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경선 공방
상태바
한나라당 경선 공방
  • 글/김정숙 기자
  • 승인 2007.06.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명박-박근혜 경선 합의, 진검승부 이제부터
8월 경선 앞두고 본격 경쟁준비 완료! 두 후보 검증에 날 세워

한나라당이 지난 5월 15일 경선 룰을 사실상 확정짓고 본격적인 경선체제에 들어갔다. 새 경선 룰은 이변이 없는 한 '8월-23만 명'이라는 룰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당지도부는 곧바로 경선관리위원회 및 검증위원회 구성, 후보등록 준비, 선거인단 구성 등 경선과 관련된 실무 준비 작업에 분주한 모습이다. 양대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측도 본격적인 경선모드로 전환하고 중장기 경선전략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경선으로 인한 충돌의 불씨는 완전히 꺼진 게 아니다. 세부적인 '게임의 룰'을 확정할 경선관리위원회 구성 문제에서부터 경선 룰 수정에 따라 확대된 선거인단 구성 방식, 여론조사 기법, 당직 인선, 사고지구당 정비 등 현안 하나하나를 놓고 충돌할 가능성이 높아 제 2, 제 3의 위기가 언제든지 재연될 공산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나라당은 5월 15일 오전 국회에서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8월~23만 명 경선 룰 반영을 위한 당헌·당규 개정안을 처리해 전당대회 수임기구인 전국위원회로 넘겼다.
이날 상임전국위를 통과한 새 경선 룰은 대선일 120일(8월 21일) 이전에 유권자 총수의 0.5%(여론조사 반영분 포함해 23만1천652명) 규모로 선거인단을 구성해 경선을 치르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는 강재섭 대표가 제시한 중재안으로, 당 혁신안에 따른 현행 경선 룰 '6월-4만 명' 안에 비해 경선시기는 두 달 가량 늦추고 선거인단은 6배 가까이 늘린 것이다.


새 경선 룰은 어떤 내용?
새 경선 룰에는 강 대표 중재안 가운데 투표소를 시·군·구 단위로 늘리고 순회경선 대신 하루에 동시투표를 실시해 국민투표율을 높이는 방안이 포함됐으나 최대 쟁점이었던 '여론조사 하한선 보장' 조항은 이 전 서울시장의 전격 양보로 막판에 빠졌다.
한나라당은 이날 상임전국위에서 6월 시.도당 위원장 선거를 경선 이후로 연기하기 위해 위원장의 임기를 연장하는 규정과 대의원 구성원 자격 가운데 중앙당 후원회 폐지로 사문화된 '중앙당 후원회 운영위원' 조항을 삭제하는 내용도 처리했다.
또 국민참여선거인단의 30% 이상, 당원협의회 및 국회의원 추천 전당대회 대의원의 50% 이상을 각각 40세 미만으로 채우도록 한 기존 조항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그 비율을 '20% 이상 40% 이하'로 일괄 조정하는 내용도 통과시켰다. 그러나 대표가 지명할 수 있는 최고위원을 기존 2인 이내에서 4인 이내로 확대하는 방안은 찬반 논란 끝에 부결됐다.
한편 한나라당은 경선 룰이 사실상 확정됨에 따라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28일 사이에 4차례에 걸쳐 대선후보 정책토론회인 '2007 정책비전대회'를 열기로 했다고 나경원 대변인이 전했다.
상세 일정을 보면 첫 정책토론회는 29일 대전에서 경제분야를 주제로 열리며 이후에는 다음달 8일 광주(교육·복지분야), 19일 부산(통일·외교·안보분야), 28일 서울(종합)에서 각각 개최된다. 다만 '당집권비전선포식'을 겸해 열리는 수도권 정책토론회의 경우 2차례 나눠 실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박 경선준비로 분주한 일정 보내
이 전 시장 측은 경선대책본부의 인선 작업을 마무리하고 여의도 캠프를 출범시킨다. 선대본부 위원장으로는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 내정됐고, 선대본부장·대변인 등을 두고 막판 인선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경제를 강조하며 정치와 거리를 두는 행보를 계속할 생각이다. 5월 말경 대외정책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분야별 정책을 차례로 발표할 계획이다. 이 전 시장은 캠프의 여의도 이전 이후에도 당분간 종로구 견지동의 사무실에 머물며 ‘여의도 정치’와 거리를 두기로 했다. 슬로건으로도 ‘일하는 대통령’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 전 시장 측은 이 같은 행보를 통해 박 전 대표와의 20%포인트에 가까운 지지율 격차를 유지하고 이를 통해 당심을 움직이겠다는 전략이다. 조해진 공보특보는 “경선 규칙 처리 과정에서 이전시장은 명분에서나 세력에서 당내 주류적 지위를 확보했다”며 “여론의 대세를 바탕으로 당내 대세를 굳혀가는 쪽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 캠프도 당 선관위 구성 직후 선거대책본부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안병훈 캠프 본부장이 선대위원장을 맡고 선대본부장으로는 김무성, 허태열 의원이 공동으로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언이다. 서청원 전 대표는 고문직을 유지하며 외곽 지원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 측은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를 강조해 당심을 잡는다는 구상이다. 캠프 핵심 관계자는 “장기적인 경선 레이스에서는 박전대표의 일관성과 신뢰를 주는 리더십이 결국 당원과 국민에게 감동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 주부터 감세, 정부개혁, 여성 등 분야별 정책 발표를 통해 대국민 메시지도 이어갈 계획이다.
박 전 대표 측은 또 당내 후보검증 과정에서 이전시장에 비해 박전대표의 장점이 드러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유승민 의원은 “여권에서 어떤 후보가 나오고, 온갖 공세를 퍼부어도 이길 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해야 한다”며 “깨끗하고, 당을 위기에서 구한 박전대표가 경쟁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5월 29일부터 다음달 28일까지 4차례에 걸쳐 대선후보 정책토론회도 열기로 했다. 검증관리위원회를 구성해 당 차원의 후보 검증도 해나갈 계획이다. 나경원 대변인은 “5월 말이나 6월 초쯤 경선후보 등록을 받고, 7월 말부터 전국 유세 등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승리 자신감’이 이명박 양보 비결
자칫 한나라당의 분열로 이어질 뻔한 당내 경선 룰 논란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은 쪽은 이 전시장 쪽이다. 안국동캠프에서 ‘당과 나라를 구하기 위한 5.14 대결단’이라고 이름붙인 이 전 시장의 경선룰 양보 선언은 이처럼 '양보'라는 의미보다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겨냥해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는 자신감의 표현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그의 ‘결심’은 기자회견 1시간여전 동대문구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서울시 당원교육행사에서조차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전격적인 형태로 이뤄졌으나, 그의 발언을 되짚어 보면 결심을 예고하는 듯한 복선이 깔려있다.
이 전 시장은 이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걱정하고 있다. 큰 일 나는 것 아니냐, 잘못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의 분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자신의 결단으로 이를 막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는 또 “저는 하늘이 두 쪽 나도 한나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 한다. 저는 당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경선 룰 불화로 끝내 당이 쪼개지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그는 기자회견에서 “오늘 새벽 밤을 지새우다시피 해서 새벽녘에 결심했고 오후에 박희태 전 부의장 등 한두분에게 저의 뜻을 전했다”면서 이미 며칠 전부터 고민을 했고 이날 오전부터는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미 강재섭 대표의 중재안이 나왔을 때부터 결국은 이 전 시장이 양보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던 것도 예상된 시나리오가 그대로 전개됐다는 일각의 분석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의 결단에 대해서는 최측근을 제외하고는 캠프 내 의원이나 보좌진들도 회견 직전까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들은 캠프 소집 통보를 받고 기자들에게 “어떤 내용이냐”라고 묻기도 했다.
실제로 오전에는 캠프 관계자 30여명이 모인 가운데 이재오 최고위원 주재로 여의도 사무실에서 회의가 열렸지만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후문이다. 오후 6시까지만 해도 외부에서는 이 전 시장 측의 강경한 분위기를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이 전 시장이 오후 7시 기자회견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상 기류가 감지됐다. 오후 6시10분께 이 전 시장 캠프에서 소집령이 내려졌고 영문을 모르고 속속 도착한 20여명의 의원들에게 이 전 시장은 “결단은 후보가 하는 것이니 존중해달라”며 결심 내용과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 그가 태도를 급선회한 이유는 뭘까. “정권교체라는 중차대한 일을 놓고 당이 분열하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다”는 그의 말은 당 내홍으로 인한 민심이반을 가장 우려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 캠프 측의 자평이다.
당 내홍으로 인해 ‘한나라당 대선필패론’ ‘4자 필승론’ 등이 난무할 정도로 이미 심각한 전력 손실을 입었다는 판단 하에 현재의 압도적인 여론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이대로는 본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론이 작용했다는 분석인 셈이다.
특히 만의 하나 경선 룰 합의 불발로 당 지도부가 와해되고, 경우에 따라 박 전 대표가 탈당 등 중대한 결심을 할 경우에는 이 전 시장의 대선플랜 전반이 어그러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강 대표의 중재안을 수용한데 이어 박 전 대표가 문제 삼은 여론조사 하한선 문제도 받아들임으로써 '대승적'인 모습을 재차 보여주려는 이미지 메이킹 전략도 작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이는 양보를 하더라도 ‘대세에 지장 없다’는 계산과 함께 결단으로 인한 지지율 상승이라는 판세분석이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이밖에도 중재안 향방의 분수령이 될 상임전국위원회를 코앞에 두고 긴급 기자회견을 함으로써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의도도 읽혀진다. 이날 오후까지도 외견상 양보 내지 타협은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것은 양보의 크기를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언행이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조해진 공보특보는 그러나 “이 전 시장은 이번 결단으로 쇄신안, 중재안 수용에 이어 세 번째 양보를 한 셈”이라면서 “이번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이 정면 돌파 밖에 길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당의 화합을 위해 거의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고독한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진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도 “무엇보다 국민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다. 이 전 시장의 결단은 국민을 바라본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경선준비는 ‘검증 칼날’
한편 박 전 대표 측은 이 전 시장에 대한 검증의 칼날을 벼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 측은 경선 룰 합의 다음날인 5월 16일 정례 회의를 갖고 검증 문제만큼은 경선 룰 때처럼 재논의하거나 다시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경환 의원은 “온정주의나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돼선 곤란하다”며 “우리끼리 넘어가더라도 본선에 가면 난리 일 텐데 국민들이 뭐가 검증이 되고 어떻게 됐는지 알아볼 수 있도록 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박 전 대표 측은 인신공격이나 사생활을 들춰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관, 대북 정책,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행정복합도시에 대한 입장, 이념 문제까지 국가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모두 검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이 전 시장의 대표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를 집중 검증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유승민 의원은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데 나는 국민을 속이는 공약으로 본다”며 “캠프에서 말리더라도 개인 자격으로 끝까지 문제점을 파헤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 진영은 당 정책위원회가 29일부터 개최하는 대선주자 정책토론회를 이 전 시장에 대한 1차 정책 검증의 장으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이혜훈 의원이 후보 등록 여부와 상관 없이 예비 후보를 모두 포함하고 상호 토론 시간을 1인당 15분으로 한정한 진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의원은 “면피용 정책 검증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당이 과연 후보 검증을 제대로 할 의지가 있느냐”고 당을 압박했다.
하지만 전날 “나부터 검증해달라”며 검증 공세에 나섰던 박 전 대표는 일단 직접적인 검증 발언은 자제했다. 그는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서울호텔에서 열린 ‘5·16민족상’ 시상식 직후 검증 공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은 할 말이 없다”며 입을 닫았다. 지나치게 네거티브 공세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경선합의, 한나라 중진 역할 컸다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경선 룰 ‘전쟁’에서 강경 일변도였던 이명박 전 시장이 갑작스럽게 마음을 돌린 데는 본인의 ‘결심’이 제일 컸지만 주변의 조언도 상당한 역할을 했다.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과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 등이 ‘막후 해결사’였다고 이전시장 측근들은 전했다. 이상득 부의장은 이날 “나와 이전시장 결정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 행여 이전시장의 결단이 바랠까봐 우려하는 기색이었다.
한 당직자는 “사실 오전까지만 해도 해결될 기미가 없었다”며 “이부의장이 이전시장에게 당 안팎의 여론을 전하며 통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조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부의장은 이 전 시장의 최종 결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고 한다. 그는 이 전 시장과 함께 참석했던 이날 오후 2시 한나라당 서울시당원 교육행사가 끝난 뒤 이전시장에게 별도 면담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결단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여론조사 ‘67%’ 하한선을 포기해도 ‘대세’에 지장이 없음을 강조했다는 전언이다. 되짚어보면 이 전 시장의 변화는 행사 직전 박 전 부의장의 언급에도 담겨 있었다.
박 전 부의장은 행사장에 들어서며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정치는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대로 가는 사람이 승리한다”고 말했다. ‘물밑 조율을 많이 했느냐’는 물음에는 “내가 지금까지 뭐 했는지 모르는구먼. 열심히 헤엄치고 있었다”며 상황 변화가 있음을 시사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