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대통합’ 대세 속 ‘정체성 갈등’ 꿈틀, 경선은 9월 15일 가닥 잡혀
끊임없이 이어져오던 범여권의 통합여부에 해결의 가닥이 잡혀나가고 있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43명과 통합민주당 소속의 대통합파를 비롯해 열린우리당을 추가로 탈당할 의원들이 미래창조연대 등 시민사회진영과 제3지대 신당을 8월 초까지 창당한 뒤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을 견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계속되어온 논란 끝에 시간부족으로 나온 해결방안은 앞으로 범여권에 큰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범여권이 통합론을 내세워 논란을 거듭한 가운데 점차 시간이 촉박해지면서 ‘뭉치고 보자’는 단결론이 범여권 제 정파를 압박하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통합의 최대 변수인 통합민주당 지도부도 제3지대 신당 참여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놨다. 특히 김한길 공동대표가 ‘무조건적인 대통합’을 주문해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극비리에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내 대통합파 의원들과 함께 탈당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제기됐다. 김 대표는 7월 18일 오전에는 박상천 대표와 비공개 회동을 통해 당의 진로를 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상천 대표에게도 미묘한 입장 변화가 감지됐다. 그는 이날 오후 “열린우리당이 해체하기 싫다면 열린우리당 소속 대다수의 중도개혁주의 의원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지도부가 의원들의 추가 탈당을 용인하고 신당이 중도개혁주의 노선을 표방한다면 제3지대 신당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열린우리당 해체와 친노 배제론을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지만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들의 대규모 탈당을 통합의 현실적 방안으로 인정한 점은 적지 않은 변화다. 열린우리당 탈당파 43명으로 구성된 대통합추진위원회 소속 의원 상당수도 통합민주당을 대통합의 필요충분조건으로 꼽고 있어 통합민주당이 신당 창당준비위 단계에서 결합하지 못하더라도 창당 뒤 곧바로 통합 논의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친노 진영 대통합 인정 분위기, 분화될 가능성도
열린우리당 내 친노 진영도 대통합을 대세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이들이 여전히 제3지대 신당과 열린우리당의 ‘당대당 합당’ 방식을 고수하고 있지만 이 방법이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방식으로 제3지대에 합류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열린우리당 추가탈당 의원들 대오에 친노 중진인 유인태 의원이 포함될 경우 파급효과가 적지 않으리라는 분석이 많다. 게다가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김혁규 의원 등 친노 대선주자들이 대선후보연석회의에 한 발을 담그고 ‘대통합론’에 무게를 실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당 사수 입장이 비교적 완강한 유시민 의원 등 참여정치실천연대 계열과 대통합론이 다수인 의정연구센터 계열로 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해찬 전 총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유시민 의원과 나는) 개성이 많이 다르고 성격과 얼굴색도 많이 다르다”고 차별화를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특히 “집단심층인터뷰(FGI)를 해보면 나를 친노라고 보는 것보다 친DJ로 보는 사람이 더 많다”며 “나를 친노라고 보는 것은 언론이 바라본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체성-노선 갈등 예상돼
물론 통합의 방식을 둘러싼 통합민주당과 친노 진영의 견해가 여전히 적대적이어서 제3지대 신당의 참여 범위를 현 시점에서 예단하기는 어렵다. 이 전 총리가 “8월 5일 쯤 당이 창당되면 열린우리당과 다른 진영은 그 이후 참여하게 될 것 같다”고 말한 대목도 통합의 방법론을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그러나 범여권 통합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무조건 대통합’ 주문을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고 꽉 짜인 시간표 상 조만간 제정파의 제3지대 신당 참여 여부는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범여권 국민경선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국민경선추진위원회는 이날 9월 15일부터 국민경선을 시작해 10월 14일 대선후보를 최종 선출하는 시간표를 내고 개문발차 의지를 확인하는 등 범여권 제세력과 대선후보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제3지대 신당 출범이 연착륙한다 해도 통합 자체와 경선 룰 등에 밀려 뒷전으로 내몰린 신당의 정체성과 노선 문제는 여전히 풀리기 힘든 숙제다. 자칫 열린우리당과 같은 정체성 혼란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점증하고 있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 문제가 걸림돌이다. 통합민주당을 비롯해 열린우리당 탈당파의 상당수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을 ‘실패’로 규정한 반면 ‘참여정부 계승’을 신당 참여의 대전제로 내세우는 친노 진영의 갈등은 현실적인 문제다.
이런 가운데 천정배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범여권 대통합이 단순한 이합집산이 아닌 국민의 새로운 희망이 되기 위해 대통합신당의 정책과 비전을 명확히 세워야 할 때”라며 “국민경선 룰 미팅에 참여한 후보들 간의 후보정책토론회를 7월 중 열자”고 제안했다. 그는 “국민경선추진협의회의 오픈프라이머리 방식과 일정 확정을 눈앞에 두고 있고 제3지대 통합신당 창당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만큼 이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매우 시급한 일”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대선후보들을 중심으로 신당의 노선과 정체성에 대한 공개토론을 갖자는 제안이지만, 반(反)한나라당 전선 구축이라는 당면 과제 앞에 신당의 정치노선을 ‘중도’로 뭉뚱그린 범여권 다수 세력과 대선주자들이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8월 5일 창당 놓고 이견만 커져
한편, 범여권의 8월 창당을 목표로 범여권 대통합 신당 논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중도통합민주당 내에서는 신당 참여 여부와 방식을 놓고 이견이 커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통합민주당내 대통합파들의 합류선언으로 8월 5일 창당을 목표로 한 대통합 신당 논의가 순항하고 있다. 통합민주당 대통합파와 열린우리당 탈당파, 시민사회진영, 손학규 전 지사 지지성향의 선진평화 연대는 첫 4자회동을 열어 대통합신당 창당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송영길, 홍재형 의원 등 10여명 이상의 열린우리당 의원들도 통합민주당 대통합파들의 탈당에 동조해 조만간 4차 집단 탈당을 결행한다. 하지만 통합민주당과의 협상은 여전히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통합민주당내에서도 박상천, 김한길 공동대표가 대통합신당 합류 문제에 대해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두 사람은 제3지대 신당합류 가능성은 열어 놓고 있다는 점과 열린우리당 해체를 요구하는 점에서는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김한길 대표는 대통합 신당 참여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박상천 대표는 사실상의 열린우리당 배제라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두 사람은 전날 양자 회동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지만 이 같은 견해차 때문에 회견을 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 민주당 원외위원장 백여 명이 통합민주당 중심의 대통합을 요구하는 등 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나서면서 당내 최대 주주인 박상천, 김한길 공동대표간의 간극을 해소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범여권 국민경선 9월 15일부터
한편, 범여권 제3지대 대통합신당 창당 작업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범여권 대선후보 선출 시간표의 가닥이 잡혔다. 범여권 인사들과 종교·시민사회 원로들로 구성된 국민경선추진협의회는 지난 7월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이해찬·한명숙 전 총리, 무소속 천정배 의원, 우리당 김혁규 의원,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범여권 예비대선주자 6명이 오는 9월 15일부터 약 한달 간 전국순회 국민경선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리당 출신의 이목희 국경추 공동대표는 “대략 10월 14일께 범여권의 대선후보가 선출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대통합신당 창당 일정과 향후 고려 사항 등이 있을 수 있어 국민경선 종료일은 따로 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또 20명에 육박하는 후보가 난립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본 경선에 앞서 예비경선(컷오프)을 하는 방안에 대해 원칙으로 동의했으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오는 24일께 발족할 예정인 제3지대 대통합신당 창당준비위원회에 위임하기로 했다. 범여권 후보들의 예비경선 시점은 한나라당의 경선일인 다음달 19일에 맞춰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비경선을 포함, 국민경선 후보를 뽑는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나 이해를 달리 하는 다양한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만큼 후보의 지지도를 가장 객관적으로 반영하고 불복 가능성이 가장 낮은 일반국민 대상 여론조사가 후보선출 기준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와 관련, 국경추 경선규칙단장인 이인영 의원은 “컷오프를 여론조사만으로 할지, 별도의 경선을 치를지는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대통합신당 창준위의 전략적 고려도 반영해 컷오프 방식이 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효석·이낙연 의원 등 통합민주당을 사실상 탈당한 통합민주당 대통합파와 송영길 전 사무총장, 홍재형 전 최고위원 등 10여명에 이르는 우리당내 대통합파는 지난 7월 24일 발족한 제3지대 대통합신당 창당준비위원회에 합류하기 위해 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참여한 가운데 대통합신당 창당준비위가 출범하면 우리당은 원내 3당으로 전락하는 반면, 제3지대 신당은 60석 안팎의 원내의석을 차지해 한나라당에 이은 원내 2당으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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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경선의 초점은 ‘컷오프’
한달도 채 남지 않은 한나라당 경선은 경선룰을 설정하면서 당 내부에 큰 상처를 남겼다. 뒤늦게 ‘경선룰’ 논의를 시작한 범여권역시 경선룰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 ‘완전국민경선’이란 큰 틀에 합의했다지만 세세한 규칙까지 합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았던 것. 그런데 범여권 인사는 의외의 전망을 내놨다. 그는 “경선룰에 대한 합의는 의외로 쉬울 것”이라고 했다. “한나라당처럼 2명의 유력주자가 대립할 때는 경선 규칙 하나로 유불리가 명확해지지만 여권처럼 후보가 여러 명일 때는 유불리를 따지기 쉽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그는 범여권 경선의 가장 큰 걸림돌로 ‘컷오프’를 꼽았다. 컷오프는 골프 용어. 4라운드로 치러지는 골프 경기에서 1, 2라운드 성적을 기준으로 참가 선수의 절반만 3, 4라운드를 할 수 있도록 하는데 3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하는 것을 컷오프 탈락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출사표를 던진 범여권 인사만 20명에 가깝다. TV토론, 흥행성 등을 고려할 때 5~6명 정도의 경선이 적합하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지만 ‘어떻게’ 컷오프를 해 낼 지가 고민이다. 전국을 한 달간 순회한 뒤 후보를 선출키로 1차 합의를 했지만 ‘컷오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9월 15일 전 한 달간 예비 경선을 진행한다는 정도가 전부다. 본선은커녕 예선 무대도 ‘경선’을 통해 올라야 하는 게 ‘리더’없는 범여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