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잇단 아부성 발언, 지지선언에 과열 우려, 일부선 지지명단 끼워 넣기도
대선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정치권과 함께 끓어오르는 곳이 다름 아닌 연예계다. 지난 대선에서도 각종 연예인들이 대선후보 지지선언을 하면서 서로 간에 충돌을 빚기도 하고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올해 열릴 대선에서도 지난 대선에 벌어졌던 연예인들의 행태가 다시 한번 반복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벌써부터 일부 연예인들은 차기 대권 주자에게 열렬한 지지선언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배우 이덕화 씨가 이명박 한나라당 예비후보에 대해 “각하 힘내십시오”라고 말해 물의를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예비후보에 대한 일부 연예계 인사들이 ‘제2의 선덕여왕’ 운운하는 지지선언으로 연예계도 대선레이스에 돌입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탤런트 이덕화 씨와 뽀빠이 이상용 씨는 한나라당 경선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두 사람은 지난 6월 서울 여의도에 있는 이 전 시장 캠프 사무실에서 문화예술지원단 상임고문과 고문으로 각각 임명장을 받았다.
드라마 ‘임꺽정’에서 주연을 맡았던 탤런트 정홍채 씨도 이날 수석특보로 임명됐으며 탤런트 배도환 씨 등도 문화예술지원단 소속으로 캠프에 합류했다. 이들은 앞으로 치열해질 경선 과정에서 이 후보의 대중 활동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이덕화 씨는 이날 이 전 시장을 향해 “각하, 힘내십시오”라고 말해 구설수에 올랐다.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무슨 생각으로 권위주의 시절에나 쓰던 용어인 ‘각하’란 말을 썼느냐”고 이씨를 비판했다.
박근혜는 제 2의 선덕여왕?
얼마 전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 연회장에는 텔레비전을 통해 잘 알려진 중견 탤런트와 가수, 방송인, 체육인 등이 모였다. 가수 남일해 씨가 읽은 지지 성명서에서 이들은 “박근혜 후보가 존경받을 만한 품격을 지녔고,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훌륭한 국정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지지 이유를 밝혔다. 또 “박 후보를 한 여성으로 보지 않고 제2의 선덕여왕으로 느끼는 것은 탄핵 광풍으로 당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당을 위해 전국을 다니면서 구당운동을 했고, 그 결과 제1야당이라는 커다란 결과를 만든 분”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어려움에 처해 있는 대한민국을 구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 충분한 자격과 능력이 있는 분이기에 감히 박근혜 후보를 화합과 상생을 위한 지도자라 명명한다”고 밝혔다.
발대식에 앞서 북한 출신 가수 김혜영 씨가 박근혜 후보의 성대모사로 인사말을 전해 참석자들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날 발대식에는 가수 남일해 씨와 설운도 씨, 김상배 씨, 북한 출신인 김혜영 씨, 박일준 씨 등이 참석했고, 연기자 전원주 씨와 선우용녀 씨, 김수미 씨, 정일모 씨 등이 함께 했다. 또 전문 사회자 김병찬 씨와 코메디언 이용식 씨와 황기순 씨도 지지 의사를 밝혔다. 체육계에서는 체조 선수 출신 여홍철 씨와 역도 선수 출신 전병관 씨 등이 참석했고, 방송인 조영구 씨와 이영자 씨, 작곡가 정원수 씨 등 100여명이 자리를 같이 했다.
사실 정치권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특히 대권주자들이 연예계나 스포츠계 인사 영입에 공을 들인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명계남, 문성근 등 친노 연예계 인사들의 도움을 적지 않게 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학습효과로 빅2 후보인 이명박과 박근혜 후보 측도 연예계 및 스포츠계 인사들의 지원이 싫지 않다는 표정. 그러나 연예인마저 선거에 동원했다는 외부의 따가운 시선에 두 진영은 이들의 자발적인 지지선언이지 자신과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라는 시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연예계 인사들의 대권주자 줄서기에 대한 여론은 냉정하다. 이명박 후보에 대해 ‘각하’라는 노골적인 발언을 한 이덕화 씨는 네티즌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맞서기라도 하는 듯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계 스포츠계 인사들은 지난 7월 11일 저녁 7시 여의도 한 호텔에 모여 한층 높은 수위의 발언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지지 성명서에서 아예 “박 후보가 제2의 선덕여왕이 되어야 한다”며 지지를 선언한 것. 이들 중에는 대중가수 설운도, 배우 전원주 등 연예인들과 체조선수 여홍철 씨 등 스포츠 연예계 인사 60여명이 참석했다. 물론 여론도 이덕화 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이들은 박 후보 선대위의 상임고문인 서청원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끄는 외곽지지단체인 한국미래리더스포럼의 연예인 봉사단 회원들로 서 전 대표는 이 포럼의 고문을 맡고 있다. 연예인 봉사단은 이날 지지성명에서 “박 후보는 도덕적으로 완벽하고 훌륭한 품격을 갖췄다”며 “그분에게서 사심 없는 진실을 느꼈다”고 말해 사실상 선거운동을 방불케 했다. 이들이 대중스타임을 감안할 때 그 파급력은 적지 않다는 의견이고 보면 빅2 후보의 장외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이날 참석한 여성 중견 탤런트들은 “이제는 이젠 여성 대통령이 나와야할 때”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날 사회를 본 방송인 유쾌한 씨는 박 후보를 신라의 선덕여왕에 빗대면서 “곤란에 처한 나라를 구할 분은 박 후보뿐이다”라고 노골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정치개입 의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의식한 듯 정치적인 해석에는 손사래를 쳤다. 이날 참석한 이들은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도 욕심도 없으며, 박 후보를 지지하는 순수한 의도로 모인 것”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정보가 없었는지 박근혜 후보 지지 선언하는 자리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연예인들이 현장에서 황급히 자리를 떴고,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개중 박 후보를 지지하지만 화면에 얼굴이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일부 인사들은 최근 탤런트 이덕화 씨가 방송인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자리에서 “각하, 힘내십시오”라는 표현을 해 물의를 빚은 것을 의식한 듯 신중했다.
그러나 문제는 연예인 개개인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연예인의 발언 한마디가 대중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록 연예인도 유권자의 한사람으로 정치적 소신을 밝힐 수 있지만 나름대로의 논리를 가지고 접근해야지, '각하'니,'선덕여왕'이니 하는 아부성 발언으로 대중을 현혹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여권 후보 지지 움직임도 눈에 띄어
여권에서도 후보들이 압축되며 경선 구도가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연예인들의 지지 움직임이 수면 위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가수 조영남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행사에서 축가를 불러 눈길을 끌었다.
평소에는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던 연예인들이 지지 정당이나 후보를 공개하며 나설 때 대중은 흥미를 느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다. 좋아하던 연예인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다른 행보를 보일 때 실망하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는 더욱 친밀감을 느끼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 됐든 일단 관심을 끈다는 것. ‘악플’보다 ‘무플’이 더 무섭다는 세상에서 연예인들의 지지 선언은 유권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후보들에겐 든든한 원군이 된다. 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지지를 표명하는 연예인들도 있지만 각 후보 캠프에서 먼저 연예인들을 접촉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선거 당시 인기가 높거나 평소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일수록 한번쯤은 손을 잡자는 제안을 받게 된다.
트로트 가수들에게 유독 ‘러브콜’이 많이 가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유세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노래이고 그 중에서도 트로트가 유세장에 모이는 ‘어르신’들의 취향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또 멜로디가 쉬워 선거 구호나 공약에 맞춰 개사했을 경우에도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연예인들이 여야로 갈려 공개적으로 대선 후보 지지에 나선 것은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가 시작이었다. 72년 10월 유신 이후 한동안 대통령 직선제가 봉쇄됐고 그 이전에는 연예인들이 감히 야당 후보를 지지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연예인들이 전면에 나섰다. 이덕화, 최수종, 심현섭, 박철 등은 이회창 후보를 열성적으로 지지하고 나섰고, 김흥국은 정몽준 후보를 적극 도왔다. 또 신해철, 윤도현, 문성근, 명계남 등은 노무현 후보의 든든한 원군이었다. 배우 문소리와 박찬욱 감독 등은 민주노동당을 공개 지지했다.
정치인 지지하다 피해보기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이른바 줄을 잘못 선 죄(?)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피해를 보는 연예인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당 정치인과 친하다는 이유로, 혹은 평소 야당 성향이라는 이유로 방송이나 영화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부지기수였고 심지어는 전두환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탤런트 박용식은 제5공화국 내내 TV 출연을 금지 당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전 프로복서 유제두 씨는 “75년 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딴 뒤 박정희 대통령의 정적이었던 김대중 전 신민당 대통령 후보에게 인사를 갔다는 이유로 미운 털이 박혀 이듬해 2차 방어전 때 정보기관에서 약물을 넣어 내가 패배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87년 이후 민주화가 됐어도 한동안 야당 후보 지지를 선뜻 선언하고 나선 연예인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권력으로부터의 압력이 눈에 띄게 사라지면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는 연예인들이 늘기 시작했다. 권력의 압력은 사라졌어도 선거운동기간 본업보다 ‘선거 도우미’ 역할에 열중했던 연예인들은 선거가 끝난 뒤 이런저런 이유로 후유증을 앓는다. 단적으로 2002년 대선 때 인기 고공비행 중이던 심현섭과 박철이 이회창 후보의 패배 후 한동안 활동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했던 것이 그렇다. 선거에 승리한 문성근과 명계남 역시 정치색이 너무 짙게 덧씌워져 연기계 복귀가 순조롭지 못했다. 정몽준 후보를 지지했던 김흥국도 정몽준 후보가 선거 전날 노무현 후보 지지를 철회하게 된 정황과 맞물려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선거의 승리나 패배에 관계없이 정치인에 발을 들여놓은 연예인들은 상처를 입기 쉽다.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풍토 역시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지지 후보가 선거에서 승리하면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거나 장관, 혹은 정부 산하기관장 등으로 임명되는 사례도 있어 논공행상 시비를 빚기도 한다. 반대로 선거에서 패배하면 그런 기회를 얻기 힘든 것은 물론 혹시 있을지도 모를 불이익을 걱정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올 대선에도 많은 연예인들이 특정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다. 과거 한때 연예인들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힘에 굴복해 선거에 관여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롯이 연예인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인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것 자체가 정치적 소신일 뿐 아니라 선거 결과에 따른 득실 계산도 충분히 했다는 얘기다.
대선주자 지지 끼워 넣기 논란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연예인 등 문화체육계 인사들의 유력 주자 지지 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일부 연예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지지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갔다며 언론사에 개별적으로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하는 등 혼선을 빚고 있다.
지난 7월 11일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 봉사단 발대식에서 지지 명단에 포함됐던 탤런트 이경진 씨 측은 “자신도 모르게 지지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며 언론에 보도된 명단에서 이름을 빼 줄 것을 요구했다.
이 씨의 매니저인 장인규 실장은 7월 16일 언론과의 전화통화에서 “이씨는 박근혜 후보도 이명박 후보도 지지 하지 않는다”며 “어떻게 지지자 명단에 올라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전문 MC 김범수 씨도 “지지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 곤혹스럽다”며 명단에서 이름을 빼줄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모두 박 후보 측이나 관련 단체로부터 어떤 공지도 받지 못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행사를 주최한 리더스포럼 연예인 봉사단의 한 관계자는 “행사 당일 참석 가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명단을 만들었다”며 “이경진 씨와 김범수 씨의 경우 지인인 한 디자이너로부터 참석 가능하다고 해 이름을 올렸지만,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탤런트 김수미 씨의 경우도 참석 의사를 밝혔지만, 당일 행사에 나오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특히 “사전에 지지 의사를 확인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준비 과정에 착오가 있었다”며 “하지만 연락할 때는 좋다고 해놓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주장했다.
----------------------------------------------------------------------
정치 앞에 당당한 해외 연예인
대선정국 속에서 연예인들의 정치노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한국의 풍토에서는 연예인들의 정치 지지가 그리 자유롭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이에 비해 프랑스나 영국, 할리우드 스타들은 당당하게 지지 의사와 정치 성향을 밝히는 모습이 우리와는 대조적이다. 적나라한 비판과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데 앞장서기도 한다.
미국 최고의 문화권력으로 손꼽히는 오프라 윈프리는 이미 지난해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 후보로 나선 버락 오바마에 대해 “대통령으로 지지한다”고 공표했다. 정치색 뿐 아니라 같은 흑인으로서 유일한 흑인 연방 상원의원인 오바마에 대해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윈프리는 자신의 토크쇼에 직접 오바마를 초대해 대담을 나누고. 오바마의 자서전도 대대적으로 소개해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을 정도다.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맷 데이먼. 벤 애플렉. 조지 클루니 등 미남스타들이 대거 오바마를 지원한 가운데 오바마의 민주당 내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여성스타들의 지지가 높은 모습이다. 원로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비롯해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폴라 압둘 등이 힐러리의 캠프를 다녀가며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힐러리를 지지하고 나섰다.
특정 정치인 대신 정책 등을 지지 혹은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며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스타들도 적지 않다. 힐러리가 상원의원에 나설 때 선거운동을 도왔던 수잔 서랜든은 할리우드 내 이름난 반전운동가로서 2003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전을 감행한 일에 대해 강력하게 비난한 것으로 유명하다. 서랜든과 함께 영화 ‘데드맨 워킹’에 출연했던 숀 펜은 한 술 더 떠서 이라크전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며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에 자비로 부시를 공개 비난하는 광고를 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그는 지난해 열린 토론토 영화제에서는 부시 대통령에 대해 “악마이자 벙어리 같은 존재”라는 발언으로 대서특필된 뒤 “스타라면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를 해 정치가 바르게 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