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불사 / 대풍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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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불사 / 대풍스님
  • 취재_남윤실 기자
  • 승인 2007.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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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위령제’
빨치산 토벌희생자들의 피맺힌 원혼 달래
형제의 턱밑에 총부리를 겨누고, 어머니 같은 지리산에 동족을 묻었던, 이념의 대립과 투쟁으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서야 어루만지노니,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를 구하나이다. 억울하게 사라져야만 했던 호국 영령들이여! 이제 원력을 굳게 세우고 착 없이 떠나소서!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추도사 중에서)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이 발발한지 56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남한의 원수가 평양을 방문하고 50여 년간 끊어져있던 경의선 철도의 복구작업이 진행되는 등 산자들 사이에서는 그 시대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어느 정도 용서와 화해가 진행되고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전몰희생자들을 위한 위령제, 추도제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모두가 남측희생자들만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행사였고 그 어디에서도 북측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행사는 보이지 않았다. 이는 아직도 우리사회가 전쟁의 아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인데, 그러나 지리산 천연와불 성지에 자리한 견불사의 창건주인 대풍스님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이미 10년 전부터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민족상쟁으로 억울하게 눈을 감아야만 했던 민간인, 인민군, 빨치산의 영혼들을 포함 한 북측 희생자들과 남측의 국방군, 유엔군 민간인 등의 호국영령 원혼들과 함께 죽어간 꽃들과 나무들과 짐승들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를 지내오고 있다. 올해 10회째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위령제’를 지내며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주고 있는 (사)행복한사회 이사장이자 견불사 창건주 대풍스님을 만나보았다.

행복한 사회구현에 이바지
대풍스님이 이사장으로 이끄는 (사)행복한 사회는 지난 2001년 부산 경남 중심의 회원이 모여 결성된 봉사단체로 참나사랑, 부모사랑, 자연사랑을 슬로건으로 활발한 사회봉사 복지활동을 하고 있다. 이 단체는 참된 봉사활동을 통한 효 실천과 자연사랑의 근본 뜻을 펼치기 위해 소외계층보호와 소년소녀 가장 돕기, 무의탁 노인돕기, 국토청결운동 등 지역봉사에 지속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이 밖에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랑의 쌀 나누기, 장애인 생활보조금전달, 결식아동 도시락전달, 독거노인 생계보조금지원, 소외계층 무료급식활동, 효자효부 장학금과 격려금을 전달하는 등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따뜻한 온기를 전하고 있어 주위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있다. 지난 2006년 8월9일부터 10일간 스리랑카 마힌다라자파크세 대통령의 초청으로 동남아 지진해일(쓰나미)로 인한 피해로 힘들어하는 스리랑카 수재민들을 돕기 위해 국내 의료진을 포함한 자원봉사자 29명이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구호활동 및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같이 (사)행복한 사회는 자신을 위한 삶보다 다른 사람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국내외를 막론한 활발한 봉사활동 전개를 통해 진정한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널리 전파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풍스님은 “오늘날 세계의 고통을 야기한 주원인이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개인주의 때문입니다. 푸르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모두가 힘을 합쳐야합니다. 그 푸르른 삶을 한가운데서 받쳐줄 수 있는 삶의 철학이 바로 불교입니다. 불교의‘연결된 존재개념’과 상의상존성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고 독립된 실체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지나친 개인주의를 멀리하고 또한 전체주의의 획일성도 버리고 조화롭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이 곧 세상을 평화롭고 푸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 평화로운 세상은 곧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즉 내가 세상을 만들며 세상은 또한 나를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자타불이’와 ‘동근여화 만물일체’의 진리를 깨달으면 이 세상에서 극단적 대립이 사라지고 서로 협력하고 감싸주는 정토가 열릴 것입니다”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부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반목과 갈등이 생겨나고 이로 인해 사회는 더욱 각박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다른 사람을 탓하고 정책이나 제도에 하소연하기보다 저마다의 가슴속에 깊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는 정신,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커진다면 온 국민이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사회가 구현될 것이다.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대풍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행복은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주인이 되는 순간, 우리는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무념무상으로 머무는 곳 마다 깨어나 주인공이 되면, 지금 서 있는 그 자리가 바로 극락정토입니다. 반대로 내가 가진 어떠한 것에 대해 집착을 하게 되면?내 마음은 그것에 메여 구속을 받게 됩니다. 마음 가운데 집착이 있는 한 고통은 필연적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행복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던 가지고 있지 않던 또한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고요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고요한 마음에는 항상 자유와 평화가 깃듭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행복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지금 불행과 행복이라는 외형적인 조건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계속 변화하게 되기 때문에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없다. 참된 행복은 무심(無心)이라고 하는 한 마음의 평정심에 있다. 무심은 집착하지 않으므로 대상(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기 때문에 대상이 있으면 있어서 좋고, 없으면 없어서?즐거운 스스로의 만족(自足)을 얻을 수 있어 그 자체가 불변이고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근본이 된다.
대풍 스님은“나 혼자만 편안하게 살기 위한 이기적(利己的)인 삶과 전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타적(利他的) 삶의 양극단(兩極端)을 모두 여의고, 자신과 사회 모두를 이롭게 하는 대승불교이념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菩薩道)를 실천할 때 아름다운 사회가 됩니다”라고 말했다.

지리산자락 천년와불 성지 견불사
대풍 스님이 기이한 인연과 원력으로 견불사를 창건한 것은 12년 전쯤이다. 부산에 포교원을 개원한 스님은 기도를 마치고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누군가 스님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백발이 성성한 마치 신선과 같은 모습의 선인이 아주 청아한 목소리로 “제자야 절터를 보러 갈 터이니 따라와 보아라”라고 말하며 선인은 어디론가 인도했다. 스님은 “이제 막 포교원을 개원했는데 또 무슨 절터를 보러 가는가”하는 의구심이 든 순간 어떤 신비한 힘에 이끌려 허공에 솟아올라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심산유곡의 어떤 자리에 도착했다. 그 선인은 대풍 스님에게 “여기가 사찰 터이니 이곳에다 절을 지을 것이다. 잘 살펴보아라”라고 말했다. 주변을 둘러보던 중 땅으로부터 아름드리 물줄기가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는 광경을 목격한 대풍 스님은 “이런 큰물이 솟아나면 목욕탕을 지어야지 왜 절을 지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을 가지는 순간 그 선인은 “이 물은 그냥물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의 병고액란의 고통과 외로움의 고통을 씻어줄 수 있는 부처님의 감로수 물이니 반드시 이곳에 절을 지어야 한다. 이 터를 잘 살펴보았다가 잊어버리지 말고 나중에 인연이 되면 반드시 이곳에다 절을 지어 만 중생을 제도하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놀라 깨어나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꿈에서 깨었는데도 너무도 생생한 기억에 신비한 기분에 사로잡혔던 스님은 6개월쯤 뒤에 그 절터와 실제로 인연을 맺게 된다. 어떤 스님과 함께 기도를 드리던 중 그 스님이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털어놓는데 자신이 지리산에 절을 지으려고 땅을 얻어 놓았는데 여러 가지로 사정이 어려워 절을 짓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다. 스님은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너무나 끌리는 느낌이 들어 불자들을 보내 그 절터의 모습을 캠코더로 촬영해오게 했다. 포교원에서 절터의 모습을 본 스님은 6개월 전 꿈에서 본 그 절터의 모습과 너무 똑같아 “아!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의 뜻이구나”라고 느껴 그 자리에 절을 세울 마음으로 절터를 구입하여 부산포교원은 제자에게 맡기고 지리산 그 자리에 천막 하나만 들고 들어가 일주일간 철야기도를 드린다. 기도를 마치고 해가 뜰 무렵에 개울가를 거닐던 스님은 동쪽하늘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산 능선의 모양이 영락없는 부처님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스님은 순간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경외심이 들어 그 자리에 합장을 하고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후에 이 자리가 수 천 년의 시공을 초월한 성지임을 깨닫게 된 스님은 10년 동안 용맹정진으로 사찰창건 기도를 봉행하며 견불사라는 이름의 사찰을 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다. 이 신비한 모습의 천연적으로 생긴 와불의 지리산 자락에 신라 때에는 300여 명이 넘는 대중이 함께 머물었던 큰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 현재에도 견불동이라는 마을이 있다.


죽은 자들의 화해와 용서도 중요
전쟁의 아픔을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싶지만 전쟁이 50여년이 지난 요즘 산 자들의 상처는 많이 아문 듯 보인다. 한 민족으로 살면서 언젠가 합쳐져야 할 한반도이기에 더 이상의 반목과 갈등은 없어져야 한다는 시대적 대의가 그들의 화해와 용서를 돕고 있다. 허나 정작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인 전몰 영령들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며 한 맺힌 원혼이 되어 고통 받고 있다. 대풍 스님은 산 자들의 화해만큼이나 죽은 자들의 화해도 중요하다 말한다.
대풍 스님이 한 맺힌 전쟁희생자들의 원혼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10년 전쯤이다. 견불사에서 자리를 잡고 사찰창건을 위해 10년 동안 용맹정진 기도수행을 하던 스님은 기도 때마다 눈을 감으면 피를 흘리며 매우 고통스러워하는 어두운 표정의 원혼들을 수없이 만났다고 한다. 때론 군인들과 민간인, 죽창을 든 많은 사람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피 흘리는 고혼들, 스님은 스스로 기도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어섰단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로부터 이 골짜기가 6·25전쟁 당시 북한군 빨치산부대의 총 사령부가 있었던 역사적인 자리로 수많은 이들의 안타까운 주검이 묻혀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후 원혼들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스님은 부처님의 자비심을 실천하기 위해 정월 초하루와 현충일, 7월 백중일, 연말에 한 번씩해서 일 년에 서너 번씩 원혼들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를 현재까지 9년 동안 열어오고 있었다.
특히 6월 6일에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위령제”라는 이름의 행사로 시작된 이 추모행사는‘용서와 화해' 라는 화두로 시작 된다. 원혼들을 위해 불교의 전통의식인 범음범패천도의식과 살풀이 명인(대구시무형문화재제9호 권명화) 국악인들을 대거 초청해 화관문 등의 국악한마당으로 원혼들의 한과 아픔을 풀어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원혼들의 극락왕생과 국가의 평화통일을 비는 축문을 담은 연등을 밝혀 참석한 모든 이가 모두 하나가 되는 장을 이끌어내고 있다. 스님은“부처님의 눈에는 남한의 희생자나 북한의 희생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모두가 각기 나라에 충성한 이들로 다 같은 충혼들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모두 우리 한 민족들입니다. 위령제를 지내는 횟수가 거듭 될수록 비명횡사한 그분들의 밝은 모습이 자주 보여 마음이 매우 뿌듯합니다. 그들이 어떻게 죽었든 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의 현실세계에서 만큼이라도 그들에게 기쁨을 좀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평등, 화해, 평화가 이루어져야 할 이 시대에 이제는 죽은 영혼들도 서로 용서를 하고 화해를 하는 장을 만들어 서로 간에 한 맺힌 원한들을 풀어 구천을 맴도는 원혼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밝히며 산 자들의 화해는 물론 죽은 자들의 화해 또한 중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스님은“영혼간의 용서와 화해를 통해 산 자와 죽은 자가 동질성을 느끼고, 결국 평화통일로 가는 서로간의 깊은 포옹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밝히며 위령제를 올리는 궁극적인 목표가 평화통일임을 내비췄다. 지번 행사에는 2,000인분을 준비한 식사가 동이 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 주었다. 올해 행사부터는 더욱 적극적으로 세상에 이 뜻 깊은 행사를 알릴 계획이라는 스님은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우리 편, 남의 편 가릴 것 없이 용서와 화해의 장을 열어 우리 모두 하나를 이룰 수 있는 호국영령들의 천도재를 치러주었으면 합니다”라며 바람을 드러냈다. 스님의 바람처럼‘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위령제’가 앞으로 남북 간의 화해, 협력을 상징하는 행사로 발전하여 남북통일의 밑거름이 되길 기대해 본다.

지리산 천년와불 성지 견불사 대풍스님
“본심시불(本心是佛)이요 행불시불(行佛是佛) 이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모두가 부처이다. 마음의 본질은 본래 청정하고 순수하며 맑으며 생명이 있는 존재는 누구나 부처님과 같은 마음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순수한 본질의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평등과 자비를 가지게 되는 경지에 올라 비로소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장 큰 가르침은 마음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본심은 모두가 선하기 때문에 악한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나는 것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나 마음을 다스리기에 따라서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부처의 행동을 하면 부처와 같은 인생을 살 것이고 중생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중생과 같은 인생을 살 것이며, 악인의 행동을 한다면 악인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숨 한번 쉴 때, 말 한마디 내뱉을 때 부처와 같은 생각을 한다면 부처님의 삶을 살 수 있다. 불교는 어렵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다스리면 이미 당신은 부처이고 성인이다. 큰 스님들의 신비로운 모습에 현혹 되서 불교를 공부할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스스로 행동을 바르게 한다면 부처와 같은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다.
‘웰다잉’에 주목하고 있다.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과 같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곧 다음생의 시작을 뜻하기도 한다. 생의 마무리를 잘 한다면 다음 출발의 시작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인복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노인들의 한생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하여 내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혹은 잘 살지 못했다면 남은 시간만큼이라도 잘 살다가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미약한 힘이지만 산을 옮기기 위해 한 삽씩 뜬다는 생각으로 육신이 이 세상에 남아있는 한 이것 하나만 보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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