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전북=오운석 기자] 광복회전북도지부 회원 29명의 3.1독립운동 100주년 맞이 연해주 독립운동 유적지 답사를 떠나 시사매거진전북본부 자문위원 우종상 회원의 답사기를 6회 걸쳐 싣는다.
<3회>
답사 둘째 날 : 시베리아 황단열차에 몸을 싣고
2019. 05. 28(화)이다. 러시아에서의 첫날 밤을 거의 뜬 눈으로 세웠다.
첫날 밤의 설레임 때문인지, 미지의 세계 러시아에 와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잠자리가 바뀐 탓 이었는지?
어제 저녁부터 내린 비가 오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오랜만에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품을 찾아온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들이 반가워서 흘리시는 눈물은 아닌지?
오늘은 오전에 비잔틴 건축문화를 접할 수 있는 러시아 정교회 성당과 러시아에서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하고 있는 동방정교회 구세주성당, 아무르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우초스 전망대를 둘러 보았다.
‘블라디보스톡’과 ‘우수리스크’에 견줘 북쪽으로 750㎞ 더 떨어진 이곳 ‘하바롭스크’‘에서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각종 사료에 등장하는 주소나 거리이름을 들고 찾아가 봤더니 표지하나 없는 빈터를 만나기 일쑤였다.
우리 일행이신 김경근 회원(완주군 삼례출신 김춘배의사의 손자)의 자조섞인 말이 귓전을 맴돈다.
‘할아버지께서 청춘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셨던 곳인데.. 왠지 쓸쓸하게 보이네요....’
조국의 영광속에 점점 잊혀져가는 역사의 사실은 아닌지?
‘하바롭스크’는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 가운데서도 사회주의 진영의 ‘한인사회당’이 활발하게 움직였던 곳이다. 아무르 철교 근처에 있는 당시 이름 ‘인동’ 지역에는 꽤 많은 한인들이 살았으며, 도시 한복판에는 ‘김유천’의 이름을 딴 거리도 있었다.
김유천은 1920년대 적위군 빨치산으로서 시베리아 내전에 참여했던 한인혁명가이다. ‘하바롭스크’의 ‘레닌광장에서 중앙을 가로지는 마르크스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걷다보면 ‘김유천 거리’가 나온다.

그밖에 조선인 최초의 여셩 공산주의자로 알려진 ‘김알렉산드라 페트로브나스탄케비치’가 하바롭스크시당 직무위원으로 일했던 건물이 남아 있다.
러시아 정부에서 보호 건물로 지정해 놓은 덕에 건물외벽에는 그의 활동을 기리는 동판이 부착되어 있었다. 김 알렉산드라는 한인사회당 동료들과 참여한 1918년 ‘아무르강’이 보이는 ‘우쯔스’절벽으로 끌려갔고, 이곳에서 7.5㎞떨어진 ‘죽음의 계곡’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바롭스크’는 1918년~22년 시베리아내전 당시 적위군과 백위파-간섭군(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이 수차례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전투지였다. 특히 1920년 2월부터 9월 사이에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이 모두 철수했지만 일본군은 마지막까지 남아 극동을 접수하려는 전쟁을 벌였다.
조선침략과 극동진출은 모두 ‘일본 제국주의’의 야욕의 산물이다.
그런 일본에 맞서 총칼을 들었던 한인들을 기릴 비석하나, 묘지 한 곳이라도 이곳에 마련될 수는 없는 것일까?
우리 일행은 저녁을 현지식으로 간단하게 하고 ‘하바롭스크’역에 도착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몸을 실었다..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탑승인데 할아버지 덕분에 소원 하나를 이룬 것 같아 미소가 지어진다.
시베리아 횡단 여행은 지구상에서 가장 길고, 가장 특이하고, 가장 서사적인 철도 여정으로, 이야기는 많이 해도 실제로 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특별한 방법이다. 이 무지무지 긴 여정에 올라타고 싶으면, 우선 유럽전역의 기차역에서 연결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와야 한다. 일단 러시아의 수도에 도착하면 ‘야로슬라프스키’ 역에서부터 대장정이 시작되는데 여기서부터 동방으로 향하는 여러 열차 중 하나에 탑승하면 된다. *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노선이지 열차가 아니다.
가장 짧은 구간은 길이 7,620㎞의 몽골 횡단 노선이다.
단 6일 만에 시베리아의 스텝 지대인 타이가와 몽골의 사막 지대를 가로 지른다. 9,050㎞의 만주 횡단 여정은 6일이 걸리며, 구간은 비슷하지만 몽고를 빙 돌아 하얼빈을 통해서 중국으로 들어간다. 러시아를 완전히 가로지르는 여정은 꼭 7일 동안 ‘모스크바’에서 태평양 연안의 ‘블라디보스톡’까지 9,900㎞를 달린다.
우리가 탑승한 열차는 ‘하바롭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760㎞를 밤새도록 달려 내일 새벽에 도착할 예정이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훈제생선과 괜찮은 보드카를 마시면서 낮 모르는 승객들과 서투른 영어와 러시아어로 나누는 대화를 나누는 여행객들의 모습이 마냥 정겹기만 하다.
주간열차였다면 은빛 자작나무 숲의 황량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시간이 아주 많았을 텐테? 하는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지만, 나름 야간열차의 낭만과 매력에는 비할 바가 못 될 것 같다.
혹시라도 ‘바이칼 호수’를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 속에 흔들리는 열차 속에서 내일의 여정을 위해 잠을 청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