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이냐 배신이냐’ 놓고 설왕설래, 정치인의 가벼운 소신 도마에
박근혜의 입을 자처하며 한나라당의 최장수 대변인으로 많은 화제를 낳았던 전여옥 의원이 갑작스레 이명박 전 시장을 지지해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전 의원은 이 후보 캠프 합류와 관련, “정권교체를 위해 저를 제물로 바칠 각오를 하며 제 모든 힘을 다해 이명박 후보를 돕겠다”는 ‘이 후보 구하기’를 구호로 내걸었다. 그러나 수많은 안티를 등에 업고 각종 말실수와 더불어 최근에는 저서의 표절논란에까지 휩싸인 전 의원의 합류가 이 전 시장측에서는 사실 긍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전 의원은 박 전 대표가 당을 이끌던 시절, 1년 9개월간 박 전 대표의 ‘입’으로 통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전 의원은 한때 박근혜 후보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최병렬 대표에 의해 영입됐던 그는 박근혜 대표 시절 대변인을 지내며 ‘박(朴)의 여자’ ‘박의 입’으로 불렸다. 서로 귀엣말을 주고받는 모습이 종종 노출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기에 그의 이 캠프 합류를 의아하게 여겼던 인사들이 많다. 더욱이 지난해 의원 당선에 ‘박근혜 후광’이 작용했음을 부인키는 어렵다. 그래서일까. ‘변절’ ‘배신’ 이라는 말들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 의원의 출세작이기도 한 ‘일본은 없다’ 저서 표절에 대한 법원 판결이 불리하게 나오자 이 후보의 우산으로 숨으려는 게 아니냐는 억측도 나온다.
하지만 전 의원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정권교체를 위해 나를 제물로 바칠 각오”라며 “이 후보를 돕는 길만이 정권교체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엄청난 고통 속에서 국민을 구할 이가 누구인가 고민했다”며 “결론은 이 후보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후보를 “배고픔에 소리 죽여 울어본 사람”이라거나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직장에서 몸부림쳤던 우리 같은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이어 “절망의 시대에 샐러리맨의 신화에 기름을 부어 대한민국의 신화를 활활 타오르게 할 인물”이라며 “이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땀 흘린 사람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의원의 소신은 그가 평소 신앙처럼 말해오던 ‘오매불망 정권 교체’를 위한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도 해석된다.
계속되는 전 의원의 화려한 ‘변신’ 혹은 ‘변절’
하지만 그의 이 캠프 행은 결국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본인 스스로도 “박근혜 저격수 역할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박 전 대표와의 인연의 끈을 완전히 놓지 못하면서도, 계속되는 검증 공방에도 10%가량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 전 시장으로 기운 것이다. 이 캠프는 전 의원을 여성 몫의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등 최상급 예우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의원의 ‘변신’(혹은 변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 의원은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후보의 국민승리21의 당무위원으로 TV 대선후보 지지토론에 나서 ‘이회창 불가론과 한나라당 부패정당론’을 펼쳤다. 하지만 그는 머지않아 자신이 공격의 날을 세우던 한나라당으로 돌연 합류했다. 그저 합류한 정도가 아니다. 비례대표 중에서, 초선의원 중에서 전여옥 의원만큼 그 역할이 한나라당 안에서 돋보였던 의원은 없다. 한나라당과 박근혜 전 대표에게 독설을 퍼부었던 전 의원은 입당 뒤 바로 한나라당의 ‘공식 입’이 되었다. 전 의원은 한나라당 최장수 대변인으로 ‘독설’을 이어갔다. 그 과녁이 이회창과 한나라당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여당으로 달라졌을 따름이다. 전여옥은 대변인이면서 동시에 ‘박 대표의 입’ 노릇을 충실히 했다. 끝없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말을 바꿔온 전 의원이 다시 한번 ‘과거와 결별’을 했다. 이명박 캠프로 합류한 전 의원이 대통령 선거운동 공간에서 상대를 향해 ‘어떤 공격’을 펼칠지 궁금하다.
전 의원의 속사정…표절 시비와 몸값 상승?
전 의원의 선택은 어쩌면 전날 있었던 법원 판결과 무관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서울 중앙지법은 지난 7월 11일 전 의원이 ‘일본은 없다’ 표절 논란에 대한 기사를 작성한 ‘오마이뉴스’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원고는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일본에 대한 책을 출간하려고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한 내용을 정리해 초고를 작성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지인으로부터 들은 취재내용 및 아이디어, 그로부터 건네받은 초고의 내용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인용해 ‘일본은 없다’의 일부분을 작성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무단 도용 사실을 인정했다.
전 의원은 이날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항소의지를 밝혔지만, 그의 출세작인 ‘일본은 없다’의 표절 인정은 자신의 정치생명에 큰 위협임에는 틀림없다.
전 의원은 ‘몸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평소 그의 합류를 기대하던 이 전 시장 쪽으로 활동무대를 바꾼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추측하고 있다. 한나라당 최고의 ‘입심’과 ‘맷집’을 자랑하는 그가 이 치열한 검증 국면에서 맹활약을 하게 된다면, 표절 시비쯤이야 항소를 하고 시간을 벌면서 간단히 가라앉힐 수 있다. 그러나 전 의원의 선택이 진정 현명한 것 이었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코앞으로 다가왔고, 누가 승자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치인 속내는 갈대
한편, 함승희 민주당 전 의원이 7월 13일 박근혜 한나라당 경선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6월 27일 민주당을 탈당한 후 2주 만이다. 함 전 의원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기반으로 정치에 입문한 뒤, 당 지도부에 거침없이 ‘쓴소리’를 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사 이력도 갖고 있다.
함 전 의원은 이날 여의도 박 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대선에서는 기필코 무능한 좌파 정권의 집권연장 획책을 저지하고 자유민주세력이 집권해야 한다”며 한나라당으로 돌아선 배경을 밝혔다.
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도덕성과 청렴성이 뛰어난 후보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부패했거나 부패의 소지가 많은 대통령이 집권하면 향후 5년, 10년 후 자유민주 세력의 정치적 입지는 엄청나게 훼손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두 분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대통령으로서의 자질과 능력 면에서 크게 미흡함이 없어 보이지만 없는 약점도 만들어내 침소봉대하는 데 능한 좌파 세력과의 결전에서는 도덕성과 청렴함이 뛰어난 후보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두 차례의 대선과정에서 확인됐다”고 두 후보를 비교했다.
지지선언에서도 ‘쓴소리’는 빠지지 않았다. 함 전 의원은 “(탈당 후) 자유인의 입장에서 정치생활을 지켜보고 싶었는데, 이르다 싶을 정도로 이 자리에 선 것은 (한나라당의) 경선과정을 지켜보면서 마치 과거 본선에서 좌우파간의 본격적인 선거양상으로 치달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양상이 지속되면 공멸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양쪽 캠프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하루라도 빨리 들어가서 이 점을 바로 잡아야겠다 해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박 후보 측 김기춘 의원은 “능력과 국가관, 인품이 탁월해서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이혜훈 대변인도 “민주당 지지자가 많기 때문에 박 후보 외연을 넓힐 수 있다고 내다본다”고 했다. 함 전 의원은 캠프에서 클린경선대책위원장을 맡아 공정선거감시 역할을 하게 됐다.
함승희 전 의원은 2007년 한국 정치판을 이렇게 묘사하기도 했다. “자신의 입지가 불리해지면 소속 정당이나 정파를 헌신짝 버리듯 하고 이합집산 하는 무리들이 온 나라에 득실거린다.”
검사 출신인 그는 의원 시절 입바른 소리를 잘하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배신과 변절을 거듭하는 이들에게는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철학이나 소신, 의리, 책임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어떻게 하면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해보나하는 생각밖에 없어 보인다”는 탈당의 변은 신선하기조차 했다. 그랬던 그가 며칠 전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최근 이명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한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역시 지난 5월 한 언론매체로부터 ‘이 후보 캠프로 갈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을 받자 “내가 거길 왜 가겠나”며 극구 부인한 적도 있지만 결국 거짓말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
올해도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들의 집단 탈당 등 정치인들의 변절 또는 변신이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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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전여옥 의원 500만원 배상하라
서울 남부지법(민사 3단독)은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열린우리당 전 소속 의원이 한나라당에 공천을 신청했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발언을 한 전여옥 전 한나라당 대변인에 대해 벌금 5백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전여옥 전 대변인이 이를 충분히 조사도 하지 아니한 채 적시한 점에 비춰보면 비방목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공익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전 전 대변인 자신의 발언을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에 관해 아무런 증거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 의원은 2005년 5월 14일
이미 전 의원은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형사 재판에서 이미 유죄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2월 법원으로부터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판결을 받았으며, 검찰의 항소제기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전 의원 측은 18일 재판 결과에 대해 “증거자료나 소명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했다”며 “다음 재판에서는 전 의원의 진실성을 밝힐 수 있는 ‘상당한 정황’을 제시할 것”이라고 항소의 뜻을 밝혔다.
최 의원은 “정치인도 인격이 있는데 전 의원이 지나쳤다”며 “정치적으로 과장된 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하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사과나 화해를 하자고 한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또 전 의원 측의 항소 결정에 대해 최 의원은 “형사재판에서 이미 유죄로 판결이 난 만큼 민사에서 다시 항소하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