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력으로 석사를 하고 400억의 재산가가 되었다

[시사매거진/전북=박재완 기자] "에스 비전! 신 영상미학의 리더이자 멀티미디어의 진정한 주자로 영상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창조에 확실한 마인드가 있는 한 프레임에 승부를 거는 우리의 도전과 열정은 지금 이 시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내가 외우고 있는 에스비전의 홍보영상이다. 최영택 사장,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00년 쯤 되는 것 같다.
첫 인상은 목사님 같았다. 나는 그 때 수염을 기르고 다녀서 도사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었었다. 털보 감독이라고 부른 사람도 있었다. 전라일보의 유춘택 회장은 내 수염을 높이 평가해 주기도 했다. 서신동 광진산업아파트 분양 광고를 인연으로 유회장의 광고를 내가 거의 다 도맡아서 했었다.
"광진은 최고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습니다" 광진의 모토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최고이기에 선택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고마운 일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최영택 사장은 전북 김제출신으로 일찍 부친을 잃고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인물이었다. 1991년도에 프로덕션을 창립하고 2001년 까지 영상회사를 운영했다.
삼성동에 15층사옥이 있었다. 그 사옥에서 나는 검정고시로 대학 입학시험까지 패스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최사장은 한창 섹소폰을 연습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친형처럼 따랐고 나의 롤모델로 생각했기에 멋있어 보였다.
아무 것도 손에 가진 것 없었던 초등학교 중퇴 학력이 전부인 그가 대학을 패스하고 400억이 넘는 재산을 가진 재력가가 된 것이다. 실로 입지전적인 인물이 된 것이다. 에스비전이 프로덕션을 운영할 때는 관공서의 홍보영화 경쟁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에스비전은 강원도를 비롯한 관공서의 홍보영화를 두루 섭렵하고 국방부 홍보영화제작, 한국가스공사 홍보영화제작, 법원 홍보영화 제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홍보영화를 제작하였고, 대한민국영상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다. 실력으로 보나 매출로 보나 대한민국 영상회사의 최고라 할 수 있었다.
문득, 그런 그가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최사장을 만나봤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최영택 사장) "91년도에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내에서 영상사업부를 운영하게 됐죠. 수주를 많이 받았고 그 영향으로 관급영상제작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너무 많아서 다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가스공사, 도로교통안전공단, 국방부 등의 홍보영화를 제작했습니다"
"지금은 정년할 나이이기 때문에 취미생활로 음악을 하고 있고 부동산경매를 하고 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재테크에는 부동산밖에 없습니다. 영상회사를 할 때도 부동산에는 투자를 했었습니다"
"저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어서 자립심이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립으로 석사까지 했고 대학에서 2년 강의 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사업이든 국내외적인 변수가 많아서 사업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강남불패라는 말에는 공감합니다"
"시사매거진 매체는 오래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사매거진 전북본부가 영상제작시스템을 갖추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4차원산업혁명시대에 맞는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호랑이가 날개를 달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승승장구하시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