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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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
  • 이미선 기자
  • 승인 2019.09.2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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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라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당신에게

"여기 굉장히 행복해 보이는 여자가 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토끼 같이 귀여운 아이들에 아주 듬직해 보이는 남편까지 '스마일' 미소를 짓고 있다. 게다가 그 여자에겐 번듯한 직장도 있다. 유명하진 않지만 밥벌이치고는 꽤 괜찮다 쳐주는 곳이다. 아직 싱글이거나, 자녀가 없거나, 전업주부를 하고 있는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넌 정말 다 가졌어. 인생의 숙제를 모두 해결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어?" 하지만 그들은 모른다. 어떤 스릴러물은 이렇게 '완벽해 보이는 웃음'이 전주가 된다는 사실을!"

저자 이승주 | 출판사 책들의정원

[시사매거진=이미선 기자] 지난 수십 년 사이, 대한민국에서 '여성'의 위치는 매우 달라졌다. '남아 선호'는 옛말이고 젊은 부모들은 '딸바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의 진학률을 앞선 지는 10년도 훌쩍 넘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요즘도 남녀차별이 있다고?" 그러나 이러한 차별은 주로 결혼과 함께 찾아온다. 돈벌이는 반반 부담하고 있지만 남편은 가사를 '돕는다'고 말한다. 여성의 본가는 '처가'지만 남성의 본가는 '시댁'이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이 느낌은 육아를 시작하며 두 배로 커진다.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이라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아이 봐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체력이 달린다는 친정 부모님에게 사정해서 아이를 맡겨놓았지만, 내 아이인데 주말에만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내가 과연 이 아이의 부모가 맞는가" 하는 회의감을 느낀다. 어찌어찌 몇 년 키워서 보육시설이라도 보내면 끝일 줄 알았는데,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가 났다며 걸려오는 전화에 회사 일을 내팽개치고 '응급 출동'해야 하는 것 역시 아빠가 아닌 엄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보니 직장 상사는 대놓고 "넌 열외야"라는 시선을 보낸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고, 퇴근 후 술자리에서 친해져보려고 해도 잘 끼워주지 않는다. 승진 심사 시즌이 되면 "아무래도 가장을 먼저 챙겨줘야 맞지"라며 이름을 뺀다. 물론 여기서 가장이란 '결혼한 남자' 혹은 '결혼할 남자'를 뜻한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가계에 대한 부담 없이 출근하는 여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호주제는 사라졌는데, 왜 아직도 직장에서는 남성만이 가장으로 인정받는가.

이 책을 읽다보면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일상 속 순간들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왜 '립스틱 좀 바르고 다니라'던 직장 상사의 막말 앞에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스스로에게 '슈퍼우먼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을 걸고 있었을까. 나는 왜 시댁의 채워지지 않을 기대에 부응하는 며느리가 되려고 발버둥쳤을까. 나는 왜, 나는 왜 나 자신을 내 삶의 중심에 두지 못했을까.

평범한 여성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 의문들은 누군가에 의해 입 밖으로 내어질 때 비로소 나 혼자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사실은 같은 고민을 안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며 우리는 위안과 용기를 얻게 된다. '나 하나만 참으면 괜찮을 줄 알았어'의 이승주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요. 당신은요?" 이 질문에 이번에는 우리가 답변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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