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 252호=박희윤 기자] 박철언 전 장관은 제5공화국 시절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국가안전기획부장 특별보좌관 등을 지내면서 비밀리에 20여 차례 북한을 방문한 유명한 일화를 가지고 있다. 헝가리와 수교 30주년을 맞아 헝가리와 대한민국의 수교에 공헌한 공로로 지난 2월 헝가리 정부로부터 십자 공로 훈장을 수여 받은 박 전 장관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어려웠던 점들을 이야기했다. 이제는 시인으로서 영혼의 열기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박철언 전 장관을 만나보았다.
최근 근황은
2001년부터 변호사 사무소를 열어 현재까지 19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유료 사건은 단 한 건도 맡지 않았다. 또 기업의 법률 고문과 같은 일들도 일체 받지 않았다. 어려운 분들의 법률 상담을 무료로 도와드리고 있다. 장관까지 지내고 한 시대의 운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나만의 소신을 가지고 봉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달려왔다. 통일문제·민족문제에 관한 특강을 나가기도 한다.
제 고향인 대구에서 ‘대구경북발전포럼’이라는 사단법인을 2001년에 창립해서 19년째 장애인들을 돕고 장학금을 전달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시민과의 대화’라는 프로그램을 열어 만남과 소통의 장을 열고 있다. 조용한 봉사의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헝가리 정부로부터 십자 공로 훈장을 수여받았는데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는 한국사에 굉장히 많은 연구 노력을 하는 인물이다. 한국말도 굉장히 잘하고, 부인도 한국인이다. 자녀들도 헝가리 국적,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 사랑이 대단한 인물이다. 지난 2월에 훈장을 받게 된 배경은 올해 대한민국과 헝가리 정식 수교 30주년을 맞이하여 헝가리대사관에서 연락이 왔다. 수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분이 박철언 장관님이신데 아직까지 훈장을 챙겨드리지 못해 대단히 송구하다며 이번에 30주년 수교 기념행사를 여러 가지 준비하는데 훈장 수여를 꼭 해드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초머 모세 주한 헝가리 대사의 초대를 받아 많은 얘기를 나눴으며 “수교 30주년 책임자로서 앞으로는 양국간의 관계 증진을 위해서 민간차원에서 더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한국과 헝가리의 중요성 및 우호에 관해 이 적지 않은 의미가 지면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꼭 잘 알려지길 바란다.

당시 헝가리와의 수교 상황에 대한 설명
정부 수립 후 제5공화국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약 100여 개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전부 자본주의 서방과의 외교 관계 뿐이었다. 그 외의 공산권 국가인 헝가리, 체코, 플란드, 중국, 소련, 베트남, 라오스와 같은 공산권 국가에게는 갈 수도 없었고 외교 관계도 없었다. 때문에 경제활동도 원활하게 할 수 없는 이른바 ‘반쪽 외교’, ‘반쪽 경제활동’ 시대에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북방정책’이라는 것은 5,000년 민족사에 있어 처음으로 우리 정부가 주도해서 우리의 외교영역을 전세계로 넓히고, 또한 경제활동 영 역도 넓히고자 시작한 것이다. 그 첫 번째 대상으로 우리와 상황이 여러모로 비슷한 헝가리로 설정해 비밀리에 방문을 하여 비밀회담을 진행해야 하는데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북한 요원들의 집요한 방해, 잘못 노출시 해를 입을 수 있는 위험 등의 많은 장애물이 있었다. 우리는 미국에서 온 관광객처럼 가장을 하거나 일본의 교포인 것처럼 위장을 하는 등의 여러 방법을 통해 요원들을 만났고, 이런 노력의 결과 수차례의 비밀회담을 통해 정부 수립 후 처음으로 공산권의 서기장 겸 수상을 만난 것이 1988년 7월 11일로 기억된다. 이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이후로도 헝가리측에서 한국으로 특사를 파견해 노태우 대통령과의 만남이 이루어져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회담이 진행됐다.
이후 1989년 2월 1일, 대한민국과 헝가리 간의 대사 교환을 하는 외교 관계가 정식 수립된다. 이것을 기폭제로 하여 폴란드, 체코, 소련, 베트남, 라오스, 중국 등 노태우 대통령 시대에 38개의 공산권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는 쾌거를 이룩했다. 반쪽 외교로부터 북방정책을 통해 전세계 를 상대로 하는 전방위 세계 외교시대를 열었고, 우리의 경제 활동영역도 전세계로 넓혀 급속도의 성장을 이루게 된다.
또 헝가리는 과거 자칫 반쪽 올림픽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가장 먼저 참석하겠다고 말해준 나라였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있었는데 서방이 전부 참석을 하지 않았다. 이후 1984년 LA올림픽 당시는 입장이 바뀐 채 같은 이유로 반쪽이 됐다. 그 다음 이 1988년 서울올림픽인데 자칫 반쪽올림픽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반쪽 올림픽을 서울에서는 전체가 참석하게 만들어 우리가 외교관계, 경제관계가 반쪽밖에 없는 것을 넓히는 확장 계기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총력을 다해 북방정책을 추진하고 많은 노력을 통해 결과적으로 서울올림픽이 세계 160개 국가가 참석하는 가운데 가장 성대하고 완벽하게 개최됐다.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계기가 있다면
젊은 시절 나의 꿈은 문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불꽃 같은 열정과 맑은 영혼을 지니고 젊은이들과 늘 호흡을 하는 문학전공교수가 되어 평생을 아름답게 살아보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꿈을 키웠으나, 부모와 주변의 권유로 인해 법과대학을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독우회(독문학을 연구하는 친구들의 모임)를 만들어 가슴 한 켠에 있는 문학의 꿈을 잃지 않았다.
주변의 권유로 고시를 보게 됐고, 군복무 이후 검사로 임관하여 파란만장한 삶을 지냈다. 1년 4개월의 수감생활 당시에는 옛날에 좋아했던 문학에 관한 책도 마음껏 읽었고, 감옥에서 ‘옥중시’를 써서 매일 매 일한 장씩 가족에게 보냈다. 그러다 감옥에서 보낸 「감옥의 국화꽃밭」, 「눈 내린 새벽」, 「민들레꽃」 이 세 편의 감옥시가 나의 자택에 자주 출입하는 기자들에 의해서 언론이 보도되자, 감사하게도 그것을 본 원로 시인 조병화, 박재삼 같은 분들의 추천으로 등단을 하고 시인이라는 푸른 모자를 쓰게 되었다.
대표작을 소개한다면
수감 생활 당시 면회를 온 이들, 또한 주고 받은 편지들을 책으로 엮어서 낸 「4077 면회 왔습니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을 살펴보면 김동길 박사, 김수환 추기경, 김장환 목사 등 많은 분들이 직접 저를 위해 면회를 와주시고 기도해 주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후 2005년에 펴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역대 대통령들에 관한 비밀스런 일들, 재벌총수들, 북방외교 관련된 헝가리와의 수교 과정 등의 내용을 잘 담아내었지만 아쉽게도 출판 사 랜덤하우스가 없어져 10판 이후 절판이 됐다. 또 시인으로서 그동안 4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인정을 해주신 결과 「바람이 잠들면 말하리라」의 시집을 통해 수상한 ‘세계문학상 대상’을 비롯해 다수의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해에는 ‘김소월문학상 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얻기도 했다. 많은 독자들이 나의 작품에서 많은 공감과 소통이 되시기에 이러한 상복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를 쓰는 이유는
내 공적 생활을 증언하는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을 쓰고, 이어 속세에 있었던 많은 일을 훌훌 털어 시로 승화시키는 시집을 차례차례 쓰다 보니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며 느끼게 된 것은 세월이 너무 빠르고 허무하다는 것이다. 인생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는 말처럼 인생을 돌이켜 보니 태어날 때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태어났다가, 이것저것 많은 것을 잡으려는 욕심 속에서 살다가, 이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떠나야 하는 그런 시점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에 대한 성찰이다. 제 시를 보면 어머니와 고향에 관한 시가 많다. 소멸, 그리고 허무, 이러한 것들을 느끼면서 고향으로의 귀환하여 마지막 영혼을 시로 서 불태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시 중에는 훗날 나의 장례식을 연상하면서 쓴 「장례식」이라는 시도 있 다. ‘스스로 생각해보면 내가 불이 되고 재가 되고 흙이 되어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속세에서 지친 영혼만이라도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날아 다녔으면 좋겠다.’ 현재도 시를 쓰면서 꺼져가려는 영혼의 열기를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우리 현대사를 살펴보면 산업화의 눈부신 발전, 민주화 이룩 등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자랑스러운 현대사이다. 이것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과 연결이 되는 보수 세력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등으로 연결되는 진보세력들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투쟁하면서 함께 노력한 결과이다. 말하자면 새의 양 날개처럼 함께 날아 오늘에 오게 되었는데, 서로의 공과 몫을 인정하는 서로 역사적인 대타협을 통해 미래를 얘기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 복지 통일국가를 향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