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삶과 소설 속에 그려진 한국 근현대사의 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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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삶과 소설 속에 그려진 한국 근현대사의 궤적
  • 취재_오경근 칼럼니스트 / 사진_이관우 기자
  • 승인 2019.09.0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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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경리, 28년간 원주 거주하며 <토지> 완성하다

(시사매거진257호=오경근 칼럼니스트) 서울 한남IC에서 분당수서간고속화도로 성남 광주 방면을 지나 광주원주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원주방면에서 경기광주휴게소와 접하게 된다. 그곳에서 잠시 더위를 식힌 후 양평휴게소를 지나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원주IC를 지나면 1시간 30분 남짓한 곳에 푸른 녹원의 ‘강원도 원주시’가 위치해 있다. 특히 강원도 원주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2008년 5월 타계할 때까지 28년간 거주하며 토지의 완결본인 4부와 5부를 집필한 곳으로 그 가치를 획득한다.

강원도 원주시 토지길 1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 내에 있는 ‘박경리 문학의 집’  (사진_이관우 기자)

‘강원도(江原道)’를 대표하는 고장으로 조선초기인 1395년 태조 당시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의 첫 글자를 따서 지명을 정할 정도로 번성하던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 국토의 등줄기와 같은 백두대간 서남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남한강과 섬강을 경계로 경기도 여주군을, 남한강과 운계천을 경계로 충북 충주시를 접하고 있어 수도권과 산간벽지, 수도권과 영동지방을 잇은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과거에는 문막을 통해 원주로 진입했으나 현재는 광주원주고속도로 52번길을 통해 곧바로 가닿을 수 있다.

그러한 이곳 원주시 단구동에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의 최고 작품이라 평가받는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박경리문학공원(토지길 1번지)’이 위치해 있다. 비록 박경리 선생의 고향은 아니지만 2008년 5월 타계할 때까지 28년간 거주하며 토지의 완결본인 4부와 5부를 집필한 곳으로 그 가치를 획득한다.

무엇보다 대하소설 <토지>는 우리나라 가슴 아픈 근현대사의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변천 속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겪는 고난의 운명을 묘사한 데 큰 주목을 받고 있으며, 그들의 현실 극복 의지를 통해 민족의 한과 역사에 대한 총체적 조명을 집중하고 있어서 역사적, 문학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그럼으로 현재까지 여러 비평가들에게 한국 현대문단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이라 평가받고 있다.

박경리 문학공원 바로 내에는 박경리 선생이 거주하며 ‘토지’를 집필했던 옛집이 있다. (사진_이관우 기자)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속박과 가난의 세월 /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 박경리문학공원 내 박경리 문학의집 패널에서 -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1926년 10월28일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박금이, 1945년 진주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행도 씨와 결혼해서 그 해에 딸 김영주를 낳았다. 이후 1950년 수도여자 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 가정과를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죽고, 연이어 세 살 난 아들이 사망했다.

삶의 고통과 이별의 정한을 문학 창작활동을 통해 풀어가며 1955년 잡지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계산’이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등단했으며, 사회와 현실을 비판하고 인간성과 생명을 추구하는 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그중 1969년부터는 한국 근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대하소설 <토지>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4년 8월에는 집필 26년 만에 <토지> 전체를 탈고하게 된다.

무엇보다 박경리 선생은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시 단구동 1620-5번지로 이사와 살면서 <토지>의 결미인 4부와 5부를 집필한다. 하지만 1989년 그의 집이 원주시 택지개발지구로 편입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원형보존을 요구한 문화계의 건의에 따라 1999년 5월 ‘박경리문학공원(원주시 토지길 1)’으로 승격돼 선생의 옛집과 정원, 집필실 등은 물론 소설 <토지>의 배경을 옮겨놓은 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 등 3개의 테마공원을 새롭게 조성해 일반에 공개했다.

1992년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소설창작론을 강의했고, 1995년 같은 대학교 객원교수로 임용되었다. 1996년에는 토지문화재단을 창립하고 이어 1999년 토지문화관(원주시 흥업면 매지회촌길 79)을 개관하여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토지문화관은 문학인들에게 창작공간을 제공하고, 다양한 학술 문화 행사를 기획, 개최해 왔다. 2008년 5월5일 폐암으로 타계하여 고향인 통영시에 안장된 후 딸 김영주와 사위 김지하 시인이 관장을 역임하고 있다.

박경리 문학공원에는 토지의 배경인 하동 평사리 들녘이 연상되도록 나무를 심고 물길을 조성했다.(사진_이관우 기자)

대하소설 <토지>의 산실 ‘원주’, 박경리 선생의 문학혼 깃들다

원주는 박경리 선생이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2008년 5월 타계할 때까지 28년간 거주하며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칭송받고 있는 대하소설 ‘토지’(土地)를 완간한 곳이다. 그럼으로 고향인 경남 통영에 세워진 ‘박경리기념관(산양중앙로 173)’과 더불어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의 ‘드라마 최참판댁 촬영지(악양면 평사리)’ 등과 함께 박경리 3대 문학여행 길을 조성하고 있다.

박경리문학공원 내에는 소설 <토지>의 배경인 일제강점기 당시의 문학서적과 교과서 등 희귀자료가 비치된 이색적 ‘북카페’가 있고, 또한 그곳에 박경리 선생이 집필한 단편집과 시집을 비롯해 편지 쓰는 방법을 기술한 ‘서한문독습(1914년)’과 조선총독부가 펴 낸 ‘일본구어법 및 문법교과서’ 등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발행된 교과서 500여 점과 1900년대 초 발간된 문학서적 등 1,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그 외 ‘박경리 문학의 집’과 ‘박경리 자택’ 등이 보존돼 있다.

그러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이곳 원주로 오기 전인 1955년 8월 서울에서 <현대문학>에 김동리의 추천으로 단편 ‘계산’을 발표했고, 다음 해 단편 ‘흑흑백백’으로 추천이 완료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57년 단편 ‘신시대’로 제3회 현대문학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또한 1956년부터 1959년까지 단편소설 창작에 주력했다. ‘암흑시대’, ‘전도’, ‘벽지’, ‘영주와 고양이’, ‘도표 없는 길’, ‘어느 정오의 결정’, ‘비는 내린다’ 등의 단편소설이 <현대문학> <신태양> <사상계> <여원> <주부생활> 등의 매체를 통해 발표됐다.

1958년 첫 장편 <애가>를 <민주신보>에 연재한 후 1959년 2월부터 11월까지 <현대문학>에 장편 <표류도>를 연재하였다. 전후 전쟁미망인이 속물적 세계와 대면하면서 겪는 고통과 내적 성숙, 낭만적 사랑과 환멸을 그린 이 작품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1960년대 들어서 장편소설을 집중 발표한다. <성녀와 마녀>(<여원> 연재, 1960년 4월∼1961년 3월), 전작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유문화사. 1962), <파시>(<동아일보> 연재, 1964년 7월∼1965년 5월), 전작 장편 <시장과 전장>이 전쟁미망인 혹은 전쟁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그렸다면, <김약국의 딸들>은 통영이라는 특정 지역을 배경으로 역사적, 사회적 변동에 따른 한 가족의 몰락과 네 딸의 비극적 운명을 개성적으로 그려내 그 작품세계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1970년대 이후 작품 활동이 <토지>에 집중되었다면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말까지 작품의 주제들은 전후, 전쟁미망인, 인간의 소외와 존엄, 낭만적 사랑의 추구와 좌절로 요약된다. 또한 1994년 원주에서 완결한 <토지>는 장장 26년에 걸친 집필기간과 더불어 5부 20권, 원고지 3만 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과 함께 지난 세기를 대표하는 대하소설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19세기 말에서 시작해 해방 공간까지 끌어안는 시간적 배경과 경상남도 하동의 평사리에서 시작해 만주와 서울 도쿄 등지로 방사선형으로 뻗어나가는 공간적 배경이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 또한 등장인물인 윤 씨 부인에서 시작해 아들(최치수), 손녀(최서희), 증손자(윤국·환국)에 이르기까지 이 소설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대지주 최참판댁의 4대에 걸친 모계 중심의 가족사가 큰 강물처럼 펼쳐지면서 독자의 의식을 압도한다.

최참판댁을 축으로 여러 가계의 흐름이 얽히고, 양반 토호, 농민, 목수, 포수, 노비, 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과 계층이 각양각색인 사람들이 어우러지며 펼쳐지는 이 소설은 개항, 의병항쟁, 동학운동, 병합, 독립운동 등 한국 근대인의 삶을 규정한 파란과 격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한국인의 삶의 터전과 그 속에서 개성적인 인물들의 다양한 운명적 삶과 고난, 의지가 민족적 삶으로 확대된 한국의 수작 <토지>. 그 속에 그려진 등장인물처럼 각고의 인내, 용기와 집념의 역정을 살아 온 소설가 박경리는 ‘원주’라는 새로운 터전에서 텃밭에 채소농사를 지으며 1994년 8월15일 새벽 2시에 <토지>를 완성해 원주의 문학혼이 되고 있다.

박경리 문학의 집 옆에 있는 원형의 건물 앞에는 “편지 쓰는 즐거움”이란 글과 함께 빠알갛게 생긴 느린 우체통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우체통은 누군가에게 나누고픈 이야기를 적어보내는 곳으로 6개월 후에 받아 볼 수 있다고 한다.(사진_이관우 기자)

한국최초 세계문학상 제정한 ‘박경리문학상’ & ‘관광 원주’의 미래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표류도’로 제3회 내성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65년 ‘시장과 전장’으로 제2회 한국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토지> 1부로 1972년 제7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했고 이어 1990년 제4회 인촌상을 수상했으며 1994년 <토지> 완간을 계기로 이화여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에서 올해의 여성상 수상, 유네스코 서울협의회에서 올해의 인물 선정 등의 기록을 남겼다.

그리고 1996년 제6회 호암예술상을 수상했고,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메달(Gabriela Mistral Commemorative Medal)을 수여했다.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이어 그의 사후인 2011년 한국 최초의 세계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이 제정되었으며, 1회 수상자인 최인훈을 시작으로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러시아), 메릴린 로빈슨(미국),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응구기와 티옹오(케냐) 등이 수상했다.

이러한 박경리 선생의 세계문학상 제정 쾌거에 힘입어 원주시는 ‘박경리문학공원’을 관광 명소로 지정하는 데 이어 주변 천년고찰인 구룡사와 강원감영, 치악산 상원사와 비로봉, 간현관광지, 영원산성, 용소막성당, 미륵산 미륵불상 등 원주 8경을 더욱 더 성심성의껏 관리 감독하고 있다.

무엇보다 원주에는 국보 제59호인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와 보물 제464호인 원주 흥법사지 삼층석탑 등 18개 국가지정문화재와 45개 강원도지정문화재가 존재해 문화적·역사적 자존감이 높다. 더불어 태백산맥 줄기에서 발원한 치악산국립공원은 물론 구룡산, 미륵산, 감악산 등 수많은 경관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한국의 문화·관광도시로 그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박경리 문학의 집 3층에는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사진_이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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