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퇴임전 마지막 국정수행 지지율은 30%에 못미치는 27.9%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CBS와 리얼미터가 3월 19일부터 20일까지 전국 19세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간 여론조사 결과,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국정수행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p 오른 27.9%을 기록했다. 취임 초 70%대를 기록한 이후 줄곧 하락, 2006년 말에는 12.6%까지 하락했고, 그 후 소폭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다 결국 20%대 중반으로 정권을 마감하게 됐다.
참여정부 5년, 빛과 그림자 어떻게 볼 것인가
노무현 정부가 막을 내린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칭찬보다는 쓴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조금 빠른 느낌도 있다. 호랑이 선생님에게 수년, 수십 년이 지나서야 그 고마움을 느끼듯, 고된 수술과 쓴 약을 먹어가며 병과의 힘든 투쟁 끝에 다시 건강을 찾듯이 지금에 있어서 노무현 정부를 평가하는 것은 호랑이 선생님에게 배워가고 있는 시점에 그를 욕하는 것이고, 고된 수술에 아파하고, 쓴 약을 먹으며 혀가 고통스러운 것만 탓하고 있는 꼴이다. 노무현 정부가 진정 욕을 먹어야 할지, 칭찬을 받아야 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차라리 지금에 와서 박정희 정권에 대해서 논해보라고 했더라면 좀 더 편하게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게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막을 내리고 있으면서도 쓴소리가 더 많은 이유는 아마도 그가 약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 된 것을 보고 대부분은 ‘극적이다’라는 표현을 했다. ‘극적이다’라는 표현은 그 당시의 이회창 후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노무현 후보였기에 그러한 표현이 쓰였던 것이다. 그는 사실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기대가 컸던 인물이었다. 많은 국민들은 노무현 후보를 뽑았지만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이회창보다는 대통령이 될 만한 무엇인가의 조건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통치관리의 구조적 변화
노무현 정부의 집권 3년은 개혁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개혁과 통합’의 국정운영원칙은 개혁을 둘러싼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었다. 대통령탄핵소추로 인한 정치사상 초유의 헌정위기, 4?15총선에 따른 정치세력의 재편성, 과거사규명에 대한 논쟁과 진보?보수의 이념적 갈등의 첨예화, 시민의 정치참여 폭발과 시민단체의 권력화, 행정수도이전 논란과 국민적 동요, 지속되는 경제침체와 민생고의 증대 등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사건들이 노무현 정부 3년을 상징적으로 대변해준다.
노무현 정부 3년 동안 긍정적인 성과가 있었다면, 그것은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적 아이디어가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경유착 및 정치비자금 등 오랜 권력형 부조리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정치?경제?관료의 권력남용과 기득권 구조가 붕괴되어 가고 있다. 한 때 총체적 부패로 일컬어졌던 사회적 부정부패 역시 점차적으로 정화되어 가고 있으며, 사회 분야별로 많은 국민들이 과거의 관행을 타파하고 공정, 투명해야 한다는 개혁의식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수많은 기성, 실세 정치인들이 스스로 정계를 떠나고 4?15총선거에서 3분의 2에 가까운 초선의원들이 등장한 것은 사실상 선거무혈혁명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선거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정치신인으로의 교체는 유례를 찾기가 힘들다.
궁극적으로 노무현 정부는 한국의 국가성격을 과거의 ‘통제하는 권력(powers over)’으로부터 ‘부여하는 권력(powers to)’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국민통합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실패했다. ‘대화와 타협’을 국가관리 원칙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치적?사회적 갈등에 있어서 대통령 스스로가 갈등의 선봉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개혁을 지지하면 진보, 개혁을 반대하면 보수라는 단순논리로 적과 동지를 구별하여 국가와 사회를 각각 이분화시켜 이념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제 16대 대통령선거와 386세대의 전면부상은 세대 간의 갈등을 확산시켰고, 노사 간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계층적 갈등은 심화되었다. 이와 같은 이념적, 계층적, 세대간 갈등은 기존의 지역갈등 구조에 첨가되고, 중첩되면서 복합적 갈등구조를 형성했다. 노무현 정부 하의 복합적 갈등구조는 해방 후의 이념적 갈등, 그리고 근대화 과정에서의 지역갈등 또는 민주와 독재의 갈등 등의 단순갈등구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의 혼재와 극한대립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가 이룬 것과 잃은 것
참여정부의 여러 정책 중 가장 논란이 컸던 분야가 부동산 정책이었다. 반대쪽에서는 참여 정부의 대표적 정책 실패 사례로 부동산 정책을 꼽고 있는 반면 종합부동산세와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 등 일련의 정책을 금융실명제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집중적으로 올랐던 2003년 2월부터 2006년 2월까지 20여 차례의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책이 나올 때 오히려 집값은 더 치솟았다. 특히 1가구 2주택자 양도세 실거래가 과세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2005년 8·31 대책은 부동산 대책의 결정판이었지만 이 역시 약발이 오래가지 못했다.
한나라당 정책위원회측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해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폭탄으로 늘어난 세금만큼 아파트 가격과 전세 가격이 올라 부동산 소유 편중에 따른 사회 양극화를 더 키웠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은 또 참여정부 장·차관 및 고위공무원단 중 57%가 버블 세븐 지역에 거주하는 등 말 따로, 행동 따로의 행태를 보였다고 비판했다. 재건축 규제 강화책 등으로 인해 지난 5년간 주택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도 부동산 값을 올린 요인이 됐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한나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비판이 나왔고, 결국 여당도 일부 부동산세를 완화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다.
참여정부는 성장과 동시에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고 서민과 고령층에 대한 복지 확대를 꾀하는 이른바 동반성장 전략을 경제정책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를 통해 소외층의 복지가 실질적으로 좋아진 것은 평가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야당에서는 정부가 분배에 치중하는 바람에 성장을 소홀히 했고, 지나친 규제로 기업들의 투자가 저조해 청년실업이 늘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탈권위주의와 비판정신 수용
노무현 대통령이 수많은 언론과 한나라당의 조롱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권위주의를 청산하며, 특권의식을 버리고, 비판정신을 수용해온 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대통령, 정부부처, 국회, 검찰, 대법원 등 국가기관의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노무현 시스템의 확산에 따른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는 쉬운 방법을 버리고 국가 행정시스템을 완비하는데 집중했다. 결재시스템, 업무 메뉴얼, 위기관리 시스템, 안전관리 시스템 등 가능한 모든 부분의 시스템을 완비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권위주의 정부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는 물론 김대중 정부까지 최고 권력자의 의중이나 정책결정권자의 심기에 따라 좌우되던 것을 시스템화 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청와대 온라인 업무 시스템인 ‘e-知園 시스템’ 이다. 이를 전 행정부서로 확산해 놓은 것이다. 또 국가행정 시스템 체계를 구축하여 국정 수행 관련 모든 주요 자료를 정리해 왔다.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확산하여 권위주의를 차단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역사의 속으로 물러나는 참여 정부, 성공인가 실패인가
노무현 정부 임기가 끝났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관심은 고조되어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싸늘하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에게 잊혀져가는 존재이면서 ‘잊혀져야 할 존재’로 각인되고 있다. ‘정부의 성공은 곧 국민의 성공이다’란 점에서 지난 대선 때의 노무현 정부가 심판을 받은 것은 국민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이고, 따라서 노무현 정부도 실패했다는 증거다. 때마침 국민의 절반이 노무현 정부를 잘못 뽑았다고 한 여론조사가 발표된 때이기도 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실패론’을 말하는 사람들 역시도 그 총체적 실패에 동의하지는 않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취하고자 했던 여러 가지 정책들 중 부동산과 관련된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이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양극화해소 실패의 원인이긴 하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 이후 정부가 내놓은 처방들은 대체적으로 올바른 방향을 보였다는 평가다. 실제로 최근 부동산가격이 다시 상승조짐을 보이는 것은 노무현 정부의 규제정책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규제해제분위기로 인한 시장반응이고, 이점을 관련 전문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사상 최대의 미분양사태를 겪으면서도 가격을 내지지 않는 건설 회사들의 반시장주의 가격정책도 이명박 정부의 규제해제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그러면 부동산정책을 제외한 나머지 정책은 어떨까. 크게 이슈가 된 한미FTA의 경우, 그 적절성 여부에 대한 판단과 평가가 각기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국민여론은 약간 찬성 쪽으로 기울어있다. 수출입국인 우리 처지에서 개방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국민들이 동의하는 것이다. 물론 개방의 정도를 가지고 불가하다고 하지만 이것은 미국을 전략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노무현 정부는 나름대로 현실적 관점을 무시해도 좋을 내용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부의 사회·경제적 방향성이다. 개별적인 사안에 단면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결국 정부에 대한 평가는 정부정책이 수치로 나타나는 국가예산편성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옳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비록 사회양극화해소에는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고 선진화시키려고 했다는 점만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예산 중에서 경제성장에 지출하는 예산보다 사회복지분야에 들어간 예산이 처음으로 더 많아진 정부가 노무현 정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예산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어떤것을 지향하려고 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이며, 대표적인 수치다. 물론 이 수치도 집권 3년 만에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다잡은 시점과 맞물려 있어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어쨌든 지향성은 제대로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끝나면서 노무현 정부의 총체적 실패를 말하고 있지만 이점은 아마도 이명박 정부가 어떤 시장주의 정책을 취하느냐에 따라 국민평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정부혁신 진보 이뤄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들과 관련된 도덕성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일설에는 임기가 끝나며 측근들의 비리가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말도 언급되고 있다. 다만 이전 정부에 비해 친인척 비리나 측근비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은 비교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총체적 평가는 도덕성 문제가 아닌 정책방향성을 두고 평가하는게 옳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무현 정부가 ‘큰 정부’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국가 예산으로 서민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 흔적과 방향성은 긍정적이다. 복지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쓰는 것을 ‘큰 정부’라고만 매도하는 것은 복지혜택의 당사자인 서민이 아니라 가진 자들만의 불만타령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더불어 20세기 냉전체제를 한반도에서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고, 가진 자들의 성장뿐 아니라 서민들의 복지문제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정부다. 다만 정책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소통을 하지 못했고, 여기엔 거대 언론사들의 정략적 편집방향도 단단히 한몫했다. 그리고 애초 노무현 대통령이 소망했던 것처럼 국민으로부터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대 대통령들 중엔 비교적 무난하게 임기를 마친 대통력으로 기록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김대중 정부에 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부가 북유럽 복지국가모델을 처음으로 구현하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평등한 사회관계를 달성함으로써 선진국이 된 북유럽 국가모델은 개발독재를 통해 성공한 박정희 모델의 후속모델로서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참조해야 할 모델이다. 이를 지난 대선에서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사람중심 진짜경제’론으로 구체화 했었지만 정치력과 구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미완의 과제로 남겨놓고 있는 마당이다.
서민을 위한 정부의 초석 만들어
이제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다. 그에 따라 노무현 정부의 정부이념은 단절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복지보다는 성장에 무게를 두는 정책이 예상된다. 기업인 출신 특유의 치고 빠지기로 최근엔 ‘서민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성장’을 말하는 이명박 대통령이지만 서민을 위한 친기업 행보가 아니라 가진 자를 위한 친기업 행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람이나 집단, 그리고 정권의 실체는 그 자체로 평가받는 것이다. 개인의 주관적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대흐름 속에서 어떤 기능과 의의를 갖는지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것이 냉정한 평가의 자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부족했던 것도 많지만, 지향하고자 했던 사회경제시스템이나 통일외교안보적 업적은 역사적인 획을 그을만한 업적이 분명 있다고 생각된다. 국민과 소통하는 방식에서 철저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었고, 때로는 국민을 분노하게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방향성이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을 챙겨주기 위한 방향이 아니라 서민복지를 지향하려는 정책방향에 방점이 찍혀있는 진정성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정리하자만 그의 시대가 끝나는 시점에서 값싼 동정이 아니라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역사적 의의와 향후 과제는 그것대로 정리해 평가하는 것이 이 땅의 주인 된 우리의 자세여야 한다. 노무현 정부, 성공과 실패가 어우러진 정부지만 그 방향성을 볼 때 최소한 그를 지지한 서민들을 배신한 정부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고생에 대한 국민들의 격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