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 256호=박희윤 기자) 지난달 일본에서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아베 총리는 목표했던 3분의 2 이상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개헌 목표를 위해 일차적으로 논의 자체에는 긍정적인, 야당인 국민민주당에 접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그는 선거 기간 중 토론회나 선거 뒤 방송에서 헌법 개정과 관련해 여러 차례 국민민주당과 협력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 아베 총리는 개헌을 위해 나루히토 일왕이 공식 즉위하는 10월 이후 연말이나 도쿄올림픽 개최 뒤 축하 분위기가 남아 있는 내년 가을에 개헌의 동력을 위한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실시할 수 있다. 중의원 조기 총선에서 압승한다면 아베 총리의 4연임론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의 평화 헌법
“일본 국민은 다시는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결의한다. 일본 국민은 영원한 평화를 염원하고, 인간 관계를 지배하는 숭고한 이상을 자각한다. 우리는 어떤 국가도 다른 국가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일본 헌법 전문 中)
전범국이었던 일본은 1947년 전 세계에서 가장 평화 지향적 헌법을 만들었다. 핵심은 2장 “전쟁의 포기”다. 2장 은 9조만 들어 있고 두 개 항으로 되어있다.
“9조 1항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무력의 행사는 국제 분쟁을 해결할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 ”
“9조 2항 육해공군 전력은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의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일본은 ‘군대’가 아닌 ‘자위대’를 보유하고 있다. ‘자위대(自衛隊)’는 일본 자국의 방어를 위한 조직으로, 1955년 이래 전수방위(專守防衛)의 원칙, 즉 일본 영토가 공격을 받았을 때만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 정도는 최소 한의 범위에 그친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아베의 정치적 성향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최고의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친할아버지인 아베 히로시는 군국주의를 강하게 비판해온 강골 정치인이었고,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도 평화 헌법을 옹호했다. 그런 친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다르게 아베 총리는 과거사를 부정하는 ‘역사 수정주의자’로 불린다. 그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아버지가 아닌 외할아버지인 탓이다.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외할아버지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아베 총리는 어린 시절 바빴던 부모 대신 외할아버지인 기시 전 총리 손에 자랐다.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평화 헌법을 ‘점령국이 강요한 헌법’으로 간주했으며, 그의 목표는 평화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었다. 1955년 자민당을 탄생시키고, 초대 간사장을 맡았다. 1957년 총리가 된 기시는 1960년 5월 미-일 안보조약 개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아베 정권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 활동이 쉬운 나라”로 만들 것을 내걸어 다국적 기업에게 최대한의 이윤을 보증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다른 한편으로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이름 아래에서 ‘미일 동맹’ 강화 노선을 내세우며 ‘풍요로움의 실현’, ‘점령 체제로부터의 탈각’의 두 가지 목표를 제안하는데 이러한 목표들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를 받는 것이다.

아베의 개헌준비
2012년 12월, 아베 총리는 자민당 총재로 총선거에서 승리하여 민주당을 끌어내리고 다시 정권 수반으로 지명된다. 1차 내각(2006년 9월 ~2007년 9월), 2·3차 내각(2012년 12월~현재)을 성공적으로 집권해 왔다. 올해 11월이면 일본 헌정 사상 최장 총리가 된다. 일부 언론에서는 2024년까지 그의 임기를 연장하자는 4한 연임론이 나오고 있을 만큼 일 본 내에서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일 동맹 강화와 개헌을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해왔다. 2013년 가을 임시국회에서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 설치법’을, 2014년에는 ‘특정 비밀 보호법’ 등을 성립했고, 미일 동맹의 강화, 긴밀화를 위 한 외교 안보, 국가전략의 사령탑을 구축하면서도 군사-외교 기밀 등의 누설을 방지할 명목으로 국민에 대한 알 권리, 보도 자유 등을 제한 및 침 해하는 법률을 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규정하는 ‘평화 안전법 재정비 법안’과 유엔 PKO 활동과는 다른 틀로 ‘유지 연합(有志連合, coalition of the willing)’ 등이 전개하는 국제분쟁에 개입·협력하기 위한 ‘국제 평화 지원 법안’을 국 회에 제안했다.
아베 총리는 2015년 4월 ‘미일 방위 협력을 위한 지침(신 가이드라인)’ 을 개정했으며 나아가 ‘전쟁법’, ‘평화안 전법 제정 비법’, ‘국제 평화지원법’ 등을 강행 제정했다. ‘미일 신 가이드라인’은 미일 동맹을 ‘아시아·태 평양 지역과 이 지역을 넘어선 지역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하여 ‘글로벌화’한 것이다.

아베의 개헌 의지 표명
아베 총리는 2016년 연두 회의에서 “헌법 개정에 대해선 참의원 선거에서 확실히 호소해간다”,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재임 중에 완수하고 싶다”라며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 공명 양당에 대한 일부 야당을 더한 세력으로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을 확보해 내는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2016년 7월 10일 일본 참의원 총 의석 242석 중 121석을 대상으로 실시된 제24회 참의원 통상 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과 연립 공명당이 총 121석 중 자민당은 56석을, 공명당은 14석을 획득해 146석을 얻으면서 과반 확보에 성공했다.
이후 아베 총리는 2017년 5월 3일 요미우리신문과 인터뷰에서 “헌법 개정을 실현해 도쿄 올림픽이 개최되는 2020년부터 개헌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2017년 10월 중의원 선거 승리 후 조기 총선 대승으로 참의원과 중의원 모두에서 헌법 개정 발의에 필요한 개헌세력 3분의 2 확보에 성공한 바 있다. 또 지난해 1월 4일의 연두 기자회견과 1월 22일의 자민당 양원(兩院) 의원총회에서 개헌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했다.
2019년 참의원 선거의 결과
지난달 21일 일본에서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는 전체 의석의 절반가량인 124석(지역구 74석, 비례대표 50석)을 새로 선출했다. 이 선거에선 ‘자민당’이 57석, 연립정부 일원인 ‘공명당’이 14석으로 총 71석을 얻었다. 여당으로 분류되는 자민·공명당 연립내각이 전체 245석 중 141석을 얻어 과반을 확보한 것이다.
하지만 개헌 동조세력인 일본 유신회까지 포함해 개헌에 필요한 의석인 3분의 2(164석)를 차지하는 데는 실패했다. 자민·공민당은 개헌 세력인 유신회가 얻은 10석을 포함해, 81석을 얻어 개헌이 가능한 3분의 2석이란 절대 다수석 확보에는 실패한 것이다.
이번 선거를 통해 참의원에서 개헌 세력으로 분류되는 의석수는 자민·공민당 141석, 일본유신회 16석, 여당 성향 무소속 의원 3석, 총 160석이 되었다. 반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은 8석을 얻어 의석을 32석으로 늘렸다. 국민민주당은 2석 감소한 21석, 공산당은 1석 감소한 13석, 사민당은 2석 얻어 3석이 되었다.

아베의 굽히지 않는 개헌 의지
아베 총리가 개헌을 포기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베 총리는 개표 중이던 지난달 21일 밤에는 <니혼티브이> 방송에 출연해 “기간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임기 안에 (개헌) 국민투표까지 하고 싶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음날인 22일 “국민민주당 중에서 헌법 개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분들이 많이 있다. 여당·야당 틀을 넘어 3분의 2를 얻는 것을 가다듬어 가고 싶다”라고 변함없는 개헌 의지를 강조했다.
또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헌법 개정은 큰 쟁점이 됐다”며 “자민당 안에만 국한하지 않고 유연한 논의를 할 생각이며, 레이와(나루히토 일왕의 연호) 시대에 알맞은 개정안 마련을 위해 중·참의원에서 제1여당으로서 강한 지도력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개헌 목표를 위해 일차적으로 논의 자체에는 긍정적인, 야당인 국민민주당에 접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그는 선거 기간 중 토론회나 선거 뒤 방송에서 헌법 개정과 관련해 여러 차례 국민민주당과 협력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 아베 총리는 개헌을 위해 나루히토 일왕이 공식 즉위하는 10월 이후 연말이나 도쿄올림픽 개최 뒤 축하 분위기가 남아 있는 내년 가을에 개헌의 동력을 위한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실시할 수 있다. 중의원 조기 총선에서 압승한다면 아베 총리의 4연임론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은 집권 여당 총재가 총리다. 여당인 자민당 총재의 임기는 당초 ‘2연임 6년’이었지만 2017년 ‘3연임 9년’으로 수정됐다. 아베 총리는 바뀐 규정으로 작년 3연임에 성공해 임기가 2021년 9월까지다.
예정대로 임기를 마치기만 해도 아베 총리는 일본 역대 최연소 총리에 이어 최장수 총리란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된다. 아베 총리가 자위대의 존재와 역할을 명기는 개헌까지 성공한다면 일본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인물이 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