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허위 학력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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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허위 학력 파문
  • 글/강미선 기자
  • 승인 200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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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계의 허위 학력 파문 도미노 현상
실력보다 학벌 중심의 사회 분위기 먼저 깨뜨려야

문화예술계가 안팎으로 시끄럽다. 대표적으로 동국대 신정아 전 교수를 필두로 동숭아트센터 김옥랑 대표, 만화가 이현세 씨, 건축 디자이너 이창하 씨, 영화감독 심형래 씨, 연극배우 윤석화 씨, 그리고 영화배우 장미희 씨까지 허위 학력으로 문화 예술계를 속여 왔던 사실이 밝혀졌다. 또 어떤 인물이 허위 학력 사실을 폭로할지에 대해서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다른 분야 보다 특히 문화 예술계에 허위 학력이 퍼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왜곡된 학력 위주의 사회를 되돌아보는 씁쓸함을 맛보아야 했다.

문화 예술계, 지금까지의 학력 위조 사례
학력 위조 사실이 밝혀진 첫 번째 인물은 동국대 전 교수 신정아 씨였다. 신정아씨는 서울대학교 미대 동양학을 중퇴했으며 미국 캔자스대 학사학위 및 MBA를 수료 했다고 주장 했었다. 또한 예일대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전했으나 모든 것이 신정아 씨 스스로 조작한 문서임이 밝혀졌다. 확인된 바 신정아씨의 학력은 고졸이 전부다. 결국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 임명이 취소되며 잇달아 동국대 교수직 또한 파면 당했다. 사실이 전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정아씨는 해외로 도피하여 돌아오지 않는 등 책임을 회피했다. 이 사건으로 동국대 이미지도 격하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적인 현대미술 행사인 광주비엔날레 또한 큰 이미지 손상을 겪었다.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사건은 본인이 고의적으로 학력을 조장해 미술가에서 지위를 얻었기 때문에 그 잘못이 크다고 하겠다.
만화가 겸 애니메이션 학과 교수였던 이현세 씨는 최근 자신이 출간한 만화책 ‘버디 3편’의 서문을 통해 학력 허위 사실을 털어놓았다. 서라벌예대(지금의 중앙 대학교)를 중퇴했다고 전했으나 사실은 고졸 학력이 전부였다. 이 씨가 학력 위조 사실을 밝힌 것이 안타깝게도 신정아 사건과 겹쳐져 문제가 커졌다. 이 씨는 사실을 밝히면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해 스토리가 탄탄하다”라는 발언을 했던 것이 가장 찔렸다고 고백했다. 이화여대와 미국 퍼시픽웨스턴대학 학사 학위를 내세웠던 동숭아트센터 김옥랑 대표의 학력 또한 전부 가짜였다. 미국 퍼시픽 웨스턴 대학은 무인가 대학으로 밝혀졌다. 동숭아트센터는 대학로에 위치한 연극 무대와 영화 상영관을 갖춘 대표적인 복합공연장이었다. 김 씨는 미국의 미인가 대학 퍼시픽 웨스턴대의 부실한 학사학위를 토대로 2000년에 성균관대에서 예술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2002년에는 단국대 산업경영대학원 예술경영학과 교수로 임용됐으며 2003년에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국내 예술경영학 박사 1호’라고 주장해 왔다. 이로 인해 문화예술계에 깃든 학벌 중심의 병폐가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MBC 러브 하우스를 통해 국민들에게 신뢰가 두터웠던 건축 디자이너 이창하 씨도 허위 학력 사실이 밝혀졌다. 이 씨의 학력 위조 사실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처음 밝혀졌다. 그는 수원대학교 경영대학을 수료했고 미국 LA 뉴브리지 대학 순수미술학과를 졸업했다고 했으나 모두가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가 졸업했다고 말한 미국 LA 뉴브리지 대학은 어학원 성격으로 순수미술학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졌다. 이창하 씨는 허위 학력 조작 사실을 부인하며 발뺌하고 있다가 이내 인정하며 교수직 사임을 했다. 저소득층을 위해 무료로 집을 설계해주는 등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었던 이 씨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저는 이화여대를 다니지 않았습니다”라고 고백한 연극배우 윤석화 씨 허위 학력 사실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다. 절묘한 타이밍이었는지 윤석화 씨 고백이 있기 바로 전 MBC에서는 윤 씨의 허위 학력을 알아봐달라는 제보를 받고 이에 대해 조사 중이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먼저 알고 선수 친 것 아니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던져지기도 했다. 한편 윤석화 씨는 2년 전 언론 인터뷰를 통해 “나는 그래도 이대 출신”이라는 고백을 했던 것이 밝혀져 네티즌 들 사이에 비난이 계속 됐다. 연극 영화과를 졸업하지 않아 겪게 되었던 어려움들을 말하며 이대 출신이라는 것을 자부심으로 콤플렉스를 이겨냈다는 것이 요지다. 이어 영화배우 장미희 씨 또한 학력 위조 파문이 제기 되었으나 진실에 대해 여러 번 말을 바꾸는 등 비난을 얻었다. 배우 오미희 씨, 장광스님, 영화감독 심형래 등등 문화 예술계 허위 학력 파문 도미노 현상은 어디가 끝인지 예측 불허다.


학력은 곧 능력? 문화계에 꼭 간판이 필요한가
이번 허위 학력 파문 현상을 보면 몇 가지 두드러진 양상이 보인다. 대부분 대학 중퇴라는 프로필을 내세웠다. 또한 이름이 생소한 외국 대학의 이름을 학력에 추가했다. 이런 대학은 어학원 목적의 대학이거나 미인가 대학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전혀 문화 예술계와 대학에서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 여성들은 대부분 이화여대를 입학했다고 속였는데, 과거 이화여대가 명문가의 자녀가 다니는 손꼽히는 대학이라서 그런 것 같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또한 사실이 밝혀지고 난 후 반응도 제각각이다. 오리발을 내밀며 “학교 측에 알아보라”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유형이 있었다. 또 해외로 잠적 해버리는 가하면 궁색한 변명으로 용서를 구하기도 했다.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국민에게 실망과 불신을 주었다.

허위 학력 파문 도미노 현상, 왜?
유독 문화 예술계에서 학력 위조 사실이 폭로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다른 분야에서도 학력 위조 사실이 여러 밝혀진 바 있다. 그러나 문화 예술계에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문화 예술계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학력에서 자유로워야 할 분야다.
전통적으로 문화 예술계에서는 교수 임용 시 거장급 예술인이 아닌 경우 학위 유무를 먼저 따진다. 같은 조건이면 해외 유명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경쟁자를 물리치는데 유리하다. 이러한 이유로 현장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았더라도 학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학력을 부풀리고, 위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게다가 대학에서는 스타급 교수를 임용하려고 하기 때문에 허위 학력을 내세운 사례도 있었다. 또한 문화 예술계 쪽이 보장된 수입이 적다보니 보다 안정된 교수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여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 학력을 위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허위 학력 파문 원인으로 60, 70년대 대학의 청강생 제도에 대한 문제도 제시되고 있다. 동국대 청강생이었던 장미희 씨는 철학과 졸업생으로 둔갑했고, 청주대 응용미술학과 청강생이었던 오미희 씨 역시 청주대 졸업생으로 허위 학력에 휘말렸다. 과거 활성화됐던 대학의 청강생 제도가 유명인사들의 학력을 가짜로 만드는 진원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40대 후반 이후 대학 청강생들의 학력 진실이 드러나면 일부 대학가나 문화예술계에서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떠돌고 있다. 청강생 제도는 60년대부터 활성화 된 것으로 대학 입학은 못했지만 학과 과정을 공부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위한 제도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청강생은 재학생들과 똑같은 입학금과 수업료를 내고 강의도 받지만 학위 없이 수료증이나 이수증만 받게 된다. 이런 청강생 제도는 80년도 교육관련법 개정으로 폐지되기까지 사립대학들을 중심으로 학과 정원의 2배, 많게는 3배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주로 문화예술계에 이러한 청강생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잇따른 허위 학력 파문, 누구의 책임인가
이번 허위 학력 파문의 가장 큰 잘못은 당연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에게 있다. 사건을 일으킨 대부분 인사들은 국민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던 공인이었다. 공인이라는 신분으로 국민에게 실망과 불신만 안겨준 잘못이 크다. 게다가 학력 위조 사실이 단순한 학력 콤플렉스로 인한 것이 아닌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라면 문제는 일파만파 커진다. 신정아 씨, 김옥랑 씨, 이창하 씨 사건이 그 예다. 문화 예술계를 비롯해 각 대학에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사회적 수치스러움도 낳는다.
이러한 허위 학력 파문을 없애기 위해서는 문화 예술계와 대학 스스로 변화의 노력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실력보다는 학력을 우선시 하고, 권위를 세우기 위해 외국 대학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없애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5개 대학 교무팀장은 실무회의를 가져 학위 검증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으로 통합 학위 검증 시스템을 마련할 예정이다. 꼼꼼한 사전 정보 없이 학생들 앞에 검증 되지 않은 교수를 세우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학위 검증 시스템을 강화하기보다 학위가 없어도 실력만으로 문화 예술인으로 굳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시시각각 다양한 네티즌 반응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네티즌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거짓 학력으로 남을 속여서 이득을 봤다면 4년 동안 대학 다닌 사람의 입장에선 열 받는다. 하지만 대학을 다닌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에 도움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능력은 노력에 따라 생긴다고 생각한다.”라며 사건에 대해 보다 유연한 시각을 가졌다. 하지만 또 다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이참에 허위 학력으로 시청자와 국민들을 속이는 인물들을 모조리 퇴출시켜야 한다.”며 날카로운 비판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은 다른 문화예술계 인사의 허위 학력을 의심하며 마녀 사냥 식의 추궁으로 이어졌다. 한 예로 얼마 전 네이버 검색어에 인기 가수 타블로 씨의 이름이 1위로 올랐었다.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타블로의 학력도 허위 사실 아니냐는 의심에서 비롯되었다. 타블로 씨는 때 아닌 해명을 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마녀 사냥 식의 추궁은 사태를 완화 시키지 못하고 더욱 부채질만 가속할 뿐이다.

학벌 중심 사회 고리 끊는 계기로 삼아야
이 계기를 빌어 우리 사회의 만연한 학벌 중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학력 위조 파문은 그간 우리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는 황우석 교수 사건과 논문 표절, 교수 임용 비리 문제 등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 사건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는 지혜가 우리 사회에 더욱 요구된다.
김종휘 문화 평론가는 “미술계에서 시작한 허위 파동이 학문 장르가 아닌 연예계로 옮겨 증폭되고 있는데 연예인들에게만 너도 나도 돌을 던진 뒤 ‘게임 끝’하면 억울할 것이다. 물길을 제대로 트기 위해선 학력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끝까지 이야기해 봐야 한다. 문제는 학력이 변별성이 없어진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창조력 지수 등 새로운 변별 지수가 개발 되어야 한다.”고 허위 학력 파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유명인들의 허위 학력이 잇따라 보도 되면서 “이 사건을 학벌 중심의 병리가 하나하나 치유되는 과정으로 생각해야 한다”라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 각 분야로 허위 학력 파문 도미노 현상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지금, 사회에 대한 실망과 불신을 가지기보다, 사태를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제도 개선과 함께 학벌 중심의 사회분위기 타파, 개개인의 인식 전환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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