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측 “상관없다” 반응 속 배후설 주장, 대선 변수 작용 경계
이명박 후보는 지난 10월 18일 현재 미국에 수감돼 있는 이 후보의 ‘BBK 연루의혹’을 풀어줄 핵심인물인 김경준 전 BBK대표의 한국행 승인 소식을 들어야했다. 이에 이 후보와 그의 방패막이자 저격수를 자처하는 한나라당은 애써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명박 후보에게 과연 BBK 사건 수사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연루 의혹이 제기돼온 ‘BBK 주가조작’의 핵심 인물 김경준 씨의 송환이 가시화되고 있다. 검찰은 김 씨가 입국하는 대로 이 후보의 개입 여부에 대한 수사를 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어 대선 정국에 격랑이 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연방법원은 지난 10월 18일 미 연방 교도소에 수감된 김 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했다. 미국 법무부도 “김 씨의 한국 송환 연기에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미국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김 씨의 한국 송환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김 씨가 한국에 들어오는 시점이 관건이 되고 있다. 김 씨의 송환은 미국 법무부와 국무부의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심사기간은 최소 2주일에서 최장 60일이 걸린다. 대선을 2개월여 앞둔 상황이어서 김 씨가 언제 귀국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정치권의 이해관계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향후 6주일 정도면 송환절차가 마무리 돼 11월말쯤 들어올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BBK 사건’의 핵심 연루자인 김경준 씨가 곧 귀국할 것으로 보임에 따라 향후 검찰 수사의 범위와 강도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검찰 수사는 일단 두 갈래로 진행될 전망이다. 우선 수사의 본류인 김 씨의 주가조작 사건이다. 김 씨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에 주가조작과 횡령 혐의로 기소중지 돼 있는 상태다. 김씨는 2000년 투자자문사 BBK, 이 후보와 함께 설립한 LK-e뱅크 등의 법인계좌를 이용해 BBK 자회사인 옵셔널 벤처스코리아의 주가를 조작하고 투자자들의 돈 380억 원을 빼돌려 미국으로 도주했다. 미국 현지에서 체포된 김씨는 “BBK는 사실상 이 후보의 회사”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이며, 옵셔널 벤처스코리아의 주가조작에도 연관됐을 것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주)다스와 이명박 관련성 주목
김 씨는 또 이 후보의 차명재산 의혹 관련 핵심 참고인이다. 따라서 이 후보가 실소유주라는 논란이 일었던 ㈜다스 관련 수사도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다스와 이 후보의 관련성을 밝히지 못한 채 지난 8월 수사를 종료했다. ㈜다스는 BBK에 190억 원의 자금을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이 후보가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정치권에서 제기된 상태다. 검찰은 김 씨를 수사하면 ㈜다스와 이 후보의 관련성이 규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사 주체는 김 씨를 기소중지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나 이 후보의 차명재산 의혹을 수사한 특수1부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검찰은 통상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사하던 부서에 그대로 사건을 맡기는 일이 많다. 금조1부가 주가조작 사건을 맡고, 특수1부는 김 씨를 참고인으로 데려다 ㈜다스와 이 후보의 관련성만을 살펴볼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대검 중수부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대선을 목전에 둔 상황이어서 중수부가 전면에 나서기에는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파장을 고려할 때 수사의 기밀성과 신속성, 공정한 수사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점이 부각된다면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 “김경준 관심없다”
한나라당은 김경준 씨의 대선 전 귀국이 가시화된 것과 관련해서 역시 정 후보 측근 개입설을 제기, 상대의 다른 의도만을 의심했다. 지난 10월 18일에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소재 미 연방 제9 순회항소법원 재판부가 이명박 후보의 ‘BBK 연루의혹’을 풀어줄 핵심인물로 지목돼온 김경준 씨의 한국 송환을 승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당초 김 씨 측이 제출한 인신보호 청원 항소 각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김 씨의 신병 처리에 외교적인 문제가 걸린 김 씨가 한국으로 정식 인도되기까지는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법원 결정 후 60일 이내에 미국을 떠나도록 돼있기 때문에 김 씨의 귀국 시기는 11월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그러자 이 후보 측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면서도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는 한편 이와 관련한 여권의 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대해 경계태세를 갖췄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초지일관 상대의 배후설만을 강조했다.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생각할게 뭐 있겠느냐, 별로 생각하고 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을 회피했던 이 후보는 지난 20일 한국노총 경기도본부 체육대회에 참석해 “대한민국에서 죄를 저질렀으면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법의 조치를 받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을 관망하는 듯한 발언으로 김경준 씨 귀국과 자신의 무관함을 강조한 것. 이에 앞서 10월 19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한나라당은 아무 거리낄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오히려 한방을 노리며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여권에 검찰이 부화뇌동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이와 관련한 여권의 공세에 날을 세웠다. 또한 선대위의 몇 핵심 관계자들은 김 씨의 귀국에 대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 된다”며 하나같이 배후설을 주장했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역시 연합과의 전화통화 중 배후설을 거론, “김 씨를 대선정국의 마지막 카드로 이용하기 위해 범여권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으로 안다”며 범여권 개입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주신당, 이명박 후보 의혹 재점화 태세
이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되기 전 신당 의원들의 입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들은 네거티브 한 방이면 갈 수 있는 취약한 인물들”(이강래 의원, 3월), “박근혜나 이명박이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중요자료들을 갖고 있다”(장영달 의원, 6월)는 말이 솔솔 흘러나왔다. 그러나 12월19일 대선을 불과 두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말들은 이제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 국감을 하겠다”며 신당이 내심 큰 기대를 걸었던 국정감사에서도 국민과 언론의 눈길을 끌만큼 새로운 쟁점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무자격업체의 특혜 분양 의혹을 불러일으킨 상암동 DMC 사건의 경우 서울시 국감이 열릴 때까지 논란이 물밑으로 가라앉았고, 강기정 신당 의원이 제기한 이 후보의 건강보험료 탈루 의혹도 이 후보의 도덕성 문제를 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신당은 국회 재경위의 국세청 국감에서 이 후보의 BBK 의혹을 재점화 시킬 태세다. BBK는 이 후보와 한때 동업자 관계였던 재미사업가 김경준 씨가 설립한 회사로서 한나라당 경선 국면에서 도곡동 땅 실소유주 논란과 함께 이 후보를 괴롭혔던 양대 쟁점 중 하나였다. 미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 씨가 국내 송환을 앞두고 “BBK의 실소유주는 이 후보”라는 주장을 계속 하고 있어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이 후보가 이 문제로 발목이 잡힐 공산이 크다. 이에 김효석 신당 원내대표가 국감 대책회의 자리에서 BBK 문제를 직접 꺼내들었다. 김 원내대표는 한 시사주간지 기사를 인용해 “이 후보가 2001년 LK이뱅크의 주식을 팔 때 세금을 탈루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가 2001년 2월 LK이뱅크 주식 66만 6천주를 외국계 회사(A.M.파파스)에 100억 원에 팔아 33억 3000만원의 차액을 남겼음에도 양도소득세와 증권거래세 등을 포함해 3억 8,000만 원 가량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게 기사의 골자다. 이 후보와 김경준, A.M. 파파스 사이에 있었던 ‘이상한’ 주식 거래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 후보와 김 씨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김효석 원내대표가 세금에 대해 잘 모르면서 주간지 기사만 보고 의혹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나경원 대변인은 “이 후보가 2001년 2월 인터넷 증권회사인 EBK증권중개의 설립을 위한 최소 필요 자본금 100억 원을 조달하기 위해 김 씨의 소개를 통해 LK이뱅크의 주식을 A.M. 파파스에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해 3월 금융감독원 조사를 통해 김 씨의 불법 행위가 밝혀지면서 EBK증권중개의 설립이 무산되고 6월 26일 LK이뱅크의 주식 양도 계약도 해제돼 주식매각 대금 전액을 돌려받았다는 얘기다. 나 대변인은 “주식매매 계약 해제로 주식대금 50억 원을 돌려받았고 이 과정에서 어떠한 양도 차익도 발생하지 않았으니 세금탈루 주장은 얼토당토 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의 신경전은 국감기간 내내 정무위(금융감독원)·법사위(법무부·검찰) 등에서 펼쳐질 ‘BBK 공방’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판도라의 상자 열까
논란의 중심에 선 김경준 씨는 서둘러 귀국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 심산이다. 김 씨는 지난 8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BBK와 LK이뱅크, 이뱅크중권중계 등 3개회사의 지분이 모두 이 후보의 소유라는 것을 증명하는 주식거래계약서의 존재를 밝힌 바 있다.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이 정밀감정을 통해 계약서에 있는 이 후보의 서명이 진짜인지 여부를 가려야 하겠지만, 한나라당이 김씨를 ‘위조 전문가’로 몰아세울 경우 BBK사건의 진실은 영영 미궁에 빠질 수도 있다. 이 후보는 이 같은 논란을 뒤로 한 채 민생행보에 전념을 가하고 있다. 지역에 상관없이 전국적인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려던 이 후보의 구상이 호남 출신 정동영 후보의 등장으로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호남에서도 지지율 1위를 달렸지만 정 후보가 신당후보로 나서자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정동영, 문국현에 이어 3위로 주저앉았다. 이 후보는 김 씨의 귀국과 관련해 “순리대로 법대로 대한민국에서 죄를 저질렀으면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조치를 받는 게 좋다”고 담담하게 심경을 밝혔다.
BBK 의혹 사실이면, 26.4% “지지 철회”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이 올 대선에 미칠 영향을 물었다. “BBK 주가조작 의혹에 이명박 후보가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어본 결과 이 후보 지지자의 26.4%가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답했다. 19.9%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계속 지지하겠다고 밝힌 이들은 53.7%에 달했다.
이번 조사에서의 이명박 후보 지지율 54.2%를 감안하면, 만약 이 후보가 BBK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적어도 10% 이상의 지지자가 빠져나간다는 계산이 나온다. 관망적 입장을 밝힌 이들 가운데 일부가 지지 철회에 동참할 경우 40% 이하로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 후보가 주도하고 있는 대선 구도가 흔들릴 수 있는 잠재적 변수임이 확인된 셈이다.
이 후보 지지자 중 이처럼 조건부 철회 의사를 밝힌 유권자는 연령별로 20대, 직업별로 화이트칼라와 학생, 지역별로 광주?전라, 부산?울산?경남 등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 후보의 높은 지지율이 전통적인 한나라당 지지층을 넘어선 외연 확대의 결과라면, BBK 사건은 이 후보 지지층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한 계층을 허물 수 있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 후보에 대한 강한 지지 의사를 밝히 이들 가운데 19%가 조건부 철회 의사를 밝힌 반면 이 후보 지지 강도가 약한 응답자 가운데는 31.6%가 연루 사실이 확인될 경우 지지를 철회하겠다고 답했다.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세론 속에서 8월 경선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당내 통합을 이뤄내고 있지만 BBK 의혹 사건의 상황 전개에 따라선 당내 통합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음을 이번 조사 결과는 말해 주고 있다.
이명박 "김경준 언제 오든 상관없다"
한편 이명박 후보는 미 연방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김경준 전 BBK 대표의 대선 전 귀국설에 대해 “언제 오든 상관없다”며 거듭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후보는 경기 구리시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한국노총 경기본부 체육대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순리대로, 법대로, 대한민국에서 죄를 저질렀으면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조치를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0월 19일 검찰이 자신을 비롯한 당 지도부 인사들을 청와대 명예훼손 고소건의 피고소인 자격으로 출석을 요청한 데 대해선 “아직 실제 조치가 이뤄진 것이 없다. 이뤄지면 그때 가서 답변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와 관련, 강재섭 대표는 “청와대가 고발했다는 것은 대통령이 고발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고발인인 대통령이 수사 원칙에 따라 먼저 검찰에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검찰 조사에 응한다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도 검찰 조사에 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