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 253호=박희윤 기자]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과 협의하여 2019년 예산안을 통과시키자 손학규 대표와 이정미 대표는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작성한 합의문을 바탕으로 계속 논의되어 온 선거제 개혁과 개혁 입법 패스트트랙에 대한 합의가 지난달 22일에 이루어졌다. 비록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의원총회를 거쳐 모두 합의안을 추인했지만, 격렬하게 반대하는 한국당과 완전한 내부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은 바른미래당의 내부 파열음 때문에 패스트트랙의 진행에 대한 미래는 가시밭 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초 여야 5당의 합의
지난해 12월 15일 여야 5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하는 등 선거제도 개혁에 전격 합의했다. 그동안 열흘 정도 단식농성을 해오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여야가 선거제 개혁에 합의함에 따라 단식농성을 중단키로 했다. 이때 합의된 내용은 여야는 우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비례대표 확대와 비례·지역구 의석비율, 의원정수, 지역구 의원선출 방식 등에 대해서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합의에 따르기로 했다. 여야는 이와 함께 석패율제 등 지역구도 완화를 위한 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선거제도 개혁 관련 법안은 내년 1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야 3당의 선거제도 개혁안 발표
지난 1월 23일 바른미래당 김관영, 평화당 장병완,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야 3당은 각 정당이 정치개혁 사명을 새기고 실천 가능한 방안을 논의한다면 1월 중으로 충분히 합의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며 선거제 개혁안을 제시했다. 최대 쟁점 사항인 의원정수는 정개특위 자문위원회가 권고한 360석을 존중하되 지난달 5당 원내대표의 합의 정신에 따라 330석을 기준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야 3당은 이와 관련 “국회의 특권 내려놓기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을 반영해 의원정수를 늘리더라도 의원세비 감축 등을 통해 국회의 전체 예산은 동결하겠다”고 덧붙였다. 지역구 대 비례대표 비율의 경우 기존 정개특위에서 공감대를 형성한 것을 토대로 2대 1 또는 3대 1 범위에서 협의해나가기로 했다. 아울러 석패율제(지역구 낙선자를 비례대표로 구제) 또는 이중 등록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전국 단위 또는 권역별 실행 여부는 향후 협의 과정에서 검토해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선거제 개혁의 1월 내 합의는 처리되지 않았다.

여야 4당 선거제 잠정 합의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지난 3월 15일 신속처리안건(이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선거제 개혁에 대 한 대략적 합의안을 도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전국 단위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되 300석을 초과하지 않도록 적용 비율을 50%로 하 는 것이 골자다. 정개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민주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 바른미래당 간사인 김성식 의원은 이날 오후 협상을 벌여 이 같은 내용의 선거제 세부안에 합의했다. 정개특위 합의안은 국민 여론이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점을 감안해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으로 고정하는 쪽에 방점이 찍혀있다. 연동형 비례제를 50%만 적용해 각 정당이 차지하는 의석수를 줄여 300석 규모를 유지하는 내용이다. 기존 민주당의 안을 야 3당이 받아들인 셈이다. 또 지역구에서 아쉽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석패율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여야 4당 패스트트랙 전격 합의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지난달 22일 선거제도 개혁안과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방안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가장 입장 차가 컸던 공수처의 기소권 부여와 관련해 판사와 검사, 경무관급 이상 고위직 경찰에 대해서만 기소권을 부여하는 바른미래당 안에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여야 4당은 합의안에 대해 각 당의 추인을 거쳐 지난달 25일까지 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을 완료키로 했다.
우선 여야 4당은 신설되는 공수처에 기소권을 제외한 수사권과 영장청구권,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해 법원에 재정 신청을 할 권한을 부여키로 했다. 다만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 중 판사, 검사, 경찰의 경무관급 이상이 기소 대상에 포함돼 있는 경우에는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한다.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는 여야가 각각 2명씩 의원을 배정해 꾸린다. 공수처장은 의원 5분의 4 이상의 동의를 얻어 추천된 2명 중 대통령이 지명한 1명에 대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키로 했다. 공수처에서 일할 수사·조사관은 5년 이상 조사·수사·재판의 실무경력이 있는 인력으로 제한된다. 이번 선거제·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 논의는 공수처 기소권 부여 여부에 대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간 이견으로 정체되어 있었다. 민주당은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바른미래당은 부여해선 안 된다는 입장으로 대립했다. 그러나 민주당이 한발 물러나 판·검사와 고위직 경찰 대상 사건에 한해 공수처에 기소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조정안을 받아들이며 합의에 이르렀다.
선거제 개편의 경우 지난 3월 17일 여야 4당 정개특위 간사들이 합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미세조정을 거쳐 관련법 개정안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키로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도 그동안 사개특위 4당 위원들이 합의한 내용을 기초로 대안을 마련해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지정한다. 다만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에 대해서는 제한하는 것으로 변경하되 법원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보완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여야 4당은 이들 법안을 본회의에서 표결할 때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의 순으로 진행키로 하고 패스트트랙 지정 후에는 한국당과 성실히 협상에 임해 한국당까지 포함한 여야 5당 간 합의 처리를 위해 끝까지 노력하기로 했다. 또 여야 4당은 ‘5·18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을 늦어도 오는 5월 18일 이전에 처리키로 했다. 아울러 개정된 국회법을 21대 국회에서부터 적용하는 것을 전제로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법안의 처리 일수를 단축하는 등 효율적인 국회 운영이 되도록 변경하고 법제사법위원회의 자구심사 권한에 대한 조정 등의 방향으로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여야 4당의 추인
지난달 23일 여야 4당이 함께 추진해온 선거제 개혁을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법안,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이 패스트트랙에 사실상 올랐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은 이날 일제히 의원총회를 열고 합의안을 추인했다. 그러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반발이 거세고, 소관 상임위인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심사 과정에도 작지 않은 난관이 예상돼 본회의 통과까지는 ‘첩첩산중’이 될 전망이다.

장외투쟁 각오한 자유한국당
자유한국당은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에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여야 합의로 ‘게임의 룰’인 선거제 개편을 해왔던 기존 관행을 여야 4당이 일방적으로 깨뜨렸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한국당의 반발로 국회가 멈춘다면 당장 정부가 제출할 추가경정예산안과 탄력근로제·최저임금 개편안 등 산적한 민생 현안 논의도 ‘올스톱’될 가능성이 크다. 제1야당이 국회를 뛰쳐 나갈 경우 각종 입법을 통해 문재인 정부 중반기 개혁 드라이브를 뒷받침해야 하는 민주당으로서 부담일 수밖에 없다. 다만 선거제·개혁 법안 패스트트랙의 출발은 앞으로 1년간 펼쳐질 치열한 총선 경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에 불과해 여야, 특히 민주당과 한국당의 갈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4월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로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첫 관문' 정개특위·사개특위부터 험로 예고
패스트트랙의 공식 출발점은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전체회의가 될 전망이다.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전체 재적위원(18명)의 5분의 3 이상(11명 이상)이 동의하면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에 오른다. 정개특위 위원 중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한 여야 4당 소속 의원이 5분의 3을 넘는 12명인 만큼 이렇다 할 변수가 없는 한 패스트트랙 안건은 가결될 전망이다. 정개특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은 6명이다. 바른미래당이 당론이 아닌 ‘최종 입장’이라는 형식으로 패스트트랙 합의안을 추인했지만, 정개특위 소속인 김동철·김성식 의원이 ‘패스트트랙 찬성’ 입장인 만큼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사개특위의 상황은 다르다. 사개특위의 정원은 18명으로, 이상민 위원장을 포함해 민주당 의원 8명, 한국당 의원 7명, 바른미래당 의원 2명, 민주평화당 의원 1명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정개특위와 마찬가지로 공수처 설치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려면 11명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관심은 바른미래당 소속 사개특위 위원인 오신환·권은희 의원에게 쏠려 있다. 당초 이들 의원이 공수처 합의안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고, 심지어 오 의원은 바른정당 출신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들 의원 중의 한 명이라도 공수처 법안에 반대하면 찬성 10표, 반대 8표로 패스트트랙 지정이 부결될 수 있다. 공수처 설치는 정부·여당이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국정 과제라는 점에서 공수처 설치 법안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이 무산된다면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 지정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사개특위 캐스팅 보드 오신환의 소신
지난달 24일 사개특위 위원으로서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이 여야 4당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의견을 분명히 함으로써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설치법 등의 패스트트랙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은 지난달 24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당의 분열을 막고 제 소신을 지키기 위해 사개특위 위원으로서 여야 4당이 합의한 공수처 설치안의 신속처리안건 지정안에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지난 23일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자는 여야 4당 합의문 추인을 놓고 의원총회에서 격론을 벌였다”면서 “표결까지 가는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 당론을 정하지 못했다. 대신 합의안을 추인하자는 당의 입장을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12대 11이란 표결 결과가 말해주듯 합의안 추인 의견은 온전한 '당의 입장'이라기보다 ‘절반의 입장’이 됐다”면서 “그 결과 바른미래당은 또다시 혼돈과 분열의 위기 앞에 서게 됐다”고 했다.
오 의원은 “저는 누구보다도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바랬지만, 선거법만큼은 여야 합의로 처리해왔던 국회 관행까지 무시하고 밀어붙여야 할만큼 현재의 반쪽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가치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저는 검찰개혁안의 성안을 위해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사개특위 간사로서 최선을 다해왔다”면서 “누더기 공수처법안을 위해 당의 분열에 눈감으며 제 소신을 저버리고 싶지는 않다”고 반대표를 던질 뜻을 거듭 강조했다.
오 의원은 “아무쪼록 제 결단이 바른미래당의 통합과 여야 합의 정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면서 “이후로도 제대로 된 공수처 설치안과 검경수사권 조정안, 선거제 개편안 도출과 국회 통과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당의 통합과 화합에도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패스트트랙 안건은 소관위원회 위원 5분의 3(11명) 이상이 찬성해야 지정이 가능하다. 사개특위 위원 수는 18명으로 더불어민주당 위원 8명, 민주평화당 위원 1명 등 9명은 찬성표를 던질 것이 확실시된다. 여기에 2명 이상의 찬성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당 위원 7명 전원이 반대하고, 이에 더해 바른미래당 위원인 오신환·권은희 의원 중 1명이라도 반대표를 던지면 패스트트랙 지정은 불발된다.
180일·90일·60일…고비마다 ‘파열음’ 예상
패스트트랙 법안은 최장 330일 동안 숙려 후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표결 처리를 거친다. 구체적으로 관련 상임위원회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심사 뒤 본회의 부의 기간 60일 등이 걸린다. 상임위별 안건 조정제도와 국회의장 재량 등 적용을 고려해도 패스트트랙 법안이 본회의에서 처리되기까지는 240∼270일이 소요될 예정이다. 다만 여야가 합의하면 이 기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한국당이 위원장을 맡은 법제사법위원회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상임위에서 안건조정제도를 통해 90일, 본회의 부의 기간을 60일 줄이면 계산상으로는 180일 만에도 처리가 가능하다. 이 경우 내년 총선 전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혁의 입법화가 가능하다.
첫 번째 관문인 국회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 법사위로 패스트트랙 법안이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가 우선 관심사다. 상임위 내 의결정족수로 따지면 한국당이 절대적으로 불리하지만, 관련 정개특위와 사개특위 소속 한국당 의원들이 ‘총력저지’를 각오한 만큼 ‘원활한 표결 처리’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개특위와 사개특위에서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있다.

본 회의에서 이탈표의 가능성
패스트트랙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 표결까지 올라온다 해도 부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있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선거제 개편안의 골자는 연동률 50%를 적용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로, 현행 지역구의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실제로 중앙선관위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여야 4당의 선거법 개정안에 따라 지역구 의석을 225석으로 줄일 경우 현행 253개 선거구 중 모두 26개가 인구 하한 기준선에 미달하고, 2개가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 정수는 300명 그대로인 상태에서 현재 253석인 지역구가 225석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인구 현황에 따라 일부 지역구의 분구나 통폐합이 불가피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수도권 10석, 영남 8석, 호남 7석, 강원 1석 등 총 26개 지역구가 통폐합 대상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지역구 변동이 생기는 의원들이 패스트트랙을 통해 본회의에 오른 선거법 개정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을 수 있다. 즉 범여권 내에서도 이탈표가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정된 선거법으로 내년 4월 총선을 치르기 전 선거구 획정부터가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