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후보자로서의 검증 결여에 대한 우려 목소리 높아
대선 즈음이면 낯선 인물들의 대권 도전이 간혹 눈길을 끈다. 직업, 경력 등 특이하고 새로운 인물들의 출현은 간혹 경색된 대선 분위기를 웃음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유난히 시끌벅적했던 2007년 대선의 후보로 출마해 연예인 못지않은 엔터테인먼트 기질로 국민들을 웃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가 바로 경제공화당 허경영 총재다. ‘허본좌’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 젊은 층을 비롯해 꽤 많은 이들의 표를 얻었던 허경영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허경영 신드롬’의 질주 속에서, 재미가 아닌 대통령 후보자로서의 실제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선거 후에도 이어진 ‘허경영 신드롬’
대선관련 동영상 조회 1위, 선거 후 각종 TV섭외 1위, 각종 포털 인기검색어 1위, 미니홈피 방문 1위 등, 대선 후에도 끝 모를 정도로 이어진 허경영의 인기는 많은 이들에게 그의 실체적 존재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허 씨는 선거 때부터 다소 허무맹랑하게 들릴 공약들로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36가지 세금을 폐지하고, 정당 폐지 및 국회의원 100명 축소, 모든 신혼부부에게 1억 원을 지급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어차피 지키지 못할 공약이라면 거짓말이라도 기분좋게 하라’는 사람들에겐 재미나고 신선하게 들렸을 법도 하다. 대선 이후에도 그는 케이블 방송 등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많은 시청자들에게 ‘허경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결혼설,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사진 촬영, 국민 95%의 지지율, 유엔 사무총장 출마 제의 양보, 아이큐 430, 축지법과 공중부양, 눈빛만으로 환자 치료 등 그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은 세인들의 흥밋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인터넷을 통한 그의 인기는 더욱 확산되어 팬 카페는 물론 ‘허본좌’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연예인처럼 치솟는 그의 인기는 각종 매체에서 ‘모시가기’ 경쟁을 하면서 더욱 정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한 개인의 특이성을 방송이 지나치게 부추겨 상업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타도 동시에 쏟아졌다. 방송위원회는 최근 tvN에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권고’ 조치를 했으며, 프로그램들 간의 치열한 ‘모시기’ 경쟁은 당분간 잠잠해 질 것으로 보인다.
허경영, 우상인가 허상인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때 민주공화당 후보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던 허경영은 2007년 17대 대선에 또다시 도전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정책 보좌관 경력을 살려 그 정신을 이어 받았다며 ‘제2의 박정희’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특이한 정치 이력과 정책은 그를 ‘스타 대통령 후보’ 로 만들었으며, 선거 후에도 많은 매체들이 ‘더 깊은’ 취재를 위해 열을 쏟았다. 하지만 정작 허경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실제적인 접근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단순한 흥밋거리로 ‘공중부양’ ‘축지법’ 등을 주제로 한 황당한 이야기 일색이었다. 최근 그의 발언과 이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일부에서는 허 총재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취재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허경영은 출생부터 분명하지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50년 초 겨울 서울 중랑교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1947년이라는 호적상의 출생년도는 서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 전쟁 틈에서 전쟁고아로 지리산 농부의 양아들이 되어 각종 유고 서적을 배우고, 서울로 상경하여 수유리 화계사 중이었던 이행원의 양아들이 되어 팔만대장경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 후 1966년에는 광화문 내수동교회의 홍근섭 목사의 양아들이 되어 성경을 공부하고, 1968년 삼성 이병철 회장의 양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나 그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각 종교계 인사와 유명 기업인의 양아들이었다고 주장하는 허경영은 1969년부터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비공식적인 정책보좌역을 맡았다고 주장한다. 새마을 운동, 방송통신대 설립도 그가 주도했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객관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또한 LG그룹과 GS그룹 창설과정에도 허 씨의 조부에게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역시 사실을 확인키 힘들다. 자신을 양아들로 삼았다는 종교계 인사들 역시 이미 고인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진위를 밝히기는 힘들어 보인다.
허경영은 정치 역정 초기에 ‘조선왕조의 부활’을 천명하고 나섰지만, 10.26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서거한 박정희의 이념을 계승하는 공화당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담판을 지어 핵 기지를 인수했으며, 정권을 잡으면 엄히 처단할 3,000명의 명단을 살생부로 정리하고 후에 아시아 연방을 추진할 것이라고 하는 등 비현실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는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함께 찍은 사진의 합성 여부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그의 황당한 주장들은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왜 허경영에게 열광하는가
허경영 씨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도 각양각색이다. 한 인터넷 포탈을 통해 의견을 올린 글을 보면 “솔직히 이 분은 때 되면 한 번씩 나와서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 같다”고 평하면서도 “(허 후보가 말하는 모든 것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한 귀로 듣고 흘리시길…”이란 평가를 내 놓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허 후보의 공약 설명 동영상을 보고 신뢰가 갔다. 투표권이 생기고 그때 허경영 후보가 나온다면 뽑겠다”고 말했다. 대체적 의견이 “솔직히 신뢰는 가지 않지만 재밌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선거가 국가적 행사이기는 하지만, 아무 이슈나 이벤트가 없는 상황에서 ‘허경영 이벤트’는 재밌는 거리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국민의 삶과 직접 관계되는 공약과 대안을 두고 희화화한다거나 과대 포장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동”이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지난 1997년 허경영 씨가 대통령후보로 나왔을 때와 지금은 판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당시 허 씨는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인물일 뿐이었다. 과거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람을 현재의 정보사회는 풍자, 웃음, 추대까지 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사회적 인기나 인지도가 예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낮아지는 정치관심도, 타 대선 후보자에 대한 실망감, 발달한 인터넷 정보망과 네티즌들의 다양한 놀이문화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이 ‘빅 이벤트’는 머지않아 끝날 것으로 보인다. 허 씨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관계설’을 퍼뜨린데 대해 박근혜 전 대표 측이 2007년 12월 13일 공식적인 소송을 제기해, 2008년 1월 22일 검찰로부터 사전 구속됐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계속 홍보해 ‘선거법위반’에 대한 혐의도 추가된 상태다. 허 씨는 24일 구속이 확정되자 “나는 대통령 선거까지 나간 사람인데, 대선에서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구속되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정치탄압이고 ‘제3의 사건’을 희석시키려는 음모”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방영된 모 방송국의 ‘허경영 의혹’이 가시화 되면서,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그의 인기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미지수다.
‘허경영 신드롬’ 끝으로 치닫나
허경영 씨가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면서 종합오락채널 tvN은 26일 밤 11시에 방송 예정이던 프로그램의 허경영 녹화 분을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방송위원회가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권고’ 를 한 것에 따라 조치된 것이다.
그동안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케이블 TV들은 허경영 씨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해 방송했다. 실제로 허 씨의 방송분은 꽤 많은 시청률을 올리며 방송사들의 이익에 일조했다. 그러자 20~30대 네티즌 사이에서 열광하고 있는 황당하고 이색적인 공약들을 가십거리로 만들어 상업화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취재열기를 올리면서도 실제로 그가 내세운 공약의 진실성과 실현 가능성 등을 검증하겠다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인기있는 사람에 대한 재미, 이색 소재로 시청률을 높이고, 그에 따른 광고 수익에만 혈안이 됐다 점은 비판을 피할 수 대목이다. 아무리 상업성을 추구하는 유료 방송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이들이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 방송 자체의 윤리적 책임성을 뒤로한 채 본연의 공공성을 져버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황당한 주장과 기이한 행동을 방송이 포장해 분위기를 더욱 부풀린 것에 대한 책임론도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구속된 허 씨의 재판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일이지만, 만약 허 씨가 선거법 위반혐의로 벌금형 100만 원 이상을 받게 되면 향후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제18대 대선에도 그가 다시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할지 알 수 없지만, 추락하고 있는 그의 인기가 그때까지 이어질지는 가늠하기 힘들 것 같다. 메마르고 삭막한 삶에서 재밋거리를 찾아 함께 웃을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 자체가 비단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까지 출마한 실제인물에 대한 검증없는 보도는 사리판단이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자칫 그릇된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선거 후보자들의 기본적인 자질과 이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여 후보로 출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가짜가 판치고 진실이 왜곡되는 세상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가짜 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신정아 사건’을 다시금 떠올리게 돼 씁쓸함이 느껴진다.
대선 즈음이면 낯선 인물들의 대권 도전이 간혹 눈길을 끈다. 직업, 경력 등 특이하고 새로운 인물들의 출현은 간혹 경색된 대선 분위기를 웃음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유난히 시끌벅적했던 2007년 대선의 후보로 출마해 연예인 못지않은 엔터테인먼트 기질로 국민들을 웃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가 바로 경제공화당 허경영 총재다. ‘허본좌’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 젊은 층을 비롯해 꽤 많은 이들의 표를 얻었던 허경영에 대한 대중적 인기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러한 ‘허경영 신드롬’의 질주 속에서, 재미가 아닌 대통령 후보자로서의 실제적 검증이 필요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선거 후에도 이어진 ‘허경영 신드롬’
대선관련 동영상 조회 1위, 선거 후 각종 TV섭외 1위, 각종 포털 인기검색어 1위, 미니홈피 방문 1위 등, 대선 후에도 끝 모를 정도로 이어진 허경영의 인기는 많은 이들에게 그의 실체적 존재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허 씨는 선거 때부터 다소 허무맹랑하게 들릴 공약들로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36가지 세금을 폐지하고, 정당 폐지 및 국회의원 100명 축소, 모든 신혼부부에게 1억 원을 지급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어차피 지키지 못할 공약이라면 거짓말이라도 기분좋게 하라’는 사람들에겐 재미나고 신선하게 들렸을 법도 하다. 대선 이후에도 그는 케이블 방송 등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많은 시청자들에게 ‘허경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결혼설, 부시 미국 대통령과의 사진 촬영, 국민 95%의 지지율, 유엔 사무총장 출마 제의 양보, 아이큐 430, 축지법과 공중부양, 눈빛만으로 환자 치료 등 그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은 세인들의 흥밋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인터넷을 통한 그의 인기는 더욱 확산되어 팬 카페는 물론 ‘허본좌’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연예인처럼 치솟는 그의 인기는 각종 매체에서 ‘모시가기’ 경쟁을 하면서 더욱 정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 ‘한 개인의 특이성을 방송이 지나치게 부추겨 상업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타도 동시에 쏟아졌다. 방송위원회는 최근 tvN에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권고’ 조치를 했으며, 프로그램들 간의 치열한 ‘모시기’ 경쟁은 당분간 잠잠해 질 것으로 보인다.
허경영, 우상인가 허상인가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 때 민주공화당 후보로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던 허경영은 2007년 17대 대선에 또다시 도전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정책 보좌관 경력을 살려 그 정신을 이어 받았다며 ‘제2의 박정희’임을 자처하기도 했다. 특이한 정치 이력과 정책은 그를 ‘스타 대통령 후보’ 로 만들었으며, 선거 후에도 많은 매체들이 ‘더 깊은’ 취재를 위해 열을 쏟았다. 하지만 정작 허경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실제적인 접근은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단순한 흥밋거리로 ‘공중부양’ ‘축지법’ 등을 주제로 한 황당한 이야기 일색이었다. 최근 그의 발언과 이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일부에서는 허 총재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취재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허경영은 출생부터 분명하지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50년 초 겨울 서울 중랑교 다리 밑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1947년이라는 호적상의 출생년도는 서류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 전쟁 틈에서 전쟁고아로 지리산 농부의 양아들이 되어 각종 유고 서적을 배우고, 서울로 상경하여 수유리 화계사 중이었던 이행원의 양아들이 되어 팔만대장경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 후 1966년에는 광화문 내수동교회의 홍근섭 목사의 양아들이 되어 성경을 공부하고, 1968년 삼성 이병철 회장의 양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나 그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각 종교계 인사와 유명 기업인의 양아들이었다고 주장하는 허경영은 1969년부터 박정희가 사망할 때까지 비공식적인 정책보좌역을 맡았다고 주장한다. 새마을 운동, 방송통신대 설립도 그가 주도했다고 하지만, 이를 뒷받침해 줄 객관적 근거는 없는 상태다. 또한 LG그룹과 GS그룹 창설과정에도 허 씨의 조부에게 아이디어를 낸 것이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역시 사실을 확인키 힘들다. 자신을 양아들로 삼았다는 종교계 인사들 역시 이미 고인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 진위를 밝히기는 힘들어 보인다.
허경영은 정치 역정 초기에 ‘조선왕조의 부활’을 천명하고 나섰지만, 10.26사건으로 갑작스럽게 서거한 박정희의 이념을 계승하는 공화당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담판을 지어 핵 기지를 인수했으며, 정권을 잡으면 엄히 처단할 3,000명의 명단을 살생부로 정리하고 후에 아시아 연방을 추진할 것이라고 하는 등 비현실적인 주장을 내세웠다. 2000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서 그는 UN본부를 판문점으로 옮기자는 제안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함께 찍은 사진의 합성 여부가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그의 황당한 주장들은 의심의 눈길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왜 허경영에게 열광하는가
허경영 씨에 대한 네티즌들의 평도 각양각색이다. 한 인터넷 포탈을 통해 의견을 올린 글을 보면 “솔직히 이 분은 때 되면 한 번씩 나와서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 같다”고 평하면서도 “(허 후보가 말하는 모든 것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한 귀로 듣고 흘리시길…”이란 평가를 내 놓기도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처음엔 믿지 않았지만 허 후보의 공약 설명 동영상을 보고 신뢰가 갔다. 투표권이 생기고 그때 허경영 후보가 나온다면 뽑겠다”고 말했다. 대체적 의견이 “솔직히 신뢰는 가지 않지만 재밌고 신선하다”는 것이다. 선거가 국가적 행사이기는 하지만, 아무 이슈나 이벤트가 없는 상황에서 ‘허경영 이벤트’는 재밌는 거리로 인식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은 “국민의 삶과 직접 관계되는 공약과 대안을 두고 희화화한다거나 과대 포장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동”이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밝혔다.
지난 1997년 허경영 씨가 대통령후보로 나왔을 때와 지금은 판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당시 허 씨는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인물일 뿐이었다. 과거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사람을 현재의 정보사회는 풍자, 웃음, 추대까지 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다. 사회적 인기나 인지도가 예전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낮아지는 정치관심도, 타 대선 후보자에 대한 실망감, 발달한 인터넷 정보망과 네티즌들의 다양한 놀이문화 등의 다양한 원인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한 이 ‘빅 이벤트’는 머지않아 끝날 것으로 보인다. 허 씨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의 ‘관계설’을 퍼뜨린데 대해 박근혜 전 대표 측이 2007년 12월 13일 공식적인 소송을 제기해, 2008년 1월 22일 검찰로부터 사전 구속됐다. 또한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계속 홍보해 ‘선거법위반’에 대한 혐의도 추가된 상태다. 허 씨는 24일 구속이 확정되자 “나는 대통령 선거까지 나간 사람인데, 대선에서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사람이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구속되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정치탄압이고 ‘제3의 사건’을 희석시키려는 음모”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방영된 모 방송국의 ‘허경영 의혹’이 가시화 되면서, 신드롬까지 일으켰던 그의 인기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미지수다.
‘허경영 신드롬’ 끝으로 치닫나
허경영 씨가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면서 종합오락채널 tvN은 26일 밤 11시에 방송 예정이던 프로그램의 허경영 녹화 분을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방송위원회가 ‘선거방송의 공정성 유지를 위한 권고’ 를 한 것에 따라 조치된 것이다.
그동안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케이블 TV들은 허경영 씨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제작해 방송했다. 실제로 허 씨의 방송분은 꽤 많은 시청률을 올리며 방송사들의 이익에 일조했다. 그러자 20~30대 네티즌 사이에서 열광하고 있는 황당하고 이색적인 공약들을 가십거리로 만들어 상업화하기에 급급했다. 그렇게 취재열기를 올리면서도 실제로 그가 내세운 공약의 진실성과 실현 가능성 등을 검증하겠다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인기있는 사람에 대한 재미, 이색 소재로 시청률을 높이고, 그에 따른 광고 수익에만 혈안이 됐다 점은 비판을 피할 수 대목이다. 아무리 상업성을 추구하는 유료 방송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이들이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 방송 자체의 윤리적 책임성을 뒤로한 채 본연의 공공성을 져버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황당한 주장과 기이한 행동을 방송이 포장해 분위기를 더욱 부풀린 것에 대한 책임론도 피할 수 없을 듯 하다.
허위사실 유포 등으로 구속된 허 씨의 재판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일이지만, 만약 허 씨가 선거법 위반혐의로 벌금형 100만 원 이상을 받게 되면 향후 5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어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제18대 대선에도 그가 다시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할지 알 수 없지만, 추락하고 있는 그의 인기가 그때까지 이어질지는 가늠하기 힘들 것 같다. 메마르고 삭막한 삶에서 재밋거리를 찾아 함께 웃을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 자체가 비단 나쁘다는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까지 출마한 실제인물에 대한 검증없는 보도는 사리판단이 미성숙한 청소년들에게 자칫 그릇된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 선거 후보자들의 기본적인 자질과 이력을 객관적으로 검증하여 후보로 출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가짜가 판치고 진실이 왜곡되는 세상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 ‘가짜 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신정아 사건’을 다시금 떠올리게 돼 씁쓸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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