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참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려운 정보들과 복잡한 관계망으로 얽힌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자주 혼란을 느끼고 불안해진다. ‘알고 맞으면 덜 아프다’는 속담처럼 인간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상상하기 마련이고, 상상은 곧 불안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근래 유행하고 있는 레트로 감성 또한 이러한 불안이라는 정서를 바탕으로 삼는다. ‘그때 그 시절’이 희망찰 수 있었던 까닭은 서로 문 열어놓고 살았던 따뜻한 시기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하고, 그러한 불안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정면을 바라보는 대신 고개를 안으로 돌리게 되었다.
《흐름에 맞게 나를 지켜내는 인생의 공식 64》는 이처럼 불안하기에 다가오는 내일이 더 아프게 느껴지는 우리에게 전하는 조언이다. 저자 장경은 64괘를 중심으로 《주역》을 새로 풀어 씀으로써 삶이라는 안개 속을 헤매는 우리에게 지침으로 참고할 수 있는 선명한 ‘인생 예보’를 알려준다. 나아가 삶의 전 과정을 《주역》의 64괘에 맞춘 64가지 상황으로 정리해 도식화함으로써, 삶의 다양한 고비마다 그 지혜를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순신은 왜 전장에서 《주역》을 펼쳤을까?
이순신 장군이 쓴《난중일기》 기록 가운데 하나다. 전란이라는 사나운 시절에 맞서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고독을 감당해야 했던 그가 전장에서 자주 《주역》을 펴고 역점을 쳤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난중일기》에는 17회에 걸쳐 이순신 장군이 직접 역점을 치거나 또는 타인에게 점괘를 묻는 모습들이 나온다.
이순신 장군은 왜 합리와 효율이 우선되는 전장에서 다른 것도 아닌 역점을 즐겨 짚었던 것일까?
물론 그가 깊은 번민에 빠질 때마다 《주역》을 읽고 역점을 거듭해서 쳤던 까닭은 짊어진 책임이 버거워 미신에 기대고자 했기 때문이 아니다. 단 한 번의 판단으로 국가의 운명이 좌우되는 잔혹한 상황 앞에서 생긴 두려움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내리기 위해 불확실함과 미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주역》이라는 위대한 지혜를 참고했던 것이다.
누구나 쉽게 참고할 수 있는 일상의 철학 가장 높으며 가장 낮은 경전, 《주역》
잠룡, 태극, 관광, 팔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주역》에서 비롯된 말이다. 《주역》은 사서삼경 가운데 하나인 유교 경전의 핵심이지만 우리에게는 기복과 관련된 미신이나 또는 반대로 우주의 이치를 궁구하는 어려운 철학 정도로만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주역》의 목적은 이순신이 그러했듯 스스로를 점검하고 불확실한 앞날을 대비하고자 하는 수신에 있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주역》에서 유래된 말이 여전히 쓰이는 까닭 또한 마찬가지다. 《주역》이 세상의 이치를 이야기하는 까닭은 하늘 위가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우리에게 제대로 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그래서 멀리는 공자가 가죽 끈이 세 번 끊어질 때까지 읽었다고 했을 정도로 《주역》에 심취했으며, 가까이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닐스 보어가 《주역》을 공부하며 불확정성 원리를 해명하기 위한 상보성 원리를 떠올렸을 정도로 인류 역사에서 《주역》은 여러 지성들에게 깊은 영감을 줬다. 나아가 《손자병법》, 《바가바드기타》와 더불어 서구에도 큰 영향을 끼쳐 음양의 핵심원리가 컴퓨터 언어나 융 심리학 등에 적용되기도 했다.
《흐름에 맞게 나를 지켜내는 인생의 공식 64》은 이처럼 한국인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주역》을 새롭게 풀어 64괘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 책에 따르면 《주역》은 미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난해한 비유와 상징들로 가득해 극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철학도 아니다. 나라를 책임지는 위정자부터 산통을 흔드는 저잣거리의 상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삶의 고비마다 참고해가며 보다 나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일상의 철학’이다.
“군자는 역점에 의지하지 않는다!”
군자의 역점과 소인의 역점
순자는 “주역을 배우면 역점을 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순자의 사상과 맞물려 《주역》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이를테면 합리적이지 못한 운명론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일단 그것에 대해 배워야 한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순자의 가르침을 고래로부터 거북이 등껍질을 들여다보며 길흉을 따졌던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주어진 생의 흐름에서 운에 휘둘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지켜내자는 권유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흐름에 맞게 나를 지켜내는 인생의 공식 64》은 순자의 말을 약간 변주해 역점을 마냥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인의 역점과 군자의 역점은 다르다”고 말한다.
점을 치는 까닭은 결국 불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인 이상 삶에서 반드시 좋았던 순간만큼 나쁜 순간도 무수하게 경험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오르고 떨어지는 자연의 이치 자체를 무리하게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주역》의 64괘라는 인생의 공식을 알게 되면 올라갈 때에도 오만해지지 않고, 언제 떨어질지 전전긍긍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바닥을 찍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생의 시나리오’를 알기에 의연하게 스스로를 지키며 넓은 시선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즉 《주역》을 안다는 것은 운이라는 인생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키는 수신과 다르지 않다. 소인은 기복에 매달리며 점괘에 휘둘리지만, 군자는 오히려 점괘를 자신을 단단히 붙잡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매는 살갗에 몽둥이가 닿는 순간보다 닿기까지의 시간이 더 매섭기 마련이다. 알고 맞는다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이 인생의 흐름을 미리 전달받음으로써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