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 252호=박희윤 기자] ‘한국은 제2의 고향입니다’라고 말하는 초머 모세(Mózes CSOMA) 주한 헝가리 대사는 외국인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반적인 한국인보다 한국의 역사를 더 잘 알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2008년에 헝가리 최초로 외트뵈시 로란드 대학교(ELTE)에 한국학과 학부과정을 설치하였으며 이후 석사과정, 박사과정을 차례로 설치하여 헝가리 한국학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9월부터 주한 헝가리 대사로 부임한 후,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헝가리 문화원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뛰고 있는 대사를 만나보았다.
예전의 헝가리와 지금의 차이는
헝가리는 과거 냉전시대에는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의 위성국가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가히 하늘과 땅차이다. 헝가리는 30년 전 이미 민주주의국가가 되었다. 1989년 2월 1일, 우리가 한국과 수교를 맺을 때는 헝가리 인민공화국이었다. 그러나 1989년 10월 23일, 헝가리 56년혁명 기념일 에는 헝가리의 공식적인 체제전환의 날이었다. 공식적으로 헝가리 공화국 민주주의국가가 수립됐고, 이때부터 헝가리의 경제가 점점 발전하고 민주주의 정치시스템이 생기게 됐다.
이어 2004년에 정식적인 EU가입을 통해 유럽연합에 소속됨으로써 빠른 속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헝가리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봤을 때 원래에도 유럽의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19세기 경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는 한 나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고 불렸다. 이처럼 헝가리는 항상 유럽에 속해 있었고, 2004년 EU 가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유럽 가족의 멤버가 됐다.

한반도와 헝가리의 교류의 시초와 과정은
1989년 2월 1일 우리는 대한민국과 외교수립을 맺어 수교 3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대학교수 출신이다보니 이 과정을 열심히 연구했다. 특히 책을 집필하기 위해 헝가리 공문서 보관소 같은 기관에서도 연구에 노력을 기울였다. 연구를 이어가다보니 대한민국과 헝가리의 관계는 노태우 정권의 북방정책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대한민국과 헝가리와의 관계는 이승만 전 대통령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56년에 벌어진 헝가리 혁명 소식을 들은 故 김춘수 시인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제목으로 시를 쓰셨다.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 은 헝가리 혁명과 같은 일이 북한에도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고 헝가리 혁 명에 참가한 반공학생 3명을 대한민국으로 초대했다는 내용이 대한뉴스의 기록에 남아있다.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 시대 때부터 헝가리에 대한 대한민국의 관심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헝가리 공문서 보 관소 외교자료를 살펴보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살아있을 때부터 대한민국 외교부가 사회주의국가들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사회주의국가들과 교류를 하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헝가리와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교류관계는 1985~86년부터 천천히 시작됐으며, 특히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 말할 수 있다.
대사가 보는 남한과 북한의 차이는
외교관으로서 몇 차례 방북을 했었다. 방문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점은 우선 ‘똑같다’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자본주의국가이지만 북한은 다른 체제라는 사실만 다를 뿐 개인간의 모습은 똑같다는 말씀을 외교관으로서 드릴 수 있다.
남북한 상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앞서 지난 2018년 10월 8일, 문재인 대통령께 신임장을 드렸을 당시 대통령께 “남한과 북한을 통일을 하려면 먼저 역사를 통일해야 합니다”라는 말씀을 드렸다. 남북한을 통일하기 위해서는 우선 긴 역사의 과정들을 통일해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 드린 것이다. 교과서를 비교해 보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이 다르게 기술되어 있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삼국시대의 경우 남한은 신라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북한은 고구려의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또 남한의 교과서에는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나라의 영웅으로 설명되어 있지만, 북한의 교과서에서 살펴보면 고구려와 협력하지 않고 당나라와 협력했기 때문에 범법자, 배신자 등의 식으로 설명이 되어있다. 조선을 설립한 태조 이성계의 경우 명나라의 사대주의를 직접 시작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통일된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한 역사학자들의 공동모임, 공동연구 기회를 부여해 공동연구프로젝트로 계속 이어져야 될 것이다.

수교 30주년을 맞는 올해 준비하고 있는 행사는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만큼 많은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지난 1월의 경우 이미 2가지의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헝가리 국립오페라하우스와 대구 오페라하우스를 연결하여 헝가리의 오페라 작품을 소개했다. 작품의 주제는 헝가리 독립투쟁에 관련된 작품이었는데, 이러한 주제의 작 품을 소개한 이유는 금년이 3·1운동 100주년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가볍지 않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금년 6월, 10월에는 음악회가 열릴 계획이며, 가장 중요한 목표는 연말까지 헝가리 문화원을 설립 하는 것이다.
헝가리 문화원 설립의 목적과 운영방향은
헝가리에 한국 관광객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 헝가리 문화는 아직 한국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외교수립 30주년을 맞이해 큰 마음을 먹고 서울에서 문화원 설립을 결정하게 되었다. 계획대로라면 금년 연말에 오픈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헝가리 문학 소개, 대중문화 소개, 학술 소개, 이노베이션 소개 등을 준비하고 있으며, 다양한 전시회도 계획 중에 있다.
금년 10월 쯤 서울시 역사박물관하고 협력을 하여 사진 전시회 개최를 계획 중에 있다. 사진전의 주제를 설명드리자면 약 110년 전인 1908년에 당시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던 헝가리 군의관 한 명이 대한제국을 방문해서 남긴 사진들이다. 대한제국 당시의 많은 모습들을 사진으로 담았으 며, 서울시 역사박물관과 협력을 통해 이러한 주제를 가지고 사진 전시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 관광객들의 헝가리 방문은 어떠한가
한국 관광객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그 수도 적지 않다. 헝가리는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를 가지고 있는 관광상품으로 거듭났다.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에 특히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을 하고 있다.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세체니 다리’와 ‘국회의사당’의 야경은 유럽 3대 야경에 속할 정도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또한 헝가리의 경우 의과대학 교육이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인 유학생들의 수도 많다. 헝가리에서 노벨상을 받은 인물이 13명이다. 이들 중 몇몇은 의과분야에서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대한민국과 헝가리의 교류가 점점 활성화 되어가고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외교수립 30주년인 현재까지 직항항공편이 없다. 그래서 주한 헝가리 대사관은 지난 몇 달 동안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조만간 좋은 소식을 기대해본다.
한국을 잘 아는, 한국을 사랑하는 대사로 잘 알려져 있다. 대사가 생각하는 한국은
사실 한국에 올 때마다 외국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웃음) 제2의 고향으로 가는 마음으로 항상 입국을 한다. 나의 와이프도 한국 사람이고, 나의 자녀 모두 헝가리 국적 뿐만 아니라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자녀들의 학교 또한 고민 없이 한국 학교로 입학을 시켰다. 그만큼 대한민 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대학생 시절부터 한반도의 역사에 매우 많은 관심을 가졌다. 관심의 이유로는 헝가리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에서 공통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헝가리 역시 강대국들 사이에서 고난을 겪은 부분이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은 한반도와 비슷하다. 한반도의 역사를 조금 더 열심히 하기 위해 한국어도 배우고, 헝가리와 한국의 관계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헝가리 공문서 보관소, 고서적 등의 자료를 통해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조선이 1892년 당시에 우호조약을 맺은 사실도 밝혀냈다. 약 10년 동안 한국학학자로서 일해오다가 외교부로부터 요청을 받아 주한 헝가리 대사로 임명받게 되어 나의 연구 분야에 대한 일을 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한 마음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박철언 전 장관님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다. 내가 한반도와 헝가리 관계사를 연구하다보니 예전부터 박 전 장관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20 년 전부터 연세가 있으신 헝가리 외교관들, 교수님들은 박철언 전 장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셔서 항상 가슴 속에 담고 있었다. 작년 9월, 사실 한 국에 왔을 때 박 전 장관님이 살아 계시는지 몰랐다. 먼 옛날에 얘기를 들었던 역사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서를 통해 박철언 전 장관님에 대한 정보라던지, 혹시 생존하고 계시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놀랍게도 건강하게 잘 계신다는 소식을 전달받아 바로 대사관으로 초청을 하여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그 만남을 통해 지난 이야기도 생생하게 들었고 헝가리 훈장을 못 받으셨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지체없이 훈장을 신청했고 지난 2월 12일 직접 훈장을 드릴 수 있게 돼서 너무나 기쁘게 생각한다