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자율적 시장 감시로 피해 예방, 기업은 소송남발로 이미지 실추 우려
지난해 개정된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지난 1월 1일부터 기업들의 소비자 권익 침해 행위를 금지시킬 수 있는 소비자단체 소송제도가 시행됐다. 소비자단체소송이란 소액의 제품을 구매한 후 피해를 본 다수의 소비자들 개개인이 직접 해당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묶어 일괄적으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로 정부는 이를 위해 전경련과 소비자단체 등 13개 단체를 적격 단체로 지정했다. 이에 공정위와 한국소비자원 등은 소송 지원을 위한 변호인단을 확충, 앞으로 기업들의 위업행위에 맞서는 소비자들의 힘이 더욱 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은 이미지 실추, 매출액 감소 등의 부작용의 발생 등의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어서 난황이 예상되고 있다.
소비자 권익 보호 높아진 소비자기본법
지난해 개정된 소비자기본법을 살펴보면 전자상거래 및 국제거래의 활성화 등에 따라 소비자보호 위주의 소비자정책에서 탈피해 소비자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기존 ‘소비자보호법’의 명칭을 ‘소비자기본법’으로 변경하고 ‘한국소비자보호원’도 ‘한국소비자원’으로 바꿨다. 또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 업무기능도 조정돼 소비자정책 집행기능이 재정경제부에서 공정거래위원회로 이관되고 소비자정책위원회 간사에 공정위 소속 공무원 1인을 추가해 공동간사제로 운영토록 했다. 이에 따라 재경부는 정책사항만 관할하고, 소비자단체 등록심사?취소권한, 한국소비자원의 인사, 감독, 예산, 감사 등 제반사항은 공정위가 맡게 됐다. 아울러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 등 취약자를 우선 보호토록 하고 이를 담당할 소비자안전센터를 두도록 했으며 기업이 자발적으로 소비자문제를 해결하도록 소비자상담기구 설치를 권고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다수 소비자에게 같거나 비슷한 유형의 피해를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일괄적 분쟁조정을 실시하도록 했다.
특히 지난해 개정된 소비자 기본법에 따라 소비자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단체를 통해 소비자의 생명과 신체, 재산상의 권익을 침해하는 사업자의 위법 행위를 금지 또는 중지해 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소비자단체소송 본격 시행, 적격 단체 13곳 지정
소비자단체소송제도는 현행 사법체계하에서 소액의 피해를 본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해 개정된 소비자가기본법에 따라 지난해 집단분쟁조정제도와 함께 도입됐으나 소비자단체소송은 유예기간을 둬 올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현재 소비자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적격 단체는 13개로 지난해 12월 26일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소비자단체 및 경제 단체를 지정, 공정위에 등록된 녹색소비자연대, 대한YMCA연합회, 대한주부클럽연합회,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전국주부교실중앙회, 한국소비생활연구원, 한국소비자교육원, 한국소비자연맹, 한국YMCA전국연맹 등 9곳이며 경제단체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가 지정됐다.
이 밖에 비영리 민간단체도 같은 피해를 본 50명 이상의 요청을 받아 소송을 제기할 수 있으나 상시 구성원이 5,000명 이상이어야 하고 3년간의 활동 실적을 갖춰야 하는 등의 자격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는 소비자단체소송이 남용될 경우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기업 이미지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이에 소송을 낼 수 있는 단체의 자격요건을 법으로 엄격히 정하고 대상도 안전과 거래, 표시, 광고, 개인정보 관련 법령의 위반사항으로 한정하고 있다. 또 다수의 소비자에 연관된 피해사항이어야 하는 등 공익성도 있어야 하며 단체가 소송을 제기하기 전 해당 업체에 관련 사실을 서면으로 통지하고 14일의 냉각기간을 갖도록 하는 등 무분별한 소송을 막기 위한 장치들도 마련됐다.
소비자단체소송 절차는 사업자에 소비자권익 침해중지 요청→조정기간 14일 경과 후 소송제기→법원의 소송허가로 재판 성립→승소 땐 확정 판결 효력 및 가집행처분 등의 절차로 법원에 직접 피해방지를 요청할 수 있다.
과거 증권집단소송이 시행됐으나 요건(50명 이상이 주식 1만분의 1이상 보유)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소송의 범위도 제한된 까닭에 지난 2005년 1월 시행된 이후 제기된 소송이 단 한 건도 없었다. 하지만 소비자단체소송으로 소비자단체들의 영향력이 커져 이들 단체에 의한 자율적인 시장 감시가 가능해지고 소송이 제기되기 전에 기업들이 위법행위를 자발적으로 중지 또는 예방하는 한편, 리콜도 활성화하는 등의 효과가 기대된다.
민현선 재경부 소비자정책과장은 “기업들이 직접적인 소송의 결과보다는 이미지 타격 등을 우려해 사전에 소비자 피해 확산을 막고 예방 조치에 나서는 등의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소비자, 금전적 손해배상은 청구할 수 없어
현재 소비자단체소송을 통해 청구할 수 있는 것은 권익 침해행위를 금지 및 중지하는 것뿐 금전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기업의 위법 행위 중단과 피해구제를 성취하려면 시행중인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의 집단분쟁조정제도와 민사소송제를 병행해야만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민단체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표명하고 있다.
소비자단체소송에서는 소송 참여자의 적격성이 법에 세밀히 규정돼 있어 집단분쟁조정과 판이하기 때문에 분쟁조정신청이 상당히 많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이 부담해야할 변호사 비용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다. 대법원이 정한 소비자단체소송의 소가는 5,000만 원이다. 민사소송법에 따라 소비자단체가 승소판결을 받아내 기업 측으로부터 보전 받을 수 있는 변호사 비용은 310만~450만 원 정도. 때문에 현행법 체계 하에서는 변호사의 공익활동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장진영 변호사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인 만큼 국가가 선임비용을 지원하거나 변호사의 공익활동으로 인정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 소비자단체소송제도는 독일의 소비자단체소송을 축소 도입한 것으로 독일 제도의 단점을 보완코자 집단분쟁조정제도를 지난 3월부터 시행한 것이다. 독일의 경우 피해자 모집의 절차가 필요 없고 단체가 소송을 제기해 소송 제기 및 진행이 수월하며 기업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지만 금전적 배상 없어 소비자에게 실질적 이득이 없는 단점이 있다.
집단분쟁조정제도는 50명 이상 소비자가 동일 또는 유사한 피해를 입은 경우 일괄적으로 구제하는 제도로 비용 부담 없이 소액 다수 피해의 특성을 지닌 소비자 문제를 일괄적으로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으며 소비자와 사업자가 조정에 동의하는 경우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한국소비자원 김성천 정책개발팀장은 “집단분쟁조정은 다수의 소비자가 입은 피해를 보상해주는 사후구제제도인 반면, 소비자단체소송은 소비자 피해가 더 이상 발행하지 않도록 금지 또는 예방하는 효과가 있어 상호보완적”이라며 “피해보상이 필요할 경우 집단분쟁조정과 병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체, 위법행위 인정 시 이미지 손상으로 활동 위축 우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소비자단체소송제도에 기업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기업은 법원으로부터 위법행위가 인정됐다는 것만으로도 대외 이미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더욱이 집단분쟁조정제도와 같이 소비자단체소송제도로 인해 블랙컨슈머들(Black Consumer, 기업에 대해 상식 밖의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직업적으로 불만제기를 하는 소비자)로 인해 악용될 경우 기업들의 경영에 대한 부담과 손실은 더 클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소송남발 우려와 패소시 손해배상, 생산중단 등 기업의 물적 비용과 경영 부담이 크고 기업 이미지 실추와 같은 무형의 피해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족한 인력 및 자금 등으로 기업경영에 애로사항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피해는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지난 2004년 경제인연합회는 소비자단체소송제도 도입에 대한의견 정책 건의서를 통해 “소비자단체소송제도는 최근 어려운 경제상황과 우리의 소송문화, 시민단체의 성숙도 등을 감안할 때, 기업을 상대로 한 무분별한 기업소송의 증가로 의한 기업경영의 위축 가능성이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소비자 권익보호는 제조물책임법, 리콜제도 등 현행제도를 활용하면 충분하고 사업자의 자발적인 자정 노력이 효과를 거두고 있으므로 굳이 기업 활동에 충격을 주면서까지 무리하게 소비자단체소송제도를 도입할 이유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이경상 기업정책팀장은 “기업이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위해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소비자들이 소송을 남발할 경우 기업으로서는 투자 비용조차 건지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소비자 피해는 현행 법령으로도 행정관청이 감독하도록 되어 있는데 분쟁사안이 법원으로 곧장 넘어가는 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소비자들은 소송 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피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소송성립 절차가 엄격하고, 소비자단체들도 자신의 공신력이 걸려 있는데다 법적 소송인만큼 확실한 정보와 증거가 없이 소송을 남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0곳 중 6곳 블랙컨슈머들로 골머리 “경영 힘들어”
한편, 블랙컨슈머들로 기업들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들의 악성 클레임으로 곤란을 겪는 기업들은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과도한 손해배상 요구와 인터넷 유포, 고발 등을 통한 무리한 보상요구는 물론 90%이상 사용한 제품에 대해 환불 요구까지 천태만상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소비재를 생산하고 있는 중소기업 120개사를 대상으로 ‘소비자문제가 기업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7.5%가 월 1회 약성민원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월 1~2회’가 45.8%로 가장 많았고 ‘월 3~5회’가 10.0%, ‘월 10회 이상’도 1.7%나 차지했다. 악성민원에는 과도한 손해 배상 요구, 제품의 결함 정보 인터넷 유포 위협, 부당한 반품 및 환불 요구 등이 해당된다.
특히 중소기업의 71.6%는 집단분쟁조정제도, 소비자 단체소송제도 등 소비자보호제도 시행으로 기업경영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조사업체의 52.5%는 소비자보호와 관련된 정부의 정책이 ‘소비자편향’이라고 인식했고, 소비자와 기업여건을 고려한 균형 있는 정책이라는 의견은 24.3%에 지나지 않았다. 집단분쟁조정제도에 대해서는 50.8%, 소비자단체소송은 45.8%가 ‘잘 모르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중소기업 관계자는 “요즘 소비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기업에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정신적 피해보상, 제품가격의 몇 배나 되는 과도한 금액의 손해배상 요구, 사진·동영상의 인터넷 유포 위협, 소비자단체 고발 등 협박으로 인해 기업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막무가내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억지를 써도 일단 시끄러워지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미지에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며 “악성 클레임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제재할 뾰족한 수가 없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악성 소비자의 요구를 들어 준다”고 말했다.
이밖에 소비자보호와 관련해 중소기업이 운영 중인 제도로는 제조물책임(PL)보험가입이 64.2%로 가장 많았고, 리콜제도가 37.5%, 소비자상담기구 21.7%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소비자보호제도 운영과 관련한 향후 계획은 직원교육강화가 70.8%로 가장 많았고, 리콜제도 활성화가 31.7%, PL보험가입이 29.2%, CCMS(소비자불만자율관리프로그램)도입이 16.7%로 뒤를 이었다.
기업과 소비자 권익 보호될 수 있는 정책 기조 필요
이처럼 최근 중소기업은 집단분쟁조정제도, 소비자단체소송제도 등 새로운 소비자보호제도 시행으로 기업경영에 부담과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송남발 우려, 패소시 손해배상, 생산중단 등 기업의 물적 비용과 경영 부담이 크고 기업이미지 실추와 같은 무형의 피해도 우려되고 있지만, 인력난, 자금난 등으로 기업경영에 애로를 겪고 있는 중소기업은 소비자보호를 위한 전문 인력채용 및 비용부담 여력부족 등으로 효율적인 대응이 어려운 실정이고 소비자문제와 관련 지식ㆍ정보의 획득도 적기에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비시장의 건전한 육성과 소비자 스스로의 자성 노력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비자는 더 이상 보호대상이 아니라 권리행사의 주체이기 때문에 보호보다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해 자율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
중소기업이 소비자보호 관련 문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안정적인 기업경영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서 ▲소비자교육을 통한 합리적 소비자인식 제고 ▲부당반품, 과다한 배상금 요구 등 블랙컨슈머(악덕 소비자) 근절 ▲CCMS 도입 중소기업 인센티브 제공 및 지원 확대 ▲소비자집단분쟁조정, 단체소송, CCMS에 대한 정보제공 강화 ▲집단분쟁조정 사전고지제도 확대 등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중앙회 소기업유통서비스팀 유옥현 팀장은 “일부 소비자의 사진, 동영상 인터넷 유포 위협으로 부당환불, 과도한 배상요구 등 무리한 요구를 법적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우선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 중소기업계의 현주소”라고 말하면서, “블랙컨슈머로 인한 피해는 기업의 뿐만 아니라 선의의 소비자에게도 전가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소비자주권 행사가 중요하고, 정부의 소비자정책도 기업과 소비자의 권익이 동시에 보호될 수 있도록 균형적인 시각 하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