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막판 핵폭풍 ‘BBK’의혹, 이명박 넘을 수 있을까
가족 기자회견서 이면계약서 원본 공개 안돼 진위공방 가열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41)씨가 미 연방 구치소에서 3년여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한국으로 송환됐다.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 사건을 일으킨 핵심으로 지목되어 온 김 씨는 지난 2004년 체포된 이후 자신에게 제기된 민사소송을 해결키 위해 한국 송환을 거부해오다 올 들어 한국행을 결심했고, 미 법원과 국무부가 그의 한국 송환 의지를 받아들이고 승인함으로써 지난 11월 15일 낮(현지시각)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경준 씨의 송환은 BBK 사건 수사라는 의미보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의 관련성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안겨주고 있다.
BBK사건 개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BBK는 재미교포 김경준 씨가 1999년 4월 설립한 투자 운용회사다. 일종의 ‘펀드 투자회사’인 것이다. 투자자의 돈을 모은 뒤 굴려서 수익을 내주는 회사다. 처음엔 고수익을 냈지만 2001년 4월 불법적인 투자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돼 영업 정지됐다. 미국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친 뒤 99년 12월 귀국한 이명박 후보는 당시 ‘잘 나가던’ 펀드매니저인 김 씨와 동업으로 2000년 2월 LK-e 뱅크라는 인터넷 금융회사를 만들었다. 당시 김 씨는 BBK 대표였다. BBK와 LK-e 뱅크는 같은 사무실을 썼고, 일부 직원은 두 회사 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명함도 함께 썼고 외부에 “같은 계열사”라고 선전했던 흔적도 있다. 하지만 이 후보측은 “그건 김 씨가 자기 회사 선전을 위해 이용한 것일 뿐이며 금감원 조사에서 이 후보와 BBK는 무관하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고 하고 있다. 이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인 94년 미 LA를 방문했을 때 김 씨의 부모와 누나(에리카 김 변호사·44)를 만났고, 이들로부터 “아들(동생)을 잘 봐달라”고 소개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사건의 개요
김경준 씨 관련 사건은 ‘BBK사건’이라고도 하고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사건’이라고도 한다. 김 씨는 2001년 4월 BBK가 금감원에 의해 문을 닫게 되자 미리 낌새를 느끼고 ‘광은창투’라는 회사를 인수해서 ‘옵셔널벤처스 코리아’라는 또 다른 벤처 투자회사를 만든다. 이 회사를 인수·확장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설을 유포하고 허위 거래로 주가를 조작한다. 김 씨는 거기서 챙긴 돈 384억 원을 미국의 유령회사로 빼돌린 뒤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주한다.
이 후보와의 관련성이 중요한 이유는 김 씨가 옵셔널벤처스를 인수하는 데 쓴 돈이 전부 BBK에 투자된 돈을 빼돌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BBK의 소유주였다면 BBK에 투자된 돈 수백억 원이 빼돌려져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데 쓰이고 주가 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후보의 BBK 실제 소유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이 후보측은 “김 씨가 옵셔널벤처스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시기는 이미 이 후보와 동업관계가 정리된 뒤였다”고 말한다. 금감원이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한 날은 2001년 4월 2일, 이 후보가 동업을 깨고 LK-e 뱅크를 사직한 날은 4월 18일, 김 씨가 옵셔널벤처스 대표로 취임한 날은 4월 27일이라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는 이 후보의 큰형 상은 씨와 처남 김재정 씨가 대주주로 돼 있는 회사다. 이 회사는 이 후보가 김경준 씨와 LK-e 뱅크 동업을 시작한 직후인 2000년 3월부터 12월까지 총 190억 원을 BBK의 상품에 투자한다.
범여권에선 “다스 같은 중소기업이 그런 거액을 투자한 데는 이 후보가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반면 다스측은 삼성생명도 100억 원, (주)심텍도 50억 원을 투자한 것 등을 이유로 “당시에는 투자할 만한 회사였다”고 하고 있다.
다스는 이 후보의 친·인척 소유다. 심지어 이 후보의 ‘차명 회사’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김경준 주가 조작·횡령사건에 이용된 회사는 ‘옵셔널벤처스’이고 그 회사를 인수하는 데 쓰인 돈의 대부분이 바로 이 다스의 BBK 투자금을 이용한 것이다.
김 씨 가족 기자회견 후 수사 혼란
검찰의 김경준 씨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김 씨의 가족이 지난 11월 20일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김경준 씨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특수관계’를 입증할 지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김 씨 가족의 기자회견은 일단 ‘맥빠진 드라마’로 끝났다.
김 씨 가족이 이 후보가 친필 사인을 위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면 합의서’ 원본공개를 거부한데다가 김 씨 누나 대신에 부인이 회견에 나서 관련 의혹을 소상히 해명하기보다 질의응답도 회피한 채 남편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눈물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당초 이날 회견은 그동안 김 씨의 입장을 적극 대변해온 김 씨의 누나 에리카 김 씨가 나설 것으로 예상됐으나 김 씨 가족은 회견 직전에야 김 씨의 부인 이보라 씨가 회견을 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김 씨 가족은 회견 시작 직전 이 후보의 비서출신인 이진영 씨가 미 연방검찰 조사 증언 내용을 담은 DVD, 다스가 김 씨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의 판결문, 연방정부 재산 압류 소송 1차 소송 승소 판결문, 이 후보를 대표이사 회장, 김 씨를 사장으로 소개한 eBankKorea 홍보물 등을 회견문과 함께 배포했다.
이날 오후 1시20분께 호닉 변호사와 함께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씨는 남편의 결백과 이 후보가 BBK의 실질적 소유주라고 주장하는 회견문을 낭독해 내려갔으며 남편이 서울 구치소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씨는 “어느 한 곳에서도 제 남편인 김경준 씨가 사기혐의로 판결을 받았거나 주가조작을 범했다는 판결문이 없다”며 “판결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제 남편을 국제금융사기꾼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왜곡된 표현”이라고 남편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씨는 회견에서 김 씨와 이 후보가 만난 것이 2000년 1월이라는 이 후보의 주장과는 달리 1999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이 후보 주장의 신빙성 문제를 우회적으로 지적했으며 현장에서 사전에 설치한 TV모니터를 통해 DVD에 담긴 이진영 씨의 증언내용을 방영하며 BBK가 이 후보 소유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위조된 것이라는 이 후보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날 회견은 김 씨 가족이 ‘이면계약서’ 원본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 씨가 밝히면서 열기가 식었다.
한나라당은 김경준 씨 부인 이보라 씨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사실이 아무것도 없다”며 “한편의 코메디”라고 비웃었다. 한나라당은 에리카 김 대신 부인 김보라 씨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는 점, 또 이면계약서라고 주장하며 사본만 슬쩍 내비췄을 뿐 서류를 공개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기자회견의 '영양가‘가 부족하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나 대변인은 “세상을 바꿀 것 같이 큰소리치던 에리카 김은 한국으로부터 범죄인 송환을 받을 것이 두려워 숨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또 “이명박 후보가 BBK를 소유했다는 증거도, 후보가 주가조작 및 횡령에 가담했다는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후보의 결백이 오히려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특히 에리카 김 역시 주가조작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경준 가족은 이 사건 범죄에 가담하거나 범죄이익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김경준과 같은 배를 탄 입장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
결국 BBK는 ‘한방’이 아니라 ‘헛방’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해 이 후보 대세론을 회복시키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반면 똑같은 기자회견을 놓고 신당 쪽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신당 최재성 대변인은 이보라 씨 회견에서 주식회사 다스 사장 김성우 씨와 이명박 후보의 비서 이진영 씨의 진술 장면이 공개된 것에 대해 “이명박 후보가 주가조작 횡령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근거”라고 주장했다. 에리카 김이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최 대변인은 “기자회견의 주체가 김경준 씨의 누나 에리카 김이든, 부인 이보라 씨든 그런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공개된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며 “검찰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건의 본질을 규명해 국민들에게 수사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경준-이 후보측의 상반된 주장
김 씨 가족의 기자회견은 이 후보가 BBK투자자문이란 회사를 실제로 소유했다는 게 회견 내용의 핵심. 이를 증명하기 위해 김 씨 가족은 이 후보의 이름이 적힌 BBK의 명함과 홍보물, 이 후보 비서의 법정 증언이 담긴 DVD 등을 공개하기도 했으나 의혹의 열쇠인 '이면계약서'는 끝내 내놓지 않았다.
이날 김 씨 가족이 이 후보가 BBK의 실제 소유주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놓은 주요 근거는 4~5가지 정도이지만 이 후보측은 “이미 수차례 해명한 내용”이라며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이 후보와 김 씨가 처음 만난 시점부터 양측이 주장이 갈린다.
김 씨 가족은 이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기가 BBK가 설립된 1999년 4월 이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확한 날짜와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반면 이 후보 측은 이 후보는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 연수중이었고 2000년 1월 서울에서 김 씨를 만났음을 재확인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아무리 허위 주장을 한다고 해도 6하 원칙에 맞게 해야 그래도 덜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씨 가족은 또 LKe뱅크, BBK, EBK의 대표이사 직함이 기재된 이 후보의 명함 및 홍보물의 존재를 시인한 이 후보 여비서의 미국 법정 증언을 근거로 “이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은 당시 이 후보가 대표이사였던 LKe뱅크가 EBK, BBK와 영업상 관련된 회사였던 만큼 김경준이 홍보를 위해 임의로 이 같은 명함이나 홍보물을 만들었을 수 있으나 실제 사용되지 않은 것들이라고 반박했다.
나 대변인은 “명함과 브로슈어는 일부 위조됐고, 일부는 존재는 했지만 폐기된 것들”이라며 “당시 EBK를 김경준과 함께 만들기로 추진하던 때이므로 김경준이 그런 명함 등을 만들었을 수는 있으나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스가 BBK에 190억 원 전액을 실제 투자했는 지 여부와 김 씨의 사기?횡령 여부 등을 놓고도 양측의 주장은 달랐다.
김 씨 측은 지난 8월 미국에서 진행된 다스의 투자금 반환소송에서 승소, 횡령과 사기 혐의가 무죄임을 입증했다고 언급하면서 특히 다스 측이 2000년 12월말 투자했다는 80억 원(190억 원의 일부)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는 점 등이 다스가 190억 원 전액을 투자하지 않은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2001년 12월 다스의 이상은 회장이 BBK로부터 50억 원을 돌려받은 뒤 다스와 BBK간 채무관계가 정리됐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다스가 190억 원을 BBK에 분할 투자한 근거 서류를 모두 완벽하게 검찰에 제출해 소명한 상태이며, 다스와 BBK의 채무관계 정리 계약서는 투자액 190억 원 가운데 50억 원만 상환 받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서류라고 강조했다.
나 대변인은 다스의 투자금 반환소송 패소와 관련해 “이전 미 연방검찰이 제기했던 김씨의 재산 몰수 소송에서 증인의 진술증거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패했던 결과가 투자금 반환소송에도 기속됐을 뿐 BBK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문판 ‘이면계약서’ 3장에 이 후보의 친필 사인이 돼있다는 김씨 측 주장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날 회견에서 김 씨 가족은 이미 검찰에 제출했다는 영문계약서 3부에 이 후보의 친필 사인이 돼있다면서 “이는 사이드 어그리먼트(이면 계약)를 맺음으로써 증권회사(BBK)의 모든 주식을 이 후보의 LKe뱅크로 되돌리는 서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측의 박형준 대변인은 “그런 계약서가 있다면 이 후보의 사인이 돼있는 LKe뱅크와 A.M.파파스(김경준이 만든 유령회사)간 주식거래계약서를 위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조작한 서류가 아니라면 이 후보는 그런 서명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 씨 측은 다스 김성우 사장이 BBK의 임원진 구성이나 주주 현황 등 회사의 상황을 전혀 모른 채 BBK에 투자를 결정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미국 법정에서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 대변인은 “김경준과 이보라 등이 2~3차례 경주의 다스 본사를 방문해 (BBK에 대한) 자세한 브리핑을 하면서 투자를 유도했고, BBK는 자세히 검토해 투자를 결정했다”면서”김씨 가족이 김 사장의 증언을 왜곡했다”고 반박했다.
변함없는 이명박 지지율
한편, BBK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 후보 지지율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날 김 씨 측이 이 후보의 연루 의혹을 증명할 이면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해 이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38~45%선으로 14~18%를 얻고 있는 정동영ㆍ이회창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다. 당초 BBK사건이 터지면 이 후보가 ‘한방에 날아간다’는 여권의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 8월 당 후보 경선에서 이 후보의 BBK사건 연루 의혹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 ‘예방주사’를 맞았다. 이 때문에 김경준 씨 송환 후 이 후보의 연루 의혹을 간명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올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김 씨 측은 이날 예상과 달리 이면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역시 헛방이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이날 한나라당 창당 10주년 기념식에서 “(김경준 측 기자회견을) 안 봤다. 그런 거 볼 시간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진실과 정의가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대선 구도가 2강2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닐 정도다. 여기서 ‘2강’이란 이 후보와 김경준 씨, ‘2중’은 이회창ㆍ정동영 후보를 뜻한다. 여론의 관심이 온통 이 후보 검증 공방과 김 씨에게 집중되고 있어 정 후보 측은 지지율 제고에 애를 먹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당의 정책 대결은 공염불이 됐다.
이 후보의 도덕성 검증에 ‘올인’하다시피 한 범여권의 전략이 자승자박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 후보의 ‘범죄’를 입증할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 않을 경우 대권을 내줄 수밖에 없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범여권이 사기꾼 한사람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폭탄을 한나라당에 던지려 하는데 자기 진영에서 터지는 오발탄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검찰이 12월 초 이 후보의 연루 가능성을 발표하면 대선 판세가 다시 소용돌이칠 가능성이 있다. 최재성 신당 의원은 “가족의 증언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밝혀진 근거만으로도 검찰이 충분히 진실 규명을 할 수 있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가족 기자회견서 이면계약서 원본 공개 안돼 진위공방 가열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41)씨가 미 연방 구치소에서 3년여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한국으로 송환됐다.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 사건을 일으킨 핵심으로 지목되어 온 김 씨는 지난 2004년 체포된 이후 자신에게 제기된 민사소송을 해결키 위해 한국 송환을 거부해오다 올 들어 한국행을 결심했고, 미 법원과 국무부가 그의 한국 송환 의지를 받아들이고 승인함으로써 지난 11월 15일 낮(현지시각)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경준 씨의 송환은 BBK 사건 수사라는 의미보다 유력 대선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의 관련성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안겨주고 있다.
BBK사건 개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BBK는 재미교포 김경준 씨가 1999년 4월 설립한 투자 운용회사다. 일종의 ‘펀드 투자회사’인 것이다. 투자자의 돈을 모은 뒤 굴려서 수익을 내주는 회사다. 처음엔 고수익을 냈지만 2001년 4월 불법적인 투자 사실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돼 영업 정지됐다. 미국에서 1년간 연수를 마친 뒤 99년 12월 귀국한 이명박 후보는 당시 ‘잘 나가던’ 펀드매니저인 김 씨와 동업으로 2000년 2월 LK-e 뱅크라는 인터넷 금융회사를 만들었다. 당시 김 씨는 BBK 대표였다. BBK와 LK-e 뱅크는 같은 사무실을 썼고, 일부 직원은 두 회사 일을 함께 하기도 했다. 명함도 함께 썼고 외부에 “같은 계열사”라고 선전했던 흔적도 있다. 하지만 이 후보측은 “그건 김 씨가 자기 회사 선전을 위해 이용한 것일 뿐이며 금감원 조사에서 이 후보와 BBK는 무관하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고 하고 있다. 이 후보는 국회의원 시절인 94년 미 LA를 방문했을 때 김 씨의 부모와 누나(에리카 김 변호사·44)를 만났고, 이들로부터 “아들(동생)을 잘 봐달라”고 소개받았다고 말하고 있다.
사건의 개요
김경준 씨 관련 사건은 ‘BBK사건’이라고도 하고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사건’이라고도 한다. 김 씨는 2001년 4월 BBK가 금감원에 의해 문을 닫게 되자 미리 낌새를 느끼고 ‘광은창투’라는 회사를 인수해서 ‘옵셔널벤처스 코리아’라는 또 다른 벤처 투자회사를 만든다. 이 회사를 인수·확장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설을 유포하고 허위 거래로 주가를 조작한다. 김 씨는 거기서 챙긴 돈 384억 원을 미국의 유령회사로 빼돌린 뒤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주한다.
이 후보와의 관련성이 중요한 이유는 김 씨가 옵셔널벤처스를 인수하는 데 쓴 돈이 전부 BBK에 투자된 돈을 빼돌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BBK의 소유주였다면 BBK에 투자된 돈 수백억 원이 빼돌려져 다른 회사를 인수하는 데 쓰이고 주가 조작을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따라서 이 후보의 BBK 실제 소유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이 후보측은 “김 씨가 옵셔널벤처스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시기는 이미 이 후보와 동업관계가 정리된 뒤였다”고 말한다. 금감원이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한 날은 2001년 4월 2일, 이 후보가 동업을 깨고 LK-e 뱅크를 사직한 날은 4월 18일, 김 씨가 옵셔널벤처스 대표로 취임한 날은 4월 27일이라는 것이다.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는 이 후보의 큰형 상은 씨와 처남 김재정 씨가 대주주로 돼 있는 회사다. 이 회사는 이 후보가 김경준 씨와 LK-e 뱅크 동업을 시작한 직후인 2000년 3월부터 12월까지 총 190억 원을 BBK의 상품에 투자한다.
범여권에선 “다스 같은 중소기업이 그런 거액을 투자한 데는 이 후보가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반면 다스측은 삼성생명도 100억 원, (주)심텍도 50억 원을 투자한 것 등을 이유로 “당시에는 투자할 만한 회사였다”고 하고 있다.
다스는 이 후보의 친·인척 소유다. 심지어 이 후보의 ‘차명 회사’라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김경준 주가 조작·횡령사건에 이용된 회사는 ‘옵셔널벤처스’이고 그 회사를 인수하는 데 쓰인 돈의 대부분이 바로 이 다스의 BBK 투자금을 이용한 것이다.
김 씨 가족 기자회견 후 수사 혼란
검찰의 김경준 씨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김 씨의 가족이 지난 11월 20일 미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김경준 씨와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특수관계’를 입증할 지 여부로 관심을 모았던 김 씨 가족의 기자회견은 일단 ‘맥빠진 드라마’로 끝났다.
김 씨 가족이 이 후보가 친필 사인을 위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이면 합의서’ 원본공개를 거부한데다가 김 씨 누나 대신에 부인이 회견에 나서 관련 의혹을 소상히 해명하기보다 질의응답도 회피한 채 남편의 결백을 주장하면서 ‘눈물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당초 이날 회견은 그동안 김 씨의 입장을 적극 대변해온 김 씨의 누나 에리카 김 씨가 나설 것으로 예상됐으나 김 씨 가족은 회견 직전에야 김 씨의 부인 이보라 씨가 회견을 할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공지했다.
김 씨 가족은 회견 시작 직전 이 후보의 비서출신인 이진영 씨가 미 연방검찰 조사 증언 내용을 담은 DVD, 다스가 김 씨를 상대로 제기했던 소송의 판결문, 연방정부 재산 압류 소송 1차 소송 승소 판결문, 이 후보를 대표이사 회장, 김 씨를 사장으로 소개한 eBankKorea 홍보물 등을 회견문과 함께 배포했다.
이날 오후 1시20분께 호닉 변호사와 함께 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낸 이 씨는 남편의 결백과 이 후보가 BBK의 실질적 소유주라고 주장하는 회견문을 낭독해 내려갔으며 남편이 서울 구치소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대목에서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 씨는 “어느 한 곳에서도 제 남편인 김경준 씨가 사기혐의로 판결을 받았거나 주가조작을 범했다는 판결문이 없다”며 “판결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 제 남편을 국제금융사기꾼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왜곡된 표현”이라고 남편의 결백을 주장했다.
이 씨는 회견에서 김 씨와 이 후보가 만난 것이 2000년 1월이라는 이 후보의 주장과는 달리 1999년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이 후보 주장의 신빙성 문제를 우회적으로 지적했으며 현장에서 사전에 설치한 TV모니터를 통해 DVD에 담긴 이진영 씨의 증언내용을 방영하며 BBK가 이 후보 소유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위조된 것이라는 이 후보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날 회견은 김 씨 가족이 ‘이면계약서’ 원본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이 씨가 밝히면서 열기가 식었다.
한나라당은 김경준 씨 부인 이보라 씨의 기자회견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사실이 아무것도 없다”며 “한편의 코메디”라고 비웃었다. 한나라당은 에리카 김 대신 부인 김보라 씨가 기자회견을 진행했다는 점, 또 이면계약서라고 주장하며 사본만 슬쩍 내비췄을 뿐 서류를 공개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기자회견의 '영양가‘가 부족하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고 있다.
나 대변인은 “세상을 바꿀 것 같이 큰소리치던 에리카 김은 한국으로부터 범죄인 송환을 받을 것이 두려워 숨어버렸다”고 주장했다. 또 “이명박 후보가 BBK를 소유했다는 증거도, 후보가 주가조작 및 횡령에 가담했다는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후보의 결백이 오히려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은 특히 에리카 김 역시 주가조작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김경준 가족은 이 사건 범죄에 가담하거나 범죄이익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김경준과 같은 배를 탄 입장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
결국 BBK는 ‘한방’이 아니라 ‘헛방’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해 이 후보 대세론을 회복시키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반면 똑같은 기자회견을 놓고 신당 쪽의 해석은 전혀 다르다. 신당 최재성 대변인은 이보라 씨 회견에서 주식회사 다스 사장 김성우 씨와 이명박 후보의 비서 이진영 씨의 진술 장면이 공개된 것에 대해 “이명박 후보가 주가조작 횡령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근거”라고 주장했다. 에리카 김이 나서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최 대변인은 “기자회견의 주체가 김경준 씨의 누나 에리카 김이든, 부인 이보라 씨든 그런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공개된 내용이 중요한 것”이라며 “검찰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사건의 본질을 규명해 국민들에게 수사결과를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경준-이 후보측의 상반된 주장
김 씨 가족의 기자회견은 이 후보가 BBK투자자문이란 회사를 실제로 소유했다는 게 회견 내용의 핵심. 이를 증명하기 위해 김 씨 가족은 이 후보의 이름이 적힌 BBK의 명함과 홍보물, 이 후보 비서의 법정 증언이 담긴 DVD 등을 공개하기도 했으나 의혹의 열쇠인 '이면계약서'는 끝내 내놓지 않았다.
이날 김 씨 가족이 이 후보가 BBK의 실제 소유주란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놓은 주요 근거는 4~5가지 정도이지만 이 후보측은 “이미 수차례 해명한 내용”이라며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먼저 이 후보와 김 씨가 처음 만난 시점부터 양측이 주장이 갈린다.
김 씨 가족은 이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시기가 BBK가 설립된 1999년 4월 이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확한 날짜와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반면 이 후보 측은 이 후보는 1999년 미국 워싱턴에서 연수중이었고 2000년 1월 서울에서 김 씨를 만났음을 재확인했다. 박형준 대변인은 “아무리 허위 주장을 한다고 해도 6하 원칙에 맞게 해야 그래도 덜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씨 가족은 또 LKe뱅크, BBK, EBK의 대표이사 직함이 기재된 이 후보의 명함 및 홍보물의 존재를 시인한 이 후보 여비서의 미국 법정 증언을 근거로 “이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후보 측은 당시 이 후보가 대표이사였던 LKe뱅크가 EBK, BBK와 영업상 관련된 회사였던 만큼 김경준이 홍보를 위해 임의로 이 같은 명함이나 홍보물을 만들었을 수 있으나 실제 사용되지 않은 것들이라고 반박했다.
나 대변인은 “명함과 브로슈어는 일부 위조됐고, 일부는 존재는 했지만 폐기된 것들”이라며 “당시 EBK를 김경준과 함께 만들기로 추진하던 때이므로 김경준이 그런 명함 등을 만들었을 수는 있으나 사용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다스가 BBK에 190억 원 전액을 실제 투자했는 지 여부와 김 씨의 사기?횡령 여부 등을 놓고도 양측의 주장은 달랐다.
김 씨 측은 지난 8월 미국에서 진행된 다스의 투자금 반환소송에서 승소, 횡령과 사기 혐의가 무죄임을 입증했다고 언급하면서 특히 다스 측이 2000년 12월말 투자했다는 80억 원(190억 원의 일부)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는 점 등이 다스가 190억 원 전액을 투자하지 않은 증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2001년 12월 다스의 이상은 회장이 BBK로부터 50억 원을 돌려받은 뒤 다스와 BBK간 채무관계가 정리됐다는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 측은 다스가 190억 원을 BBK에 분할 투자한 근거 서류를 모두 완벽하게 검찰에 제출해 소명한 상태이며, 다스와 BBK의 채무관계 정리 계약서는 투자액 190억 원 가운데 50억 원만 상환 받았다는 점을 증명하는 서류라고 강조했다.
나 대변인은 다스의 투자금 반환소송 패소와 관련해 “이전 미 연방검찰이 제기했던 김씨의 재산 몰수 소송에서 증인의 진술증거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해 패했던 결과가 투자금 반환소송에도 기속됐을 뿐 BBK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영문판 ‘이면계약서’ 3장에 이 후보의 친필 사인이 돼있다는 김씨 측 주장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날 회견에서 김 씨 가족은 이미 검찰에 제출했다는 영문계약서 3부에 이 후보의 친필 사인이 돼있다면서 “이는 사이드 어그리먼트(이면 계약)를 맺음으로써 증권회사(BBK)의 모든 주식을 이 후보의 LKe뱅크로 되돌리는 서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측의 박형준 대변인은 “그런 계약서가 있다면 이 후보의 사인이 돼있는 LKe뱅크와 A.M.파파스(김경준이 만든 유령회사)간 주식거래계약서를 위조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조작한 서류가 아니라면 이 후보는 그런 서명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김 씨 측은 다스 김성우 사장이 BBK의 임원진 구성이나 주주 현황 등 회사의 상황을 전혀 모른 채 BBK에 투자를 결정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미국 법정에서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 대변인은 “김경준과 이보라 등이 2~3차례 경주의 다스 본사를 방문해 (BBK에 대한) 자세한 브리핑을 하면서 투자를 유도했고, BBK는 자세히 검토해 투자를 결정했다”면서”김씨 가족이 김 사장의 증언을 왜곡했다”고 반박했다.
변함없는 이명박 지지율
한편, BBK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이 후보 지지율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날 김 씨 측이 이 후보의 연루 의혹을 증명할 이면계약서를 제시하지 못해 이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38~45%선으로 14~18%를 얻고 있는 정동영ㆍ이회창 후보를 크게 앞서고 있다. 당초 BBK사건이 터지면 이 후보가 ‘한방에 날아간다’는 여권의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미 지난 8월 당 후보 경선에서 이 후보의 BBK사건 연루 의혹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 ‘예방주사’를 맞았다. 이 때문에 김경준 씨 송환 후 이 후보의 연루 의혹을 간명하게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올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김 씨 측은 이날 예상과 달리 이면계약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역시 헛방이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 후보는 이날 한나라당 창당 10주년 기념식에서 “(김경준 측 기자회견을) 안 봤다. 그런 거 볼 시간이 있느냐”고 반문하고 “진실과 정의가 살아 숨 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대선 구도가 2강2중”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아다닐 정도다. 여기서 ‘2강’이란 이 후보와 김경준 씨, ‘2중’은 이회창ㆍ정동영 후보를 뜻한다. 여론의 관심이 온통 이 후보 검증 공방과 김 씨에게 집중되고 있어 정 후보 측은 지지율 제고에 애를 먹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당의 정책 대결은 공염불이 됐다.
이 후보의 도덕성 검증에 ‘올인’하다시피 한 범여권의 전략이 자승자박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 후보의 ‘범죄’를 입증할 뚜렷한 물증이 나오지 않을 경우 대권을 내줄 수밖에 없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범여권이 사기꾼 한사람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폭탄을 한나라당에 던지려 하는데 자기 진영에서 터지는 오발탄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검찰이 12월 초 이 후보의 연루 가능성을 발표하면 대선 판세가 다시 소용돌이칠 가능성이 있다. 최재성 신당 의원은 “가족의 증언도 중요하지만 그동안 밝혀진 근거만으로도 검찰이 충분히 진실 규명을 할 수 있다”며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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