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정치세력·윗선 개입 땐 파문, 한나라당 “명백한 정치공작” 주장
국정원의 조직적인 정치사찰 및 소위 ‘이명박 X-파일’ 작성 의혹이 결국 검찰 수사선상에 오르게 됐다. 국정원 관련 의혹은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라 수사 결과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검찰은 7월 18일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의 개인정보를 국정원 직원이 열람한 혐의 등이 있다며 한나라당이 전·현직 국정원장 등에 대해 수사를 의뢰해옴에 따라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은 국정원이 최근 내부 직원 K씨가 이 후보의 개인 정보를 열람한 적은 있지만 이를 유출하지는 않은 것으로 밝힌 점에 주목해왔다. 그래서 국정원에 K씨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 등을 넘겨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확보하는 대로 수사방향을 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국정원이 이날 K씨가 열람한 자료가 외부로 유출된 혐의가 발견됐다고 밝히면서, 검찰의 수사는 K씨의 개인 차원보다는 조직적인 개입 의혹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개인정보 자료 유출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K씨의 단독 행위였는지, 윗선의 지시 또는 공모가 있었는지, 어느 선까지 보고 되고 누구에게 전달됐는지 등이 검찰이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
윗선의 개입이나 지시로 확인될 경우 이는 한나라당이 주장한 ‘이명박 X파일’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것으로, 수사는 국정원의 ‘정치사찰’ 의혹으로 비화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 후보의 뒤를 캐기 위해 태스크포스팀(TF)이 꾸려졌고, 수집한 정보가 X파일 형태로 상부에 보고되는 등 정치공작이 이뤄졌다는 한나라당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 된다. 검찰은 다만 K씨를 소환해 열람 경위 등을 파악해야 전체적인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이다. 하지만 수사가 진행되면서 K씨가 속한 TF팀의 윗선이었던 이상업 전 2차장과 김승규 전 원장, 김만복 원장 등도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국정원이 밝힌 부패척결 TF팀의 정당성 여부도 수사가 진행되면서 논란이 될 수 있다. 국정원은 “바다이야기, 제이유 사건처럼 사회 각 분야의 고질적 비리를 찾아 없애기 위해 TF팀이 마련된 것이고, 국가이익 증진을 위한 정보기관 고유의 업무로 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 특정 후보의 개인정보를 열람해 유출시킨 것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찮아 검찰의 행보가 주목된다.
일단 현재까지 확인된 ‘팩트’는 많지 않다. 국정원 직원이 행정자치부에 최소 한 차례 이 전 시장이나 친인척의 자료 검색을 요청해 자료를 열람했다는 검찰 수사 내용과 국정원 5급 직원 K씨가 행자부를 통해 이명박 전 서울시장 처남 김재정 씨의 부동산 기록을 열람했다는 국정원 감찰결과뿐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각종 의혹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다.
검찰은 정치권의 압박 속에서 실체적 진실을 밝혀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부여받은 셈이다. 초점은 역시 국정원이 조직적 정치사찰을 했는지와 X-파일을 작성·유출했는지, 청와대나 여당과의 조율이 있었는지 여부에 모아진다. 검찰은 먼저 K씨 등 부패척결 테스크포스(TF) 소속 직원들을 불러 행자부 전산망 접속 경위와 부패척결TF의 성격이 ‘이명박 조사팀’이었는지 등을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김만복 국정원장 등 고위 간부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전망이다.
특히 이상업 전 차장은 한나라당에 의해 ‘이명박 조사팀’ 총책임자로 지목된 데다 처남인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원을 통한 여당과의 커넥션 의혹까지 받고 있는 인물이어서 조사 강도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수사결과 국정원이 야당의 집권 저지를 위해 조직적 정치활동에 나선 것으로 드러날 경우 파장은 엄청날 전망이다. 특히 청와대나 여당과의 조율 정황이라도 포착될 경우 범여권이 치명상을 입게 되기 때문에 대선 판도가 뒤흔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수사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국정원 해명대로 TF가 다른 공무원들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비리 조사를 하는 등 고유 업무를 수행한 것으로 밝혀질 수 있다는 얘기다. 설사 TF팀 구성 과정에서 다소 석연치 않은 정황이 포착된다 해도 국정원 조직 특성상 법적 근거 없는 활동이 빈번하기 때문에 처벌의 근거를 잡아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청와대 ‘법적대응 불사’…양측 전면전 확대
한나라당과 이명박 대통령 경선후보 측의 ‘청와대 배후설’ 등 정치공작 주장에 대해, 청와대가 ‘법적대응불사’ 방침을 밝히고 나서면서 양측의 전면전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이 후보 측과 청와대가 ‘정치공작’ 주장을 놓고 맞고소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의 강경한 입장은 대선정국 자칫 야당후보에 대한 무한한 압박으로 느껴질 우려도 있는 것.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7월 18일 이 후보 측의 정치공작 의혹 제기에 대해 “검증논란과 의혹을 덮으려는 의도”라고 하면서 “근거 없는 주장과 음해가 도를 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검찰이 수사 중이고 국정원도 스스로 밝히고 있어 청와대는 조심스레 대응해왔으나 오늘 이후로는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대응할 것”이라면서 공세가 계속될 경우 가만히 앉아 당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내비쳤다.
청와대는 특히 허위사실 유포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불사하는 등 단호함도 보였다. 청와대는 계속되는 공세에 대해 “국정원이 부패관련 정보를 정책정보차원에서 청와대에 보고하는 부분에 대해 갑자기 문제를 제기하고 확대하는 것은, 최근 문제의 본질인 한나라당의 후보 검증과정에서 나타난 논란과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 자체를 덮으려는 의도”라며 “국정원의 반부패 업무가 있었다고 해서 이 후보 측에 대한 정치사찰이나 공작이 있었다거나, 청와대에 정권재창출 태스크포스(TF)가 있다는 주장까지 비약하는 것은 황당한 모함”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이에 따라 “청와대에 정권재창출 TF가 있다”는 한나라당 박계동 전략기획본부장의 발언에 대해 법적 조치를 강구할 계획이다.
천 대변인은 “박 본부장의 주장은 악의적이고 의도적이며 상습적”이라며 “한나라당의 전략기획본부가 이런 일을 하는 곳인지, 한나라당의 전략이 바로 이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 이외 한나라당 지도부의 도가 지나친 주장에 대해서도 검토해서 법적 대응해나갈 것을 점검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또 한나라당이 국정원의 부패척결 TF 운용과 관련해 이날 총리실을 항의 방문한 것은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란 점에서 적절치 않다고 비판하고 “확인하고 항의하고 싶다면 청와대의 책임있는 사람과의 면담을 신청해달라”고 요구했다. 천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청와대 방문을 요청하면 문재인 비서실장과 주무 부서장인 전해철 민정수석이 응대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박 의원이 “국정원 직원이 이 후보 관련 자료를 106건이나 열람 또는 입수했다는 국정원 내부자의 제보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 여부를 떠나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국정원 자체 감찰 과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천 대변인은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정원 내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며 “어떤 경우든 국정원 내부의 정보가 정치권에 줄대 흘러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간 임기 말이면 반복됐던 정보기관의 대선캠프 줄대기 현상이 이번 대선에도 재연되고 있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에 대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한나라당, 대정부 압박수위 높여가
청와대의 강경대응 방침과 맞물려 한나라당도 연일 대정부 압박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한나라당은 일단 국가정보원 부패척결 TF팀이 이 후보 가족의 개인정보를 열람했다는 논란에 대응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에게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청와대 배후설’ 주장과 함께 국무총리와 행정부, 국정원을 싸잡아 전방위적 공격을 가하고 있고, 18일에도 한덕수 총리를 항의 방문했다. 한 총리 항의 방문과 관련, 심재철 의원은 브리핑에서 ‘부패척결 TF의 존재를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한 총리가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총리가 보고받고 감찰할 소관이 아니다”며 부인했다고 전했다.
국정원과 연결된 17개 정부부처의 전산망을 통해 이 후보 관련 개인 정보를 열람한 사실에 대해서는 “정보 조회가 법규 내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또 “국정원의 부패 업무가 타당한가”라는 물음에 “국정원장의 설명에 동의한다. 국가안전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냐”고 말해 ‘신안보개념’을 적용해 대북 업무뿐 아니라 부패 감시를 안보 범위에 포함시킨 국정원의 해석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한나라당은 아울러 야당 후보 개인자료 수집과 상부 보고 및 외부 유출 등 국정원이 직무 범위를 벗어난 활동을 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날 김만복 국정원장, TF 구성 당시의 김승규 전 국정원장과 이상업 2차장 등 6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이와 관련, 안상수 당 공작정치저지 범국민투쟁위 위원장은 “당초 이 차장을 고발하기로 했지만, 수사 대상과 범위가 확대돼 전현직 국정원장을 포함해 포괄적으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국정원 TF의 야당 후보 관련 자료의 최종 귀착지가 청와대라며 노 대통령에 압박 수위도 높였다.
이날 오전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재오 최고위원은 “공직사회에서 위에서 (비리 조사를) 지시하면 조사 결과를 보고하라는 (의미인) 것은 상식”이라며 “국정원이 조사하면 청와대 보고는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정치공작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대통령은 언제 어떻게 무엇을 지시했고, 누구한테 보고받았는지, 어떻게 조치했는지, 언론 여권과 야당에 흘렸는지를 분명히 밝히고 어떻게 책임질 지 국민앞에 밝혀야 한다”며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
국정원, 정보유출 직원 적발
국가정보원이 내부정보를 누설한 혐의가 있는 직원을 적발, 조사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정보의 외부유출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던 국정원의 신뢰성 훼손은 물론 ‘국정원’ 폐지 등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현재 보안 누설 혐의가 있는 직원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이고 아무 것도 나온 게 없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은 지난 7월 13일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경선 후보의 처남 김재정 씨 관련 부동산 자료 열람에 대해 “지난해 8월 정상적인 업무수행 차원에서 열람한 적은 있지만 절대 외부 유출은 없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었다.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보안 누설 혐의자는 국정원 내 ‘정치중립TF’의 감찰과정에서 혐의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혐의자가 당시 김씨 자료를 열람한 K직원인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감찰을 통해 ‘부패척결TF’의 존재 사실과 김만복 원장이 주관한 간부회의 일정 등 내부정보가 잇따라 외부로 공개되자 고강도 감찰을 통해 이를 확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정원 조사 결과, 내부정보가 어떤 식으로든 특정 정치세력에 넘어간 것이 드러나면 정치권에 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