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53호=김민수 기자) 지난 달 17일, 경남 진주시 가좌동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피의자 안인득(42)은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칼부림을 하여 5명이 숨지고 15명이 부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한 이들은 모두 노약자이거나 여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이후 범인은 “조현병을 앓고 있으며 홧김에 의한 범죄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반성하는 모습이 미미하고, 조사가 진행되며 나오는 여러 정황들로 보아 계획범죄 가능성을 크게 보이며 전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다.

일명 ‘진주 아파트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은 동기가 잘 드러나 있지 않고, 특정 피해자를 상대로 벌어진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로 불리우고 있지만, 사건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여러 정황을 토대로 보았을 때 이게 과연 ‘묻지마 범죄’가 맞느냐는 의혹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여러차례 피의자와 이웃과의 마찰
4월 17일 새벽, 아파트에서는 무슨 일이?
이번 사건의 피의자인 안인득은 지난 2월 28일, 윗층집이 본인의 집 쪽으로 벌레를 털어 몸이 가렵다는 이유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또한 여고생을 뒤쫓아가 초인종을 누르는가 하면 문 앞에 오물을 뿌리는 등 수차례에 걸쳐 보이는 이상행동들을 CCTV로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윗 집의 경우 여자 둘만 산다는 이유로 아무 이유없이 가족들을 괴롭혀 왔다고 주민들은 얘기했다.
한 아파트 주민에 따르면 “베란다에서 문을 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험한 욕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라며 안인득의 평소 이상행동에 대해 설명했다.
사건 당일인 지난 17일 오전 4시 25분, 안인득은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본인의 집에 뿌려 화재를 일으켰다. 이후 아파트 2층 계단에 자리를 잡았고, 세대 내 화재경보기가 울리자 놀라서 뛰쳐 나온 주민들을 대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던 10대 여성 2명, 50대 여성 1명, 60대 여성 1명, 70대 남성 1명, 총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15명이 부상을 입는 등 2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노인·여성·학생 등 모두 사회적 약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건 이후 안인득은 범행 진술에서 임금 체불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지만, 고용노동부 측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해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계획범죄의 가능성
앞서 말했듯이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범죄가 아닌 계획된 범죄라는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안인득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2, 3개월 전에 미리 구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방화를 위한 휘발유를 사건 당일 날 구입했던 정황도 포착되었다. CCTV 분석 과정에서 범행 당일 오전 0시 50분께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같은 여러 정황으로 보아 순간의 분노로 인한 범죄를 저질렀다기보다는 계획에 의해 저지른 범죄로 보여지고 있다.
오래 전부터 예견되었던 안인득의 위험성
경찰의 미흡한 조치
안인득은 과거 여러 차례 폭력성을 보인 바가 있다. 조사에 따르면 2010년에 본인을 기분 나쁘게 쳐다본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행인에게 흉기를 휘두른 전과가 있었다. 당시 재판부에서는 범행의 죄질 및 결과가 매우 중하지만, 피고인의 심신장애를 고려한 근거로 실형을 면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가 있다. 또한 지난 6개월 동안 술집 주인을 폭행하거나 아파트 주민들을 위협하는 등의 행동을 보여 여러 차례 경찰 신고가 접수되어 출동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러한 신고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희생자 유가족은 방송 매체를 통해 “아파트 주민들이 오랫동안 안인득의 위협적 행동에 대해서 경찰서, 파출소에 수차례 신고했지만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경찰서, 파출소 조치가 없어서 관할 동사무소, LH 본사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밝혔다.
자료에 따르면 안인득 관련 경찰 신고 횟수는 2018년 9월에 1건, 2019년 1월에 1건, 2월에 2건, 3월에 5건으로 조사됐고, 이 중 경찰이 미제로 남기거나, 현장 궤도로 종결한 것이 4건으로 밝혀졌다. 정신과적 응급상황에서의 현장대응 매뉴얼을 살펴보면 폭력적이고 이상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의료기관에 대상자를 통보해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경찰이 범행 위험이 있는 중증 정신질환의심자를 응급입원 시킬 수 있는 제도도 있지만 기준이 모호한데다 민원에 휘말릴 수 있어 경찰이 현장에서 활용한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범죄에 대응하는 경찰과 의료정보를 가지고 있는 ‘복지부처 간 협업시스템’이 없다는 점도 하나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현행법상 경찰이 정신병력을 확인하려면 압수수색영장을 받는 방법이 유일하다.
초동대처에 대한 유가족들의 비판이 거세지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신고 처리가 적절했는지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나도 억울하다” 적반하장의 모습
한편 경남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다음날인 지난 19 일에 안인득의 신상을 공개키로 결정했다.
이 날 안인득은 칼부림 과정에서 다친 본인의 손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이동하기에 앞서 경남 진주경찰서를 나서며 취재진들에게 “지난 10년간 (아파트에 살면서)불이익을 당해 왔다. 특정인을 노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반성을 하는 모습보다는 본인의 억울함을 참지 못하는 등의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그는 “나도 하소연을 많이 했고, 10년동안 불이익을 당해오며 살았다”며, 아직도 본인이 억울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억울한 점도 있다”고 답했다. 또한 피해자들에게 할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진주시 비리와 부정부패가 심각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져 가고 있는지 조사를 해 달라”는 등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3명을 투입시켜 안 씨에 대한 정신과 심리상태를 분석 중이다.
사회적 방치, 기관들의 책임 회피
안인득의 가족들은 사건 발생 2주 전에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원측에서 입원 절차에 있어 본인 동의가 없이는 입원을 할 수가 없다며 입원거절을 통보했고, 점점 증세가 심해지는 안인득에게서 직접 동의를 받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다른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이마저도 서로 회피하며 책임을 미뤘다. 경찰은 검찰에게, 검찰은 법률구조공단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자치단체 역시 아무런 조치를 행하지 않았다. 또한 안인득은 ‘보호관찰대상자’였다. 이미 그는 전과자이고 재범의 우려가 다분한 관찰대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방치가 되었던 것이다.
안인득의 친형은 “기관, 관공서 등 여기저기 발로 뛰어다니며 도움을 요청해도 제대로 된 답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어느 하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다면...”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어쩌 면 이번 사건은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씁쓸함이 남는다.

이낙연 총리, “진주 참사 미리 막을 수 없었나” 경찰 질타
이낙연 총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지난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경찰은 이러한 사건을 미리 막을 수는 없었는지 등 돌이켜봐야 할 많은 과제를 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총리는 “경남 진주의 아파트에서 증오범죄로 보이는 범행으로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게 깊은 위로와 부상자들의 빠른 쾌유를 빈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의 이상행동은 오래 전부터 보여졌고, 이러한 불행을 막을 수 있는 여러 차례의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며, “하나하나 되짚어보고 그 결과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남겨진 과제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두고 “모든 조현병 환자에 대한 지나친 낙인찍기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017년 대검 범죄분석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의 범죄율은 0.136%로 같은 기간 일반인의 범죄율 3.93%보다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조현병 자체를 두고 얘기하기 보다는 정신질환자의 관리 체계와 실질적인 정신질환자 격리·관리 사회 시스템을 다듬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또한 경찰의 적절한 초동 대응 및 매뉴얼의 개선·실행 등의 필요성 역시 지적하고 있다.
장기적인 국가대책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증오가 해소되지 못한 채 범죄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끊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정책적 배려로 인해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인 보완책은 뒤로하고 실현 가능성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만시지탄(晩時之歎)을 예방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