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현악기 연구원/동천 최태귀 악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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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현악기 연구원/동천 최태귀 악기장
  • 취재_정재우 부장
  • 승인 2008.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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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匠人)의 혼을 담아 전하는 청아한 음률의 향연
죽은 나무에 생명 불어 넣어 천년(千年)의 소리를 빚는다
한국전통 고유악기의 대명사로 선비문화의 상징인 거문고. 문화관광부에서 선정한 민족문화상징의 100대 품목으로도 선정되어 있다. 예부터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하여 모든 악기의 으뜸으로 일컫는다. 전체 음역이 3옥타브에 이르며 한국 전통악기 중 가장 넓은 음역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전통현악기의 깊고 장중한 음색의 원형을 보존하기 위한 시대의 부름을 3대에 걸쳐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장인의 거친 손마디에서 기자는 숙연해짐을 느낀다.


천년(千年)의 소리로 되살아나는 공명(共鳴)
雅號 동천(桐天). 무형문화재 제42호 이수자이며 25현, 22현, 18현 및 10현의 거문고를 창작한 전통악기 제작의 장인(匠人).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 나선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에 이르러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자 인적이 눈에 띄게 뜸해졌다. 도심과의 기온차가 3~4도 낮아 한겨울의 바람이 더욱 매섭게 느껴지는 한적한 도로변에서 ‘전통현악기연구원’의 세움간판을 만날 수 있었다. 허름한 공방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진 것은 우리민족의 정서와 혼이 담긴 고유의 전통 제작기법을 스승의 뜻을 받아 인생의 끝까지 짊어지고 가겠다는 장인에 대한 부족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절실해진 때문은 아니었을까.
동천(桐天) 최태귀 악기장은 지난 1974년 18세의 나이로 고모부이자 스승인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인 고(故) 김광주 선생의 문하에 입문하면서 전통현악기 제작기법 전 과정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타고난 남다른 자질을 인정받았던 그에게 고(故) 김광주 선생은 “나보단 네가 문화재가 되어야 하는데”라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악기장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30여년의 세월을 훌쩍 넘긴 지금, 그의 이마에도 굵은 주름이 잡히는 듯 했다. 제작공정을 묻는 질문에 그는 “4~5개월에 걸쳐 무릎위에 눕혀놓은 죽은 나무를 살려내는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손을 거친 전통현악기가 세상에 선보이기까진 260회에서 300회 이상 손이 가는 세밀하고 꼼꼼한 작업이 수반(隨伴)된다. 그제야 비로소 한국 고유의 아름답고 깊은 공명(共鳴)이 베어 나오는 것이다. 그런 그도 악기 제작 때만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것은 정성을 들이지 않은 악기는 한 번의 연주만으로도 바로 진가(眞價)가 드러나는 탓에 손끝에 예술혼의 기(氣)를 불어 넣고서야 생명력 있는 음악으로 연주된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고 있는 때문이다. 소리를 느끼는 천부적으로 타고난 청력은 전문가들로부터 확률 100%의 소리를 악기에 담아낸다는 호평을 얻고 있다. 작품에 따라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많지만, 그가 이렇게 공력을 들이는 이유는 줄 한번만 튕겨 봐도 그 차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고른 호흡으로 숨결을 불어넣어 영혼의 소리를 창조하는 장인의 혼이 전통현악기의 명맥(命脈)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좋은 재료가 되기까진 5년 이상 깊은 잠을 잔다
“좋은 악기를 만들기 위해선 좋은 재료를 고르는 것에서 출발한다.” 전통현악기연구원을 설립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소리를 빚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최 악기장의 주장이다. 전통현악기의 주재료로 쓰이는 오동나무(앞 판)와 밤나무(뒷 판)는 물론 벚나무, 배나무, 호두나무, 장미목 등 부가적으로 쓰이는 나무들을 반드시 국내에서 자란 것으로 고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재료 대부분은 특별히 주산지인 전라도에서 구입한다. 좋은 소리를 보존하기 위한 제재 건조의 중요성으로 인해 5년 이상 바람과 눈?비를 맞추며 자연건조 과정을 고집스럽게 거친다. 판의 두께나 건조 조직 등에 의해서 음색 하나하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에야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제작과정에 투입된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최 악기장이 선보이는 악기는 정악 가야금, 산조 가야금, 25현 가야금, 거문고, 소아쟁, 대아쟁, 10현 개량아쟁 등 전통현악기 대부분에 이른다. 작품 중 수 천만 원대를 호가하는 고가의 전통현악기 제작을 의뢰받아 판매한 사례들은 그의 작품성이 평가된 좋은 본보기이다.


자연의 음색을 담아내는 명품 악기
담장너머 들려오는 끊길 듯 이어지고 멈추는가 싶어 귀를 쫑긋거리면 흐드러진 꽃잎 흩날리듯 마음을 구성지게 덮어 내리는 가야금 한 소절은 길 가던 선비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을 법도 하다. 좁고 긴 장방형의 오동나무 공명판 위의 명주실을 뜯는 전통현악기의 우리 가락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색하지 않은 찬사를 받아 왔다. 2008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최 악기장은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에 변함이 없다”라는 다소 싱거운 답변을 했다. “우리의 소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더욱 나은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심혈을 쏟겠다”는 다짐이다. 또한 그는 “세계시장에 가장 한국적인 전통현악기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6년 KBS드라마 ‘황진이’에 거문고와 가야금 등이 협찬되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던 그의 작품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도전2리 전통현악기 전시관을 통해 만나볼 수 있어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2005 세계문화예술 대상’을 비롯해 ‘2006 한국문화예술 대상’ ‘민족문화예술대전 악기장 부문 대상’ ‘충효문화예술 대상(국악기 제작부문)’ ‘2007 그랑프리미술대상(문화관광부장관상)’ ‘경기도 으뜸이 전통악기부문 선정’ 등 그의 화려한 수상경력은 장인의 남다른 열정과 작품성을 대변한다. (사)한국예술연구진흥원 국악전문자격평가원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사)민족예술인총연합회 여주지부 이사, 세계서예교류협회 공예위원장 등 다양한 외부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또한 역사와 문화의 고장인 여주 지역의 국악관현악단 창립에도 열의을 보이고 있는 최 악기장은 문화 예술 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과 필요성을 역설한다. 이와 함께 전통악기 제작기법을 전수 받으려는 문하생들에게 끈기와 근성을 갖고 매진할 것을 주문하며 전통현악기연구원을 통한 후학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전통현악기에 대한 집념과 노력으로 빚어낸 세계적인 명품. 최근 동호인과 전공인을 중심으로 작품에 대한 문의가 잦아지면서 관심이 확산되고 있어 독자들이 좀 더 가까이에서 진정한 ‘한국의 소리’를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전통현악기연구원(경기 여주군 강천면 도전2리 898)
‘동천’ 최태귀 악기장 011-239-3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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