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 단일화 놓고 팽팽한 신경전, 민주당은 독자행보 체제로
범여권 대선후보 3명의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창조한국당 문국현 대선후보는 지난 11월 21일 전초전 성격의 기싸움을 벌였다. 한편,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신당과의 합당 및 단일화 논의에서 비켜난 채 ‘독자 행보’를 고수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동영·문국현 후보는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불교계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맞닥뜨렸다. 한나라당 이명박·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불참해 ‘본의 아닌’ 맞짱토론을 벌였다. 문 후보는 “정 후보는 (참여정부의 실정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며 참여정부 실정 책임론과 ‘정동영 한계론’을 제기했다. 이명박·이회창·정동영 후보로 굳어지는 ‘1강 2중’ 구도를 ‘4자 구도’로 만들려는 강수다.
정-문 깜짝 토론 눈길
후보는 “과거세력 집권 저지를 위해 단일화해야 한다”는 데 원칙적인 공감을 이뤘으나 속도에서는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토론 초반 단일화 관련 질문이 나오자 정 후보는 “국민 여러분이 우리의 입장을 들어 보고 공통점이 많으면 단일화를 시켜 달라. 현재까지는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문 후보는 “국민은 단일화를 원하는 게 아니라 참여정부 실정 재발 방지책을 듣고 싶어 한다. 내가 도와서 될 일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또 “실정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하고 정권 연장에 대한 야망을 버리면 길이 보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사회자가 문 후보에게 ‘석고대죄가 이뤄지면 단일화할 수 있다는 말이냐’고 묻자 문 후보는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하면 (단일화 협의 가능성을) 개방해 놓겠다”고 여지를 뒀다. 그러자 정 후보는 “많은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민생경제 양극화를 제대로 챙기지 못한 데 대해 다시 한 번 사과한다”고 말했다.
정 후보는 또 “과거세력에게 미래를 맡길 수 없다”며 “부패를 청산하고 평화와 투명경제를 새로 세워야 하는데 문 후보와 토론하고 그 바탕 위에서 협력했으면 한다”고 재차 자세를 낮췄다. 문 후보도 “정 후보 말대로 과거로 돌아가면 안 된다”고 화답했다.
물론 두 후보 간 서로에 대한 온도차도 감지됐다. 정 후보는 “문 후보를 정말 간절히 만나고 싶었다. 국가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문 후보가 필요하다”며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문 후보는 “건설부패를 바로잡지 못하고 재벌에 포위돼 중소기업을 위기로 몬 책임이 크다. 새로운 정치인이 나와야 한다”며 차별화를 꾀했다. 그러면서도 두 후보는 이명박 후보를 공격하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다. 두 후보는 “10년 전 오늘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로 경제주권을 포기했는데 한나라당은 나라를 망친 실정에 대해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또 “이명박 후보가 BBK 문제로 사기를 당했든, 사기 공범이든 후보 자격이 없다”(문 후보) “주가 조작과 탈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범죄”(정 후보)라고 몰아쳤다.
핵심 참모들도 뜨거운 기싸움을 벌였다. 문 후보측 고원 전략기획본부장은 국회에서 열린 ‘2007년 대선 승리를 위한 진보개혁 진영의 모색’ 토론회에서 “부패수구세력의 집권을 막는 확실한 방법은 (창조한국당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세력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후보측 민병두 전략기획본부장은 이에 맞서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입한 것은 열린우리당의 약진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창조한국당이 기존 범여권과의 연합이나 연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는 반론이다. 양측은 기싸움 속에서도 공중파 방송사를 섭외하는 등 토론회 일정 논의를 진전시켰다.
정·문 후보간 ‘단일화 전선’이 그려지는 동안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신당측의 통합 재협상 제안에 “고려할 가치가 없다”며 독자행보에 방점을 찍었다.
신당-민주당 협상은 결렬
이인제 후보의 독자행보는 결국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당 대 당 통합 협상이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당 오충일 대표는 당산동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표와 협상단장이 참여하는 4자회담 또는 후보를 포함한 6자회담을 제안한다"며 "민주당이 전당대회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결단을 내린 데 대해 높이 평가하며 이제 남은 문제들 또한 대화를 통해 원만한 합의에 이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이날 오전 정동영 후보와 의견을 조율한 뒤 이 같은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주당은 오 대표의 대화재개 요구를 즉각 거부했다. 유종필 대변인은 오 대표의 기자회견 직후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지난 12일 양당 후보와 대표가 연대 서명해 국민 앞에 발표한 합의문을 휴지통에 넣어버린 신당의 대표와 후보는 어떠한 제안을 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다"며 "신당은 합의를 파기한 데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신당측이 제시한 의결기구 '7 대 3' 구성안을 "민주당과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면서 "전당대회 시기를 당초 합의한 6월보다 앞당겨 실시하되, 의결기구 구성비율은 5 대 5 합의가 지켜져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당측은 이날 밤 원로와 중진의원들을 총동원해 다각도의 경로로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이인제 후보측을 상대로 물밑 접촉을 시도하고 있으나 뚜렷한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양당의 통합협상이 결렬국면에 처하면서 이번 협상을 주도해온 신당 정동영 후보가 특단의 결심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정 후보 측 한 의원은 "정 후보가 상황을 주시하면서 정치생명과 후보직을 거는 각오로 강도높은 결단을 내리는 방안도 고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선 공천지분 축소를 우려한 신당 의원들의 반발이 워낙 커서 정 후보가 이를 돌파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양당의 통합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범여권이 분열된 채로 대선에 임할 경우 현 지지율 순위로 볼 때 한나라당 이명박, 무소속 이회창 후보 등 보수진영 후보들에 대한 상대적 열세를 극복할 전기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범여권에서는 차선책으로 후보등록 후 선거연합 형태로 단일화를 추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으나 범여권의 특정 후보가 당선 가능권에 들어갈 정도로 지지율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이와 관련,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서울 대방동 서울여성프라자에서 열리는 '농업회생을 위한 농촌지도사업' 세미나에 참석한 뒤 ‘대선장애인연대’ 후보자 초청 토론회에 참석하는 등 독자행보를 재개했다.
이런 가운데 정 후보와 문후보측은 이날 오후 실무협상팀간 협상에 본격 착수, 신당과 창조한국당, 시민사회 등이 참여하는 연석회의와 후보등록전 TV 토론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양측은 TV토론회를 통해 연합정부와 권력분점, 분권형 개헌을 고리로 후보 단일화를 꾀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제를 놓고 정 후보측은 ‘비정규직 문제 등 2007년 대선 쟁점은 무엇인가’와 ‘누가 후보가 되야 하느냐’하는 의제를 다루자고 문 후보측에 제안했으나 문후보측은 참여정부 공과에 대한 평가와 정 후보 사퇴문제를 논의하자고 맞서고 있어 최종 합의점을 찾는데는 난항을 겪고 있다.
신당,범여 연합정부 추진
한편, 대통합민주신당이 지지층 복원과 반(反)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위해 범여권 연합정부 구성을 추진 중이다. 연합정부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나 1997년 DJP 연합방식을 넘어선, 정책연합을 통한 권력분점 정부를 의미한다.
신당은 지난 11월 21일 연합정부 구성을 포함한 정책연합 토론회를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에게 공식 제의했다. 정동영 후보 선대위 최재천 대변인은 “TV토론 등 문 후보의 토론제안을 포함해 향후 정치일정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공식 협의를 오늘부터 시작하기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문 후보는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정 후보는 사퇴해야 한다”면서도 “참여정부와 신당의 공과, 정 후보 사퇴문제, 단일화 문제까지 모두 토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연합정부 구성 방식으로는 정책노선 공유를 위한 토론→정책 및 공약 합의→후보 단일화→연합정부 추진위원회 구성 및 예비내각(섀도캐비넷) 발표→대선→공동 인수위원회 구성 등의 시나리오가 검토되고 있다. 특히 정책노선과 관련해 비정규직 해법, 사교육비와 부동산 대책, 반부패 대책, 중소기업 중심 성장노선, 남북 문제, 중임제 개헌 등 5∼7개가 주요 의제로 논의될 예정이다.
신당 민병두 선대위 전략기획위원장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연합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 대토론회'에서 "지금은 어느 누구도 단독으로 승리의 전망을 세우기 어렵다"며 "정책목표를 공유하고 연합과 연정을 4∼5년간 지속할 안정적 구조를 담보해 내기 위해 공개적인 토론회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합정부의 주요 대상인 문 후보와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아직까지 적극적이지 않아, 실제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복잡한 범여권 연합정부 구상은 국민적인 요구가 높지 않은 상층부로부터의 연합이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도 있다.
신당 이인영 의원은 "신당과 창조한국당, 민주노동당 모두 단독 집권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가치연대를 통한 연합정부에 대한 요구들이 높아질 것"이라며 "정책적 부분에 대한 세 후보간 차이는 조정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부동층
한편, 대선이 다가올수록 부동층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면서 대선정국이 혼돈에 빠졌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 결과 부동층이 20%를 상회하고 있다. 부동층 비율은 11월 3째주를 고비로 10월 보다 배 가까이 불어났다. 이에 따라 대선 캠프마다 어디로 쏠리지 모를 ‘부동층 향방’을 추적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도 이번 부동층급증 기현상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 대선을 한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부동층이 불어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는 것.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부동층은 10%대 중반이던 것이 20% 대에 육박했다. 또 부동층이 20∼50대로 다양한 분포층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번 대선의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기현상의 원인으로 3가지 변수를 꼽고 있다. BBK사건, 이회창 출마, 갈피 못잡는 범여권 단일화 등이 표심을 정신없이 흔들어놓고 있다는 것. 이중 무소속 이회창 출마 변수는 이미 이명박-이회창-정동영 후보구도를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BBK 변수와 범여권 단일화 변수가 부동층의 향방을 결정지을 것으로 관측된다.
부동층 표를 잡아라
우선 BBK의 핵심인물 김경준 씨가 제출한 ‘이면계약서’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친필서명 진위 여부에 따라 부동층의 향방은 크게 엇갈릴 전망이다. 지지자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부동층에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는 쪽은 무소속 이회창 후보측. 부동층의 대부분이 보수 유권자라는 것이 이 후보쪽의 분석이어서 주목된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측도 이번 대선의 향방을 가를 부동층 사냥에 나서고 있다. 정 후보측은 그러나 후보단일화 카드로 부동층 표심을 유혹하려던 대선 전략은 최근 깨졌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는 독자출마를 선언한데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정 후보를 겨냥해 “참여정부 실정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공식 요청한 상태다.
그러나 후보단일화 움직임은 11월 21일까지 꿈틀대고 있다. 막전막후의 부동층 소용돌이가 범여권을 휘몰아치고 있는 셈이다.
부동층은 어떤 형태로든 ‘쏠림현상’을 빚어낼 공산이 짙다. 지지자를 찾지 못한 부동층의 유권자들은 ‘부하뇌동’하는 속성이 강하다는 게 여론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부동층은 무관심 표심을 자극할 공산이 짙다. 투표장으로 향하는 부동층은 그만큼 늘어나는 셈이다.
현재 한나라당 이 후보는 ‘BBK 의혹’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견조한 독주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또 무소속 이회창 후보와 신당 정 후보는 좀처럼 상승의 모멘텀을 마련하지 못해 서로 2위 자리를 놓고 혼전 양상을 빚고 있다. 이번 대선은 부동층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