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5호=오경근 칼럼리스트) 양평군은 한반도의 정중앙이다. 경의중앙선 양수역에서 멀지 않은 양수리(두물머리)와 북한강 카페촌은 수도권 최고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는다. 북한강과 남한강 두 물이 합류해 한강을 이루는 두물머리는 물과 꽃이 함께하는 수려한 강변 풍광이 특히 일품이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번 목적지인 황순원문학촌이 있다. 소나기마을의 주요 장면을 테마로 한 공원과 황순원 선생의 작품을 집대성한 문학관, 황순원 묘역 등이 들어서 있다.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은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 341(서종면 소나기마을길24)에 위치한다. 북한강을 왼쪽으로 끼고 오르다가 문호리에서 지방도 352번을 타고 가다 보면 소나기 마을 표지판이 보인다. 작가가 교수로 재직했던 경희대학교와 양평군이 124억 원을 투입하여 4만 7,640㎡(약 1만 4,000평)의 야산 부지에 3층짜리 문학관을 비롯해 황순원문학공원을 조성하여 2009년 9월에 개장하였다. 소나기마을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곳은 역시 문학관이다. 황순원 선생의 문학세계와 인생을 고스란히 되살려냈다.
윤초시네가 이사한 양평에 터 잡은 문학관
근래 들어 유명 문인이 작고하면 그의 제자들이나 고향 사람들이 기념사업회를 결성하고 문학관을 건립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인의 업적을 기리고 널리 선양하는 것은 물론 자기 고장을 홍보하기 위함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고향이 남한에 있지 않은 유명 문인이 작고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설가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을 평양과 오산에서 짧게 보낸 뒤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교에서 수학했다. 그 후 한국전쟁 발발 전에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했고, 서울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경희대학교 교수로 특별한 보직 없이 23년 6개월을 재직했다. 이 기간 동안 실질적으로 양평에 적을 둔 적은 없다. 2000년 9월 14일, 세상을 떠나 고향도 연고도 없이 천안 병천 공원묘지에 유택을 마련한 황순원을 기리며 경희대학교 제자들이 문학관 건립에 뜻을 모았다. 양평이 황순원 문학관의 최적지가 된 이유는 바로 소설 <소나기> 때문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는 내용과 소년과 소녀가 만난 징검다리 등 소설의 배경과 닮은 곳이 바로 양평이었기 때문이다.
개울물은 날로 여물어 갔다. 소년은 갈림길에서 아래쪽으로 가 보았다. 갈밭머리에서 바라보는 서당골 마을은 쪽빛 하늘 아래 한결 가까워 보였다. 어른들의 말이,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 거기 가서는 조그마한 가겟방을 보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호두알을 만지작거리며, 한 손으로 수없이 갈꽃을 휘어 꺾고 있었다. 그날 밤, 소년은 자리에 누워서도 같은 생각뿐이었다. 내일 소녀네가 이사하는 걸 가보나 어쩌나. 가면 소녀를 보게 될까 어떨까,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는가 하는데, “허, 참 세상일도…….” -황순원의 <소나기> 중에서-

시인이자 소설가인 황순원과 소나기마을
황순원(1915~2000)은 평안남도 대동군 재경면에서 태어나 평양 숭실중학교와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17세 때인 1931년 <나의 꿈> <아들아 무서워 말라> 등 시를 [동광]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1934년 [삼사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소설도 함께 창작하기 시작했다. 1940년 단편집 <늪>을 간행한 이후 소설 창작에 주력하며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아시아 자유문학상, 예술원상, 3·1문학상, 인촌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주요작품으로는 단편 <별> <목넘이 마을의 개> <학> <독 짓는 늙은이> <소나기> 등과 장편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일월> 등이 있다. 소설가 황순원은 시 104편, 단편 104편, 중편 1편, 장편 7편을 남긴 대한민국의 대표적 작가다.
황순원의 고향은 이북이지만 생애 3분의 2를 남한 땅에 살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또 경희대학교 국문과에 재직하며 수많은 문인 제자들과 교수들을 길러내었다. 이들 중 전상국(소설가·강원대 명예교수), 김종회(문학평론가·경희대교수), 박덕규(소설가·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 등이 황순원의 문학을 온 국민이 체험하도록 하기 위해 적합한 공간을 찾아 발 벗고 나서게 되었다. 이들은 단편소설의 백미인 <소나기>가 온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라는 데 착안하였다. 시골 소년과 도시에 살았던 소녀의 풋풋하고도 애틋한 감정을 묘사한 이 소설은 1953년 발표된 이후 반세기 넘게 꾸준히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교과서에 실리고, 수많은 엽서와 편지에 인용되는가 하면 뮤지컬, 2인 오페라까지 만들어지면서 인구에 회자되었다.
소년과 소녀가 함께 비를 피했다는 수숫단에 착안해 수숫단 모양으로 지은 황순원문학관은 제1전시관, 제2전시관, 카페테리아, 남폿불 영상실로 꾸며져 있다. 제1전시관과 제2전시관에서는 황순원의 유품과 육필원고, 작품 감상 공간 등을 살펴볼 수 있고, 남폿불 영상관에서는 소설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 소녀가 떠난 이후 소년은 어찌 되었을까. 짧지만 순수했던 첫사랑 소녀를 떠나보낸 소년은 무엇을 추억하며 살아갈까. 상상의 나래를 더하는 애니메이션은 소녀와 소년이 재회하는 몽환적 스토리로 구성되어 이채롭다.

황순원의 문학적 가치
황순원은 서정적인 아름다움과 소설문학이 추구할 수 있는 예술적 성과의 한 극치를 시현한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 소설 미학의 전범을 보여주는 다양한 기법적 장치들, 소박하면서도 치열한 휴머니즘,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에 대한 애정 등을 고루 갖추었다고 평가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