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빠른 자립생활지원을 위한 보완된 대책이 시급
2007년 5월 1일부터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의 예산으로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시행이전 시범사업으로 극히 일부의 중증장애인에게 제공되긴 하였지만, 전국적으로 본격적인 사업으로서 활동보조서비스가 한국사회에 첫 출발을 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시행초기부터 예산의 문제, 대상을 정하는 문제, 서비스 시간의 적정성 등을 두고 관계부처와 장애인단체간 이견이 두드러지며 불안하게 출발한 제도의 시행이 6개월째를 맞고 있다.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제도는 장애로 인해 포기하거나 비장애인에 비해 몇 배 내지는 몇 십배의 노력을 통해서만이 영위가 가능했던 일상생활 및 사회활동의 영역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유급의 보조인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고통과 시련을 안고 출발한 제도
2005년 12월 경남 함안에서 근육장애인 조모 씨가 한 겨울에 보일러파이프가 터졌는데도 대처하지 못하고 동사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활동보조 지원제도 도입의 공론화를 위한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장애인단체는 서울에서 43일간의 노숙농성, 인천에서 14일간의 노숙농성, 대구에서 43일간의 노숙농성, 경기도에서 78일간의 노숙농성을 통해 각 지자체로부터 중증장애인의 권리보장과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의 약속을 받아냈다. 그리고 2007년 1월, 보건복지부가 활동보조사업의 전국적 시행을 위한 사업지침을 공개하였다. 그 내용은 18세 이상 1급 장애인만, 그리고 차상위 200%까지의 저소득층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제공시간 계획은 최대 월80시간이었고, 차상위 120%까지는 10%, 그 이상은 20%의 본인부담을 부과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비롯한 장애인단체들은 ‘대상제한 폐지, 생활시간 쟁취, 자부담 폐지’를 목표로 다시 중증장애인 25인이 무기한 단식농성을 했고, 단식농성 23일 만에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으로부터 서비스 대상에 있어 가구소득기준 철폐, 연령기준 철폐, 그리고 제공시간에 있어 특례를 두어 기본생계유지에 필요한 장애인에 대해 월180시간까지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5월에 본 사업이 시행되면서 보건복지부는 약속을 파기했다. 자부담 문제는 결국 강행되었으며 6세 이하의 장애아동은 배제되었고, 18세미만의 장애아동은 절반의 시간밖에 못 받으며, 180시간까지 제공하겠다는 조항은 삭제되고 월 최대 시간은 80시간이 되었다.
기존과 제도는 다르지만 문제점을 안고 있어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제도는 근본적으로 기존 도우미서비스와 객체와 객체가 아닌 주체와 보조의 역할로 구분 지을 수 있고 도우미서비스가 도우미의 선의에 의해 일정에 따라 불안정하고 단절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았다면, 활동보조인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서비스를 필요한 모든 장애인에게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에 차이가 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도우미 제도가 가사나 간병 등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도움을 제공한다면, 활동보조 지원제도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실현이라는 이념에 기초해 모든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의 전 영역에 걸쳐 지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전 대덕구 법동에 사는 뇌병변 중증 1급장애의 최모 군(초4)은 카톨릭 사회복지회의 장애아 자원봉사경험이 풍부한 대학생 활동보조인으로부터 서비스를 받았다. 최 군의 부모는 “아이가 형들이 더 놀아주고 공부도 봐줘서 너무 좋아합니다. 엄마를 위해 오는 활동보조인이 아니라 아들을 위해 오는 보조인은 수영장도 함께 가고 병원치료, 산책 등을 함께하며 아들의 사회생활을 도와줘서 가사생활도 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같이 활동보조 지원제도는 가족의 육체적,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주어 장애인과 가족은 좀 더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게 하였다. 최군의 어머니는 시간적으로 자유로워져서 가족의 생활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으며 가족들이 거의 모든 시간을 장애인을 돌보는 일에 보내기보다는 자신의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활동보조서비스 이용 이후의 장애인의 삶은 이전과 비교하여 현격히 변화하였다. 행동의 영역이 넓어지고 신체적 기능이 향상 되었으며 장애인 본인 또한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한 통제력 행사가 증대되고 본인들의 장애에 대한 긍정적인 수용과 함께 자신감이 증대되었다. 대인관계가 확대되고, 가족 간의 관계의 이전의 의존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발전하여 장애인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의 삶을 영유하며 이끌어 갈 수 있는 주인이 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김경미 교수의 ‘활동보조서비스 성과 및 영향연구에 관한 연구’(공저 이익섭, 김동기)에 따르면 시범사업기간 성과분석을 해본 결과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장애인들의 주관적 건강상태가 향상되었고, 심리적인 자기의존도가 증가되었으며 지역사회참여 및 취업에 대한 자신감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군의 어머니는 “제도 자체를 모르는 분들이 많고 20시간으로는 너무도 짧고 아쉬운 시간입니다. 문제는 지역적으로 대상을 1급 중증장애인으로 한정시키고 있는 지역이 있는 반면 등급을 발달장애 3급까지 확대한 지역도 있어서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이 폭넓게 쓰지 못하는 것과 비용부담이 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라고 말하며 시행 2개월째인 서비스의 한계를 지적했다.
대구에 사는 김모 씨는 보건복지부의 시민참여자유게시판에 “독립해서 잘 살고 있던 제가 칠순노모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시범사업 당시에는 160시간의 지원을 받고도 모자라서 친구들의 도움도 얻고, 개인 돈을 털어서 서비스를 받았는데 요즘의 80시간은 죽을 맛입니다. 독립생활을 잘 하던 중증장애인에게 도움을 주진 못할망정 활동보조서비스 80시간이 무슨 짓입니까?”라고 성토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서비스 이용 신청자들에 대해 실태를 조사할 때 방문조사를 하여 제공시간을 판정해야 하는데, 조사과정이 지나치게 형식적이었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은 조사원이 당사자를 만나지도 않고 서류를 체크하는가 하면 만나더라도 몇 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체크만 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을 만큼 형식적인 조사과정을 거쳐 이용시간이 판정되었는데 신청자의 절반이상이 0시간 판정을 받아 애초 계획했던 사업목표의 5%정도만이 이용시간을 받았다. 더군다나 일부에서는 혼자서 숟가락도 들기 힘든 근육장애인이 0시간판정을 받는가 하면 또 이용판정을 받았다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시간이 나와 장애인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대전 서구 월평동에 사는 정모 씨(37세)는 지체 1급 장애인으로 혼자서는 휠체어도 타지 못하고 아침에 세면과 옷 입기는 누군가 보조해줘야 가능하며, 혼자 양변기에 앉을 엄두도 내지 못하여 종종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최근 활동보조 서비스를 신청했다가 0시간 판정을 받았는데 그때 꼼꼼히 이야기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조사원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는 바람에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대체 무엇 때문에 활동보조지원제도가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공동으로 나서야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경미 교수의 논문(공저 이익섭, 김동기)의 성과분석을 현재의 문제와 비교해석하면 제도 자체가 본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 제도에 참여하는데 대상이 제한되고, 서비스 시간판정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부적절성이 가장 큰 문제다. 현실에서 장애인들이 느끼는 제도의 미숙함은 결국 당사자의 반발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결국 지난 7, 8월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차별철폐와 교육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도시에서는 장애인들의 정책 현안문제를 가지고 단식농성을 진행했다.
대전공대위의 한만승 집행위원장은 활동보조 지원제도의 문제에 대한 16일간의 농성 결과 시차원의 답변을 “시의 일반회계대비 장애인복지예산을 3%이상 확충되도록 추진하고, 07년 2회 추경을 시작으로 하여 매월 4,000시간의 추가시간을 확보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08년 부터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2급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매월 2,000시간을 확보하기로 하였습니다”라고 말했다. 더불어 자부담 문제는 서비스 이용자중 차상위 계층 120%이내에 대하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을 통하여 자부담을 지원하기했으며 마련된 별도의 예산 집행을 위해 시와 단체, 사업기관 등 관련단체등이 참여할 협의기구를 구성하여 추가 서비스제공기준을 마련하고 향후 서비스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가 전국적으로 모두 같은 지침으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예산을 실제 집행하는 해당지자체에서 재량껏 변경하고 바꿀 수 있도록 되어있고 제도 자체가 보건복지부에서 하달하는 지침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제도가 시작부터 미비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에 따라 대상제한완화의 문제가 제각기 다르고, 서비스 이용시간이 상이하다면 공평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와 해당지자체는 문제에 대해 전국적으로 통일하여 접근하는 것이 순서인 것이다. 더불어 대전의 경우처럼 원점으로 돌아와 시와 장애인단체, 사업기관등이 참여하는 공동논의기구를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구성을 하고 장애인 활동보조 지원제도와 같은 장애인 관련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특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 인식
이렇게 초기 시행되었던 서비스의 문제들이 전국에서 지적되고, 국지적으로 조금씩 해결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장애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길은 그들의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는 주체기관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의식전환이 먼저다. 비장애인과 다르게 격리가 필요한 특이한 존재로 인식하고 사업하나에 적응하길 바라는 노력보다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고 도움이 필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식해야 한다. 하나의 사업을 늘이고 생색내는 식의 시행이 아니라 모범적으로 시행되는 타 국가의 제도를 벤치마킹하고 우리의 실정에 맞게 적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 서구, 일본 등지에서는 격리수용 중심의 시설정책에서 지역사회통합실현으로 정책전환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기존 시설에 지원하던 예산들을 자연스럽게 활동보조인이나, 그룹홈, 지원고용 등 지역사회 자립생활에 필요한 부분으로 지원하였다. 한국의 경우는 여전히 시설중심의 예산집행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을 뿐 아니라 그나마도, 부분적인 범위밖에 포괄하지 못하면서 정책전환을 할 수 있는 예산규모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장애인복지예산을 OECD 평균인 총생산 대비 2.5%까지 확충하지 않는 한, 탈시설 자립생활 실현으로 기본정책기조를 바꿀 때 장애인 인권신장의 의미를 찾고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