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법이 흐르는 정토’를 만든다
지난 1997년 광역시로 승격된 울산. 자동차와 중공업, 조선소 등 굵직굵직한 기간산업체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공업도시’인 울산의 불교는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배치된 곳이다. 신라 5대 파사왕이 현으로 지정하는 등 삼국시대 신라의 중심지였던 역사적 배경에 걸맞게 문수사, 석남사, 동축사, 백양사, 내원암 등 천년고찰들이 즐비하다. 아울러 도심에는 각자의 특성과 기능을 갖춘 포교당들이 발 벗고 뛰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연화사 호계불교대학이다. 유구한 울산지역 사찰 역사와 비교하면 연화사는 개원한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젖먹이와 다름없지만 울산의 대표 포교당으로 성장하면서 정법을 구현하겠다는 원력은 여느 고찰이나 대찰 못지않다.
현재의 도심포교는 불교계의 오랜 숙원사업으로 인식되었지만 타종교에 비하여 그 성과는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그 이유를 많은 사람들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찾기도 한다. 과거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시대 억불숭유정책으로 인하여 4대문 안에는 사찰을 세울 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주요 사찰은 산중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배경 속에서 서양의 종교와 사상들이 물밀듯이 유입되었지만 불교는 제대로 대응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였다. 더욱이 196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불교는 산중사찰을 고집하면서 과거의 전통을 유지하는 데 주로 관심을 기울였다. 도심포교를 주장하고 실천한 일부 선각자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조류는 산중사찰 중심에서 탈피할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도심포교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20년대 일제 치하에서 각 본사급 사찰에서는 인구가 밀집한 도심지역에 말사 혹은 분원 형태의 도심포교당을 개설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도심포교의 원력을 가진 스님들이 개별적으로 포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대중의 주목을 받을 만한 도심포교당들이 속속 서울을 비롯하여 경향각지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강남포교원, 한마음선원, 구룡사, 능인선원, 영남불교대학 관음사, 여여선원 등이 개원하면서 개인의 원력에 의지한 도심포교당들이 설립되었다.
울산 개척포교당 연화사 호계불교대학이 주목받고 있다
연화사가 위치한 곳은 북구 호계동. 울산의 신사가지로 각광받고 있는 곳이다. 조성된 지 얼마 안 된 탓에 초기 수도권 신도시처럼 도심은 썰렁해 보였지만, 활력만은 대단해 보였다. 이 지역은 5년 안에 모두 5만 세대가 입주할 예정이다. 1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유입된다는 말이다. 이곳 북구와 또 이웃한 중구를 통틀어 불교대학은 연화사가 거의 처음 개설하다시피 해, 연화사는 신시가지의 혜택을 톡톡히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자명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에 호들갑을 떨 필요가 있을까라는 판단은 잘못된 것이다. 울산은 통계청이 올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에서 불교인구가 전체 종교인구 가운데 39.8%를 차지할 정도로 불자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호계동에 터를 잡은 연화사는 혜택 이전에 고초를 치러야 했다. 불자는 많지만 불교는 잘 몰랐다. 여느 불자라면 낯익은 고승대덕 스님들의 법명은 이곳에서는 그저 낯선 인물의 이름일 뿐이었다. 포교당이 무엇인지 모르는 불자도 부지기수였다. 불교대학이 개강한다는 소문을 듣고 연화사를 찾은 불자들은 이내 발걸음을 돌렸다. 멋진 전각을 갖춰야 진짜 사찰이라는 생각을 가진 지역 불자들의 편견이 작용했다. “무슨 점집 아냐?” “절이 뭐 이래?” 라는 마음의 한 조각 의문을 품고 뒤돌아가는 불자들을 붙잡는 일도 연화사가 시급하게 풀어야 할 문제였다. 북구지역 불자들이 스님들의 법명은 들어본 적은 없지만 덕 높은 스님들의 법문은 그야말로 감로수로 다가왔다. 그 이후 입소문이 퍼져 불자들은 연화사를 다시 보게 됐다. 그러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불교대학이 개강할 수 있었다. 연화사 호계불교대학은 이런 불자들의 욕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기복신앙이 주를 이루던 지역 불교를 정법이 흐르는 정토로 만들겠다는 연화사의 원력은 초호화 강사진으로 표현됐다.
대한불교 조계종 연화사 호계불교대학 주지 덕륜 스님 인터뷰
울산 최고의 불교대학으로 자리 잡아 부처님의 법아래 수행과 참선, 회향하는 불자를 양성하겠습니다
■ 초호화 강사진 호계불교대학-울산불교의 희망
중앙승가대학원장 정인스님을 비롯해, 통도사 전계사 혜남 스님, 동국대 교수 법산ㆍ차차석, 황수경, 최봉수 동국대 교수 등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강의했다. 다양한 교과목도 호계불교대학의 자랑이다. 기초교리뿐 아니라 여성과 불교, 불교와 사회복지와 함께 간화선 실참도 진행하고 있다. ‘의식 있는 불교, 수행하는 불교, 회향하는 불교’를 지향하는 연화사의 포교원칙은 불교대학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절반 이상의 신도가 초심자라는 것도 연화사에 이로운 방향으로 작용했다고 털어놨다. “불교를 잘 모르는 초심자가 많기 때문에 담아주려는 것을 모두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있었습니다. 흡수력과 이해력이 뛰어난 신도들 덕분에 많은 일들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불자들을 양성하려면 공간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연화사는 임대계약이 끝나는 오는 2008년 넓은 평수의 법당으로 확장 이전할 계획이다. 이때부터 연화사의 미래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어린이와 청소년, 거사 등 계층포교를 시작으로 복지 포교도 본격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작년 11월 ‘웰다잉’과 사회복지를 주제로 연속 기획법회를 시행해 불자들의 의식을 깨웠다. 또 복지 불사에 적극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사업도 펼치고 있다. 연화사는 이를 통해 수행이 기본이 되지만 회향에도 게으르지 않는 전법도량으로 자리매김할 계획이다.
■ 의식있는, 수행하는, 회향하는 불교
스님이 품고 있는 원력은 ‘전법도생(傳法度生)’과 ‘요익중생(饒益衆生)’. 부처님의 바른 법을 전해 중생을 도탄에서 벗어나게 하고, 중생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사는 삶. 스님은 어려울 때마다 이 말을 가슴속에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오랫동안 서원했던 도심포교당의 문을 연 날, 스님은 초심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도했다. 이렇게 시작한 것이 3만 배 기도 정진이다. 매일 천 배씩 한 달이 넘게 걸린 기도정진은 포교당에 대한 스님의 원력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이 땅이 전법이 넘치는 정토가 되기를 기원하는 자리가 됐다. 시작부터 철저하고 절절했던 스님의 원력은 그 당시 초심처럼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스님도 한때 선방에 들어갈 생각에 고민했다. 우연히 찾은 조계종 전 교육원장 암도 스님의 경책으로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참선이 목적이 돼선 안 된다” 수행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과정일 뿐 목표가 아니라는 말이다. 포교당을 모르는 불자들에게 스님의 행동 하나하는 조심스러울 따름이었다. 스님은 불자들을 “호법신장”이라고 표현했다. “계율이 청정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포교당에서 1년을 버티기가 힘듭니다. 포교당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철저한 자기관리입니다” 스님은 출가 당시 세 가지 원을 세웠다.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는다. 사복을 절대 입지 않는다. 운동화나 구두를 신지 않는다’ 지금까지 스님은 3대 원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여기에 TV를 보지 않겠다는 원을 하나 더 추가했다.
“포교를 하지 않으면 불교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스님의 계행이 청정하고 철저해야 합니다. 또 원력이 있어야 합니다. 연화사는 앞으로 5년 내에 울산 최고의 불교대학으로 자리 잡아 부처님의 법아래 수행과 참선, 회향하는 불자를 양성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