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절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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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절 ‘추석’
  • 글_김영란 차장
  • 승인 2007.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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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한가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민족 대이동, 일가친척이 한자리에서 풍요로움의 기쁨을
발 문 : 한국 고유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은 중추절(仲秋節)·가배(嘉俳)·가위·한가위라고도 부른다. 중추절(仲秋節)이라 하는 것도 가을을 초추·중추·종추 3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추석은 정월 대보름날의 예축적 의례와 서로 의미가 통하여 수확 경축적 의례를 지니고 있어 지역별로 다양하고 풍성하며 다채로운 민속들이 나타난다.


한국의 전통 4대 명절 중 하나, 추석
한국의 전통 4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이면 고향을 향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발길들로 거리는 온통 북새통이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천고마비의 좋은 절기에 수확으로 거둔 새 곡식과 햇과일을 나눠 먹으며, 그동안 바빠 서로 찾아보지 못한 일가친척(一家親戚)들이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면서 조상의 은덕을 기린다. 특히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가져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기는 것을 중로상봉(中路相逢), 즉 반보기라고 하는데, 요즘은 반보기가 아닌 넉넉한 시간을 갖고 친정나들이를 하니 고향으로 향하는 기쁨은 측량할 길 없다.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 추석 음식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먹는다’는 옛 속담처럼 한가위에는 수확한 곡식과 과일이 풍성하여 여러 가지 시절음식이 있었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 시루떡, 인절미, 밤단자를 시절음식으로 꼽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송편은 추석의 대표적인 한가위 음식이다. 송편도 꿀 송편, 밤 송편, 깨 송편, 콩 송편, 대추 송편 등 종류가 다양하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송편을 빚는 정경은 언제 봐도 정스럽다. 특히 여자들은 송편 빚는 솜씨에 따라 배우자를 만난다고 하여 서로 예쁘게 빚느라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또 임신한 부인들은 송편에 솔잎 한 가닥을 가로로 넣고 쪘는데, 찐 송편을 한 쪽으로 베어 물어서 문 부분이 솔잎의 끝 쪽이면 아들이고, 잎 꼭지 쪽이면 딸이라 하기도 했다. 송편을 찔 때는 솔잎을 깔아 향과 시각적인 멋도 즐겼는데,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 등에도 좋다고 한다. 각 지방마다 송편도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경상도 지방은 모시 잎을 삶아 넣어 빛깔을 낸 모시잎 송편, 강원도 지방에서는 감자 송편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쑥 송편, 치자 송편, 호박 송편, 사과 송편 등도 별미로 꼽힌다.
‘농가월령가’에서는 오려(올벼의 옛말)송편, 박나물(덜 여문 박을 얇게 저며서 쇠고기와 함께 간장에 볶은 뒤에 파, 깨소금, 후춧가루를 치고 주물러서 만든 나물), 토란국 등을 이때의 시식이라고 했다. 영동 지방에서는 이때에 송이국, 고지국(호박, 박, 가지, 고구마 따위를 납작납작하거나 잘고 길게 썰어 말린 것)을 별미로 먹기도 했다. 온 가족이 함께 간만에 둘러앉은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다. 한가위에 마시는 술을 ‘백주(白酒)’라고 하는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햅쌀로 빚은 술)’라고도 한다. 한가위 추수를 앞두고 마음이 풍족해진 사람들은 서로 술대접을 하기도 했다. 녹두나물과 토란국도 한가위 음식 중 하나다.
풍족한 수확의 계절의 기쁨도 그렇지만, 바쁜 생활고로 인해 서로 왕래가 뜸하던 일가친척들의 만남이 무엇보다 명절의 큰 의미가 아닌가 싶다.


한가위에 즐기는 시절놀이
한국의 전통 명절에는 으레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제를 지낸다. 보통 추석에는 산소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조상의 묘를 돌보는 벌초(伐草)도 한다. 호남지방에는 ‘올벼심리’라 하여 그 해에 난 올벼를 조상에게 천신(薦新)하는 제를 지내고, 영남 지방에서도 ‘풋바심’이라 하여 채 익지 않은 곡식을 천신할 목적으로 벤다. 일부 가정에서는 새로 거둔 햅쌀을 성주단지에 새로 채워 넣으며 풍작을 감사하는 제를 지낸다. 차례(茶禮)를 드리고 나면 추석 시절놀이인 소 놀이, 거북놀이, 강강술래, 원놀이, 가마싸움, 씨름, 올게심니, 밭고랑 기기 등을 하며 한가위를 즐겼다. ‘소놀이’는 풍물패를 따라 소를 흉내 내며 온 마을을 다니며 노는 놀이다. 소 놀이를 할 때는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소 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를 하기도 했다. ‘거북놀이’는 수숫잎을 따 거북이 등판마냥 엮어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다. 풍물패와 함게 집집을 방문하면서 대문에서 문 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조왕(부엌), 장독대, 곡간, 마구간, 뒷간 등 마지막으로 대들보 밑에서 성주풀이를 한다. 이렇게 집집마다 돌 때 주인이 내 놓은 것을 두었다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쓰기도 했다. ‘강강술래’는 손을 이어 잡고 둥근 달 아래서 밤 새워 도는 대표적인 한가위 놀이다. 그냥 둥글게만 돌지 않고 갖가지 놀이판으로 바뀌면서 민요를 곁들인다. 서로 부여잡고 도는 이 놀이는 새벽까지 그칠 줄 몰랐다. ‘원놀이’는 지금의 모의재판과 같은 형태로 서당에서 공부하는 학동들이 원님을 뽑아 백성들이 낸 송사를 판결하는 놀이다. ‘가마싸움’은 이웃서당의 학동들끼리 만든 가마를 부딪쳐서 부서지는 편이 지는 놀이로, 이긴 편에서 그 해에 과거시험에 급제한다는 믿음이 있다.
전라도에서는 ‘올게심니(올벼심리)’라 하여 한가위를 전후해 잘 익은 벼, 수수, 조 등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묶어 기둥이나 대문 위에 걸어 두고, 다음해에 풍년이 들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풍습이 있는데, 이 때 음식을 차려 이웃과 함께 잔치를 하기도 한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 해에 씨로 쓰며, 떡을 해서 사당에 바치거나 터주에 올렸다가 먹는다. ‘밭고랑 기기’는 전남 진도에서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 된다고 믿는다. 그 밖에도 닭싸움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놀이가 전승되어지고 있다.
시대가 복잡해질수록 명절의 본 의미도 차츰 쇠퇴하고 있다. 번거롭고 귀찮은 의미가 더하여 고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도 다소 줄어들고 있다는 풍문이다. 명절은 우리 조상들이 가졌던 마음처럼 ‘더불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생활고의 어려움으로 명절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소외당하는 이들도 많다. 그저 휴일의 하나인 ‘추석’으로만 치부할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둘러보고 서로 나누는 명절을 보낸다면 하늘에 딴 만월(滿月)만큼이나 뜻 깊은 날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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