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처리 ‘신·구권력’ 갈등심화...원내1당 손학규도 가세
새 정부 조직 개편안의 국회 처리를 두고서 정치권에 묘한 삼각 갈등 기류가 흐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인의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도 가세했다. 이 당선인은 지난 1월 23일 “대통합민주신당 등과 타협하지 말고 (정부개편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켜 달라. 통과되지 않으면 장관 없이 갈 수밖에 없다”고 한나라당 원내대표에게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 폐지 등에 대한 신당의 반발에도 개편안의 원안 통과 의지를 거듭 표명한 것이다.
특히 이 발언은 전날 노 대통령이 개편안의 내용과 처리 절차를 문제 삼아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데 이어 나온 것이어서 ‘신·구 권력’간 기싸움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손 대표가 이날 노 대통령과 이 당선인을 싸잡아 비판했다. 우선 노 대통령의 전날 발언에 대해 “적절치 못한 자세”라고 비판했다. 개편안의 조속한 원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는 이 당선인에게도 “오만과 독선의 자세”라고 날선 비판 발언을 쏟아냈다. ‘신구 권력’ 사이의 갈등 구도가 정부조직법 통과의 ‘키’를 쥔 원내 제1당 대표의 합류로 삼각 갈등으로 비화된 셈이다. 이 같은 3자간 갈등의 이면에는 정국의 주도권을 쥐려는 저마다의 ‘전략적 판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13부2처17청5위원회로 축소, 조정 정부 조직개편안 발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1월 16일 현행 18부(部)4처(處)18처(廳)10위원회의 중앙 행정조직을 13부2처17청5위원회로 축소?조정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개편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현행 부처 중 통일부,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여성가족부, 해양수산부 등 5개 부와 국정홍보처, 기획예산처 등 2개 처가 다른 부처로 흡수 통합된다. 현행 4실8수석2보좌관 체제의 청화대는 1실1처7수석 체제로 축소됐다. 대통령비서실과 대통령경호실을 합쳐 ‘대통령실’로 통합하고 기존의 비서실장, 정책실장, 외교통일안보실장의 3두(頭)체제를 대통령실장으로 일원화했다. 경호실은 대통령실 아래 경호처로 바뀐다.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이 신설되고 홍보수석을 없애는 대신 대변인을 두기로 했다.
이번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현행 ‘2원18부4처18청4실10위원회’의 56개 중앙행정기관이 43개로 줄게 된다. 이경숙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부처 수로는 1960년 이후, 중앙행정기관 수로는 1969년 이후 가장 작은 정부가 된다”며 “그러나 현직 공무원의 신분은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수위가 발표한 13부는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인재과학부(교육부+과학기술부 일부)▲외교통일부(외교통상부+통일부)▲법무부▲국방부▲행정안전부(행정자치부 개칭)▲문화부▲농수산식품부(농림부+해양수산부의 수산부문)▲지식경제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과학기술부 일부)▲보건복지여성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환경부▲노동부▲국토해양부(건설교통부+해양수산부의 해운기능) 등이다. 이 밖에 인수위는 일상적인 국정 대신 해외 투자유치, 자원개발 등 핵심 국책과제를 수행할 2명의 특임장관을 신설했다.
한편, 방송?통신 정책과 관련해 대통령 직속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두기로 했으며, 시한이 만료되는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 군의문사 진상규명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조사위 등 5개가 폐지되는 등 정부 위원회 416개 중 215개를 폐지(폐지율51%)키로 했다.
‘정부조직 개편안’ 놓고 신?구 권력 정면대립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 22일 차기 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문제가 많아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며 자신의 철학과 충돌하는 안에 서명을 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다음 정부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비정상적으로 이 정부에서 해야 하는지 모두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천호선 수석은 국회에 재의 요구를 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개편안이 원안대로 통과돼 올 경우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부조직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노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찬성으로 다시 의결해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이 이뤄지지 않으면 조각명단을 발표할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선 장관 없이 새 정부가 출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수위는 청와대의 입장에 공개적인 논평은 자제했지만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몽니를 부리고 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손 대표 “靑 거부권 시사 부적절”
대통합민주신당 손학규 대표는 지난 1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조직 개편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친 데 대해 “적절치 못한 자세”라며 “청와대는 국회에서 이 문제를 본격 논의하기도 전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재의를 요구할 수 있는 듯한 발언으로 논의의 흐름을 왜곡해선 안된다”고 비판했다.
손 대표는 이날 오전 당산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같이 말한 뒤 “물러가는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간섭하고 거부권을 행사할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국민적 화합과 정부조직법 논의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서도 신중한 자세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조직 개편과 관련해서는 국회에 맡겨야 한다”며 “우리는 국회에서의 논의에 책임을 지고 당당한 자세로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과 인수위에 대해서도 “인수위에서 논의를 마치고 국회 의결을 해달라는 건 오만과 독선이며, 결코 있을 수 없다”며 “면밀한 검토와 토론을 거쳐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국가의 장래를 염려하는 차원에서 논의해야 하고 국민의 뜻과 의견이 반영되는 정부조직 개편안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인수위에서 당선인을 포함해 공무원과 공직사회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 또한 신중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며 “공직사회를 일방적으로 ‘철밥통이다’, ‘부처 이기주의다’ 라고 매도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당선인이 ‘공직사회가 걸림돌이 된다’고 발언한 것이 자칫 공무원과 공직자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위축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장관 입장표명, 靑 브리핑 기고 등 여론전 방침
이같은 손 대표의 비판에 대해 청와대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즉각 반박했다. “손 대표의 정부조직에 대한 철학이 뭔지 매우 의심스럽다”, “물러가는 대통령이 이런 문제에 간섭하는 게 부당하다는데 몇몇 언론 논조에 따라가는 태도로서 과연 정치지도자로서 충분한 자세를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천호선 대변인)는게 청와대 반응이었다.
노 대통령은 대통합민주신당의 ‘손학규 체제’ 출범 이후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며 친노(親盧) 세력들의 탈당, 신당 창당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였지만, 청와대는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입장을 계기로 손 대표에 대한 비판의 예봉을 다시 곧추세운 것이다. 청와대가 한 달 여 임기밖에 남지 않았지만 국회 내에서의 ‘고립’을 감수하면서 신당 대표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놓은 것은 전날 노 대통령의 입장 표명에 대해 ‘물러가는 대통령의 부당한 간섭’이라는 식의 인식을 손 대표가 갖고 있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은 정부조직개편안에 간섭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현 정부가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에 반하는 안에 대해 의견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하며 국회통과 법안을 일방적으로 수용할지를 고민하는 것도 당연하다”며 “손 대표식 시각은 보수언론의 시각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손 대표의 발언뿐 아니라 신당이 견지하고 있는 정부조직개편안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이 관계자는 “통일부 폐지에 대한 입장표명 외에 신당은 인수위의 작은정부론이나 대부처주의에 동조하는 것인지 분명한 입장 개진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조직개편의 원칙과 철학, 가치관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인수위안의 밑바탕을 이루는 대부처주의, 작은정부론에 대해 근본적으로 견해를 달리할 뿐 아니라 구체적으로 인수위안이 청와대 권력집중을 초래하고, 부처간 견제, 균형을 무너뜨리고, 정부 서비스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한다는 등 총론과 각론에서 모두 반대 입론을 주창하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안 논의과정에서 신당과의 협조 가능성에 대해 천호선 대변인은 “그것을 배제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 그런 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다”며 “신당은 신당의 의견이 있고, 정부는 정부로서의 입장이 있다. 정부와 신당의 의견이 꼭 같을 수도 없고 같을 필요도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는 인수위와 한나라당의 정부조직개편안 조기 처리 방침에 대해 “마치 군사작전 보는 것 같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절차를 무시하는 권한까지 위임받은 것은 아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일부 약간의 손질은 가능하지만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에 모순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꼭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며 인수위와 한나라당을 압박했다.
청와대는 앞으로 청와대 브리핑이나 각 부처 장관들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을 통해 인수위안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계획이다. 천 대변인은 “정부조직개편안의 구체적 입장에 대한 입장을 계속 밝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에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통해 최대한 국회 논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뜻이고, 거부권 행사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계속 국회를 압박하고 관련법이 통과되면 그 시점에서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한 실질적 고민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李 당선인 “조직개편 안되면 힘받기 힘들어”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정부조직법 개편안과 관련, “국회에서 통과가 안되면 새정부 출범 때부터 힘을 받기 어렵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선인은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국회 통과를 당부하기 위해 마련한 한나라당 원내 대표단 및 행정자치위 소속 의원들과의 만찬에서 이 같이 말하고 “통과되지 않는 것을 국민이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협조를 당부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 당선인은 또 ”김대중 정권이 출범할 때는 한나라당에서 다 협조를 해 주지 않았느냐“면서 ”대통합민주신당에서도 협력해 주리라고 믿는다“고 신당의 초당적인 협조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이 당선인은 “행자위나 법사위 소속 위원들을 중심으로 해서 신당의원들과 공감대를 넓히는 작업도 병행하는 등의 노력을 특별히 당부한다”고 정부조직법 개편안 원안 통과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당선인은 “정부조직법 개편안 처리는 설 전까지 데드라인으로 해서 처리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그때까지도 잘 안 되면 설 전이라도 내가 눈물로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록 이 당선인은 농담조로 이 같이 말했다고 참석 의원들은 전했으나 새 정부 출범에 앞서 정부부처를 기능중심으로 통폐합한 조직개편안에 대한 강한 신념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안상수 원내대표는 “대선이 끝나고 좀 편안해 질 줄 알았더니 또 노력을 많이 해야 할 일이 생겼다”면서 “정부조직개편안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위해 노력하자”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선인은 이날 2시간 가량 이어진 만찬에서 폭탄주를 제조해 직접 나르며 의원들을 격려하는 등 정부조직법 개편안의 국회 통과가 원만히 될 수 있도록 분발해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