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과 이념에 벗어난 문화적 남북통일을 향해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문화교류
남북이 휴전선을 마주보고 분단 된지도 반세기가 지나고 금강산 관광과 대북협력대책에 조금은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와 북한의 사상과 이념은 이해할 수 없는 고리 속에 묶여 있다. 이 속에서 색다른 방법과 해결책으로 통일에 앞장서고 있어서 화제이다. 대훈서적의 김주팔 회장은 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를 설립하여 북한과의 문화교류에 큰 공헌을 한 성과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통일문학이라는 책자를 발행하여 우리나라에 북한의 문학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북문화교류의 초석
대훈서적 김주팔 회장은 지난 12월 26일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김 회장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유공자 포상에서 남북문화교류 추진에 앞장서 온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대상자로 선정됐다. 김 회장은 제 1회 통일독서글짓기대회와 어머니 통일교실을 개최하면서 통일교육 사업을 위해 앞장서 왔으며, 북한의 여러 문학작품의 보급에 앞장서며 다양한 남북한의 문화교류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2002년 설립된 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는 남·북한과 재외동포들이 참여하는 ‘통일문학`을 발행해 오고 있기도 하다. 현재 (사)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 이사장 겸 통일문학 발행인을 맡고 있으며 한민족운동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전시 중구협의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회장은 “공에 비해 너무나 큰 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민족의 통일에 더욱 앞장서라는 말씀으로 알고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며 소감을 밝혔다.
6.15 선언 이후 2001년 코엑스에서 ‘책으로 가는 북한’이라는 북한책을 진열하면서 김 회장의 문화통일에 대한 의지가 생겨났다. 그 계기가 화제가 되어 각 대학의 현대 문학가들이 사단법인화를 통한 통일문학을 제안을 받게 된 김 회장은 2002년 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를 창설하게 된다. 이념과 사상을 넘어 문화 안에서 한민족임을 분명하게 보여준 또 다른 통일의 시작이었다고 평가되는 이 시기는 김 회장에게 있어 욕심을 갖게 하는 기회였다고 한다. 2002년 소월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평양에 핀 진달래 꽃’이라는 책자를 북측과 발행했는데, 이책은 지난 시기 북측에서의 퇴출 대상이었던 김소월의 평가를 2002년에 와서 순수한 우리말을 잘 표현한 인물로 평가받게 하는 과정 속에서의 일종의 정리본이었다. 또다시 화제가 된 이 일을 계기로 ‘통일문학’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진이’를 소개하며 북측에서 판권을 사와 출판하게 되었다.
사상과 이념의 벽을 넘어서
이처럼 문화적 통일에 앞장 서오고 있는 김주팔 회장은 자신 역시 북한의 사상과 이념의 큰 차이는 느끼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그들도 우리를 똑같이 바라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런 괴리감은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그의 생각이다. “평양을 7번이나 다녀왔지만, 말도 사상도 이념도 안 통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보니 통하더군요. 그제 서야 알았습니다. 저들도 똑같은 한민족이라는 것을...” 이렇듯 김주팔 회장의 북한문학에 대한 사랑은 극진하다.
김주팔 회장의 마지막 목표는 평양에 서점을 내는 것이다. 몇 차례 북측에 건의도 했고 긍정적인 대답도 얻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노력으로 언젠가 평양시내에 우리나라의 서점이 들어서고 우리의 문학과 북한의 문학이 함께 진열 되어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한민족의 통일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문화교류
남북이 휴전선을 마주보고 분단 된지도 반세기가 지나고 금강산 관광과 대북협력대책에 조금은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와 북한의 사상과 이념은 이해할 수 없는 고리 속에 묶여 있다. 이 속에서 색다른 방법과 해결책으로 통일에 앞장서고 있어서 화제이다. 대훈서적의 김주팔 회장은 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를 설립하여 북한과의 문화교류에 큰 공헌을 한 성과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통일문학이라는 책자를 발행하여 우리나라에 북한의 문학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남북문화교류의 초석
대훈서적 김주팔 회장은 지난 12월 26일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다. 김 회장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대상으로 진행된 유공자 포상에서 남북문화교류 추진에 앞장서 온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석류장 수훈 대상자로 선정됐다. 김 회장은 제 1회 통일독서글짓기대회와 어머니 통일교실을 개최하면서 통일교육 사업을 위해 앞장서 왔으며, 북한의 여러 문학작품의 보급에 앞장서며 다양한 남북한의 문화교류 사업을 추진해 오고 있다. 2002년 설립된 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는 남·북한과 재외동포들이 참여하는 ‘통일문학`을 발행해 오고 있기도 하다. 현재 (사)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 이사장 겸 통일문학 발행인을 맡고 있으며 한민족운동단체연합 상임공동대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대전시 중구협의회 고문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회장은 “공에 비해 너무나 큰 상을 받은 것 같습니다. 우리민족의 통일에 더욱 앞장서라는 말씀으로 알고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며 소감을 밝혔다.
6.15 선언 이후 2001년 코엑스에서 ‘책으로 가는 북한’이라는 북한책을 진열하면서 김 회장의 문화통일에 대한 의지가 생겨났다. 그 계기가 화제가 되어 각 대학의 현대 문학가들이 사단법인화를 통한 통일문학을 제안을 받게 된 김 회장은 2002년 서울평양문화교류협회를 창설하게 된다. 이념과 사상을 넘어 문화 안에서 한민족임을 분명하게 보여준 또 다른 통일의 시작이었다고 평가되는 이 시기는 김 회장에게 있어 욕심을 갖게 하는 기회였다고 한다. 2002년 소월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여 ‘평양에 핀 진달래 꽃’이라는 책자를 북측과 발행했는데, 이책은 지난 시기 북측에서의 퇴출 대상이었던 김소월의 평가를 2002년에 와서 순수한 우리말을 잘 표현한 인물로 평가받게 하는 과정 속에서의 일종의 정리본이었다. 또다시 화제가 된 이 일을 계기로 ‘통일문학’을 통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황진이’를 소개하며 북측에서 판권을 사와 출판하게 되었다.
사상과 이념의 벽을 넘어서
이처럼 문화적 통일에 앞장 서오고 있는 김주팔 회장은 자신 역시 북한의 사상과 이념의 큰 차이는 느끼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그들도 우리를 똑같이 바라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의 시각으로 본다면 그런 괴리감은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그의 생각이다. “평양을 7번이나 다녀왔지만, 말도 사상도 이념도 안 통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보니 통하더군요. 그제 서야 알았습니다. 저들도 똑같은 한민족이라는 것을...” 이렇듯 김주팔 회장의 북한문학에 대한 사랑은 극진하다.
김주팔 회장의 마지막 목표는 평양에 서점을 내는 것이다. 몇 차례 북측에 건의도 했고 긍정적인 대답도 얻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노력으로 언젠가 평양시내에 우리나라의 서점이 들어서고 우리의 문학과 북한의 문학이 함께 진열 되어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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