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대가 뿌리 내린 화교, 더 이상 이방인 아니다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화교와 한국인들이 하나로
한국화교의 역사는 올해로 102년. 20세기 초와 해방 전후에 이주한 1세대가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2, 3세대가 주역이 됐다.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대만국적을 가진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중수교로 이들은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남모르는 이방인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지난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대구시 중구 종로 가구골목 화교거리 일대에서 열린 ‘2007 대구화교중국문화축제’는 이들의 어린마음을 달래주는 기회의 장이 됐지만, 아직 못 다한 슬픔이 충만해 있다. 본지는 이번 행사를 주최한 대구화교협회 이지강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대구에도 차이나타운 건립을
지난 2007년 10월 12~14일 대구 화교거리 일대에서 ‘2007 대구화교중국문화축제’가 열렸다. 전통공예와 의상, 차 시음 등의 전시홍보회와 자장면, 청도맥주, 만두먹기대회가 열리는 등 중국전통악기와 경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행사는 오는 2008년 북경올림픽과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홍보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국 속의 중국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이 됐다. 특히 화교정착 102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축제라 더욱 빛을 발했다. 이지강 회장은 “매년 실시하고 있는 행사지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화교들의 위상을 드높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라며 “앞으로 부산, 인천과 같은 ‘차이나타운’을 한시바삐 건립해 한국에서 가장 으뜸가는 축제로 변모시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임기동안 꼭 성사시키고 싶다는 ‘차이나타운’ 건립은 대구 화교 1,000여명과 경북지역 화교 800여명을 한자리에 모으는 자리가 된다. 특히 관광명소가 부족한 대구에는 볼거리와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일등공신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회장은 “현재 구체적인 청사진은 그려졌습니다. 아직 상세히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화교들의 투자 약속과 대구시의 협조를 받은 상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인과 동등한 대우 부탁
“한국의 화교들은 경제개발 연대로 불리는 1970년대 이래 국내에서 화교 자본은 정부 규제에 눌려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화교계 자본이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한국에 정착한 화교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채 요식업에 종사하면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지강 회장은 화교들은 한국인들의 의무 중 병역의무만 빼고는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거래와 금융 거래, 학교 입학 등을 하는데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정부에서 화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법 체제를 정비하고 있지만, 부동산을 등기하려면 영문 성명에 대한 한글 성명 번역공증서를 제출, 동일 인물임을 입증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지강 회장은 “온 국민이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 사용은 가입절차가 까다롭고, 웹 사이트 이용을 하기 위한 주민번호 등록도 뒷자리가 5, 6으로 시작해 가입조차 할 수 없습니다. 또 신분확인이 안돼서 신용보증기금 이용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얘기입니다”라고 토로한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획득했지만, 오는 대선과 총선에선 선거자격이 없다. 그래도 화교들의 애로사항을 정부에서 점차 해결해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국경의 의미가 퇴색하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가 단위의 경쟁은 네트워크 단위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화교들은 특유의 근면성과 높은 교육열로 이미 각국에서 경제·사회적으로 탄탄하게 기반을 내렸다. 또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재가 각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는 민족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더이상 설 땅이 없다. 외국에 나가 살고 있으면 철저하게 그 사회에 동화(同化)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는 문화와 역사를 통해 화교들이 뿌리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본국과 이들을 이어주는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윈-윈’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화교와 한국인들이 하나로
한국화교의 역사는 올해로 102년. 20세기 초와 해방 전후에 이주한 1세대가 거의 사라지고 이제는 2, 3세대가 주역이 됐다. 그들은 한국에서 태어났어도 대만국적을 가진 외국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중수교로 이들은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남모르는 이방인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지난 10월 12일부터 14일까지 대구시 중구 종로 가구골목 화교거리 일대에서 열린 ‘2007 대구화교중국문화축제’는 이들의 어린마음을 달래주는 기회의 장이 됐지만, 아직 못 다한 슬픔이 충만해 있다. 본지는 이번 행사를 주최한 대구화교협회 이지강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봤다.
대구에도 차이나타운 건립을
지난 2007년 10월 12~14일 대구 화교거리 일대에서 ‘2007 대구화교중국문화축제’가 열렸다. 전통공예와 의상, 차 시음 등의 전시홍보회와 자장면, 청도맥주, 만두먹기대회가 열리는 등 중국전통악기와 경극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이번 행사는 오는 2008년 북경올림픽과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홍보하는 계기가 됐으며, 한국 속의 중국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시간이 됐다. 특히 화교정착 102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축제라 더욱 빛을 발했다. 이지강 회장은 “매년 실시하고 있는 행사지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화교들의 위상을 드높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라며 “앞으로 부산, 인천과 같은 ‘차이나타운’을 한시바삐 건립해 한국에서 가장 으뜸가는 축제로 변모시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임기동안 꼭 성사시키고 싶다는 ‘차이나타운’ 건립은 대구 화교 1,000여명과 경북지역 화교 800여명을 한자리에 모으는 자리가 된다. 특히 관광명소가 부족한 대구에는 볼거리와 지역경제를 살리는데 일등공신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회장은 “현재 구체적인 청사진은 그려졌습니다. 아직 상세히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세계 각국에 퍼져있는 화교들의 투자 약속과 대구시의 협조를 받은 상태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인과 동등한 대우 부탁
“한국의 화교들은 경제개발 연대로 불리는 1970년대 이래 국내에서 화교 자본은 정부 규제에 눌려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화교계 자본이 다시 살아나고 있지만, 한국에 정착한 화교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지 못한 채 요식업에 종사하면서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지강 회장은 화교들은 한국인들의 의무 중 병역의무만 빼고는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거래와 금융 거래, 학교 입학 등을 하는데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정부에서 화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법 체제를 정비하고 있지만, 부동산을 등기하려면 영문 성명에 대한 한글 성명 번역공증서를 제출, 동일 인물임을 입증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지강 회장은 “온 국민이 들고 다니는 휴대전화 사용은 가입절차가 까다롭고, 웹 사이트 이용을 하기 위한 주민번호 등록도 뒷자리가 5, 6으로 시작해 가입조차 할 수 없습니다. 또 신분확인이 안돼서 신용보증기금 이용은 꿈에도 꿀 수 없는 얘기입니다”라고 토로한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투표권을 획득했지만, 오는 대선과 총선에선 선거자격이 없다. 그래도 화교들의 애로사항을 정부에서 점차 해결해주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국경의 의미가 퇴색하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국가 단위의 경쟁은 네트워크 단위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화교들은 특유의 근면성과 높은 교육열로 이미 각국에서 경제·사회적으로 탄탄하게 기반을 내렸다. 또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인재가 각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는 민족 개념도 달라져야 한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더이상 설 땅이 없다. 외국에 나가 살고 있으면 철저하게 그 사회에 동화(同化)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부는 문화와 역사를 통해 화교들이 뿌리의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본국과 이들을 이어주는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윈-윈’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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