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박한나 기자] ‘콰이강의 다리’... 현실은 더 가혹했다
안방극장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콰이강의 다리〉의 원작자인 피에르 불은, 우리에겐 〈혹성탈출〉 시리즈의 원작자로 유명한 프랑스의 소설가다. 그의 소설 중 최초로 영화화된 작품이 바로 〈콰이강의 다리〉로, 1943년 타이 서부에서 있었던 실화에 느슨하게 기댄 작품이다. 당시 피에르 불도 전쟁 포로 신세였는데, 그때 접한 경험들이 소설 〈콰이강의 다리〉를 형성했다. 실제 배경이 된 곳은 ‘타 마 캄’이라는 곳으로, 당시 일본군은 군인과 군수물자 운송을 위해 미얀마와 타이를 잇는 다리를 메클롱강 위에 만들었다.
현실은 소설, 영화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실제로는 두개의 다리를 만들었는데, 먼저 임시로 사용하는 목조 다리를 세웠고 몇달 뒤에 강철과 콘크리트로 지은 다리가 만들어졌다. 두개의 다리는 2년 동안 사용되었고, 1945년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부서졌는데 콘크리트 다리는 보수작업을 거친 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다리가 완성되자마자 폭파된다는 영화 속 설정은 완벽한 허구인 셈이다. 건설 과정에서 연합군의 포로 1만3천명이 목숨을 잃었고, 강제로 동원된 민간인 사망자는 8만~10만명을 헤아린다.
니콜스 대령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은 필립 투지 중령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 니콜스처럼 영국군의 자긍심을 위해 다리 건설을 독려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최대한 공사를 지연시키기 위해 불개미를 풀어 나무를 갉아먹게 한다든지, 콘크리트를 엉망으로 배합하는 등의 행동을 했다. 수용소장 사이토 대령은 동명의 인물에서 온 것. 사이토는 실제로는 부소장이며 계급은 소령이었는데, 소설/영화에 묘사된 모습과는 달리 자비롭고 공명정대한 행동으로 포로들의 존경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투지와 사이토는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콰이강의 다리〉는 주인공인 니콜슨 대령과 감독이 정해지기까지 적지 않은 난관을 겪었던 작품이다. 먼저 니콜슨 역엔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제안이 갔지만 당시 그는 감독과 주연을 동시에 맡은 〈왕자와 무희〉(1957)를 준비하던 중. 정글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마릴린 먼로와 로맨스를 찍는 쪽을 선택했다. 찰스 로튼도 강력한 후보 중 하나였지만 그는 시나리오를 읽은 뒤에 니콜슨이라는 캐릭터의 동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어떤 방식으로 연기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거절했다(이후 그는 완성된 영화에서 알렉 기네스의 연기를 본 뒤에야 캐릭터의 동기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로널드 콜먼, 노엘 카워드, 랠프 리처드슨, 레이 밀랜드, 제임스 메이슨, 앤서니 퀘일 등 영국과 미국의 내로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의 이름이 거론되었고, 제작자 샘 스피겔은 스펜서 트레이시에게도 러브콜을 보냈지만 시나리오를 읽은 트레이시는 “이 역할은 영국 배우가 해야 합니다”라는 답장을 보냈다.
최종적으로 알렉 기네스에게 기회가 갔다. 그도 처음엔 역할을 거부했지만 제작자 샘 스피겔의 강력한 설득과 워든 소령 역을 맡은 잭 호킨스의 권유로 역할을 수락했다. 데이비드 린 감독은 알렉 기네스를 반대했다. 니콜슨 역을 맡기에 기네스는 너무 왜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샘 스피겔은 밀어붙였고 기네스는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와 오스카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메가폰의 주인공도 우여곡절 끝에 결정됐다. 샘 스피겔은 하워드 혹스 감독에게 의뢰했지만 당시 〈파라오〉(1955)의 실패로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는 좀더 확실한 흥행성을 지닌 프로젝트를 찾고 있었다. 존 포드 감독도 거절했다. 이후 스피겔은 〈하이눈〉(1952),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 〈오클라호마!〉(1955)로 흥행 연타를 날리던 프레드 진네만 감독에게 매달렸지만 그는 “원작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거절했다. 오슨 웰스, 윌리엄 와일러, 니콜러스 레이도 모두 사양했고 결국 데이비드 린 감독이 메가폰의 주인공이 되었다.
한때 스피겔은 유고슬라비아에서 촬영할 생각도 했지만, 정글 이미지를 위해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미얀마가 물망에 올랐지만, 잭 호킨스가 스리랑카를 추천했고 그곳에서 1956년 10월에 크랭크인을 했다. 관건은 다리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캐스팅이 이뤄지기 전부터 제작에 들어갔다. 클라이맥스 장면에 사용된 기차는 샘 스피겔이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수리를 거쳐 다시 달리게 되었다.
정글 속 현장은 매우 열악했고 뱀과 거머리가 득실거렸으며 배우와 스태프는 폭염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데이비드 린 감독은 단 하나의 숏을 위해 몇 시간, 아니 며칠을 매달리는 집요함을 보였고, 그 결과 감독은 배우나 스태프와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다. 스리랑카에 현상소가 없는 것도 큰 난점이었다. 결국 촬영된 필름은 런던으로 보냈고, 그곳에서 러시필름을 만든 뒤 다시 스리랑카로 보냈다.
〈콰이강의 다리〉는 데이비드 린의 첫 시네마스코프 영화다. 이것은 단지 화면 사이즈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전까진 노엘 카워드의 시나리오나 찰스 디킨스의 소설 등 문학적 전통 위에서 비주얼의 디테일을 시도하거나 아내인 앤 토드가 주연을 맡은 영화를 연출하던 그는, 〈콰이강의 다리〉에서 급격한 변신을 이룬다. 여기서 〈여정〉(1955)은 그 이행기 같은 영화였다. 데이비드 린의 첫 할리우드영화이며 캐서린 헵번이 주인공을 맡은 〈여정〉은 베니스 로케이션을 감행한 작품인데, 이국적 풍광을 담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약간의 거부감을 지니고 있던 데이비드 린에게 제작자였던 알렉산더 코다는 “뻔한 공간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곳에서 더 큰 효과를 얻기 위해 노력하라”고 충고했고, 이 말은 그의 행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데이비드 린 감독은 스케일과 풍경과 러닝타임이 급격하게 확장된 영화를 내놓는다. 〈콰이강의 다리〉가 시네마스코프 화면의 첫 시도였다면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는 65mm 필름으로 촬영되었다. 러닝타임도 〈콰이강의 다리〉가 2시간41분이었고,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 〈닥터 지바고〉(1965), 〈라이언의 딸〉(1970)은 모두 3시간이 넘는 대작이었다. 촬영 장소도 훨씬 더 대담해졌는데, 〈콰이강의 다리〉는 스리랑카의 밀림 지역에서 촬영했고,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위해선 모로코의 사막으로 갔으며, 〈닥터 지바고〉는 핀란드, 〈인도로 가는 길〉은 말 그대로 인도로 가서 찍은 영화다.
놀라운 건 갑작스러운 공간적 확장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 린 특유의 꽉 짜인 구도와 강한 디테일의 미장센은 여전하다는 점. 이것은 감독 특유의, 거의 광기에 가까운 비주얼에 대한 집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그 어떤 한 장면의 이미지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며칠 동안의 야외 촬영을 감수하고 먼 길을 떠나는 건 데이비드 린의 영화에선 그다지 이례적인 일이 아닌데, 〈콰이강의 다리〉에서도 몇초에 불과한 ‘해지는 장면’을 위해 240km의 거리를 이동했다.
〈콰이강의 다리〉는 비주얼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내면적 지평도 확장시켰다. 〈콰이강의 다리〉에 대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심리적 스펙터클”이라는 표현처럼, 니콜슨 대령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내면적 소용돌이를 지니고 있다. 그가 규율을 강조하고 삶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캐릭터라고 영화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포로의 신분으로 적에게 동지애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솔선수범하여 다리 건설을 차질 없이 해내려는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그의 캐릭터들에게 종종 몽상가나 공상가의 느낌이 풍기긴 하지만, 〈콰이강의 다리〉의 니콜슨 대령은 자신의 관점과 야망을 위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엉뚱한 영웅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들이 깨닫는 것(다리 공사를 지연해야 한다)을 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결국 그의 이기적인 행동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이것은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로렌스(피터 오툴)에게도 나타나는 특징인데, 그는 사막을 누비며 어떤 시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정화하려는 인간처럼 느껴진다. 그런 측면에서 로렌스는 사막을 낭만화하는 셈인데, 니콜슨 대령도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과업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사로잡혀 끝내 그 일을 낭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콰이강의 다리〉 이후 에픽 스펙터클의 세계로 접어든 데이비드 린 감독과 겹쳐진다. 밀림과 사막과 설국을 누비며 2차대전의 아시아와, 1차대전의 중동과, 혁명기의 러시아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강박적인 비주얼리스트. 그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데이비드 린 감독은 인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담아낸다.
‘콰이강의 다리’에 출연하는 니콜슨 대령(알렉 기네스)은 영국군 대령으로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지만 영국군의 긍지를 잃지 않으려 하며, 수용소장인 사이토 대령에게 제네바협약의 준수를 요구한다. 고난을 겪지만 결국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킨 그는,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짧은 기간 안에 아름답고 견고한 다리를 만든다. 일본군과 협력하는 이적 행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다리 공사를 통해 자신의 부대가 나태함을 딛고 다시 군기를 확립하기를 바란다. 드디어 기차가 통과하는 날. 그는 다리를 파괴하려는 연합군의 작전을 발견한다.
시어즈(윌리엄 홀덴)은 니콜슨의 부대가 들어오기 전에 수용소에 포로로 있던 미군이다. 자신을 중령이라고 속였지만 사실은 일반 사병에 지나지 않는다. 수용소 탈출에 성공해 천신만고 끝에 군사병원에 도착해 장교 행세를 하며 편안하게 지내던 중 워든 소령을 만나게 된다. 다리 파괴 작전의 책임자인 워든에게 그곳 지형을 아는 시어즈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 그는 자신이 탈출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워든 소령(잭 호킨스)은 새로 개발된 폭발물을 이용한, 다리 파괴 작전의 책임자. 낙하산으로 정글에 침투한 뒤, 대원들을 이끌고 적진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발에 상처를 입어 작전 수행에 잠시 문제가 생기지만 끝까지 폭파 작전에 전념한다.
사이토 대령(하야카와 세시)은 포로 수용소장으로 방콕과 랭군 사이를 잇는 철도와 다리를 지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니콜슨 대령과 초반엔 대립하지만 다리 공사를 위해 니콜슨의 위치를 인정한다. 전형적인 일본군 장교 스타일로 등장하지만 후반부에 가면 임무를 위해 타협할 줄 아는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