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참 뜻을 전하기 위해 수행정진에 힘써
오늘날 우리는 21세기의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지식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정리하여 자기 삶의 수단 즉, 재화로 전환시키며 나날이 살아가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종교가 가져다주는 의의는 세상사에 대한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종교는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사후(死後)에 대한 인간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불교는 현실 초월적인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나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불교는 현재의 결과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는 인연(因緣) 즉, ‘인과법(因果法)’에서 출발한다. “인과법은 단순히 사람들에게 선행을 권하고 좋은 일을 가르치기 위한 것으로만 사람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인과의 의미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인(因)에 대한 과(果)는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바꿀 수 없으며 신이라도 어길 수 없는 것이다. 인과는 우주 만물과 인생의 모든 것을 지배하며 과거와 현재·미래의 삼세인연과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다” 불교는 세상만사 모든 진리를 찾아 인과에 의한 법도를 가르치는 것으로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지침을 일깨워준다. 하지만 그 이치를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기란 힘든 것이 사실이다. 현대인들은 종교를 통해 스스로의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성찰을 통해 각박한 현대사회 속에서 편안한 삶을 누리길 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중생들의 마음이 평온할 수 있도록 항상 기도드리는 서봉사의 경희스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다.
불자들의 귀의처, 서봉사
기린 위에 앉아있는 부처님의 성스러운 모습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서봉사는 비구니 스님들만 기거하는 절이다. 이 절은 90여년이 넘는 오래된 역사를 지닌 곳으로 조선 후기 기생(궁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혹은 대장금에서의 의녀와 같이 궁의 진연을 도맡아 하며 궁에 출·퇴근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관기를 총칭)으로 지냈던 청신녀(淸信女/불교를 믿는 여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가 이 곳 양반의 재취로 혼인했다고 한다. 그 후 남편에게 상속받은 재산으로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 서봉사를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 이 곳은 주요 사찰을 가는 중간 기착지로, 여기서 스님들이 숙박 등의 용도로 사용되던 잠시 머물러 가는 곳이었다. 절의 소유가 9분의 명의로 되어 있던 것을 정리하고 서봉사가 정식으로 절로 인정 된 것은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수도산은 원래 기린산으로 불렸다고 하며, 스님의 이름을 따서 서봉사가 되었다는 이 사찰은 풍수 지리학상으로 기린의 정수리 부분에 위치해 기가 센 지역이라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리고 있다 한다. 서봉사는 거주하는 비구니 스님들이 규모 있는 살림을 하며 포교에 주력하여 수많은 대구 신도들의 귀의처가 되고 있다.
진정한 ‘참 나’를 찾아서
기린산 서봉사는 대구시 남구 이천동 439-2 번지에 있으며, 서봉사가 창건된 이래로 탄응, 동운, 전강, 학봉등 여러 스님이 서로 이어 주석하였다. 서봉사 사적비(운허스님 지음)에 따르면, 1952년 본공 비구니(현 주지 경희 스님의 은사)가 결제 후 해제 때면 주석하면서 사원을 수호하고 불법을 선도하였다고 한다. 그 후 1965년 조계종 산하의 재단법인 선학원의 명의로 등록하고 그 분원이 되기까지 법정에 항소하는 쟁의에 휘말리고, 1971년 쌍방의 화해가 성립되기까지는 쟁의의 와중에 있었다. 쌍방의 화해 후 비로써 본격적인 가람분사를 할 수 있었다. 본래의 목재 요사를 헐고, 현재 위용의 기초를 이루는 불사를 했다.(1972년 당시 이층 콘크리트 건물 88간의 요사체, 대웅전 8간, 명부전 4간, 칠성각 2간, 기타 요사 10간등) 그 후 범종각, 사천왕등의 불사를 보완하여 가람의 규모를 현재의 위용으로 갖추게 되었다. 서봉사는 인재 양성을 중요한 불사 덕목으로 삼고, 발심, 출가한 불제자를 단련시키고 있다. 불교 미술 분야에서, 양로원 복지 분야에서, 불교 범패에서, 그리고 해외 유학을 통한 불교의 세계적 감각을 익히는 등 다방면에서 상좌스님의 매진은 모두 주지 스님의 인재불사에 따른 결실이다.
한국 불교교단 한 축을 맡고 있는 비구니 스님
비구니는 비구와 함께 불교 승단의 두 축이다. 1만 명 안팎의 조계종 출가자 중 비구니 스님이 절반에 이를 정도로 비구니는 종단의 양 날개 중 하나이나 그동안 불교계에서는 비구니 스님들이 비구 중심의 불교 현실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위상이 상당 부분 폄하돼 왔으며, 법맥의 흐름조차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조계종 수행의 핵심인 동안거·하안거 때마다 비구니도 비구 못지않게 많은 수가 참여하며, 치열한 정진을 거쳐 당대의 선지식으로부터 깨달음을 인가 받은 스님도 없지 않다. 오늘날 한국 비구니 승가가 세계 최대의 비구니 승단이 된 것은 이처럼 치열한 구도와 수행으로 척박한 시대를 헤쳐 온 선배 비구니들이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비구니 승단의 여법한 교육과 수행상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도 현실에서의 위상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묵묵히 수행과 교육을 통해 불도에 전념해왔던 비구니 스님들은 비구 중심의 한국 불교현실을 타파하고 당당한 승가의 일원으로 수행전통을 이어가기 위한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다. 한국 불교교단의 당당한 축을 일궈가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이 숭고하고 고매한 선각의 찬란한 과거를 반추해 모든 불자의 불법수행에 등불이 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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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사/주지 경희스님 인터뷰
“부처님께 진정한 기도를 통해 섬김을 다할 때 몸과 마음이 평온해진다”
전국에서 신심 높기로 유명한 대구에 여러 불자님과 함께 수행·정진하고 있는 깊은 인연에 대하여 부처님 은혜에 지금까지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 21세기를 맞이하여 우리들은 전통을 계승하고 새롭게 다시 부처님 사업을 일으켜 대구가 한국불교의 요람이 되고, 나아가 청정불국토가 되도록 자신과 이웃을 정화하여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은사스님(본공 비구니)의 불교사상아래 물적, 정신적 불사에 매진하여 왔습니다. 향후 서봉사를 짊어지고 나아갈 다음 세대 스님들에게 각기 발원하는 바에 따라 불교 미술뿐만 아니라 불교 세계화를 익히는 등 각 분야에 연찬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전통이념의 한 특징은 유교의 조상숭배입니다. 사라져가는 조상숭배의 훌륭한 덕목을 되살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윤회의 수레바퀴를 벗어나 청정국불토에 왕생하도록 발원하여, 아미타 부처님 도량에 안주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의 바람은 이 도량이 대구 여러 불자님의 마음의 고향, 안심입명의 안량처가 되어 일마다 원만히 성취되고 가정마다 불은이 충만하며, 온 대구와 전 국토가 부처님의 자비로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이는 부처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만큼 몸과 마음을 다해 섬김을 다한다면 불자님의 생에 평온함이 깃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