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마을 사람들’ 힘 모아 라이 따이한을 돕다
천경사는 세 가지로 유명하다. 우선 넋을 잃을 정도로 빼어난 천경사의 아름다운 주변 자연경관에 매료돼 처음 이 곳에 발길을 딛고, 부처님의 인연으로 사찰 안으로까지 걸음을 옮기게 되면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내부의 아름다움과 경건함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천경사 내, 외부의 아름다움이 유명세의 하나라면, 베트남과 활발하게 불교 교류를 하고 계시는 주지 수원 스님의 자비행의 실천이 또 다른 하나다. 마지막 하나는 라이-따이한을 돕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출시한 ‘지족연차’와‘연오뎅’의 기막힌 맛이 바로 그것이다.
천경사는 경남 밀양시 가곡동에 소재한 용두산 삼림욕장 끝 벼랑에 위치하고 있다. 그야말로 배산임수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 아담한 사찰이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 보면 탄성을 자아내게 되는데 병풍처럼 둘러진 용두산과 그 아래 고요하게 흐르는 밀양 강줄기가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특히 천경사는 주지 수원 스님의 뛰어난 불교 예술적 감각으로 절 곳곳에 빠져 들게 만든다.
천경사의 아름다움에 반하다
천경사에 가면 눈여겨 봐둬야 할 것이 불상이다. 대웅전을 비롯한 모든 불상은 주지 수원 스님과 함공 백경현 사무장이 함께 조성한 것으로 소재는 불상으로서는 드물게 흙을 사용했다. 평소 도예에 관심이 깊으신 수원 스님과 조각을 전공한 함공 사무장은 고려 중기의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불상의 양식을 전통가마에서 소성하여 재현했다. 특히 자연 상태의 암벽을 그대로 살려 사찰을 조성했기 때문에 대웅전 내부는 불상 뒤로 일체 탱화가 없이 바위가 드러난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활용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다.
자리를 옮겨 복층 구조의 절 아래로 내려가면 동판에 송곳으로 점을 찍어 석가모니의 생애와 아미타부처의 극락세계를 재현한 30m의 석굴 법당이 나온다. 모두 8단락으로 구성된 석가모니의 생애는 불교미술작가 구진경 씨의 작품으로 동판에 작은 구멍을 뚫어 연결한 형태의 그림으로 표현돼 있는데, 동판 뒤 쪽에서 비추는 조명 빛이 뿜어져 나와 불교예술로서의 아름다움도 함께 추구했다. 또한 경전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불교를 일반인들이 시각적으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색다른 각도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다. 특히 그림이 주는 강한 이미지는 문자 이상의 효과를 일반인들에게 줄 수 있고, 어린이 포교에도 효과적이다.
석굴의 통로를 따라 들어오면 마치 동굴을 연상케 하는 예불과 참선 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곳은 천경사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수행공간으로서 현세에 이루어진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곳이다. 흙으로 한 번에 쌓아올려 조성한 아미타불과 지장 및 관세음보살은 천연 자연암반과 18나한에 둘러싸여 있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감돈다. 천경사를 찾아오는 이들은 이 석굴 법당에서 기도와 참선을 행하는데, ‘복을 짓는 종교, 부모와 조상을 숭상하는 효, 나와 이웃과의 인연을 중시하는 불교의 가르침’을 몸소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불사가 20여 년 전부터 천경사의 주지 소임을 맡아 온 수원 스님이 ‘포교와 기도, 복지사업을 함께 구현 하겠다’고 마음먹고 조금씩 일궈낸 것이라고 한다. 특히 석굴 법당 조성은 보통의 원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주지 스님을 중심으로 천경사 불자들이 신심의 힘을 합쳐 이룩해 낸 놀라운 결과이다. 수원 스님은 “불상 하나 하나를 직접 제작하며 부처의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 계기를 가졌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생들이 불가의 가르침을 몸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사찰로 나아가겠습니다”라는 속 깊은 서원을 밝히기도 했다.
베트남과의 교류 선구자 수원 스님, 베트남 불교연합종단의 초청과 정부의 인정을 받아
천둥번개 이은손님 맑고고운 하늘빗님/ 또르록똑 굴러모여 하나되는 작은우주/ 산도들도 모인그곳 홍련백련 흙탕 속에/ 세상인연 함께하며 군자살림 지족하네
20대 초반에 통도사로 출가하여 전 종정이셨던 월하 큰스님을 은사와 법사로 모시고 계율을 받은 천경사 주지 수원 스님의 ‘지족의 삶’이란 글이다. 지족(知足)을 강조하는 스님은 “석가모니의 출가동기 그 자체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라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복지사회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실제로 스님은 복지사회와 중생구제의 원을 효율적으로 펼치기 위해 동국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였다.
수원 스님이 호국 불교의 요람인 밀양에서 천경사 주지의 소임을 맡으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추진하는 사업은 바로 ‘베트남 불교와의 교류’와 ‘라이 따이한을 위한 복지 사업’이다. 천경사에서 간혹 한국말이 서툰 베트남 스님들과 마주칠 수 있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두 나라는 과거 다른 나라의 통치를 받았다는 식민지배의 아픈 역사적 경험도 있으며, 베트남 전쟁에 따른 한국군의 참전에 의한 상처도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대승불교인 한국에 비해 베트남이 남방불교권에 속하지만 선(禪)을 중시하는 임제종의 수행방법이 유사하다. 따라서 한국과 베트남 불교의 좋은 점을 서로 접목한다면 양국의 불교 발전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의 우호 증진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스님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수차례가 넘도록 베트남 정부와 불교연합종단의 초청을 받아 한국 대표단으로 베트남을 오가면서 베트남과 한국불교 교류의 ‘선구자’로 불리고 있는 스님은 특히 불교 교류뿐만 아니라 베트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라이 따이한’을 돕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이를 위해 현지에 라이 따이한을 돕기 위한 ‘연꽃마을 사람들’을 설립해 베트남의 각전(覺全)스님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호치민 시에 있는 베트남불교 교육원인 중심사(中心寺)에서 한국어강좌를 개설해 라이 따이한과 베트남 승려들의 한국어 학습을 돕고 있어 베트남 호치민에서는 불교 관계자뿐만이 아니라 베트남 주재 우리 교민과 사업가를 포함한 많은 현지인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다.
수원 스님은 “한국과 베트남 간의 교류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물질의 교류만이 아닙니다. 사상적인 교류가 이뤄질 때 진정으로 양국의 우호가 다져지는 것이지요. 베트남은 불교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에 불교에서 시작된 교류는 민간외교이기도 하며 동시에 국가외교의 첫 걸음이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라며 앞으로 불교 발전과 양국의 관계 개선 가능성에 대해 시사했다.
라이따이한을 돕는 ‘지족연차(知足蓮茶)’ ‘연(蓮)-오뎅’
마른 햇잎이 뜨거운 찻물에 녹아 찻잔을 샛노란 물로 채워 놓았다. 수원 스님에게 물었더니 햇잎이 아니라 백련의 연밥에 들어있는 배아라고 한다. 백련의 배아를 비비고 말리는 전통적인 덖음 제다법에 의해 만든 이 차의 이름은 ‘지족연차’인데 구수하면서도 쌉쌀한 풍미가 백련의 향기와 어우러져 아무리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스님은 “음다를 통해 자아의 만족스러움과 정서적인 안정, 그리고 사물에 대한 편안함과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어요”라며 처음엔 쌉쌀하다가 마실수록 구수한 맛을 내는 지족연차에 대해 설명했다. 백련의 배아는 전량 베트남의 청정지에서 계약재배된 것을 사용하며 코엑스에서 열린 차 박람회에 참가해 상당한 반응을 얻은 바 있다. 또 반찬이나 간식으로 먹으면 좋은 ‘연 오뎅’도 함께 출시했는데, 잡어를 재료로 하는 우리나라의 일반 어묵과 달리 베트남에서 잡히는 고급어종인 돔의 살로만 만들어져 기가 막힌 맛을 낸다. 기름으로 튀기지 않아 트랜스 지방이 전혀 없고 냉동보관이 가능해 오래뒀다 먹을 수 있는 ‘연 오뎅’은 9가지 종류가 있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지족연차와 연 오뎅은 라이-따이한을 후원하는 ‘연꽃마을사람들’이 만든 것으로 수익금은 라이-따이한 2~3세대와 결손 아동의 교육과 생활을 지원하는데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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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따이한을 돕는 연꽃마을사람들 촌장 수원 스님
‘연꽃마을사람들’은 사회봉사 공익단체로서 한국-베트남간의 문화와 사회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며,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양국 사이에 발전적인 관계 개선을 위하여 뜻을 모은 민간 봉사단체다. 특히 전쟁이 끝난 후 한국인 아버지가 귀국한 뒤로 결손가정에서 자라야 했던 라이-따이한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우리 농촌 총각과 베트남 처녀와의 국제결혼의 부작용으로 초래되는 가정폭력과 이혼 등에 대한 국제적인 인권문제에 지원책을 모색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베트남의 각전(覺全)스님과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천경사 수원 스님은 ‘연꽃마을사람들’의 창립 취지이면서 동시에 자비와 보시행을 실천하고자 하는 서원을 담은 말을 남겼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처럼 라이 따이한의 응어리진 아픔의 문제는 분명 우리가 풀어야 할 역사적인 숙제입니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라이-따이한 가정의 현실적인 고통 역시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국제적인 과거사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정부 차원에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방안에 대한 다양한 모색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민간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의 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진솔한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이제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연꽃마을사람들’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순수 민간차원에서 실천 가능한 후원사업들을 점진적으로 지속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로 인해서 아파하는 지구촌의 또 다른 이웃이 없는지 마음의 문을 열고 돌아보면서,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작지만 소중한 참여가 있기를 바랍니다. ‘연꽃마을사람들’의 사업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면서, 나아가 아름다운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세계 속의 좋은 이웃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하루가 열리는 새벽이면 늘 참회와 서원의 기도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