에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소방방재본부가 지난 2월 18일 공개한 ‘숭례문 화재 시간대별 세부 조치기록’에 따르면 화재 현장을 지휘했던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2층 기와를 걷어낸 뒤 상부를 파괴해서 진화하라”는 조치가 내려진 것은 오후 11시27분. 당시 화재는 두꺼운 기와층 아래 깔려 있는 적심에 붙은 불을 끄는 것이 급선무였다. 한시라도 빨리 지붕을 깨뜨리고 진화해야 했지만 실질적인 조치가 내려진 것은 화재 발생(8시48분) 후 무려 2시간40분이 지난 뒤였다. 그나마 상부를 파괴해서 진화하라는 조치도 제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이미 불은 10시40분쯤부터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였고 2층 내부에서 작업하던 소방관들도 모두 철수한 뒤였다. 다급해진 소방당국은 0시4분(11일),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진화하려 했지만 크레인이 도착하기도 전인 0시40분 숭례문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문화재청도 우왕좌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기록에 따르면 문화재청 관계자들은 9시40분쯤부터 2~3분 단위로 “신중 진압” “진압 우선” 등으로 말을 수시로 번복하며 진화 작전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켰다. 진화에 필수적이었던 ‘숭례문 실측도면’은 10시30분에야 소방당국에 전달됐다. 결국 양측이 진화 방법 등을 놓고 허둥대는 사이 불은 더 커졌고 뒤늦게 세운 대책은 써보지도 못한 채 숭례문은 무너진 셈이다.
소방본부 “문화재 특성 고려한 조치였다”
숭례문 화재 당시 소방당국의 시간대별 대응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대해 서울시 소방재난본부는 지난 2월 18일 보도자료를 내고 “(진화작업에서)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를 한 것은 문화재의 특성을 고려하여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명했다.
소방본부는 해명자료에서 ‘화재진압시 문화재 손상에 대해 소방당국과 문화재청이 우왕좌왕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화재 초기에 이미 소방대원들이 건물 안에 진입해 누각 천장을 뜯어가며 화재진압을 병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 2006년 5월 수원화성 서장대 화재 당시 지붕을 부수고 진압한 것에 대해 문화재 훼손 책임문제가 제기된 바 있었다”며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의한 것은 문화재의 특성을 고려한 조치였다”고 덧붙였다.
‘국보 1호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강력한 방수포 대신 강도가 약한 분무방수를 유도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고압방수포는 건물 옥외화재를 진압하는 장비로 건물 내 화재진압에는 부적합한 것”이라며 “2층 누각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소방호스를 끌고 누각 내부로 들어가 진압했어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중구청, 20개월새 숭례문 경비업체 3차례나 바꿔
숭례문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중구청이 2005년 5월 이후 1년 8개월 동안 뚜렷한 이유 없이 숭례문 무인경비 업체를 3차례나 변경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무인경비업체들은 ‘국보 1호’를 경비한다는 선전 효과 때문에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던 터라, 업체 변경 과정에서 불법적인 로비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윤석 의원(한나라당)이 관련 업체와 서울시 중구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중구청은 2005년 5월 31일부터 1년 계약으로 캡스에 숭례문 무인경비를 맡겼다. 그러나 중구청은 캡스 측이 무인경비를 시작한 지 39일 만인 같은 해 7월 7일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 해약 사유는 ‘(숭례문) 24시간 개방으로 인하여 불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캡스 관계자는 “다른 업체와 경비시스템상 별 차이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중구청은 이후 2005년 7월 30일 3년 계약으로 경쟁업체인 에스원에 숭례문 무인경비를 맡겼다. 에스원은 이 계약과 동시에 “국보1호 남대문, 상암경기장을 가득 메운 우렁찬 함성, 최남단 마라도 초등학교까지”라는 내용의 대대적인 TV광고를 내보냈다. 경비 업체 한 관계자는 “숭례문은 국보1호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무인경비업체들에게 최소 수십억 원의 광고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구청은 2007년 1월 31일 에스원과의 계약기간을 6개월여 남겨 둔 시점에서 다시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KT텔레캅으로 변경했다. 이에 대해 중구청은 “KT텔레캅이 문화재청과 지난해 5월 8일 ‘1문화재 1지킴이 협약서’를 체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스원 관계자는 “숭례문 경비를 빼앗기게 돼 중구청에 여러 차례 ‘계약 기간까지만 경비를 서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결국 중구청은 숭례문 경비를 무인경비업체 ‘빅 3’인 캡스, 에스원, KT텔레캅과 돌아가면서 계약과 해약을 반복했던 것이다. 장윤석 의원은 “경비업체 입장에서는 큰 이권이랄 수 있는 숭례문 경비 계약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수시로 바뀐 것을 철저히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복구 돕고 싶어요” 태안 봉사 물결, 숭례문으로 이어져
충남 서천군에 사는 김찬규(70)씨는 지난 2월 12일 문화재청에 전화를 걸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야산에 있는 소나무 두 그루를 ‘숭례문 복원용’으로 기증하고 싶어서다. 누가 심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둘레 길이 1.5m가 넘은 ‘실한’ 적송이다. 평생을 농군으로 살아온 김 씨에겐 “마음이 답답할 때마다 찾아가 말을 건네던 친구 같은 나무”라고 한다. 그는 “숭례문이 불타는 장면을 보며 내 가슴도 타는 듯했다. 복원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돕고 싶다”고 말했다. 2월 1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김 씨처럼 복원에 쓰일 소나무를 기증하려는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 자원봉사 문의 연락도 줄을 잇고 있다. 숭례문 복원에 힘을 보태려는 국민들의 열기는 ‘제2의 태안’을 연상케 할 정도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엔 “복원에 쓸 목재를 기증하겠다”는 시민들의 글이 하루 20~30여 건씩 올라오고 있다. 전주 중앙여고에 재직 중인 이용의(61·교감)씨는 2월 14일 “60년 된 소나무 30그루를 기증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씨의 아버지가 전북 정읍의 선산에 60여 년 전 심었던 적송이다. 이씨는 “숭례문을 다시 짓는 데 쓰인다면 선친께서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영광군에 사는 한상진(65)씨는 “내가 갖고 있는 70년 된 소나무 20그루를 기증하려 했지만 소나무 둘레가 1m가 넘어야 한다고 해 아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복원에 적합한 소나무를 알고 있다는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자신을 사진작가라고 소개한 하승우 씨는 “강원도 한계령 휴게소 정상에서 양양으로 내려가다 보면 대들보로 쓸 만한 소나무가 많다”고 문화재청에 알려 왔다. 기증 절차와 요건을 묻는 이도 많았다. 신모 씨는 “외삼촌께서 아름드리 소나무 두 그루를 기증하고 싶어하는데 어떤 절차로 기증하면 되는지 알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기왓장을 기증하겠다는 시민도 있다. 이상국(39·대구 비산3동)씨는 “인터넷에서 숭례문 기왓장이 팔린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깝다”며 “기왓장 몇 개라도 기증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간 차원의 운동도 시작됐다. 화재 직후 개설된 인터넷동호회 ‘숭례문닷컴(www.20080210.com)’은 2월 15일부터 ‘목재 찾기 릴레이’ 운동에 들어갔다. 복원에 적합한 소나무를 찾기 위해 전국 각지 네티즌의 정보를 모은다는 취지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복원엔 둘레 길이가 1m를 넘는 금강송·적송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며 “자체 보유한 소나무로 충분하지 않다면 시민들이 기증하는 목재의 사용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원봉사에 나서겠다는 시민들의 문의도 이어진다. 김용연 씨는 문화재청에 “학교에서 목공을 전공했다. 복원 작업에 무보수로 자원봉사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문화재 기능인인 이범주 씨는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큰 영광이다”며 자원봉사 의지를 밝혔다. 숭례문 화재 현장엔 화재 직후부터 인근 지역 부녀회가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중구 필동 부녀회원 20여 명은 매일 오전 8시부터 숭례문을 찾은 시민에게 무료로 녹차와 커피를 나눠주고 있다. 태안반도 봉사를 계획했다가 참화 소식에 일정을 변경했다. 음료를 대접하던 부녀회장 박상혜(50)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주변에 살아 늘 남대문을 친구처럼 여겨 왔다”며 “다시 태어날 남대문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첨단 방재시스템 구축, 해외 목조문화재 관리 실태
일본의 문화재는 한국처럼 목조인 탓에 화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일본은 지난 1949년 1월 26일 나라현의 호류지(法隆寺)에 불이 나 금당 벽화가 소실된 사건을 계기로 체계적인 문화재 방재체제 마련에 들어갔다. 50년 문화재보호법의 제정에 이어 55년 호류지 화재일인 1월 26일을 ‘문화재 방재의 날’로 지정, 해마다 사찰·신사 등 문화재를 대상으로 방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의 9% 정도가 밀집된 와카야마현 고야산의 방재시스템은 대표적인 첨단설비로 꼽힌다. 중요문화재인 고카와사 대웅전은 외곽에 설치된 ‘물대포’의 보호를 받고 있다. 물론 작은 불씨도 잡아내는 열감지기와 연결, 화재에 대처하고 있다. 특히 불이 나면 6개의 물대포가 사방에서 발사되지만 직접 시설에 겨냥하지 않는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 시설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내부에는 소화전이 비치돼 혼자서도 소방 호스와 노즐을 다룰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방화가스 분출 장치도 있다. 다른 건축물에는 촘촘할 정도로 ‘상향식 스프링클러’를 설치, 화재시 건물의 위쪽으로 물이 솟구치도록 했다.
중국의 경우, 대표적 목조 건물인 베이징 자금성 안에는 카페뿐 아니라 국숫집 등 각종 식당이 있다. 그러나 자금성에는 가스 공급이 되지 않는다. 제한된 양의 전기로만 조리가 가능하다. 물론 일반인의 불씨 반입이 금지돼 있고, 5시 이후엔 조명을 밝히지도 않는다. 저녁에는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다. 무엇보다 자체 소방대대를 둬 화재에 대비하고 있다.
티베트 라싸에 위치한 대표적 목조 궁전 포탈라궁도 자체 소방대를 운영하고 있다. 근처에 있는 역사 유물 다자오쓰(大昭寺)는 화재 방지를 위해 아예 참배객들이 향불을 절의 밖에서 피우도록 하고 있다. 또 목조 문화재 보호를 위해 규정도 계속 강화하고 있다. 백열등은커녕 60W를 초과하는 조명도 사용 금지다. 향불 등도 반드시 밖에서 지핀 뒤 안으로 가져 오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문화재 화재사건이 가끔 일어나지만 주로 석조 건물인 데다 평상시 재난방지 시스템이 잘 갖춰져 큰 피해 사례는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