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악플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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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악플중독
  • 글_이현지 기자
  • 승인 2007.09.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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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 다는 것도 병, 멍드는 ‘사이버 문화’
게시판마다 악의적인 비방과 욕설 넘쳐나
인터넷은 지금 우리 사회 속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처음 인터넷이 탄생되었을 때처럼 인터넷에서 단순히 정보만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자기 주변만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심지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특성상 서로 직접 마주하지 않고 이런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면서 수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성은 수많은 피해자 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 초고속 인터넷 사용인구 1,410만 명, 세계 6위라는 통계가 발표됐다. 이렇듯 우리생활에서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인터넷이지만 악의적 댓글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인터넷 댓글문화의 정착을 위해 정부와 학교, 각종 포털들에서는 그동안 꾸준히 캠페인을 벌이고 ‘선플’달기 운동도 추진하고 있지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인터넷 여론은 이제 큰 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네티즌들의 결집된 의견은 정부정책으로 반영되고 사회운동으로까지 확산되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훨씬 많았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많이 오고가는 게시판마다 악의적인 비방과 욕설이 넘쳐나고 심지어는 그런 비난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생겨나고 있다.
‘악플러’란 다른 네티즌의 글에 악의적인 욕설이나 비방의 악성 리플(일명 ‘악플’)을 다는 네티즌을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이다. ‘악플족’이라고도 부르며 ‘인터넷 훌리건’이라고도 하고 네티즌과 훌리건을 합쳐서 ‘네티건’이라고도 부른다.

“하루라도 악플을 안 달면 허전해요” 악플 중독 심각
습관처럼 악플을 올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인터넷 문화의 특성에 원인이 있다고 말한다. 주로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댓글을 달게 되어 있어 개인의 생각을 너무 감정에 치우쳐서 반응한다는 것이다.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신경정신과 김종우 교수는 “댓글은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것인데, 악플을 올리는 사람은 이성적인 논리가 아니라 자극에 의해 직각적인 감정으로 표출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제도적인 장치보다는 먼저 댓글을 다는 사람 자체에 인터넷 에티켓을 심어주는 게 필요하고, 악플이 이슈화되지 않게 관심을 두지 말고, 오히려 악플에 선플(꼬리말을 달 수 있는 게시물에 꼬리말을 좋게 올리는 것)을 달아줘 더 이상 악플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악플러에겐 공통점이 있다. 악플을 주로 올리는 사람은 주로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무언가에 억압되어 있거나 미성숙한 성격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김종우 교수는 “평상시에 드러내지 못하던 감정을 얼굴을 맞대지 않는 인터넷 특성을 이용해 풀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한다. 또 이런 악플러들 사이에는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자주 타인을 질투하거나 오만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을지병원 신경정신과 신홍범 교수는 “자신은 특별하다고 믿고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자기애적 인격장애’라고 하는 데, 특히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우월감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 내리려고 하는 경향이 강해, 이런 성향을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그대로 표출한다”고 전한다.
이렇듯 악플은 달면 달수록 더 강력한 악플을 달게 하는 중독성이 있다. 이런 경우 현실세계에서 자기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도움이 된다. 건양대병원 신경정신과 기선완 교수는 “악플러들은 일단 자신이 가볍게 올린 글로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 해 두고, 마음속에 잠재되어 있는 열등의식을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정서적인 교류로 풀어보거나, 운동이나 여행을 통해 극복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이와 더불어 전문의 들은 “악플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일단 악플은 일반적인 평가라고 생각하지 말고 되도록 무시하는 것이 좋다”며 “만일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전문의를 찾아 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전한다.

자극적일수록 호응 받아 무차별적 발산
전문가들은 악플에 대해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 숨겨진 공간을 이용하는 비겁한 행위”라며 “특히 국익에 반하는 행위 등은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종교 갈등을 부추기는 악플과 관련, “처음엔 피랍자들이 정부의 권고에도 불구, 무리하게 아프간에 들어간 것과 단순한 종교적 견해 차이에서 비판을 시작했다”며 “그러나 호응하는 그룹들이 늘어나면서 극단으로 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이전에 올린 글보다 자극적이어야 관심을 받게 되는 만큼 더 과격해지고 행동으로까지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며 “문자화하면 생각도 바뀌게 되므로 글을 작성한 사람이나 댓글을 다는 사람 모두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윤세창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는 “매사 자신감이 없고, 심리적 열등감 등으로 위축돼 있는 사람들이 주로 악플을 단다”며 “숨을 수 있는 공간에서 평소 내재돼 있던 공격성을 무차별적으로 발산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공간을 감정의 배설구로 이용한다는 것. 그는 “청소년들은 깊은 사고나 판단 없이 생각나는 대로 일종의 재미로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사이버 공간이 매우 ‘심리적인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인터넷 상에서 같은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강력한 유대의식을 갖게 되고 그 유대감은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소속감과 동질의식을 심어주게 된다는 분석이다.
김성식 한국교원대 교육정보원장은 ‘악플’을 막기 위해 “인터넷 예절교육과 온라인상의 실명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악플은 국익에 반하는 행위지만 현재로선 처벌이 불가능하다”며 “인터넷 특성상 작성자를 잡아내기도 힘들 뿐더러 안다 해도 그를 공개하는 것 외의 처벌은 사실상 힘든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진중권 vs 네티즌 끊없이 막가는 ‘댓글 전쟁
영화 ‘디워’에 대한 논평으로 불거진 진중권씨와 네티즌의 댓글전쟁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에서는 진씨와 ‘디워’를 비난하는 다양한 패러디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를 둘러싸고 진중권-심형래·디워빠, 진중권빠-심형래·디워빠의 댓글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
이번 전쟁은 진 씨가 MBC TV ‘100분 토론’에 출연, 영화 ‘디워’를 둘러싼 사회분위기를 비판하면서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진 씨는 ‘디워’에 대해 “컴퓨터그래픽에만 집중해 서사가 전혀 없어 비평할 가치조차 없는 영화” “영구가 ‘영구 없다’고 하는 꼴” “엉망진창인 이 영화에 대한 일방적 옹호에 꼭지가 돈다” 등의 직격탄을 날렸다.
그의 이러한 논평은 곧장 네티즌의 공격을 불러일으켰다. 네티즌은 “저런 걸 교수로 두고 있는 중앙대 학생도 고정관념을 꽉꽉 머리에 채워 넣고 있겠군” “당신, 공부 뭐하러 했어. 서울대 교수도 못할 거면서…” 등 인신공격성 악플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진씨가 자신의 개인 블로그를 ‘공격’한 네티즌을 상대로 “아그들 왔냐?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짓도 통하는 사람한테 해야지, 내 얼굴 봐라. 어디 통하게 생겼디?”라며 “너그들끼리 투표해서 반장 하나 뽑아줄래? 반장이 급우들이 하는 말들 분류 정리해서 제출하도록. 모아서 나중에 한 번에 쌔려줄게”라고 반격하면서 싸움은 더욱 확전됐다.
진 씨는 이어 다음날에도 또다시 네티즌을 ‘어린이’에 빗대어 “페이지 갈아드리는 참에 음악도 바꿔 봤어요. 어린이 여러분 눈높이에 맞춰서”라며 “도배하는 어린이들 자제해 주세요”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그러는 사이 네티즌은 진 씨가 겸임교수로 일하는 중앙대 독문학과 홈페이지에 ‘댓글폭탄’을 쏟아 부어 홈페이지를 수차례 다운시켰다. 네티즌의 댓글은 진 씨 개인뿐 아니라 중앙대와 학생들에 대한 비난으로도 이어졌다.
이러한 네티즌의 격렬한 반응이 전문가의 정당한 평론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인 가운데 진 씨의 태도도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악플러를 겨냥한 것으로 보이지만, 공인인 진 씨가 홈페이지에 올린 표현도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에는 진 씨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진 씨가 오죽했으면 그런 표현을 했겠느냐”며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온갖 욕설을 퍼붓는 네티즌에게는 달리 대응할 방법이 없는 것이 지금의 인터넷 문화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비평은 비평일 뿐이다. 평론가들이 네티즌을 무서워해 평론을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면 그것은 히틀러의 파쇼시대와 같은 것”이라며 “‘100분 토론’에서 ‘디워’의 단점을 솔직하게 지적한 사람은 진 씨뿐”이라고 ‘진빠’를 자처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특히 문화·영화 평론가 사이에서도 “ 진씨는 진짜 권력의 억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별다른 힘도 없는 네티즌하고만 싸우는 장사꾼”이라 하거나 “평론가로서 거침없이 의견을 내놓은 대가로 일부 네티즌의 타격 대상이 돼 안타깝다”는 의견이 엇갈리며 또 다른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들 68% 악성댓글에 시달린다
국회의원도 악성댓글에 몸살을 앓고 있다. 김선미 의원(열린우리당)이 의원회관 의원실을 대상으로 악성댓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43명의 응답 의원 중 68% 정도가 악성댓글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홈페이지 71%, 포털사이트 14%, 뉴스기사 6% 등의 순서로 악성 댓글이 많았다.
홈페이지를 찾아가는 악플러의 적극성과 달리 의원들은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성을 인식하지 않은 채 그냥 묵인하고 넘어가는 양상이 약 64%을 보였으며, 글 삭제 및 지적 답글 등 적극적인 대응은 고작 26%였다. 또 인터넷 실명제 도입과 실시가 악성댓글에 대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답변이 약 81% 이상으로 나타났으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답변이 약 6%로 조사됐다.
댓글 문화 개선 방법에 대해 댓글 쓰기 기준강화가 약 56%, 이용자의 자정활동 유도가 25%, 운영자의 관리가 약 17%로 나타났다.
악성댓글을 근절하려면 법적 제도적 측면을 보완 및 강화하자는 답변이 57%, 악성댓글 게 시자처벌 약 25%, 댓글서비스 자체 중단 약 10% 순으로 조사됐다.
김 의원은 설문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인터넷 실명제 실시가 악성댓글을 근절시킬 대안은 될 수 없다고 분석하고 법·제도 장치를 강화한 상태에서 토론문화를 정착 및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통부, 사이버권리 피해구제 가이드라인 마련
명예훼손은 엄연히 형사처벌 대상이다. 인터넷이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얼굴을 모른다는 점을 이용해서 인터넷에서 비방글을 올리거나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등의 행위는 인권침해이자 명예훼손에 해당한다.
정보통신부는 인터넷에서 발생하고 있는 명예훼손 사례와 함께 명예훼손을 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을 자세히 담은 ‘사이버권리 피해구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가이드라인은 어떤 경우가 권리침해에 해당되는 것인지를 유형별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포털 같은 사업자들은 이용자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어떤 예방조치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어, 이용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이버에서 권리침해를 당했다고 생각되는 이용자가 그 다음단계에서 취할 수 있는 구제절차도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되는지,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죄의 차이, 메일과 채팅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한다던가 공포감을 유발하게 하는 행위는 어떤 처벌대상이 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돼 있다. 이 같은 피해를 당한 이용자들이 신속하게 취할 수 있는 조치와 피해구제나 분쟁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 처벌대상이 되는 관련법과 제도에 대해서도 안내한다. 가이드라인만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면 정보통신윤리위원회 산하에 신설된 명예훼손분쟁조정부를 통해 관련 조정신청 절차와 방법을 문의하면 된다.
한편, 사업자들은 이 가이드라인을 참고삼아 이용자 보호 차원에서 게시판과 미니홈피 댓글 잠금 기능을 설치하거나 게시판별 신고버튼을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네이버, 다음, 네이트같은 주요 포털들은 이미 댓글 잠금기능이나 신고버튼이 설치돼있어, 사업자 차원에서 악플러 차단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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