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내린 직장’ 공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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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내린 직장’ 공기업
  • 글/신혜영 기자
  • 승인 2007.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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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없는 공기업들의 돈 잔치 “해도 너무 하네”
퇴직 후 3년간 경조사비 및 적자 속 성과급 지급 등 국민 혈세로 놀아난 공기업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들의 방만한 경영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공기업들은 그동안 개인과 집단의 잇속을 위해 온갖 비리와 불법을 저질러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그런데 최근 명퇴한 직원에게 온갖 복지혜택을 주는가 하면 적자를 내고도 300% 이상의 성과급을 지급해 국민들의 불만을 높이 사고 있다. 국민들의 혈세로 여전히 돈 잔치에 정신없는 공기업의 세태를 알아봤다.

공기업들의 도덕불감증이 갈 데까지 가고 있다. 방만하고 부실한 경영과 억대 비자금조성으로 노조집행부에 향응을 베푸는가하면 청탁에 의한 무자격자고용, 국회승인 액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주다 적발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공기업감사들이 고액연봉과 부적절한 외유성출장파문이 말썽을 빚었고 출근도 하지 않는 직원에게 2년 넘게 월급을 준 공기업이 적발된 일도 있었으며 매년 수천억 원의 적자를 보면서도 1,000억 원 이상 성과급을 지급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콘도사업에 참여하고 명예퇴직자들에게 3년간 건강검진비와 경조사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기획예산처가 지난해 말부터 가동 중인 공공기관 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게시된 내용들로 지난 8월 27일 공공기관 이사회 의사록에서 확인된 것들이다.


실적이 좋지 않아도 성과급이라니…여전히 돈 잔치 중
공기업들은 올해 경영평가에 지난해보다 나쁜 점수를 받았어도 최고 400%대의 성과급을 받게 된다. 기획예산처가 올 6월 발표한 ‘14개 정부투자기관 2006년도 경영실적 평가’에서 지난해보다 순위가 하락한 회사는 모두 여섯 개다. 하지만 이들 업체도 모두 적게는 200%에서 많게는 400%대까지의 성과급을 받는다. 특히 지난해 대비 순위가 7단계나 급락한 KOTRA의 임직원들은 346%의 성과급을 받는다. 심지어 경영평가 최하위평가를 받은 대한석탄공사도 지난달 성과급 100%가 지급됐고, 연말에 추가로 100%가 주어져 총 200%의 성과급은 77억 원을 임직원들에게 지급했다. 매년 5,46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경영실적도 14개 공기업 중 12위로 평가받은 한국철도공사도 지난달 전 직원에게 경영실적 성과급 300%가 지급, 총 지급액만 1,200억 원으로 직원 한 사람당 400만 원씩 받은 셈이다.
철도공사 관계자는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해서 지급을 하는 것이고, 만년 꼴찌를 했지만 2단계가 상승해서 거기에 따른 경영개선 노력에 대한 결과다”라고 말했다.
이에 적자 공기업들이 성과급을 지나치게 많이 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공기업의 관계자는 “공기업의 특성상 공익성도 추구해야 하고 수익성도 추구해야 한다”며 “태생적으로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공기업들도 있다”라며 입장을 표명했다.
흑자액보다 더 많은 돈이 성과급으로 나가는 공기업도 흔하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지난해 49억 원의 흑자를 냈지만 이보다 많은 66억 원이 경영실적 성과급으로 지급됐으며 대한광업진흥공사도 흑자액은 28억 원인데 지급된 성과급은 37억 원이다.
지난 8월 27일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이 기획예산처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 지난 5년간 모두 1,915명에게 평균 320만 원씩 예산 성과급이 지급됐다. 이 중 일반인은 네 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공무원에게 돌아간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별로는 국세청 직원들이 955명이 31억 원을 받아 가장 많았고 건설교통부 109명이 9억원을, 관세청 317명의 직원이 9억원 등으로 수령액이 많았다. 이중 관세청의 한 직원은 세수 증대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3,900만 원의 성과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공기업들의 돈 잔치 행태는 정부의 정책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1999년부터 경영실적에 따라 200~500%의 성과급을 주고 있다. 공기업끼리 경쟁을 시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실시되고 있는 이런 정책으로 경영평가에서 꼴찌를 하거나 적자가 나도 최소한 200%의 성과급을 주고 있는 것. 때문에 적자를 내더라도 성과급은 나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난해 나라 살림을 보여주는 관리대상수지는 13조 6,000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예산 절약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지난 5년간 공무원들에게 지급한 예산 성과금이 62억 원에 이른다. 모두다 국민의 혈세로 지급되는 성과급인지라 국민들의 공기업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 혈세로 공기업들의 과도한 복리후생 잔치 벌여
한국마사회(KRA)는 지난 1월 18일 열린 1차 이사회에서 명예퇴직자들에게 3년간 건강검진과 경조사비 혜택을 재직 직원들과 똑같이 제공한다는 내용의 안건을 통과시켰다.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명예퇴직 유인책으로 제도를 만들었다는 게 마사회의 얘기. 그런데 마사회의 이런 명예퇴직 혜택에도 불구하고 고작 2명이 퇴직했다고 한다.
당시 이사회에서 한 이사는 “명예퇴직, 희망퇴직 후에도 일정 기간 건강진단과 복지혜택을 주는 경우가 있느냐”고 묻자, 한국마사회 측은 “많지는 않지만 몇 개 기관에서 유사한 사례가 있다”고 대답했다.
적자로 인해 막대한 정부 예산을 지원받고 있는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공무원들의 복리후생을 위해 콘도사업에 참여한다는 계획을 지난 6월 19일 이사회에 보고했다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만 받았다. 공단 이사회 회의록에는 ‘중앙부처 공무원은 지방 공무원과 달리 콘도회원권 혜택이 없어 사업을 구상했다’고 나와 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 관계자는 “수익이 첫째 조건이고 그런 다음에 복리후생 부분도 충족되면 좋은 것 아니냐”며 말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기금대여 예산으로 콘도회원권 57개를 구입했다가 감사원에 적발된 사실을 지난 6월 20일 이사회에 보고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한 관계자는 “감사원의 지적받은 즉시 단계적으로 콘도부분에 대해서는 처리해서 매각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 인천항만공사는 지난 6월 24일 항만위원회에서 초과근무수당과 휴일근무수당을 일률적으로 기본연봉에 합산하는 방안을 내놓았다가 보류 당했으며 사학연금공단도 성과급 시행에 맞춰 직원들의 연봉이 줄어들지 않도록 별도예산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한국환경자원공사 전북지사는 전체 직원이 86명이다. 이 중 약 30%인 26명이 2005~2006년 장기 병가를 낸 것으로 자체 감사 결과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요즘 공기업들은 정년을 늘리기 위해 안달이다. 한국전력은 최근 노조와의 협상에서 2009년부터 직원의 정년을 3개월 또는 6개월씩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합의했다.
한편, 공무원연금관리공단은 연금수급권자의 사망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 사망자에게도 퇴직연금이 지급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지난 9월 11일 감사원 감사에게 드러났다. 감사원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장묘사업소’ 등 전국 9개 화장장에 화장 신고 된 자료와 공단의 연금지급 현황을 대조한 결과 모두 7명의 사망자가 사망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 7,700여만 원의 퇴직연금과 유족연금이 계속 지급되고 있었다.



임원 추천도 얼룩진 공기업들, 방만 경영 부추겨
임원추천 과정에서 문제점을 드러낸 공기업도 있다. 한국전력은 신임 사장을 선임하는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올 1월 19일 이사회를 소집, 추천위 민간위원 7명을 모두 한전 측에서 제시한 후보로 채웠다. 추천위는 비상임이사 8명, 민간위원 7명 등 모두 15명으로 구성될 예정이었으나 추천위의 민간위원 7명이 모두 한전측이 제시한 인물로 채우면서 비상임이사들의 반발을 샀다.
당시 비상임이사들은 “민간위원의 구성 폭을 확대해야 한다” “한전 측이 제시한 명단 중에서 7명을 선정하라고 한다면 이사들의 선택을 너무 제한하는 것 아니냐” “비상임이사들이 추천하는 인사도 후보 명단에 넣자”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한전 측은 “비상임이사의 추천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그러면 본인의 의사확인 등의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늘 추천위 구성이 쉽지 않다” “법적·언론계, 시민단체의 후보를 추가하자”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으나 이에 대해 한전 측은 “비상임이사들이 추천한 인물이 탈락하면 난처한 문제가 생긴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후보명단은 이사회 상정안건 준비 차원에서 작성해 제시한 것일 뿐”이라며 “이사들이 충분히 논의하고 의견을 수렴한 끝에 추천위 구성을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또 전직원이 고작 60여 명인 한국 컨테이너부두공단은 비상임인 감사 자리를 상임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상임감사가 되면 첫해에만 3억 5,000만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비상임 이사들이 나서서 “직원도 적도 지금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왜 상임으로 바꾸느냐”며 제지했다.
중앙대 행정학과 박희봉 교수는 “공기업 사장, 감사에 ‘낙하산’ 인사를 밀어 넣는 데다 굳이 경영 성과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 방만 경영을 부추기고 있다”며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경쟁의식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사 청탁에 비자금 조성까지 대한민국은 ‘공기업 왕국’
사정이 이렇다보니 너도 나도 철밥통에 호주머니가 두둑한 공기업에 들어가려고 안달이다. 지난 7월에는 마사회에서 직원 14명을 뽑는데 무려 4,250명이 몰렸다. 마사회는 2002년 3,821억 원이던 순이익이 지난해 1,074억 원으로 떨어졌다. 이익이 전년 대비 23.6%나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황금 알을 쏟아내는 기업이라고 할 정도로 고수익이 보장되는 공기업 1순위로 꼽힌다.
지난 6월 20일 감사원이 95개 정부산하기관을 대상으로 감사를 실시한 결과 총 115건의 위법·부당사례를 적발, 한국전기안전공사는 간부들의 지인들로부터 자녀 등을 채용해 달라는 인사 청탁을 받고 16명을 신규직원으로 채용하기도 했다. 한국수출보험공사는 국외지사를 설립하는 것이 비효율적이거나 설립할 필요가 없는 지역에도 국외사무소를 설립·운영해 감사원에 적발됐으며 중소기업진흥공단은 지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직원들에게 33억여 원의 상여금을 부당하게 지급했으며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도 건설교통부 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보조비 등의 명목으로 19억 7,200만 원을 직원들에게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산업기술시험원은 2002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S종합인쇄회사와 수의계약을 체결하면서 편법을 사용, 1억 8,750만 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노동조합 집행부 등에 향응을 제공하거나 간부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정부산하기관들의 부실, 방만 경영이 만연돼 있다고 보고 실시간 감사체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지난 9월 11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한나라당 이명규 의원은 43개 공기업으로부터 제출받은 2000년 이후 세무조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탈세 등에 따른 추징액이 5,700여억 원인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의원은 “공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 회계 시스템 자체가 부실할 뿐만 아니라 고의적 탈세 의혹도 나타난 것으로 드러났다”며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공기업에 대한 도덕불감증이 극에 달한 느낌이다. 직원들에게 흥청망청 챙겨주는 악습은 일부 개선됐지만 내 돈이 아니니 쓰고 보자는 관행은 곳곳에 남아 있는 게 마사회를 비롯한 공기업이다. 모든 공공기관에 외부회계감사를 의무화해 감사의 전문성을 꾀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시키고자 만들어진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중 ‘공공기관의 경우 공인회계사 또는 회계법인에 의한 회계감사를 의무화한다(안 제15조의2)’는 내용이 신설되면서 건전 경영을 유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생겼다. 공공기관 경영실태 분석에서도 2000년에 비해 2005년 매출은 2조 4,966억 원 줄었는데도 경상비는 900억 원 늘었다. 공기업의 전체 부채규모는 국가채무의 3배에 이르는 400조 원에 가깝다. 이 같은 행태는 매년 반복되면서도 좀처럼 바뀌지 않아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실련 위정희 시민입법국장은 “광범위한 일종의 도덕적 해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성과를 내기 위해서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긴장하고 또 전문성을 살리려고 하는 노력들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공기업 왕국’은 정부가 만든 것이다. 정권 초기에 민영화 계획을 백지화하고 몸집을 불렸다. 경영은 피폐해져 지난해 공기업의 순이익은 30%줄었고 부채는 20조원 늘었다. 국민 혈세로 벌여지는 그들의 돈 잔치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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