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여러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리는 처방 '지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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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여러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리는 처방 '지탱'
  • 김민수 기자
  • 승인 2019.05.0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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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거진=김민수 기자] 

‘모든 만민과 만물이 서로를 지탱하는 사회’에 관한 근원적 성찰 !

이 글에서 제시하는 33개 메타개념만이라도 그 각각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개념의 역사성을 면밀히 살펴본다면, 수많은 개념들로 빽빽이 들어찬 정치학 숲속에서 최소한 길 잃고 헤매는 시간만큼은 줄일 수 있을 것이고, 정치와 정치학의 핵심에 최단시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학 메타개념을 살펴보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시대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 자신이 진단하고 처방하는 ‘좋지 않은 공적문제’와 우리 자신이 발견하고 해석하는 ‘좋은 공적주제’를 어떤 식으로 어떤 개념 속에 담아서 사용할 것인지 보다 명료하게 하는 데에 있다.

땅콩민주주의 정치 방법에 따라 선순환적으로 늘 새롭게 구성함으로써 언제든지 노후화하거나 고착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줄여나가고, 끊임없는 ‘질적 전환’, 곧 ‘자기 안의 혁명’을 통해 정치 당사자인 만민과 만물이 서로를 지탱하면서 자연스럽게 개선해가는 정치체제라는 점이 21세기 공화체제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는 마치 심장의 심실과 심방이 늘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면서 몸의 각 기관에 맑은 피를 스스로 날마다 새롭게 흐르게 하는 이치와 유사하다.

한국인의 정치학입문 교재와 윤리철학 교재로도 적합한 이만한 인문사회학 교양도서를 근래에 찾아보기 어렵다. 경륜이 쌓인 정치철학자의 혜안으로 이 시대 정치 본질과 정치 방법을 새로운 대안 민주주의와 함께 규명하고 있다.

‘모든 만민과 만물이 서로를 지탱하는 사회’에 관한 근원적 성찰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여러 난제들의 근원적인 발원처를 ‘지배의 방법’에서 찾고 해결을 위한 처방을 ‘지탱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미세먼지와 같은 오늘날 ‘생태계-재해 문제’ 등이 ‘지배의 방법’에서 비롯한 것임을 밝히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적인 해법을 ‘지탱의 방법’으로 제시하면서, 모든 생태계가 본질적인 의미에서 민주정치 당사자라는 21세기 새로운 민주공화체제를 제시하고 있다.

‘정치 본질’은 ‘지탱의 정치’이고, ‘지배의 정치’는 ‘파생 정치’다. 그동안 근현대 파생 정치, 지배의 정치로 인해 은폐되고 왜곡된 정치 본질, 지탱의 정치가 이 책을 통해 온전히 재발견된다.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 등의 ‘허위의 사실’과 ‘진실의 사실’이 혼재된 현실은 정치 본질인 지탱의 정치가 오늘날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약화되어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선순환하는 ‘공적문제 해결’과 ‘공적주제 실현’을 통해 ‘허위가 일상적인 현실’로부터 ‘진실이 일상적인 현실’로의 질적 전환을 끊임없이 이뤄내고, 특히 일상의 크고 작은 일에서 마치 GPS와도 같은 푯대와 기준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실의 사실’을 사회 앞에 규범적 본으로 제공하는 일이 바로 ‘지탱의 정치’다.

급변하는 현실을 잘 해명해보기 위해서 최근 각종 ‘융복합 학문’이나 ‘통합 교과목’을 만들어보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몇 개 분과 학문을 단순히 혼합해놓은 것으로 그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학문 간의 융복합을 해낼 수 있는 기초적 방법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지탱의 정치 방법’을 체계화하는 ‘지탱의 정치학’은 이 시대가 왜 학문 간의 융복합이나 교과목 간의 통합을 간절하게 요청하고 있는지 ‘현실 해명’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여러 학문 간의 융복합을 원활하게 이뤄낼 수 있는 기초적 방법론도 제공하고 있다.

삼일혁명과 상해임정을 단순히 저항민족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근대 서구 민족주의 프리즘으로 본 극히 협소하고 지엽적인 규정이다.

삼일독립혁명의 이른바 삼대혁명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사회통합 원리’와 ‘남북통일 전망’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모든 생태계가 본질적인 의미에서 민주정치 당사자라는 새로운 민주공화국 전망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 안의 정치적 공동 자산’, 곧 좌우 분열과 남북 분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다’라고 하고 우리는 ‘하나’라고 하는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의 동일성’은 삼일독립혁명을 통해 형성한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삼일독립혁명이 우리를 여기까지 지탱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 현실을 해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현대 정치와 정치학은 한없이 무기력하고 비관적이다.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공적문제를 제대로 진단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실업 문제’, ‘생태계-재해 문제’, ‘금융-화폐 문제’, ‘지식-기술 문제’, 결코 선순환고리라고 할 수 없는 이 시대 난제들의 이 악순환고리 앞에서 현대 정치와 정치학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 바를 몰라 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 정치와 정치학은 한없이 초라하다. 저 난제들에 접근조차 어렵게 만드는 ‘남북분단 문제’, ‘좌우대립 문제’에 묶여 있고, 문제에 관한 진단이나 처방이나 대안 제시는커녕 오히려 이들 문제를 갈수록 더욱 키워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노후화하거나 고착화한 진단에 근거하는 각종 처방들이 난무하고, 설상가상으로 출처가 불분명하고 근거 없는 각종 처방들이 좌우대립을 부추기기까지 하면서, 갈수록 정치와 정치학이 존립하는 이유 자체를 상실해가고 있다.

그 이유 중에 매우 중요한 하나가 기존 정치학 메타개념들을 아무런 질문 없이 그대로 반복해서 가정하거나 전제한다는 데 있다. 대부분 모르고 그리 하지만, 일부분 알고도 그리 하는 경우가 있다. 전혀 다른 사적인 목적을 위해 그것이 담고 있는 의미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학 메타개념을 악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정치학 메타개념을 악이용하는 경우야 어찌할 도리가 없겠지만, 그러나 모르고 그리 하는 경우에는 정치학 메타개념 검토를 통해 얼마만큼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기존 정치학 메타개념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진실한 질문과 그에 대한 진실한 응답이 없다는 것은 혹은 그것을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더욱 초라하고 무기력하며 비관적인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주된 이유라는 것 또한 명백하다. 이 글은 독자들과 함께, 우리 자신의 공적문제 및 공적주제와 관련하여, 기존 정치학 메타개념에 대해 우리들 자신의 소중한 질문과 응답을 차분히 해나가는 진실한 대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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